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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유머 : 아고라 정치 박물관 관람기

 

 

       CNN이나 Fox 뉴스 채널을 보는 것이 미국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재미 있던 2008년도 미국 대선을 기억하는가? 힐러리 클린턴이 자판기 커피를 뽑을 줄 몰라 우물쭈물 하는 화면을 확보한 후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한마디 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Fox의 분석가들을 기억하는가? 알라스카의 바비 인형 사라 팰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등장한 후 Steven Colbert이나 John Stewart 같은 정치 풍자 코미디언들이 풍부한 소재가 생긴 것에 아이처럼 흥분하며 기뻐하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대선이 끝났을 때의 후폭풍을 기억하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c3_95F5e-Ac?

 

        할리우드의 나라 미국, 정치가 이처럼 재미 있고 글래머러스하게 다뤄지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한국 9시 뉴스 아나운서의 경직된 목소리가 보여주듯, 정치하면 진지함과 무게감을 기대하는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분명 다르다. 미디아가 정치를 어떤 식으로 다루든, 정치가 심각한 비즈니스임에는 틀림없다. 나라의 운명이, 국민 개개인의 운명이 정치인의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니 말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정치 시국을 논할 때, 진중성의 결여는 도덕성의 문제를 대두시킨다. 그래도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 그 심각한 과정 안에서도 우리 인간은 희극적 요소를 발견한다.

       정치는 연극이다. 거기선 한 나라의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것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교류하며 만들어내는 실제 상황들은 교과서 혹은 강의에서 접해 오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때론 무한도전을 보는 느낌을 준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사 속에도 실은 인간적 에피소드와, 그에 따르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숨어 있다.

 

 

 

        헤이리 예술 동네 9번 게이트 5번째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정치 박물관 <아고라>는 이렇게 책 속에서 까만 글자로서만 접했던 지식들에 무지개 숨을 불어 넣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제 크기의 오바마 종이 인형이 우리를 맞는다 (놀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1층은 세계 정치관으로 러시아, 프랑스, 일본, 미국,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의 정치 관련 포스터와 물품들이 나라별로 전시되어 있다. 또, 디즈니 우표도 전시되어 있는데, 미국 사회상과 미국인들의 가치관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도 이 박물관을 즐길 수 있다. 2층 한국 정치관에는 한국의 선거 포스터, 선거 홍보물,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핵심 서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압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각종 야채나 식물 등 기발한 재료를 사용, 압화 기법으로 만든 그림들이 물감으로는 만들 수 없는 색감을 내고 있고, 포근한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 외국인 방문객이 와서 보기도 좋을 것 같다.

 

 

 

 

1층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000년도 미국 대선, 부시와 알고어의 승패를 갈랐던 플로리다의 기표대와 투표 용지이다. 마이클 무어 같은 좌파 인물은 자신의 다큐멘터리 Farenheit 9/11에서 이 때 개표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알고어가 이겼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투표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으로 부시가 당선됨으로써 미국의 역사, 그리고 전세계의 역사가 달라진 셈이다. 이처럼 중대한 대선 결과가 사람들이 이토록 허술한 투표대에 들어가 투표지에 못으로 “꼭꼭” 찌르고 (종이가 떨어진 것을 확인하지 않고)그냥 가버린 것에서 비롯된다니. 이래도 정치가 심각한 비즈니스이라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각국 정치인 관련 피규어 및 소품을 아기자기하게 전시해 놓은 곳이다. 위대하게만 느껴지던 정치인들을 손아귀에 폭 들어갈 정도의 크기의 인형으로 접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렇게 소품화시켜 놓은 정치인들을 보면서, 정치인들을 영화에 나오는 배우인 양 취급하는, 혹은 영국 국왕 부부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부부를 슬리퍼로 신고 다니는 독특한 서양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선거철에 후보자들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과자 상자를 판매하는데, 어떤 연령대를 겨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 유쾌한 선거 전략이다. 과자 회사가 정치를 이용하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과자를 이용하는 것일까? 당 별로 다른 맛이 날까? 궁금증을 자극한다.

 

 

 

        2층은 한국 정치관으로 진짜 드라마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 정치처럼 재밌는 드라마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치가 유머러스하고 파격적인 농담을 잘 하는 친구 같다면 한국 정치는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말투나 분위기가 그냥 보는 이로 하여금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그런 친구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 얼굴이 그려진 달력을 선거 홍보물로 나눠주면 농사를 짓는 국민들은 1년 내내 그 달력만 보고 그 달력에 나와 있는 날에 씨를 뿌리고 쌀을 거두고 살다가, 투표 때 그 사람 얼굴을 찍는다고 한다. 슬프면서도 그 순수한 모습에 웃음이 나지 않는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에 맞서는 “갈아봤자 별 수 없다, 갈아내면 더 못 산다” 등의 문구들이 야당 후보 얼굴 위에 써져 있는 모습, 혹은 선거 구호라기보다는 한시에 가까운 구호가 장황하게 적혀있는 선거 포스터 등에서 과도기 때 한국 정치의 미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을 영접하는 사진은 마치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 미묘한 사진 뒤에 얽힌 뒷이야기는 무엇일까 상상해본다.

          또, 한강 백사장으로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40만 명의 국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잘 들리지도 않는 것을 들으러 소까지 타고 온 국민들의 모습에서 민주화 초기 단계의 국민들의 이처럼 순수한 열의가 얼마나 부패한 정치인들 손에 악용만 되다 시들게 되었나 생각해본다. 전시관 벽에 있는 “이기붕의 선물 x 파일”이라는 신문 논평에서 또 한국 정치의 재밌는 단편을 볼 수 있는데, 이 글에 따르면, 이기붕이 받은 선물 혹은 뇌물들을 기록해둔 장서 목록에 보면, 당시 귀했던 콜라 한 상자, 수상한 과일 상자 등이 있는가 하면, 꿩이나 멧돼지 같은 별별 당혹스러운 물품들이 적혀있다고 한다. 당시의 정치인들이 한자리 꿰 차보겠다고 꿩이나 멧돼지를 등에 업고 이기붕을 찾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한국 정치처럼 재미 있는 드라마, 혹은 시트콤이 어디 있을까?

 

 

           한국 정치관에 모퉁이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면, 이승만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한국의 선거 포스터들을 일렬로 전시되어 있다. 이를 살펴보면, 그 동안 한국의 정치를 대하는 분위기, 홍보 전략, 그리고 민심의 소재가 무엇이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선거 포스터에 정치인들의 엄숙한 사진과 함께 한자로 그의 공약이 장황하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을 지식인 즉, 많이 배운 양반들이라 여기며 우러러 보던 서민들에게 마치 신적인 존재인 양 어필하는 방법을 택한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효과적인 선거 방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비공감대와 거리감 형성이 이전의 선거 전략이었다면, 최근 추세는 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민 이미지를 앞세워 어필하는 이미지 정치인 듯하다. 사진에 나와 있는 정치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서글서글하고 웃음을 머금고 있다. 구호도 광고 카피처럼 간결하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인지, 호빵 CF를 찍겠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미국 언론이 정치 문제를 흥미 위주 또는 코미디 소재로 즐겨 취급하는 이면에는 어쩌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강력한 시스템을 가진, 가진 자의 여유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아도, 조금쯤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도, 시스템의 제어 능력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요지부동일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부러운 일이다. 우리 정치에도 차츰 그런 색깔이 나타날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참 궁금하다.

           미국 정치에 신랄한 풍자와 비웃는 듯한 조크가 있다면, 한국 정치에는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드는 유머가 있다. 우리는 자주 정치의 품위와 위엄에 집중하여 이러한 순간순간의 가벼움을 보지 못하곤 한다. 아고라 박물관이 보여주는 정치의 이모저모들은 내게 한국 정치를 냉철한 정치학도의 시선뿐 아니라 애정 (혹은 애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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