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7신) 무서운 종교전쟁, 한국 기독교 전파의 거짓말
인스부르크에서 아침을 먹고 약 2시간 거리인 푸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城)으로 갔다. 이 성은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2세라는 왕이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성을 만들고자 17년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성이다. 이 성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언덕 위에 그의 부친이 만든 작은 성도 있다.
규모는 둘레 수백 미터 정도의 작은 성을 돌로 십여 층 높이로 지어서 높게 쌓아 올렸는데 매우 아름다운 모습의 성이고 또 이 성이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델이 된 곳이기도 하다. 분위기가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과 매우 흡사하다. 주변 경관과 성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성이다.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의 성들은 전에 유럽에 왔을 때도 몇 곳 둘러보고 또 내부까지 들어가 보았는데, 우리 동양의 성과는 사뭇 다르다. 동양의 성들은 수십 리에 걸쳐서 도시 전체를 방어하는 성이어서 수원성이나 서울의 한양성 같은 경우 그 규모가 엄청 큰 것이나 서양의 성들은 대부분 그 둘레가 수백m 에 불과하다. 즉 서양의 왕이나 영주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유럽의 성들은 대규모 전투가 아니라 소규모 전투만을 대비해서 만든 것이므로 규모가 적다.
이곳에서 로텐부르크로 갔다. 로텐부르크는 수백년 된 오래된 전통양식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도시인데 오늘날에는 이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이 관광자원으로 되어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특이하게도 도시 전체를 동양의 성과 같이 높은 성곽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그 길이는 약 2km 정도로 추측이 되었다.
이 도시는 마르틴루터의 종교 개혁 후 그곳 시장과 주민들이 가톨릭에 저항하고 신교를 믿게 되어서 서로 간에 참혹하게 죽고 죽인 30년 종교전쟁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가톨릭 측의 군대에 점령을 당하고 전 시민이 학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왕은 이 도시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라고 장군에게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가톨릭 측 장군이 전승 축하연을 열고 취한 김에 엄청 큰 포도주잔에 포도주를 채우고 이것을 다 먹는 자가 있다면 도시민을 살려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 시장이 나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그 술을 다 먹고 난 후 쓰러져서 그 도시민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가슴이 뭉클했으며, 광장 시계탑에는 술을 계속 따르는 모양의 인형과 계속 마시는 모양의 인형이 작동을 하면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종교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종교전쟁의 성격은 대체로 히브리족의 절대신인 여호와라는 야훼신과 관계가 깊다.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절대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부근의 족속들과 수없는 종교전쟁을 치르다 멸망했다. 사실 유대의 역사는 종교전쟁사로 점철되어 있다고 말해도 그다지 틀리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되고 난 후의 각종 유럽 전쟁은 종교침략 전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세의 끔찍한 십자군 전쟁이나 전쟁 중 유대인 학살이나 이후 마녀사냥, 유대인 학살, 백년전쟁, 30년 전쟁 등은 기독교인들에 의한 타종교인이나 다른 기독교 종파인들의 학살을 계속한 종교 전쟁의 일면이다. 미국의 인디언 학살도 사실상 이교도를 짐승이나 마귀로 여긴 유럽인에게 기독교 확산의 명분을 준 종교전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스페인의 멕시코 점령 이후 원주민 학살과 정복은 종교 확산 야욕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들은 이같은 학살이나 정복이 신을 기쁘게 해 주는 일이며, 신 앞에 자랑할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동남아나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보내 이들의 신을 없애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을 도모하다가 선교사가 죽는 일이 일어나면 지체없이 막강한 군대를 보내 이들을 정복하고 기독교 국가로 만든 것도 모두 종교전쟁의 범주에 속한다.
히틀러와 전 독일인이 합세하여 유대인 600만 명과 수만 내지 수십만의 집시 족들을 죽여버린 것도 예수를 죽인 이교도 유대인을 응징하고 이교도인 유대교를 배척하는 종교전쟁의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종교전쟁의 역사가 있다. 일본의 장수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 세례명 아우구스띠누스)가 일본의 천주교도 1만 8천명으로 군대를 조직해서 제1진으로 동래에 상륙한 후 송상현의 목을 베고 한국 침략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느니, 서양 선교사 세스페데스를 모시고 다니면서 전쟁 자문을 받고 전쟁포로들에게 천주교 세례를 주었다느니, 한국에서 끌고간 2,000여명의 포로들은 모두 세례를 주고 기독교로 개종을 시켰다느니, 한국인 여성을 수양딸?(명목상이 아닐지?)로 삼아서 기독교로 개종시켰다느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천주교신자인 고시니가 가톨릭 확산을 위해 더 열심히 뛰고 종교전쟁 수행에 열성적이었음을 설명하는 말에 불과하다.
나는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지금 거짓을 앞세우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진실되게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의 천주교와 기독교를 전래해 준 것은 고시니와 세스페데스임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인들이나 개신교인들은 이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시로 일본에 끌려가서 산산히 흩어져 일본인들의 노예가 된 조선 포로 2000명을 모아서 세례를 주고 개종시킴은 불가능하다. 또 세스페데스는 이미 천주교도인 고시니의 군대에게 세례를 준 것도 아니다. 아마도 웅천성에서 잡아놓은 조선포로 2000명에게 목숨을 담보로 강제 세례를 주고 이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기독교 전래는 일본인 고시니와 스페인인(폴튜갈인으로도 말함) 세스페데스에 의해서 한국의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다. 한국의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들은 이같은 임진왜란시 고시니나 세스페데스에 의한 기독교 전래 사실을 인정하고 이것이 저 흉악한 유대잡신 야훼의 성령과 역사하심을 믿고 밝혀야 한다. 이런 것을 숨기고 기독교 전래 역사를 속이는 더러운 짓과 음험한 짓을 즉각 고치기 바란다.
소위 천주교에서 성인이라고 추앙받는 황사영도 우리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 수 있도록 프랑스에서 5만 내지 6만명의 병력을 파병해서 자신의 조국을 없애버리고 기독교 국가를 만드는 종교전쟁을 일으켜 달라는 요청서를 쓴 것이며, 이런 기독교인들에게는 민족이 서양의 식민지로 추락하는 것 보다도 자신의 종교 확산이 절대 절명의 과제이었던 것이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역시 구미의 종교침략정책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성공하면 저들의 신앙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 세력 확대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인의 몰표를 이용해서 국회의원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이 기독교인에게 아부하도록 만들고 있다. 대통령에 출마하는 자가 “서울시를 여호와 하나님께 봉헌한다”느니, “사찰이 무너져라!” 하고 기도하는 부흥회에 축사를 한다느니, 40여 개소의 교회를 쫓아 다니면서 신앙간증등을 하여 기독교 몰표를 획책하는 사례, 기독교 목사들이 설교 때마다 직접 간접으로 기독교인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선동하는 행위 등은 심히 우려할 일이다.
이에 질세라 어떤 천주교도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매일 청와대에서 기도를 하겠다느니, 자기 마누라는 매일 새벽기도에 나간다느니 하는 소리도 참 비 기독교인으로서는 참으로 구역질 나는 소리이며 이런 자들이 종교 세력과 결탁된다면 참으로 우려할 일이 일어난다거나 종교전쟁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 또는 세르비안 기독교인의 인간청소 등 전쟁은 기독교인이 일으키는 것이지 결코 비 기독교인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도들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될 때 이 기독교인들은 소수의 비기독교인 청소를 위해서 어떤 짓을 하게 될는지?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종교를 자신의 집이나 종교시설에서 조용히 믿고 자기 가족끼리 열심히 수행한다면 이들의 종교 자유에 대해서 비난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독교도들은 전 국민의 기독교화를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이 천국에 가는 길로 착각하고 있으며, 길거리, 전철, 역앞, 시장, 심지어는 직장에서까지 “예수천국, 불신자 영원한 지옥”을 계속 외치고 세뇌하고 있는데, 이런 사태는 방치되어서 안 될 매우 위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심지어는 세계 각국에 1만 4천명의 선교사 파견을 자랑하면서 외국에서도 그들의 종교를 매도하고 기독교도화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그릇된 생각이며 위험한 생각이란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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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단신1-6) 유럽기독교 쇠멸(영,불,스,이,오)
(유럽1신)10년간 1000개 문닫은 영국교회, 십년간 3천개 문닫을 것
--- 나는 30년 전인 1978년 화란 정부장학금으로 화란에 1년간 유학한 일이 있다. 당시 나는 화란과 베네룩스3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폴투갈 등 8개국을 약 45일간 여행한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관광 여행으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독일 6개국을 11일간 여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쓰는 글은 주마간산격으로 안티(반기인)가 본 유럽의 풍광과 기독교에 대한 글을 올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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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가 30년 전 화란이 있을 때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영국을 가게 되어서 기뻤다. 오후 4시에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11시간 반이 걸려서 다음날 새벽 3시 30분경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히드로 공항 입국대는 너무 좁았다. 입국대로 들어가는 통로에 꾸불꾸불하게 줄을 쳐 놓았다. 입국심사를 하는 사람도 너댓 명에 불과해서 입국심사대 앞에 간지 50분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입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입국 심사하는 자리가 서너개 비어 있었는데, 입국 심사하는 사람만 더 있었어도 아마 입국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입국심사가 너무 오래 걸려서 짜증까지 낫는데, 20년 전 김포공항 정도의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엄청난 선진국으로 보였지만 지금의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대는 매우 후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도 옛날식 호텔 그대로이어서 매우 후져 있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런던 시내 관광을 하였다. 런던 시내 건물들은 몇 십년, 몇 백년 된 집들이어서 전원적 풍경이지만 새로운 건물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새로 지은 건물 중 일부는 빈민자 아파트라고 하는데, 빈민자 아파트 역시 한국의 아파트와 달리 매우 후져 보였다. 길도 좁고 내가 기대했던 번쩍 번쩍하는 대도시 런던이 아니라, 매우 후져있는 도시처럼 보여서 실망이었다.
-일정에 따라서 오전에 하이드파크, 국회의사당 빅벤, 웨스터민스터 사원, 버킹검궁전 등을 관광하였다. 영국에서 자랑하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유명한 교회 건물이다. 그러나 바깥에서 쳐다본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아서 실망이었다. 우리나라 대형교회에 비하면 반의 반도 안 되는 중급 정도 규모의 교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큰 교회가 널려있을 정도이어서 대단해 보이는 건물은 아니다.
-오후에는 대영박물관을 관광하였다. 대영박물관은 중동지방과 이집트 등 세계 각국에서 약탈한 물건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짧은 일정상 주마간산 격으로 관람을 했다. 맨 끝에는 한국관도 있었다.
-한국관에 전시된 것 중에는 목이 구부러진 청자 정병(淨甁; 軍持; 또는 甘露甁)이 있다. 이 감로병은 일반인들이 무심히 보고 지나치는 병이지만, 내가 화란에 있을 때 본 “세계의 예술(The Art of the World)이라는 10권의 책 중에서 ”세계의 도자기“란 책 표지에 실린 병이며 그림이다.
-세계의 도자기 중 우수한 도자기는 중국것을 빼 놓을 수 없다. 크기나 그림이나 중국의 도자기가 우수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청자는 중국 도자기의 예술을 뛰어 넘는 것이다. 단순히 채색한 것이 아니고 도자기 표면을 상감(象嵌)이라는 기법으로 파 내고 여기에 다른 흙을 채워서 그림을 그린 후 구워낸 것이어서 창조성과 예술성이 중국 도자기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세계의 도자기”란 책을 편 사람이나 출판사는 내가 기억할 수 없지만 이들은 세계 최고의 도자기로서 한국의 청자 도자기인 정병(淨甁)을 표지 사진으로 올렸던 것이다.
-전술한 “세계의 예술”이란 책에는 10권 중에서 2가지가 더 한국의 것으로 표지를 삼았다. 1 가지는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 중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세계 청동문화”의 표지로 하였으며, 1 가지는 “세계의 그림”이란 책에서 “무용총 수렵도”를 표지로 삼았다.
-이는 그리스나 로마조각에 청동상이 별로 없고 후대 19세기(1880년) 로뎅이 조각한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이를 표지로 삼은 것 같았으며, 또 세계사적으로 많은 그림이 있지만 6세기 경 그려진 즙안현 무용총의 수렵도가 가장 대표적인 그림으로 생각되어 표지로 올렸을 것으로 생각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대영박물관을 관광하고 테임즈강에 걸려진 아름다운 다리 타워브리지를 관광하였다. 타워브리지는 사진에서 본 것같이 아름답기는 해도 규모는 작았다. 타워 브리지 옆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교회가 아니라 “정원 전시관”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가이드에게 왜 교회가 “정원 전시관”으로 바뀌었느냐고 묻자 크리스천인 한국 가이드는 요즘 영국의 교회 중 문 닫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차 안에서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지난 10년간 영국에서는 1,000개가 넘는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에는 3천개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영국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문을 닫은 교회는 그냥 부수어 버리기가 아까우므로 호텔, 식당, 술집, 암벽등반장소 등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영국 교회의 몰락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지금 영국에 새로운 교회가 거의 전혀 지어지지 않고 있으면서 문 닫는 교회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가이드의 설명과 같이 지금 유럽의 교회는 몰락과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이내에 유럽의 교회들이 거의 대부분 없어지고 기독교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다.
-왜 유럽의 교회가 몰락과 쇠퇴의 길을 가고 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반기련 07. 11. 8)
(유럽2신)파리 야경은 시뻘건 십자가 불빛이 전혀 없다
-런던에서 저녁에 유로스타를 타고 도우버 해협을 건너 파리로 갔다. 4시간이 걸렸다. 파리 시내에서 약간 교외에 떨어진 호텔로 가면서 파리 야경을 관광하였다. 놀랍게도 파리에는 우리나라 도시 야경에서 볼 수 있는 교회의 시뻘건 십자가 불빛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는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시뻘건 십자가가 도시에 무질서하게 퍼져 있지만 파리에는 이런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시뻘건 십자가 불빛은 전혀 없었다. 허긴 한국의 목사들이 시뻘건 불을 켜 놓고 불륜 6걸을 비롯해서 수많은 목사들이 여신도 성추행이나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불륜6걸이 누구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목사들이 아닌가? 직업별 성범죄자 중에서 목사들이 2위를 차지한다는 통계까지 있지 않은가?
-호텔에서 숙박한 후 아침에 나폴레옹의 개선문, 에펠탑, 콩코르드 광장, 상제리제거리 등을 관광하였다. 나폴레옹의 개선문은 내가 30년 전에 왔던 곳이다. 당시에는 군인 2명이 보초를 서 있었으나,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파리의 거리는 30년 전과 비교하여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지 않고 똑같을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심한 의문에 휩싸였다. 정말 거의 변화가 없다.
-30년 전인 1978년 내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는 파리의 시가지 모습에 경탄과 경탄을 하고 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정은 어떠했던가?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은 말할 수 없이 가난했던 시기이었다. 말하자면 의정부 시내에 3층 집이 없었다. 의정부역 바로 옆에 2층 집 몇 채가 있었던 것이 고작이었고, 그 2층집 윗층에는 다방이 있어서 내가 현지 출장 시 자주 들렸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이 거짓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거짓말로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것을 인정해 주시기 바란다.
-의정부에서 3층 집도 볼 수 없었던 당시에 화란을 가니 으리으리한 쉬폴드공항이 나를 먼저 놀라게 했으며, 내가 1년간 머물었던 엔스케데에는 주로 2층의 아담한 집들과 집 주변마다 1-1.5m 정도 길가로 내어서 꾸민 화단이 길 따라서 몇 km 씩 이어지기도 하고, 암스텔담에는 5층의 화려한 건물로 채워진 것을 보고 언제 우리나라도 저런 훌륭한 건물들을 짓고 살게 될까? 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파리에 들렸을 때 흔히 6층 돌 건물을 이어서 지은 것이 너무도 거창하고 아름다워서 감탄에 감탄을 하고 언제 우리가 이런 나라를 만들까? 하는 부러움을 가졌던 기억이 지금도 새로운데, 30년 만에 다시 돌아와 보니 정말 변함이 없이 그대로이다. 어째서 이렇게 변화가 없을까?
-아름다운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나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신개발지구를 만들어서라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도시가 세워져서 변화와 활력이 나타났어야 함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잠자는 공주와 같다.
-런던이나 파리를 보면서(유럽 각국이 마찬가지이지만) 한국, 중국, 일본이나 동남아 각국의 도시가 새로운 건물이 넘처 흐르고 도시의 활력이 넘쳐흐르는 것과 수십 년간 잠자고 있는 유럽의 도시를 비교한다면 유럽의 도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이는 유럽의 도시들이 산업화, 현대화, 기능화가 되지 못한 채 정체하고 있다는 결론이며 앞으로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유럽도시에 큰 문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펠탑은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관광을 하였다. 30년 전에 왔을 때는 우리 돈 몇 천원의 돈을 절약하느라고 3층까지 올라가 보지 못하고 2층까지만 올라갔던 기억이 새롭다. 파리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도 30년 전과 똑같이 변화가 없다. 멀리 예전에 보았던 일본인이 세웠다는 몇 채의 높은 건물이 보일 뿐 전혀 높은 건물도 없고 변화도 없었다.
-오후에는 르부르 박물관을 관람하고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르부르 박물관에는 매년 몇 백만 명이 관람을 하는데 주차장 시설도 제대로 없어서 불편하였다. 르부르 박물관은 매년 억수로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주차장 시설도 제대로 만들지 않을까? 우리 같으면 건물 몇 개 때려 부수고라도 주차장 편의 시설을 만들텐 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밤에는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주변 건물과 다리 및 노트르담 성당 등을 관광하였다. 유람선에서는 처음에 몇 번 한국말로 설명이 나왔으나 후에는 중국어 설명만 이어졌다. 30년 전 내가 왔을 때는 일본어 설명이 나와서 언제 한국어 설명이 나올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이번엔 일본어 설명이 사라진 것이 달랐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광객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매우 많았지만 중국인(대만인 포함) 관광객도 많았다. 중국인(대만인 포함)들이 돈을 벌게되자 유럽관광을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파리 시내를 관광하면서 예전의 천주교회(성당) 건물이 아닌 새로 지은 성당이나 교회 건물을 찾아보고자 하였으나 전혀 새로 지은 천주교회나 교회는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프랑스의 기독교가 점점 쇠퇴하기 때문에 새 교회 건물을 지을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어떤 기록을 보면 지금 프랑스에서는 인구의 5%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에 나오는 5% 역시 머리가 백발인 노인층 위주로 나와서 예배를 보고 있으며, 젊은이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젊은이가 교회에 나오면 이 노인들은 박물관에 갈 사람이 나온 것처럼 신기해 한다는 것이 지금 프랑스 교회의 실정이다.
-프랑스의 농촌을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의 농촌과 달리 교회다운 교회 건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구 83%가 가톨릭이라는 프랑스지만 교회와 신부들은 머지않아서 점점 사라지게 될 것으로 생각이 든다. 프랑스의 종교장사는 이제 사양산업을 넘어서 몰락산업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 본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반기련 07.11.10.)
(유럽3신)호텔로 바뀐 교회, 불을 끈 교회, 회칠 떨어진 교회>
-아침에 일찍 파리의 리옹역에서 떼제베(TGB) 열차를 타고 스위스로 향하였다. 파리에서 스위스 제네바(쥬네브)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이번에 탄 스위스를 향한 남행 열차에서 본 프랑스 농촌의 풍경은 예전에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는 서행열차에서 본 농촌 풍경과 많이 달랐다. 스페인 쪽으로 가는 열차에서 본 농촌 풍경은 주로 포도밭이 이어진 풍경이었으나, 이곳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는 주로 목장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아마도 내륙지방이고 기온이 낮아서 포도 농사가 잘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
-농촌의 주택은 옛날식 건물이 그대로이어서 변화가 없다. 원래 유럽의 목축업은 수익성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 왜냐하면 초지에 소를 방목할 경우 그 방목 수량은 ha당 2마리 정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0ha(3만평, 20마지기) 정도의 농토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땅값도 엄청나고 수익성도 커서 그런대로 중농(中農) 이상은 될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 10ha의 농지를 가지고 방목한다면 소 20마리뿐 못 키워서 그야말로 빈농이다. 넓은 땅이 있어도 땅값은 똥값이다.
-한적하게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프랑스의 농촌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가적 풍경이라고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크게 잘 살기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 농촌을 지나면서 교회 건물을 보고자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농촌과 달리 교회다운 교회 건물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유럽의 농업에 대해 깊은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짧은 논급을 하고 싶다. 쌀이나 밀을 재배할 수 없는 기후(강우량, 온도)이어서 방목을 하고 있는 유럽 중북부의 농촌은 쌀이나 밀을 재배할 수 있거나 심지어 3모작까지 하는 아시아에 비해서 농업생산성이 극히 떨어진다.
-남부 지방인 스페인이나 이태리 등지에서도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강수량이 적고 여름철 건조기가 계속되므로 밀 농사를 매년 지을 수 없다. 한해는 밀 농사를 짓고 이듬해는 그대로 방치해서 밀보다 수분 요구가 적은 풀들이 자라게 한후 한 해 씩 걸러서 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쌀 농사는 물이 풍부한 강가에서만 소규모로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유럽의 농업생산성은 아시아 쌀농사 지을 수 있는 지역에 비하여 최소한 1/3 내지 많게는 1/10 정도로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과 중남미의 농산물이 유럽 농산물과 경쟁할 경우는 경쟁이 어렵다.
-이같은 문제 해결은 과학선진화와 산업화를 계속하여 계속 아시아나 아메리카를 능가해야 하지만 앞으로 그것이 쉬운일이 아닐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다. 예측은 구름이 심하게 낀 날 비가 올지 모른다는 추측과 같아서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20년 내에 아시아는 유럽을 능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혹시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프스를 넘어서 제네바에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에 교회 건물이 정거장 부근에 보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교회 건물은 교회가 아니었다. 교회를 문 닫고 호텔로 개조하여 호텔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문닫은 교회가 호텔로 바뀐다는 것을 이곳에서 보았다.
-제네바에 도착하여 제네바 주변 관광과 레만호수 관광을 하였다. 30년 전 내가 화란에 있을 때 스위스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2천불을 돌파하여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었고 화란이 1만불을 돌파하여 2번째 잘 사는 나라이었다. 그러나 제네바 시가는 수십 수백년 전에 지은 건물이 그대로 이고 새로 지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변화가 없는 도시이었다. 스위스의 시계공업도 이제 사양산업이므로 이들이 더 잘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제네바에서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샤모니로 이동하였다. 샤모니는 알프스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불랑 산을 관광할 수 있는 곳이다.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를 3번 갈아타고 3,800m 높이의 에귀 디 미디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4,807m의 몽불랑을 관람하였다. 날씨가 흐려서 제대로 보지는 못하였다.
-이곳에서 이태리의 밀라노로 향하였다. 알프스를 넘어서 이태리로 가는 도중에 눈에 띄는 몇 십명 들어갈 자그마한 교회 들이다. 몇 개의 천주교회는 일부 잘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는 교회도 있었지만 겉칠이 떨어져 나가고 회칠마쳐 떨어져 나가서 볼썽사나운 교회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교회 건물은 대체로 수십 명 또는 수백 명 정도 들어갈 비교적 적은 건물들이었는데, 회칠까지 떨어진 교회는 정말 가난한 교회로 보였으며, 그곳 신부는 아마도 먹고 살기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밀라노는 어두컴컴할 때 도착을 하였다. 밀라도 시내에 있는 호텔로 가면서 몇 개의 천주교회를 지나쳤다. 6시 경이어서 깜깜해 졌는데 천주교회의 불빛은 모두 꺼져 있었고 한 두 개의 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도 사제가 있는 방으로 추측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교회마다 뻘건 십자가 불을 켜고 저녁 예배를 한다고 법석을 떠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저녁 식사 후 이태리가 자랑하는 두오모 성당과 라스칼라 극장 등을 관광하였다. 두오모 성당은 광장이 비교적 넓었고 135개의 첨탑과 2245개의 조각상을 붙인 성당으로 유명하다. 500여년간 지었다는 말도 있는데, 아마도 수없이 나뉘어져 있었던 당시 지방국가에서 자신들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명소로 전락해서 아마도 종교적 행사는 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태리에서는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서 일부 천주교회는 신부도 없게 되고 일부 신부들은 빈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사역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반기련 07.11.10)
(유럽4신)교회를 부수고 짓는 다른 건물, 어두컴컴한 로마
-밀라노에서 출발하여 피렌체로 향하였다. 밀라노 시내를 벗어나는 곳에 교회를 부수고 있었으며 그 곳에 여러 대의 크레인이 다른 건물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아파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교회를 부수고 더 좋은 새로운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이태리에서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혹시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전력이 부족한 이태리에서는 교회 부순 자리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는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수력발전소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서 전력을 전국에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발전소를 거의 짓지 않아서 대부분의 전력을 프랑스에서 사다가 쓴다는 것이다. 2개의 큰 송전선을 이용해서 프랑스 전기를 끌어온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 결과 전기 사용료가 엄청 비싸서 함부로 불을 켤 수가 없고, 각 도시는 밤에 컴컴한 암흑 세상이다. 도시를 본 사람이 도둑놈 소굴처럼 컴컴하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옵서버의 입장에서 이태리가 왜 발전소를 제대로 짓지 않는지 매우 의아스러웠다.
-자체 발전소가 없어서 전기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면 산업발전에도 크나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포철과 같은 대형 전력사용의 산업시설을 짓는 것이 전력 사정상 어려울 것이며, 또 이런 산업시설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비싼 전기요금은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다른 나라와 경쟁이 불가능할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태리의 발전을 위해서도 자체 발전소의 확충이 꼭 필요할 것 같은데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가이드에게 나의 의견을 설명하니까 가이드는 이태리가 많은 세금을 걷는 나라인데 아마도 정치가나 관료가 부패해서 그럴 것이라고 답변을 하였다. 정치가나 관료들이 많은 돈을 축내는 것이 현실이라고도 말하였다.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은 정치가나 관료(공무원)들이 그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잘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정치가나 관료(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부정부패를 많이 저지를 때 대부분 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은 그래도 우리나라 공무원(관료)들이 비교적 열심히 일하고 또 비교적 부정부패를 적게 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공무원들을 욕하지만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비교적 열심히 일하고 부정부패를 적게 하면서 우리나라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므로 그 노고에 감사하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공무원보다 더 훌륭한 공무원이 되고 또 자신의 일을 지금까지의 직업인 보다 더 낫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가이드는
-“아, 나는 우리나라 공무원이 나쁘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희들도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웃었다.
-물론 일부 공무원 중에는 관행이라면서 떡값을 챙기는 공무원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공무원이라면 자신의 봉급과 퇴직연금으로 만족을 하고 떡값을 단호히 거절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모 대학 총장을 했다는 자가 직위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뒷돈을 받아 챙기는 등 도둑질을 했다는 소식을 들린다. 이런 놈들을 어찌 학자며 교육자이며 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총장 봉급이 적은 돈이겠지만 그 적은 돈으로 살아 주기를 바라고 싶다.
-로마로 가는 길에 피렌체를 방문해서 그곳의 두오모성당(마리아성당)을 감상하고 단테의 생가, 미켈란제로 언덕 등을 관광하였다.
-저녁 늦게 로마 시에 도착을 했는데 로마시 역시 전기를 거의 켜지 않아서 전 시가지가 어두컴컴하였으며, 도둑놈 소굴같이 어두컴컴하다는 표현에 수긍이 간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반기련 07.11.11)
(유럽5신) 낡은도시 로마, 수탈로 이루어진 바티칸
-로마에서 아침에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 내부를 관광하였다. 원형의 투기장(鬪技場)으로 서기 80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큰 돌과 넓은 벽돌(전돌)로 지어진 건물인데 약 2천 년 전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세울 수 있었는지? 그 기술이 놀랍다. 지금도 계속 보수를 하고 있는데 유적지의 보수 복원은 필요한 일로 생각이 들었다.
-부근에 여러 개의 개선문이 있어서 관광을 하였다. 로마의 개선문은 모두 적군을 수만 명 죽인 자만이 세울 수 있는 건물이다. 개선문을 세우려면 적군의 무자비한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벤허 영화에 나오는 전차경기장, 트레비 분수 등을 보고 고대 로마의 정치중심지이었던 포로 로마노 유적지를 관광하였다. 포로 로마노 부근의 예전 로마신전들은 모두 가톨릭 성당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부근에 수많은 천주교 성당이 있어서 로마에 성당을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 가지는 로마의 그 수많은 성당이 지금도 제대로 미사나 예배를 보고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오후에 “바티칸” 시의 “베드로성당”을 관광하였다. 베드로 성당은 당시 교황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서 강제로 헌금을 걷기도 하고, 천당표인 면죄부를 팔기도 하고, 부자들에게 죄를 사하게 해 준다는 명분으로 베드로 성당의 오른 쪽 문을 통과시키게 하면서 금화 소리가 나지 않으면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등 수탈을 해서 지은 건물이다.
-광장 중앙에 세워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높이 25m에 이르는 것으로 에집트에서 태양신을 숭배해서 만든 것이며 해시계로도 쓴 것이지만 약탈되어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 또 베드로 무덤 위에 장식했다는 구리 기둥은 만들 때 구리가 모자라자 그리스 판테논 신전의 구리를 모두 떼어다가 이곳 장식품으로 만든 것이어서 약탈의 산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도 베드로 성당의 많은 돌도 예전 로마 신전의 돌을 뜯어다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수많은 약탈품들이 이 베드로 성당을 장식하거나 베드로 성당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안내를 해 준 가이드가
-“종교의 힘은 위대한 것이고 신앙의 힘으로 이같이 위대한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이곳이 신성한 곳이고 성스러운 곳이고 또 이곳에 오면 신앙심이 저절로 난다”는 등 천주교 선전을 계속하는데 비 기독교인으로서는 역겹기 그지없는 소리이다. 내가 한 마디 해 주었다.
-“이곳 베드로 성당은 교황이나 신부들이 권력을 이용해서 시민들의 돈을 긁어모아 지은 것이어서 대단한 것도 아니고 성스러운 곳도 못된다. 왕보다 높은 지위에서 권력과 압력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긁어모아서 그 돈을 쓰지 않으면 문제가 될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이 건물을 지은 것이다. 이런 건물이 무슨 성스러운 건물이냐? 성스러운 건물은커녕 추악한 건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반론을 말하자 가이드가 매우 굳어지고 머쓱한 표정이었으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추악과 성스러움이 함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이드라면 가이드답게 관광 설명에만 충실해 주었으면 좋겠다. 주제넘게 천주교 선교까지 겸해서 자주 말하는 것은 역겹고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가끔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이곳에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이들 천주교 신자가 포함된 관광객들을 위해서 교황이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서 답례하는 모습이 한국 TV에 자주 소개되곤 했는데, 이런 행사가 무슨 종교적 감동을 주거나 성스러운 행사라기보다는 특별한 구경거리나 쇼를 하는 것이어서 교황이 동물원 원숭이와 비슷한 구경거리가 되는 것에 불과함을 우리나라 TV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한국의 TV 방송들이여, 제발 바티칸의 행사를 하루 진종일 방송하는 짓으로 이런 교황의 행동을 미화하고 찬양하게 하는 짓을 이젠 그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짓은 알게 모르게 기독교를 미화하고 비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가 위대한 것이고 살길처럼 보이게 만드는 짓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는 짓이 될 수 있음을 제발 알아주기 바라고 싶다.
-어두워진 밤길에 호텔로 다시 돌아왔는데 로마 거리가 너무 어두컴컴한 것이 오히려 동남아의 도시 거리보다도 못하다. 옆에 앉은 집사람이 로마시를 보고 “꼭 도둑놈 소굴처럼 컴컴하다”고 말한다.
-로마시는 동남아의 여러 시 보다도 매우 컴컴하고 또 컴컴했다. 하노이나 프놈펜이나 번쩍번쩍하는 상해나 중국의 여러 도시보다 훨씬 더 컴컴해서 도둑놈 소굴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어서 마음 아팠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반기련 07.11.12.)
(유럽6신)피사의 사탑과 갈릴레오, 석조문화와 목조문화
-로마에서 피사의 사탑을 향하였다. 약 4시간이 걸렸다. 피사의 사탑은 피사의 두오모(성당)와 함께 있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오가 지구 인력에 의해서 물체는 크기와 관계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탑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은 지구는 야훼가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천지를 창조하고, 지구는 평평한 것이며, 해와 달과 별은 지구의 부속물로 창조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지구는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근 것이며, 지구는 중심이 아니라 태양을 도는 위성에 불과하고, 지구는 자전하면서 돌고 있다는 책을 썼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기도 한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즉 그때까지 유럽인들은 야훼가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해나 달과 별도 만들고 창조했기 때문에 해나 별들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天動說)” 즉 “지구중심설”을 주장해 왔는데 그 누구도 이 야훼의 거짓말인 지구중심설(地球中心說)이나 천동설(天動說)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한점, 한 획의 오류도 없는 절대적 진리라고 말하는 성경에서 “야훼가 6천 년 전에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를 창조해서 지구가 중심이고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이 과학적 이치에 맞지도 않고 진리도 아님”을 발견하여 이를 책으로 쓴 것이다. 이에 놀란 교황청에서는 그를 회유하여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은 잘못임을 고백토록 강요하고 그를 외부 출입조차 못하도록 격리시켜 버린다.
-아직도 한국의 목사들 중에는 6천 년 전에 야훼가 7일 동안에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성경의 말씀이 한점 한획의 오류도 없는 절대적 진리라고 외치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이들은 진실이 아니고 진리가 아닌 것도 끝없는 세뇌로 그것이 진짜인줄 믿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으며, 이런 절대적 믿음과 십일조가 천국을 들어가는 두 개의 문이어서 십일조를 내야만 천국에 간다고 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한국 최대 교회 목사들 대부분이다. 이런 대형 교회 목사들은 사실상 한국에서 가장 교묘한 사기꾼들임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큰 불행이다.
-피사의 사탑 높이는 55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쳐다보면 매우 웅장한 느낌이 있다. 이런 탑이 석조로 건축된 것이기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황룡사 9층탑은 225척(80.16m)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건물이었으나 목조 건물이었기 때문에 몽고의 난 때 몽고군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만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황룡사9층탑이 복원된다면 이 웅장해 보이는 피사의 사탑보다 무려 25m 정도나 더 높은 건물이므로 피사의 사탑이 왜소해 보일 것이다. 앞으로 복원한다면 방화, 방부 등의 처리가 되어서 오래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후에는 피사에서 베니스까지 약 4시간 버스를 타고 갔다. 베니스에 도착하니 밤이 되어서 베니스 교회 신시가지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이틋날 새벽 4시쯤에 일어나니 부근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호텔 발코니에 나가 보니 맑은 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예전 우리나라 시골에서 보던 풍경이 떠올랐다. 이태리의 하늘은 공장지대가 별로 없고 차도 우리나라보다 적은 편이어서 매우 맑았다.
-하늘에는 삼태성(三太星: 오리온 별자리 중간의 3개 별)이 떠 있어서 내가 어릴 때 매일 새벽 아르바이트를 나갈 때 시계가 없어서 삼태성을 보고 시간을 맞추던 생각이 났다. 삼태성을 바라보면서 좋은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보았다. 문득 평범 속에 비범이 있고 일상 속에 올바름이 있으며, 희망 속에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아침에 일부러 동네를 둘러보았다. 신시가지여서 동네는 매우 깨끗했으며, 200평 정도 되는 집터 절반 정도 면적에 2층 건물을 지었는데 집집마다 아름다운 이태리 정원을 만들어서 부자들이 사는 동네임을 알 수 있었다. 버스 한 정거장쯤 걸어가니 교회가 하나 나타났다.
-교회는 100명 정도 들어갈 작은 교회이었는데, 벽의 1/4 정도는 회칠이 떨어져 나가 벽돌이 들어나 있었고 매우 퇴락해 있었다. 부자 동네에 있는 백년이 넘을 이 교회(들어난 벽돌이 닳아 있는 상태로 보아서)가 이토록 퇴락한 이유와 수리조차 되지 못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미 교회는 베니스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아침을 먹고 베니스 섬내로 들어가서 관광을 하고 곤돌라도 탔다. 곤돌라를 주인이 배 저어주고 아코디온 악사와 노래 부르는 사람이 함께 탔다. 노래는 우리가 잘 아는 “싼타루치아”, “오쏠레미아”, “후니쿨리 후니쿨라” 등이어서 우리가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도 흥겨워했다.
-베니스 관광을 마치고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로 향하였다. 인스부르크로 향하는 길에 많은 교회 건물을 보았는데 일부는 겉칠이 벗겨지고 회칠도 벗겨져서 흉측스러운 것도 있었다. 아마도 이태리의 천주교회들도 경제 사정이 별로 좋지 않고 종교장사도 잘 안 되는 것으로 짐작이 갔다.
-이태리 국경을 넘어서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그곳에 유명한 크리스탈 제품들을 관광하고 인스부르크에 도착을 하였다. 인스부르크의 교회 건물도 모두 불이 꺼지고 한두 개의 방만 불이 켜져 있어서 우리나라의 교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자료출처): www.antichrist.or.kr (반기련 0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