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일 - 2010년 9월 30일
캐스트 - 정성화, 신영숙, 예성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원탁의 기사]라는 만화영화를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기억하신다면, 적어도 제 연배이거나, 아니면 저보다 연장자일 확률이 높겠지요.
[원탁의 기사]라는 제목이 생소하다고요?
그럼 이 가사는 어떻습니까?
“희망이여 빛이여 아득한 하늘이여 나의 백마가 울부짖는다.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바람을 가르는 갈기. 나 소리 높이 외친다. 나 소리 높이 외친다. 위대한 이나라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오늘도 달린다.”
오... 적어놓고 보니, 상당히 웅대한 기상이 엿보이는 가사입니다. ^^
1980년대 초반에 TV에서 방영한 것으로 기억하는 이 만화영화는, 당시 온 동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검(神劍) 엑스칼리버를 휘두르게 만들었고, 학교 운동회에서는 단골 응원가로 이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부를 만큼 아이들 세계에 상당히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이때는 아더왕이 어느 나라의 왕인지도 몰랐고, 이 이야기가 전설인지, 역사적 사실인지 알 수도 없었으며, 단지 갑옷 입은 주인공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마법사 멀린과 함께 나쁜 놈들을 물리치면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힘쓰는 내용에 열광했을 뿐, 아더왕 이야기가 서구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아더왕에 대한 수많은 책과 수많은 영화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전설과 섞여 다양하게 변종된 이 이야기는 성배 탐색과 거인퇴치, 로마원정, 랜슬럿과 기네비에 왕비와의 불륜의 사랑등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 [퇴마록]에도 아더왕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중 진지하지 않은 아더왕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더왕은 영국을 살린 구국의 영웅이었고, 게다가 전해 내려오는 그의 행적들은 성배 탐색과 같은 성스러운 임무가 대부분이었으며, 원탁에서 회의를 하며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영웅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진지하지 않은 아더왕 이야기는 아마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나 괴짜는 있는 법.
1969년 영국의 공영방송 BBC를 통해 [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Monty Python's Flying Circus)]라는 작품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6인조 코미디 작가 팀,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은 - 그 유명한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감독도 몬티 파이튼의 일원이었습니다. ^^ - 1975년 [몬티 파이튼의 성배(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라는 영화로 아더왕의 전설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요절복통 코미디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스팸어랏]은 이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사실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기사들을 모집하던 아더왕은 결국 랜슬럿, 로빈, 갈라핫, 베데베르 경들을 영입하여 기사단을 만들게 되고, 신의 계시에 따라 성배를 찾으러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진지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으며, 기사도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 무뢰한들은 가는 곳마다 소동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곳곳에서 엉뚱한 사건을 만들곤 합니다.
결국 어떤 숲에서 ‘니(Ni)'라고만 말하는 기사들을 만나 엉뚱한 미션을 수행하게 되기도 하고, 랜슬럿은 게이왕자 헐버트를 도와주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기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 이들의 임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제작하는 것으로 변질됩니다.
성배를 과연 찾을 수는 있을까요?
이 작품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한 풍자이고, 조롱과 조소이기 때문에 내용 그 자체에는 커다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시종일관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고, 명색이 기사이지만 기사도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이 ‘양아치 원탁의 기사’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권위에 대한 반항이자 숭고함과 진지함에 대한 삐딱한 비웃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의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위한 패러디라고나 할까요?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면들은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한 패러디로 가득한데, 이런 패러디 장면들을 이용한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 또한 가득합니다.
급기야는 노래 가사 속에서도 기존의 뮤지컬에 등장했던 연인들의 사랑노래에 대한 비판을 하고, 흥행 하려면 ‘연예인’을 캐스팅 하라는 둥, 뮤지컬 관계자들이 보면 웃으면서도 가슴 한편이 뜨끔해질만한 조롱을 퍼붓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개인적으로 살짝 걱정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패러디 작품들이 그다지 크게 성공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성공작을 꼽는다면 [총알탄 사나이] 정도랄까요?
패러디 코미디의 황제 멜 브룩스(Mel Brooks)의 영화들중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가 한편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패러디 코미디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은데, 과연 영화도 아닌 뮤지컬을 패러디한 이 작품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먹힐 수 있을지 상당히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니 꽤 잘 만든 수작 코미디라고 나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관객들의 반응은 이해하거나, 이해 못하거나, 이 두 가지 반응인 것 같군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게 되는 패러디 뮤지컬 작품이고, 내용 또한 기존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뒤죽박죽 황당무계한 상황의 연속이다 보니, 아무래도 관객들의 적응에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가볍게 머리도 식히면서 한바탕 크게 웃어보고 싶은 관객들과, 기존에 만나보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뮤지컬을 만나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강추’하는 뮤지컬, [스팸어랏]입니다.
사족(蛇足).....
앞쪽 근처의 자리에 앉게 될 경우, 살짝 긴장해야 하는 공연입니다.
무대 위로 끌려 갈 수도 있으니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