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 예장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는 4대강 반대 안건을 1년간 연구한 후 재논의 하자며 연기했다. 그리고 하루 뒤 한나라당에선 사학법(사립학교법)을 재개정 하겠다고 나섰다. 사학재단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해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사, 장로들이 양심을 져버리고 정치권과 결탁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청렴하고 결백하게 살아야 할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져버린 것이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구원에 있다. 그러나 현대종교는 종교의 목적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현대에는 인간구원을 위해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신도들의 모범이 되는 종교지도자들은 많지 않다. 종교가 물질문명과 신자유주의의 이념에 물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얼마 전 불교에서도 조계종과 태고종이 신촌 봉원사를 나눠가지는 일이 있었다. 봉원사는 원래 태고종의 총본산이었는데 조계종이 봉원사의 이익을 탐하여 50년간이나 소유권 분쟁을 지속해오다가 나눠가지기로 한 것이다. 불심을 닦아야하는 청정한 도량이 종파간의 이익을 위한 싸움터로 전락된 셈이다. 심지어 정치투표에서까지 신도들은 종교지도자들이 내세운 후보를 지지한다. 크게는 국가를 작게는 지방도시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을 단지 종교지도자가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런 안일한 의식이 종교의 세속화에 기여하고 개인의 의식을 저하 시키고 있다.
우리가 종교의 세속화에 대처하기위해선 의식의 함양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비판, 무비판적인 관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종교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것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언젠가는 그 작은 노력이 종교를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경에 루터라는 물방울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이라는 바위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했던 루터의 노력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사회적인 관심으로 환기시켜 프로테스탄트 신교창립 이라는 큰 쾌거를 이룬 것처럼 우리는 종교의 세속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의식함양과 자체적인 참여의식으로 무장해야한다.
우리의 의식이 함양되어 문제를 인식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노력을 해야한다. 우리는 문제해결을 위해 자발적으로 종교 내에 자체적인 기관을 설립해서 종교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기관의 단원들은 인품과 덕망으로 뽑고 기관은 종교지도자의 독주를 막고 교내의 어려운 신도들을 도우며 종교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이끌어 주는 모범적인 기관이 되어야한다. 또 종교내의 모든 신도들에게 종교지도자의 모든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 하면(종교지도자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하는지)신도들의 종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종교지도자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고 본받는 좋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처럼 종교의 세속화에 대처하기 위해선 의식함양과 자체적인 참여의식이 중요하다. 비록 우리들의 의식을 함양한다고 해서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 되어버린 종교의 문제를 바꾸긴 힘들겠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듯이 작은 것부터 이루어가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루터도 개인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 종파의 창립을 이뤄낸 도화선이 되었던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것이다. 신성하고 경건했던 종교가 더 이상 비판당하고 비하되지 않게 우리는 세속화 되어가는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