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대략난감
109p. 오늘은 한글날. 한글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한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이다. 당연히 공휴일로 지정되어야 한다. 정부가 지정해 주지 않아도 내가 지정하겠다. 한글날만 되면 나는 무조건 쉬겠다.
113p.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모르면서 아는 척 설치는 것은 죄다.
114p. 산꼭대기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겠다고 허세를 부리는 속물군자여. 자신의 마음조차 낚아본 적이 없는 처지에 세월은 도대체 무슨 수로 낚겠단 말인가.
116p. 빙그레 웃음 한입 당신은 콜라병에 담긴 간장과 간장병에 담긴 콜라를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아보지 않고도 구분할 수 있나요. 어떤 대상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청맹과니들의 안쓰러운 신념과 욕망, 박수를 쳐 드릴까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가을이 떠나고 있네요. 그래도 하늘은 맑으니 빙그레 웃음 한입 베어 물고 차나 한잔 합시다.
119p. 악플을 작성한 다음 엔터를 치면 '당신의 두개골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개념을 충분히 주입한 다음 자판을 두드리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돌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라. 그대는 틀림없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22p.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123p. 깬다 시리즈 처음 보는 남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아가씨 시간 있으세요" 라고 물었을 때 "지갑에 얼마나 있으세요"라고 되묻는 여자. 깬다.
123p. 예술가의 정신을 자기 것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술가의 기행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귀를 자른다고 누구나 고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25p.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그려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126p.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127p. 장인정신이 투철한 도공은 흔히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모조리 깨뜨려버리지만 예술적 안목이 없을 때는 명품만 골라서 깨뜨린다. 캐안습이다.
130p. 어느 날 현미경으로 연못 침전수에 섞여 있는 미생물들을 관찰하고 있는데 아내가 약간 놀리는 어투로 내게 물었다. 당신 그놈들 이름이나 제대로 알고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거유. 내가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놈들 이름 붙여주고 있는 중이야. 나는 소설가의 시각으로 그놈들을 관찰하면 되지 반드시 생물학자의 시각으로 그놈들을 관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131p. 왜 사람들은 행복을 잡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한사코 행복의 반대 편으로만 손을 내미는 것일까요.
133p. 오석같이 경도가 높은 낱말이 있는가 하면 찰덕같이 점성이 높은 낱말도 있다. 저 혼자 반작거리는 낱말도 있고 저 혼자 바스러지는 낱말도 있다. 언어의 맛을 볼 줄 모르면 언어의 맛을 낼 줄도 모른다. 겅성으로 읽지 말고 음미해서 읽으라. 분석 따윈 집어치우고 감상에 열중하라.
134p. 어느 중학교 한문시험에 '백문(百問)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한자말의 뜻을 적으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한 학생이 '백 번 묻는 놈은 개만도 못 하다'라고 답을 적었다. 한문 선생님은 그 학생의 창의력을 가상스럽게 생각하여 반만 맞은 걸로 평가를 해주었다. 실화다.
139p. 가지고 싶은 건 한없이 많은데 주고 싶은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끝없이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배설하지 않는 습성때문에 뱃속에 똥만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142p. 아내들이여. 남편들이 사랑고백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지 말라. 남편들이 날마다 출근해서 녹음기처럼 되풀이되는 상사의 역겨운 잔소리를 참아내고, 자존심을 있는 대로 죽이면서 거래처에 간곡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헤비급 역도선수의 역기보다 무거운 스트레스를 어깨에 걸치고 퇴근하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그대와 자식들을 사랑한다는 무언의 고백임을 명심하라.
144p. 유머의 재구성 실직한 아빠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러지 아들이 호기 있게 대답했다. 대통령이요. 아빠가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네거 대통령이 되면 아빠는 뭘 시켜줄 거냐. 기대감에 찬 목소리였다. 아들이 재빨리 대답했다. 탕수육이염!
145p. 하나님, 인생말년에 어쩌다 축복 한번 다운 받아보고 싶은데 버퍼링이 너무 깁니다. 파일의 용량이 너무 많아선가요.
147p. 이외수가 어떤 도인에게 물었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그 도인이 대답했다. 하늘을 나는 일은 나비나 새들한테 맡겨두시게.
151p. 젊으니야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멀고도 험난하니, 그대 배낭 속을 한번 들여다보라. 욕망은 그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소망은 그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법. 젊었을 때부터배낭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 욕망들을 모조리 내던져버리고 오로지 소망을 담은 큰 그릇 하나만을 간직하지 않으면 그대는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주저앉고 말리라. 하악하악.
153p.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이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 따로 없고 다만 '언제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155p 까마귀 한 마리가 달빛을 가로질러 간다고 온 세상에 어둠이 오는 것은 아니다.
159p. 과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알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할 수 없다. 그 이론을 사람과의 만남에 적용시키면 어떤 사람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알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따위로는 완전무결하게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 비록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이라도 가급적이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자. 하악하악.
160p. 외롭지 시리즈 동네 꼬마들 만화영화 구경시켜 준답시고 극장에 데리고 갔을 때, 주인공 로봇이 악당 때려 부수기 위해 출동하면 극장을 가득 메운 초딩들 힘차게 주제가 따라 부르지 말입니다. 그때 저만 가사를 몰라서 뻘쭘하게 입 다물고 있으면 갑자기 2분 정도는 참 외롭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