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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모들만 이래요? 원래 이래요?

앵꼬 |2010.11.18 05:36
조회 1,968 |추천 4

 

안녕하세요.

충남 어딘가에 살고있는 스물다섯 시골여자네요.

 

소개 할말이 없어.....한줄도 안넘어 ㅠㅠㅠㅠㅠㅠㅠ

 

예,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좀 더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음슴체 쓸께요.

중간중간 반말 이해 좀....

 

스크롤 엄청 김.

 

긴 글 싫어하는 사람 그냥 뒤로 ㄱㄱ

 

---

 

난 우리고모들 참 싫음.

고모들도 날 싫어함.

 

고모가 한두명이라면 차라리 바락바락 대들면서 싸우겠는데, 다섯임.

난 언어장애가 있는건 아닌데, 말빨이 좀 심하게 딸림.

 

우리고모들.....

최강말빨을 지녔음.

어디가서 다시 못볼 말빨임.

아닌게 아니라 살면서 본 사람들중 우리고모 말빨스킬 능가하는 사람 못봄.

 

그런건 왜 안배웠나 모르겠음.

 

여튼 다섯고모들 중 둘째, 막내고모를 제외한 나머지 고모들은 다 같은 지역에 삼.

심지어 차타면 10분임. 미치겠음.

 

지금은 내가 도망나오다시피해서 고모들이 모르는곳에서 살지만,

예전집에 살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음.

 

진짜 죽어버리고 싶었음.

그래 어디 장례한번 더 치뤄봐라 하며 자살시도도 해봤음.

 

본 에피소드 들어가기전 일단 고모들 특징임.

 

첫째고모.

연로하심. 정말 많이 연로하심. 큰아버지보다 누나심.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많이 안괴롭힘.

혼자서 오시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셋째고모랑 오시면 시어머니로 돌변함.

그러나 엄마 증언에 따르면 제일 시집살이 심한 시누가 첫째고모라고 함.

 

둘째고모.

충북에 사심. 25년 살면서 얼굴 딱 두번봄.

한번은 어렸을적 놀러갔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또 한번은 아빠 장례식때.

엄마 장례식때는 오지도 않았음.

 

셋째고모.

원수. 우리 모녀의 최대 적.

다른말로 표현 할 수가 없음.

고모들중에서도 최강을 자랑함.

 

넷째고모.

셋째고모가 원수라면 넷째고모는 그냥 공포.

말수는 제일 적으심.

눈빛으로 표현하심.

말빨로는 져도 눈빛으론 어디가서 안지는데 그 눈빛만 생각하면 오금이저림.

 

막내고모.

제일 잘 챙겨주는 고모.

라고 생각했으나, 뒷담화가 장난아니였음.

그래, 다른고모들한테 나 까일 빌미 제공해줘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음?

 

 

#1

엄마얘기임.

엄마가 20살에 성치도 않은몸으로(지체장애 4급) 아빠한테 팔려오다시피 시집오셨음.

정말 외갓집도 뭐 없어서 혼수니 뭐니 그런거 하나도없이 몸만오심.

당연히 시집살이 심했음.

커피하나 제대로 못끓인다고 커피 물주전자 쏟아버리고, 엄마 뺨때리고..

시집살이가 너무 심해서 아이를 갖는 족족 유산함.

나 장녀지만 엄마한텐 8번째 아이임.

밑으로 한명 더 있었음.

내동생은 10번째 아이임.

여튼, 엄만 임신 7개월째인 몸으로 그 고된 시집살이 다 하고 있었음.

근데 뭐가 수틀린건지 기억안나는데, 첫째고모가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냐. 친정에서 뭘 배우고 왔길래 이모양이냐' 라며 임신 7개월째인 엄마 머리끄덩이 잡고 마당으로 내동냉이 침. 그것도 모자라서 발길질. 머리채잡고 동네 골목골목 누비며 질질 끌고다님.

아이는 어떻게 되었냐는 물음따위 안받음. 그 상황에 살아있는게 기적임. 물론 그런기적따윈 없었지만.

나 고등학교때 들었던 얘기였는데, 우리엄마 그 얘기하면서 울었음.

나 엄마 우는거 그때 처음봤음.

 

 

#2

아빠 장례식때였음.

아빠가 폐암 4기B 판정받으시고, 병원에서조차 포기해서 그냥 집에 계셨음.

고모들? 아빠 아프실때 한번도 안옴.

연락 안한거 아님. 우리 아빠가 고모들한테 연락하는거 다 봤음.

우리아빠 판정받고 4개월만에 돌아가셨음.

장례식때 그제서야 그 귀하신 얼굴 들이미셨음.

근데 거기다 대고 하는말이,

미우나 고우나 자기서방이라고 넋놓고 영정만 보며 통곡하는 우리 엄마한테,

"저년이 엄마(할머니) 잡아먹고, 지 서방도 잡아먹었네."

 

따지지 못한 내 탓도 큼.

그리고 나중에 나랑 내동생만 따로 불렀음.

"ㅇㅇ아(내이름) 이제부턴 니가 가장이야. ㅁㅁ이(동생) 너는 누나 잘 도와주고.."

 

그 말을 들었을땐 그래도 친척이라고 보듬어 주는구나 싶었지만.

그런생각을 한 내가 병신이지.

"니네 엄마도 얼마 못살텐데 너희들끼리라도 의지해야지."

 

악담을 퍼부어라.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한테 뭐가 어쩌고 어째?

그것도 그사람 자식들한테? 

 

 

#3

장례식 이후, 고모들이 수시로 집을 드나들어 엄마한테 잔소리함.

'집안꼴이 이게 뭐냐. 아빠있었을땐 안이랬는데, 다 니가 말아먹은거 아니냐.'

일주일에 서너번씩 와서 엄마 계속 갈굼.

우리엄마 진짜 착함. 하지만 부처도 아니고 결국 폭팔함.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고모들한테 '나가! 미친년들아 다신오지마!'

그 뒤로 다신 안옴.

 

 

#4

아빠 돌아가시고 정확히 6개월만에 엄마 뇌출혈로 쓰러지심.

겨우겨우 병원에서 기적소리 들으면서 구사일생 정신차리심.

근데 1년만에 또 뇌출혈로 쓰러지심.

안되겠다 싶어서 없는살림에 자꾸 터지는 혈관 인공으로 바꾸는 수술을 결심함.

수술하시고서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서 두달정도 입원해계심.

고모들 다시 오기 시작함.

그때 내가 일하고 있어서, 병간호는 동생이 결석계까지 내며 했고.

난 병원비 마련하려고 하루에 두세시간 자면서 병원-회사-집 반복함.

하루에 두시간 자면서 그 큰돈 마련하느라 죽을거 같음.

그때 내가 일한지 1년 지난 상태임.

모은돈이 어디있겠음?

집안살림이 어려워서 월급은 모조리 엄마통장에 있지.

백만원도 안되는 월급으로 동생 학비대고 생활비쓰는데도 벅찬데 무슨적금?

그나마 찔끔찔끔 모은것도 그동안 엄마 아파서 다 병원비 감당했는데 장난?

그 전날도 두시간 자고 출근해서 야간근무 끝난뒤 좀 자겠다고 누워있는 나 깨움.

그리고 집안꼴이 더 엉망이라며 날 갈구기 시작함.

아직도 기억남 셋째고모 망할년아.

가뜩이나 수술비 버느라 상사의 악질적인 괴롭힘도 참아내며 일하고 있는데,

내가 아닌 내 남동생이. 사내새끼가 학교 결석계내며 병간호 하는게 거슬렸나봄.

 

니동생은 남자애인데 왜 남자애가 엄마 병간호를 해야하냐 엄마 병간호는 딸인 니가해야하는거 아니냐 니동생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식사도 잘 못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던데 넌 잠이 오냐. 병간호를 니 동생이 하면 넌 집안일이라도 제대로 해놔야지 이게뭐냐. 이게 집구석이냐 돼지우리냐.

 

내동생? 안잔거 아님. 피씨방가서 게임하느라 안잔거임.

엄마가 난 괜찮으니 바람좀 쐬고 오라며 돈 쥐어주길래 피씨방 갔다 오느라 잠 안잤다고 했음. 그때 마침 공교롭게 고모들이 와서 안자고 밤새 간호한걸로 착각했다함.

 

나도 그때 잠이 많이 모자란데다, 회사에선 상사가 대놓고 그만두라고 괴롭히지, 거기다가 돈문제까지 겹치니까 있는대로 까칠해져서 처음으로 대들었음.

 

아마 난 엄마 수술비 벌고있다. 수술비 벌려면 내가 일해야 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내동생이 돈을 못버니 내가 벌고, 내 빈자리는 내동생이 채운다는데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냐. 그럼 돈이라도 보태줘라.

 

라며 평소엔 절대 안할말로 대들었음.

 

자기네들도 할 말이 없었나봄.

뭐라뭐라 우물우물 대더니 말도 안되는 말을 함.

 

"넌 니 엄마가 중요해. 회사가 중요해?"

 

엄마가 중요하니까 모욕적인 말 들으면서 까지 돈버는거잖아 ㅁㅊ...

 

 

 

#5

엄마 장례식때임.

결국 그 큰수술을 받으시고도 또 뇌출혈로 쓰러지심.

그리고 이번엔 일어나지 않으셨음.

 

나한텐 진짜 정신적 지주였음.

그때 내가 22살 이였는데, 그때 우울증 생겨서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음.

엄마까지 돌아가시고 정신적으로 감당이 안되서, 아빠 뻔히 담배로 돌아가신거 알면서 담배를 배웠음.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아직까지 못끊고 이러고있진 않을텐데 ㅠㅠㅠㅠ

 

아빠 돌아가셨을땐 엄마가 다 알아서 하신 일들이, 나한테 넘어오니 엄마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음.

 

그때 정신 못차리고 울지도 않고 밥도 안먹고 넋놓고 있었음.

겨우겨우 정신차려서 들은말이 엄마는 2일장 한다는 얘기 였음.

황당해서 웃음도 안나옴.

 

우리집에 가장 도움을 많이 주셨던 큰아버지께서 (아부지 장례식때 장지비 큰아버지가 다 내시고 부조금으로 들어온거 손 안대시고 그냥 우리 주셨음)

엄마 돌아가시기 딱 한달전에 큰아버지의 며느리께서도 유방암으로 운명을 달리하셔서 우리를 도와줄만큼 여유롭지 않으신 상황이셨음.

 

그래도 큰아버지께선 엄마도 가족인데 3일장이 맞는거 아니냐..

라고 하니 고모들 반발. 아빠는 가족이지만, 엄마가 무슨 가족이냐 아빠가 없으니 엄마는 그냥 남 아니냐. 라며 특유의 억지논리를 펼치심.

 

평소같으면 고모들한테 호통치실 큰아버지신데 웬일로 고모들한테 굽히고 들어가심.

그땐 내심 서운했는데, 나중에 큰오빠(사촌오빠) 한테 자조치종 듣고나니 너무 죄송함 ㅠ

 

결국 2일장 하기로 하고, 아빠 장례식때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인원을 보시더니 계속 고모들 눈치 살피심.

 

그러다 사람들 하나도 없는 시간대에 고모들 불러놓고 얘기하심.

자기가 이번에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딱 백만원씩만 도와줘라...

큰아버지 성격에 도와달란 말 안하실 분인데, 고모들한테 도와달라 말 하시는거 보고 울컥함.

 

근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의 고모들.

모두들 입을 모아 "우리가 왜?" 라며 반박하심.

 

큰아버지가 너희들이 정 제수씨(엄마)를 가족으로 도와줄 수 없다면 날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면 안되냐..나는 가족이지 않느냐..라며 고모들 설득하심.

근데 거기서 도와줄 고모들이 아니였음.

우리는 결혼한 출가외인이다. 고로 오빠랑 우리랑 남남 ㅇㅇ 이라며 반박함.

 

와 ㅋㅋㅋㅋㅋㅋ 난 고모들 입에서 저런말이 튀어나올줄은 몰랐음.

아예 큰아버지란 존재를 남으로 인식하다니???

 

결국 자존심도 상하신데다 저런말 들으시니 큰아버지도 많이 언짢으셨음.

그 자리에서 대판싸움. 큰오빠랑 작은오빠(사촌오빠들)까지 합세해서 고모들VS큰아버지집으로 크게 번졌음.

 

중간에 돈 못모은 나만 죄인됐음.

 

다음날 발인직전에 화장실에서 고모들한테 둘러쌓여서 욕먹음.

내가 돈을 하나도 못모아서 괜히 남매사이 벌어졌다며 나한테 뭐라함.

 

큰아버지 한테 우리는 남남 이라고 한건 당신네들일텐데?

 

 

#6

툭하면 나한테 돈가지고 뭐라고 함.

2년 회사다니면서 그때 내 월급이 120이였음.

그걸로 먹고살고 그동안 엄마 병원비며 수술비 내느라 땡전한푼 없었음.

집에 환자가 있으면 돈 안모인단 말 사실임.

심지어 수술비 모자라서 대출 받은게 있었음.

솔직히 말하면 부조금 들어온것도 대출금 갚는데 썼음.

가뜩이나 대출금 갚는것도 힘든데, 자꾸 적금 얼마 붓냐고 닥달함.

한달에 30만원 붓는다고 구라침. 아예 안붓는다고 하면 날 죽일거 같았음.

근데 화냄.

한달에 30만원 붓는게 말이되냐며 다그침.

한달에 못해도 80만원 부어야 하는거 아니냐며,

어따가 돈을 쓰냐고 돈을 그렇게 헤프게 쓰냐며,

돈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조카를 졸지에 된장녀로 만듬.

그것도 모자라 나한테 가계부를 쓰고, 그 가계부 자기한테 검사받으라는둥.

남들은 22살때 돈 모아서 엄마아빠 손 안벌리고 결혼자금 쓴다던데, 넌 뭐하냐는둥

니가 아직 철이없어서 놀고먹을 생각만 한다는 둥.

니엄마 닮아서 경제관념이 떨어진다는 둥.

 

그때 내가 삶의 이유를 못찾던때라 대꾸도 안함.

그 소리 들으면서 우리엄마 이걸 어떻게 버텼나 이생각이랑

이사람들한테 이런소리 들을바에 차라리 죽는게 낫지. 이생각밖에 없었음.

 

그리고 실행에 옮겼음. 근데 살았네?

 

 

#7

또 나한테 뭐라고 하는게 있는데 집안일.

나 교대근무임. 내동생 학생임. 그것도 고등학생. 수능도 안보는. 야자도 안함.

그때 거의 풀로 12시간 근무였음.

나 몸 약함.

울엄마 나 임신했을때 영양공급 제대로 못해서 미숙아로 태어남.

태어나서도 아빠 눈치보느라 하루 한끼 겨우먹었음.

나 젖동냥해서 컸음. 아빠가 젖병 다 부셔버려서 집에선 먹을수가 없었음.

커서는 밥상 뒤엎는게 일상 다반사라 중학교 3학년때까지 제대로 못먹고 컸음.

 

지금도 자주 아파서 입원함.

 

여튼 돈을 벌어도 버는 족족 나가니까 나 먹을 돈도 없어서 회사밥 말곤 제대로 된 영양공급이 안되서 더 힘들었음.

 

12시간 근무하고 집에서 출퇴근 하느라 엄마 돌아가신 뒤에도 하루 수면량이 7시간이였음.

위에도 썼지만 우울증 심했음. 우울증과 같이 불면증이 찾아옴.

 

잠도 모자라고 밥도 제대로 못먹어서 살은 쭉쭉 빠지는데,

고모들 집안일 안하냐며 잡아먹을 기세로 소리지름.

나 일하는게 무슨 벼슬인줄 아냐며 갈구기 시작함.

 

나도 너무 힘들어서 정말 제가 몸도 약하고 일하는것도 많이 힘들다..

집안일까지 다 하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서 동생이 대신 하고 있는거다.

고모들 말대로 내가하는게 맞지만, 내동생 살리려면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진짜 애원하다시피 말했음. 내 사정 다 설명했음.

사실대로 다 말했음. 대출받은거랑 그동안 나 힘들었던거.

 

원래 여자는 희생하는거야.

 

울면서 애원하다시피한 내 호소의 답변이였음.

 

결국 나 그날 셋째고모 감시하에 냉장고 청소함.

냉장고 칸막이며, 채소 보관통이며 분리할 수 있는건 다 분리해서 퐁퐁으로 박박닦음.

우리집 따뜻한 물 안나옴. 그때 아 신발 날짜도 기억나. 11월 2일.

 

심지어 예고까지 함.

뭐? 다음은 주방 자체를 들어낼꺼라고?

 

 

#8

그래도 내가 위안이 되는건 내 동생이였음.

내가 사정이 어떻다고 말 안했는데, 모를리가 없지.

알아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지가 밥 차려먹고, 끼니 거르지 말라고 밥챙겨다 주고..

 

난 고모들한테 구박받고 미움받아도, 내동생은 고모들이 이뻐함.

아빠 어렸을적이랑 똑 닮았다나 뭐라나.

내동생이랑 나랑 똑같이 생겼는데 뭐래.

심지어 내동생보다 내가 아빠 더 많이 닮았다고 하던데 헛소리.

 

다 핑계고 내동생은 걍 남자라서. 그리고 난 여자라서.

우리집안이 좀 그런집안임.

여자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임.

 

여튼 나 없을때 우리집에 오면 꼭 바리바리 싸들고 옴.

내동생 혼자 먹으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동생도 그게 영 마음에 걸렸나봄.

 

하루는 나 없을때 고모들이 와서 내 욕을 했다함.

아무리 고모라지만, 자기 친누나 욕하는데 기분이 좋을리 없음.

더구나 나 힘든데 자꾸 괴롭히고 하니까 동생도 한마디 함.

차마 오지말란 소리는 못하고, 제발 누나한테 그러지 마시라고..

내가 더 잘할테니까 제발 누나 괴롭히지 마시라고..

 

며칠뒤 고모들 나한테 역ㅋ정ㅋ

니가 니 동생한테 고모들이 괴롭힌다고 했냐며 ㅋㅋㅋㅋㅋ

 

결국 내동생도 고모들 설득 포기함.

대신 여차저차 해서 고모들이 연락도 없이 집에 오는건 막음.

 

나중에 고모들이 우리가 자꾸 집에 없으니까 내동생한테 전화해서 집에 있는걸 확인함.

 

그럼 내동생은 날 피신시켜줌.

내가 돈이 없어서 어디 못나가면 지 용돈 꼬불쳐둔거 나 주면서 피씨방 가서 두시간만 있다오라함.

 

그렇게 나 피신시켜놓고 지가 다 독박씀.

그래도 고모들이 나한텐 누나만큼 심하게 안 대하니까 괜찮다며 ㅠㅠㅠㅠ

 

 

그리고 지금은 아예 도망침.

아직 같은 지역이지만 이사한다는 말도 없이 그 지역 중심권에서 변두리로 도망침.

번호도 싹 다 바꿔버림.

 

두달동안은 큰아버지조차 우리 이사한거 몰랐음.

 

최근엔 고모들도 우리 이사한거 알아서, 동생 압박하고 있다함.

내 숨이 막히고 있음.

 

 

 

 

 

 

더이상 못쓰겠음.

기억나는건 너무 많은데, 다시 생각하니까 배가 아파서 못쓰겠음.

토할거 같음. 담배 미친듯이 땡김.

 

 

그냥 갑자기 잠잠하던 불면증이 다시찾아와서 찌끄려본 얘기였음..

남들한테 힘든얘기 잘 안함.

나랑 알고지내는 사람중에 나 우울증있어서 약 먹는것도 모르고,

부모님 다 돌아가신것도 모르는 사람들 많음.

부모님 안계신것도 말 안하는데, 이런얘기 할리가 없음.

뭐 엄마아빠 얘기 시작하면 이걸로 안 끝나니까 그냥 고모들때문에 속상한것만 썼음.

 

누가 보고, 또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댓글이 달릴지.

날욕할지. 한심하게 생각할지. 그런거 신경안씀.

신경 썼더라면 이런글 안썼겠지.

 

그냥..

 

아무일 없는 척 하고 사는게 힘겨웠을뿐.

 

 

가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음.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 많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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