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바울 기독교 정착시 로마 교부들의 행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항들이 안티들의 조롱거리로 이용되는 실정입니다.
유세비우스,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 이런 인간들이 초기 로마 황제에 빌붙어 문자 주의 기독교를 만든 인간들 입니다.
예수의 진짜 가르침은 너무 많이 왜곡되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4세기 이전 복음서를 찾아봐야 할 정도인데, 이 당시 복음서 번역본은 못 찾겠네요.
쿰란문서도 토마스(도마)복음, 유다복음(일부 구절들 훼손), 마리아 복음 등 이 정도 밖에 없군요.
지금 기독교 자체가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이비 종교입니다.
초기 로마 기독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죠.
천주교와 진보주의 개신교의 경우, 이런 본질을 찾고 저 주력하는 반면,
기존 보수주의 개신교는 초기 교부들에 의해 왜곡된 가르침을 오히려 보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기총 소속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시킨 로마 카톨릭 초기 행태를 따르는 전부 이단자입니다.
지금 개신교 자체가 바울교가 맞습니다. 이것이 교부들에 의해 더 날조됐죠.
공관복음도 예수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20프로 정도이고, 교부들이 불리하다 싶은 것은 없애버리고, 지들 멋대로 짜집기 하고 왜곡시켰죠.
그나마 여기서도 빼버리고, 선택한 것이 개신교 신약입니다. 철저한 헤브라이즘식, 기복신앙에 가깝게 만들어서, 개판된 종교가 한국 개신교죠.
개신교 개혁이나, 진보주의 사이트들 가보시면, 한국 교회에서 듣던 이야기 하고는 다를 겁니다.
예수의 실질적 수제자는 예수의 형인 야고보입니다. 야고보가 예수의 뒤를 잇는 수제자이고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폈다는 이유로, 로마교부들이 수제자라고 구라친 겁니다. 베드로라는 인물은 마리아가 예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질투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우월주의자중 한명입니다. 속좁은 세퀴입니다.
아래 글은 퍼왔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를 시작으로 예수의 왜곡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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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동안 5번 이상 둔갑하는 예수의 묘기 자랑
글쓴이: 이드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신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임명장을 예수에게 주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그후 약 50여년에 걸쳐 그 임명장이 무효가 되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즉 신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원위치되었다가 하는 둔갑을 되풀이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 하다.
예수를 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활을 했던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유배와 직권 회복을 반복하게 된다.
아타나시우스가 자유로을 때의 예수는 신이 되었다가 그가 추방을 당했을 때는 사람으로 ....이러한 과정이 다섯 차례 이상 이루워졌다는 뜻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인생 유전과 예수의 둔갑 과정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1)서기 335년
*황제:콘스탄티누스
*죄목:반역죄....이집트 곡물 중단 사건 관련 유언비어 유포
*고발자: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그의 동료들
*유배지:독일의 트리어
니케아에서 대승리를 거둔 아타나시우스는 서기 330년 황제의 종교 고문 호시우스의 자리를 대신하게된 유세비우스의 복권과 더불어 그 명암을 달리하게 되었다 한다.
종교회의에서는 승리했으나, 그후 콘스탄티누스가 죽을 때 까지 즉 서기 327년까지 귀양살이를 못면한 아타나시우스의 인생유전이 묘하기만 하다. 물론 예수는 인간으로 당연히 환원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5년 동안 신으로 군림하다가 330년부터 7년 후 콘스탄티누스가 죽을 때까지 다시 인간으로 복귀하였다는 뜻이 되겠다.
2)서기 339년
*동방 황제: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누스의 둘째 아들)
*원인:황제의 아리우스파 신봉
*로마로 피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사후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던 아타나시우스와 다시 신으로 복귀한 예수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황제 사후 삼등분이 되었던 로마는 장남 콘스탄틴 2세의 전사 후 동 서 두개의 로마로 분열되었고 그와 함께 예수는 인간으로 다시금 원위치하게 되었다 한다.
3)서기 356년
*황제: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누스의 둘째 아들)
*원인:유일한 황제가 된 콘스탄티우스의 재숙청 작업
*이집트 오지의 수사(修士)들 틈에 피신
서기 346년 서방 황제 콘스탄스(콘스탄티누스의 셋째 아들)의 간청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감독직에 재복귀된 아타나시우스는 350년, 마그넨티우스(Magnentius)의 지지자들에 의해 콘스탄스가 살해당하고 이를 진압한 콘스탄티우스가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자 재차 숙청당하게 되었다 한다.
예수 역시 10년 정도 신으로 둔갑했다가 다시 인간으로 복원해야만 하는 수모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4)서기 362년
*황제:쥴리안(콘스탄티우스의 사촌)
*죄목:이방신들의 원수
콘스탄티우스의 재위 기간 중 동가숙서가숙 유랑 신세를 면치 못하던 아타나시우스는 서기 361년 황제가 사망하고 그뒤를 이어 황제의 사촌, 쥴리안이 등극하자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이 황제는 기독교가 아닌 플라톤 철학 신봉자로서 기독교가 제국의 암적인 존재라는 판단하에 그동안 기독교에 주어졌던 모든 특권을 박탈했다 한다.
대신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그동안 박해를 받아왔던 아타나시우스파 관련자들의 유배와 추방도 모두 취소를 해주었다. 이때 아타나시우스도 풀려났으나, 문제를 자꾸 일으키자 황제는 모든 신들의 원수라는 죄목하에 다시 추방해 버렸다고 전한다.
쥴리안 황제시, 아타나시우스의 신세와는 무관하게 예수는 그저 인간으로 머물러야만 했다.
5)서기 365년
*동방 황제:발렌스(발렌티니안 1세의 동생)
*원인:황제의 니케아파 혐오
*아타나시우스는 시골집으로 낙향
쥴리안 황제가 서기 363년 작고하고 그후 죠비안 황제를 거쳐 발렌티니안 1세가 통치권을 가지게되었는데, 그는 동방의 효과적 통치를 위해 동생 발렌스에게 동방 황제의 지위를 주었다 한다.
죠비안 황제 시절 잠시 자유를 누렸던 아타니시우스에겐 니케아파를 혐오하던 발렌스의 즉위가 다시금 찾아온 불행이라고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발렌스의 수명이 너무나 짧았고 그의 후계자로 그라티안이 서기 366년 즉위하자 곧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한다. 그후 5년 정도 더 살다가 373년에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결국 아타나시우스는 예수가 완전히 신으로 자리잡게 되는 서기 381년 데오도시우스 1세가 소집한 콘스탄티노플 종교 회의는 못보고 죽은 셈이다.
예수를 신으로 임명한 최초의 인간, 아타니시우스는 그 임명장을 콘스탄티누스의 재가를 받은 후 겨우 5년 정도 흥분을 만끽하다가 오히려 그 황제에게 버람을 받았고 그후 대략 50년 동안 신으로...다시 인간으로...이리 저리 둔갑해야만 하는 예수의 모습만 처참하게 쳐다 보다가 죽음과 악수를 했다고 한다.
아타나시우스의 생애를 보고 그대는 무엇을 느끼는가?
그러하다.
야훼도 예수도 성령도 모두 인간의 창작품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신을 만든 창조주이므로, 시대와 인간에 따라, 신으로 둔갑했다가 인간 혹은 반신으로 변신했다가...이러한게 예수의 운명이라고 보면 틀림없는 진실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