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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조금 다른

joyce |2010.09.29 13:52
조회 491 |추천 0

[옥희의 영화]조금 다른

 

 

 영화를 보고난 후 시니컬해져버린 나와 달리, 그녀는 영화가 따뜻했다고 했다. 따뜻하다니. 그 지지리궁상을 보고도 온돌바닥을 연상했단 말이냐? 누구 때문이냐고 따져 묻는 내게 송교수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교수? 송교수가 어쨌길래. 마지막에 아차산에 나타난 것 때문에? 아니면 어린 계집애에게 휘둘려 공정심을 잃었다는 말 때문에?

 

 확실히 세 번째 에피소드가 좋긴 했지. 선문답이 좋았다기 보다 그 구역질나는 산낙지가 좋았어 라고 말하면 변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모양 빠지는 일을 하기 싫어 가슴에 얹힌 술안주를 토해내서 시원하다며 뒤돌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살짝 안쓰럽긴 했다. 어쨌든 그는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고, 학생들 불러놓고 제 할말에 취하는 모습도 여느 교수 못지않다. 뭐가 다른가? 뭐가 조금 다른가?

 

 모르겠다. 난 송교수가 아니니까. 다만 정말 마지막에 아차산에 나타난 것을 보니 약간 섬찟했다. 뭐야, 노인네, 정말 그 변덕스런 여자애를 연애라도 한 것인가? 일 년 전에 지나가는 약속을 기억할 만큼 순정을 가지고 있었던가? 아니면 그저 호기심인가?

 

 연애를 끝내고 가끔 여자들이 잘 하는 짓이 있다. 상대 남자를 나쁜놈 혹인 못난놈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우선 절친을 모아 소주를 까고 그놈이 나한테 한 나쁘고 못난 짓거리를 남김없이 리스팅한다. 술이 얼추 오를 때즘 되면 그놈은 나를 이용해먹은 이기적인 놈이요 나는 거기에 놀아난 정신없는 멍청이가 될 수도 있다. 여자의 기분은 몇 달 동안 바닥과 해저를 기어다니면서 어떻게 하는게 복수를 제대로 하는 걸까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결국은 내가 잘사는 꼴을 보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뭐, 다아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괜히 깊이 생각하지 마시라.

 

 어쨌든 그 나쁜놈을 기억 저편에 쳐박고 난 후에 난데없이 한밤중에 술에 취한 전화가 걸려오거나, 먼발치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로 보는 것을 느낀다면 그게 뭔가 달랐던가 하고 되물어볼 수도 있다. 너와 나 사이에 뭔가 조금 진심이 있었던 때가 있었던가 되짚어본다. 그런들 이제는 너무 늦었고, 앵콜은 금물이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나갈 필요는 없지만 이정도 되면 박범신의 책 ‘은교’가 떠오른다. 어린 여자인 은교가 있고, 그를 사랑하고만 늙은 시인 ‘적요’가 있고, 그녀를 욕망한 젊은 남자 ‘서지우’가 있으니까. 서지우은 진구처럼 덤비고 애원하고 잠자리를 조른다. 아니야...아예 돈을 주고 했으니까 원조교제 수준이다. 그래도 뭔가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하면 살짝 빈정이 상하고 만다. 적요의 욕망과 사랑은 서지우와 달랐다. 조금 달라서 많이 다르다. 같은 눈길도 손길도 입맞춤도 다르다면 그건 왜 다르고 어디서 달라진걸까? 송교수의 행동과 마음에는 조금쯤 시인 적요와 같은 무언가, 서지우와 조금 다른 ‘그것’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젊어서 연애와 시간이 후려치고 간 후에 사랑이 조금 다른걸까? 아니, 사람이 생의 무엇인가를 깨닫고 난 후에 다른 걸까? 

 

 책에서의 '은교'는 여자라고 쓰여졌으나 예술이라고 읽어본다. 사랑하겠다고 덤비지만 천박한 겉핧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차마 손을 못 데다가 그 요염함에 포로가 될 수도 있다. 한순간 그 무엇을 잡았다하는 순간에도 곧 죽음같은 나락으로 사라지고 만다.  사랑도 삶도 예술도 그 깊이의 선은 어디서 어떻게 그어지는 것일까?  같은 듯 보이나 조금 다른 것들. 조금 달라서 완전히 다른 것들. 세상에는 가끔 그런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써놓고 보아도 그게 무언지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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