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개혁 외치다가 기존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취급 받는 목사의 글입니다.
➡ 왜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었나? (기독신학&역사연구)
한국 기독교가 1천만 명이나 되지만 당파성에 빠져 타종교와 끝없는 갈등을 일으키고, 기복화 세속화되어 종교적 빛을 잃고, 기독교인이 좋은지 비기독교인이 좋은지 구분이 잘 안가는 기독교가 한국문화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진지하게 예수님? 기독교의 실체?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이유? 등을 제대로 연구해 봐야할 시점에 있습니다.
이제껏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 평가는 최근 탈레반의 기독교인 인질극 사태의 전후사정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인터넷게시판에 도배질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권고를 뿌리친 무리한 선교가 불러온 자업자득이지만 대부분 감정적인 비판수준에 머물러있습니다. 저는 예수를 진정 사랑하려는 개혁적 목사로서 잘못된 기독교역사를 바꾸려 하지만 동료목사로부터도 이단자로 찍혀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개독교가 다시 기독교가 되는 그날을 위해 개독교의 잘못된 부분만을 골라 국민여러분께 개독교의 죄를 고백합니다.
기타종교와 예수님을 비방하는 분들도 문장이 길더라도 바른 종교관을 위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개독교가 맞습니다.
* 폴 죤슨(영국역사학자) 박사가 쓴「기독교의 역사-영역본」& 조찬선 목사가 펴낸 자성록 ... 등등 에서 정리였습니다.
기독교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먼저 기독교의 대속신앙은 예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사도 바울의 신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기독교는 적수공건으로 로마에 상륙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기독교 초대 교회의 순교시대가 개막이됩니다. 이 초대 교회야 말로 참 기독교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기독교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지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주로 수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이끄는 정통파와 사도바울이 이끄는 로마파로 갈라지는 증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첫째 정통파는 율법에 대한 엄격한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이「사랑의 행함」이 온 율법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만도 아니고, 사랑의 행함만도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은 한 덩어리입니다. 야고보「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6절
이에 반하여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아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생전에 한 번도 예수님을 뵌 적도 없었고 오히려 로마 시민권을 갖고 초대 교회를 핍박하고 타도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하늘로부터 벼락을 맞고 순간 눈이 멀게 되면서 예수님의 하늘에서의 음성을 듣고 그제야 예수님이 메시아 이신 것을 깨달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설교에는 예수님 말씀을 인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대신 사도바울은 소위「바울 신학」을 수립하였습니다.
첫째 그는 율법의 실천을 경시하였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
여기서 사도 바울의 신학은 사랑의 행함보다「예수 믿고 천당 가는 신앙」으로 변조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신앙유일주의의 시조가 되었고 지난 2000년 기독교가 이 사상을 계승하여 내려 왔습니다. 여기서 정통파 신앙과 정면 대결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초대교회 공동체로부터 여러 번 견책을 당했던 바울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잡아 거기에 주력하여 세력을 확장해 갔던 것입니다.
둘째,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대속신학을 창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 3장 25절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러 오셨고 십자가는 피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운명이었으며 그 운명대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필연론이요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것입니다.
바울의 대속신앙이 기독교의 정통이 되고 말았다.
불행히도 2000년 기독교의 역사는 정통파가 주도권을 빼앗긴 역사였습니다. 사랑의 실천과 행함을 강조하는 정통파가 밀려나고 받아들이기 쉬운 바울의 대속신앙과「예수 믿고 천당 간다.」는 신앙유일주의가 승리하여 내려온 비뚤어진 역사입니다.
이렇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기독교는 결국 그 첫 단추를 고쳐 끼울 기회를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중심의 초대교회의 입장에서는 바울의 신학은 분명 이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쪽의 세력이 커지자 그들이 정통을 자처하게 되었고 소수파였던 진짜 정통세력은 오히려 이단으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서기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드디어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황제가 공인한 기독교 교리는 베드로의 정통파가 아니라 바울의「대속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정치권력의 간섭과 통제를 받게 되었으니 로마제국을 기독교가 정복한 것은 기독교 세계화에 획기적 승리라 하겠으나 동시에 기독교는 로마의 정치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격도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순수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은 점점 링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며, 로마 황제가 교회를 규제하고 법제화 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로마 카톨릭의 교황제도가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추대하고 그의 전통을 계승해 왔다고 자처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명분 찾기였습니다. 예수께서「베드로의 반석 같은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하신 그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추대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내용으로는 바울신학이 로마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조직화 되고 호화롭고 거대한 교황체제는 사실상 예수의 근본 가르침이나 초대교회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은 사도들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바울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바울의 신학이 교황청의 교리가 된 것입니다.
후에 사해문서(쿰란문서)가 발견 되면서 사도 바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을 전도 하고자 했던 베드로와 야고보를 주축으로 한 초대교회와 달리 바울은 율법을 무시 하고 행함의 신앙을 거부한 채 손쉬운 믿음만을 통한 구원을 내세움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변조하고 왜곡시킨 배신자이자 로마제국의 앞잡이였다는 것이 사해문서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횡포
그리고 서기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이미 공인된 기독교를 정식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기독교는 정치세력과 야합하여 벌써 그 타락의 앞날이 불 보듯 환하였습니다. 그 후 교회는 곧 분열되기 시작 했고 권력과 결탁한 일부 성직자들은 로마 황제에 영합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즉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기독교의 교의를 재단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단순화 하며 표준화 하려는 정치적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마 황제는 기원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시작으로 5차에 걸쳐 열렸던 종교회의에서 로마 교회의 모든 교리와 정책을 세속적인 로마 황제가 주도하여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과오가 기원 382년에 현재의 신, 구약 성경 66권이 정경으로 결정되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정통파의 주장은 밀려나고 로마 황제의 구미에 맞게 재단이 된 것입니다. 신약성서는 4대 복음과 묵시록 외에는 사도 바울의 서간문이 신약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경의 결정이 십자가 대속 신앙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곧 바울의 신학입니다. 신약성서에 베드로의 서간은 단 9쪽뿐이며 야고보의 서간은 단 5쪽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의「사랑의 실천과 행함의 신앙」은 모두 이단시 되고 사도 바울의 신앙유일주의 곧「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신앙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정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신학이 이렇게 판을 치게 된 것까지도 좋았으나 기원 553년에 이르러서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재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소집 되었던 제5차 니케아 회의에서 로마 황제가 용인하지 아니한 도그마(敎義)를 이단으로 결정하고 이를 심판할 수 있는「이단 심판제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여 기에서 바울의 신학은 로마제국의 정통교리가 되고 베드로의 진짜 정통신학은 완전히 이단으로 몰렸던 것입니다. 이단과 정통이 완전히 뒤바뀐 왜곡된 역사가 기독교를 지배하면서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어 당파적 종교로 전락하면서 사랑을 떠난 정복종교요 겉만 화려한 회칠한 무덤이 되고 맙니다.
로마 교황청의 전권 장악
이 후 로마 황제 밑에 견제 당하던 로마 교황청이 이제는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모두 한 손에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황은 한손에 천하의 정치권력, 또 한손에 교회권력을 쥐고 종횡무진으로 천하에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로마 황제 대신 로마 교황이 교권을 철석 같이 굳히기 위하여 반대파를 파멸키 위한 이단 심판과 종교재판의 암흑시대가 들이 닥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황청은 지상의 모든 권력을 전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행자였습니다.
드디어 신도들은 성서를 읽는 자유마저 박탈되고 만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못 읽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교황청의 절대 권력은 자연히 부패하게 마련입니다. 정치권력을 손에 넣은 교권자들은 이젠 세속적인 권력과 부 축척에 눈을 돌렸습니다. 드디어 무법천지 중세의「암흑시대」가 연출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권의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반드시 개혁을 부르짖는 또 다른 소리는 있게 마련입니다.
로마 교황청의 십자군 전쟁의 참패
로마 교황은 형태로는 사실 왕 중 왕의 권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황은 유럽 국왕들을 마음대로 임명하고 폐위하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 800년에는 교황 레오 3세는 찰스 대제를 축복하고 그에게 황제의 관을 수여 하였습니다. 유럽의 모든 생사집권이 교황의 말 한마디에 좌우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 속에 있는 교황청의 도취와 오만 앞에 어찌 하늘의 분노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교황청은 드디어 회복할 수 없는 실책을 저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중의 하나가「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로마 교황은 서기 1096년부터 약 200년간에 걸쳐 성지탈환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이교도에 의하여 점령된 예루살렘을 공략케 했습니다. 여기에 유럽의 국왕, 봉주, 영주, 기사들이 총동원 되었으나 200년 동안 7차례 원정에서 전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교황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은 성지탈환의 실패 위에 더 큰 실수를 저지르기에 이르렀습니다. 십자군의 오명은 이미 더럽힐 대로 더럽혀졌습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은 땅에 떨어진 십자군을 이번에는 이단토벌에 동원한 것입니다.
십자군의 이단 토벌
드디어 서기 1204년과 1208년 두 차례에 걸쳐 당시의 교황 이노센트 3세는 반대 잔당들을 이단의 이름으로 뿌리 뽑기 위하여 과격한 정책을 강행하였으니 그것이 저 악명 높은 십자군의 이단토벌이었습니다.
십자군이 선뜻 움직이려하지 아니하자 교황은 십자군에 참여하는 병사들에게 말도 안 되는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① 원죄를 포함한 모든 죄를 사면한다.
② 사후의 천국행을 보장한다.
③ 약탈한 이교도들의 모든 땅과 재산, 그리고 모든 전리품의 개인소유를 보장한다.
여기서 십자군은 완전히 합법적 폭도가 되고 공인된 살인강도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유일주의가 저지르는 죄과였습니다.
십자군 감독을 담당한 사제가 어떻게 이단자와 비 이단자를 구별해서 죽이고 살릴 것인가를 교황에게 묻자 교황의 대답이 기상천외 하였습니다. 「모조리 죽여라. 하나님이 알아서 구분 하실 것이다.」 십자군은 프랑스 남부 랑도크 지방으로 쳐들어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때 한 성당을 공격하여 한 교회에서 한꺼번에 1만2천명을 죽이고 그 작은 도시에서만 6만~10만 명을 살육 했습니다.
이렇게 1209년부터 1244년까지 십자군과 이단 심판관들에 의해 자행된 학살과 고문, 화형 등으로 인해 유럽에서만 100여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몰살당했는데 이것이 불과 35년 만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 학살이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두 성직자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중세 암흑시대
로마 교황청의 지휘 하에 십자군의 횡포가 전 유럽을 피로 물들이고 있을 때 이제는 광적으로 치닫는 이단 토벌은「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 유럽의 산천초목을 떨게 하였습니다.
중세에 교회 성직자들이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자 12세기부터는 대중들이 교회의 부당한 권위와 횡포를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점차 교회의 권위와 교리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를 탄압하고 교회권력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이단 심판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어떠한 자가 마녀라는 기준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의심받고 고발당하면 마녀사냥의 대상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가기 싫어하는 사람은 마녀로 의심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위장된 마녀」라 의심받고 심판에 넘겨지니 여기서는 이길 재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체포된 사람은 마녀라고 자백할 때까지 잔인하고 끔찍한 고문이 진행 됩니다. 모두가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빨리 죽임을 당하기 위하여 자신이「마녀」였다고 자백을 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손발을 묶어 강이나 연못에 산채 빠트려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마귀의 도움 받는 마녀로 유죄입니다. 그런데 무죄는 물에 빠져 죽고 떠오르면 유죄로 불태워 죽이니 여기서도 이길 재간이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산채 화형을 당한 마녀 중의 하나가 프랑스를 구한 애국소녀「잔 다르크」였습니다. 그녀가 마녀였겠습니까? 나라 구한 영웅 소녀까지 마녀 사냥의 제물로 화하고 말았습니다.
종교재판소 중에서도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 스페인의 종교 재판소였습니다. 종교 재판소에서의 처형 결과 2,000만 명이었던 스페인 인구가 200년 후에는 600만 명으로 감소되었다고 하니 종교재판소의 횡포가 가히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87년 11월 10일자「재림뉴스」(p2)는 천주교의 종교재판과 개신교 박해를 통해서 순교당한 신도 수를 약 5,000만 명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끔찍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기독교가 같은 기독교인들을 다만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살육한 숫자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뜻과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 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요 기독교의 핵심이 아닙니까?
마틴 루터 종교개혁의 문제점
이와 같은 중세 암흑시대 600년의 미친 세상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이 썩어빠진 기독교를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을 세우시어 종교개혁의 혁명에 불을 붙이려 하셨습니다.
1517 년 교황「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건축기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사후의 구원을 보장하는 면죄부를 팔기에 이르자 드디어 종교혁명의 기운은 폭발점에 이르렀습니다. 마틴 루터는 1520년에「기독교의 자유」라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선포로부터 약 130년간 유럽 천지는 이젠 친교황파와 개혁파로 나누어져 다시 피비린내 나는 상호 살육의 역사가 계속 되었습니다. 드디어 1648년 웨스트파리아 조약으로 신구 기독교가 화해하여 공존하게 된 것입니다.
교황청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혁명은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종교개혁은 50%의 성공에 그치고 만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중요한 승리 중의 하나는 성서를 해방한 것입니다. 14세기까지는 영어판 성경이 없었다면 여러분 믿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50%의 절반 성공밖에 못 되었는가?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로마 교황청의 부패, 타락의 소굴을 청소 할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본연의 신앙 전통으로 환원 하는데 더 큰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틴 루터는「종교의 자유」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행은 필요치 않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만으로 충분하다. 믿음으로 의롭다 일컬음을 받으며, 행함이 구원에 필요치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누구의 소리입니까? 사도 바울의 소리가 아닙니까? 마틴 루터는 제2의 바울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신앙유일주의에 그대로 머물고 만 것입니다. 개신교 역시 십자가 보혈의 신앙으로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개신교도 모두 바울의「대속신앙」을 계승 하였고「예수는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분!」「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신앙으로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행함의 종교, 사랑의 실천은 또다시 선반 위에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면죄부 한 장을 팔고 천국을 보장 했습니다. 개신교는 세례 한번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 한번으로 천국을 보장합니다. 이것은 신앙유일주의의 전형적 표현이며 궁극적 결과였습니다. 이 와중에서 세례조차도 죽기 직전에 받으려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마틴 루터의 또 하나의 무서운 과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에서 또 하나의 무서운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개신교에도「마녀 사냥」이 성행 하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도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그대로 답습하여 마녀사냥을 용인하고 계속하여 이단자의 이름으로 수많은 신도를 학살 하였습니다.
사실은 자기야말로「이단자 중의 이단자」인데 또 어떤 이단자를 자기가 처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하여 소위 이단 심판은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고질병이 되고 개신교도 이 광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이단」의 저주는 지난 400년 개신교가 타종교에게 내리는 사형선고였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선교역사
사실 기독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독교는 타종교를 무시하고 살상한 대표적인 종교였습니다. 예를 들면 천주교가 중남미 대륙으로 들어가서 원주민들에게 범한 침략, 약탈, 살인, 파괴, 그리고 정복의 죄과는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1,500년도 초기에 유럽에서 온 천주교인들은 남미 페루 지방 일대에서 840~1,35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지방인구의 94%였습니다. 또 그들은 16세기 중에 중남미에서 6,000~8,00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습니다. 또 원주민들이 쌓아올린 그 찬란했던 잉카(Inca)문명, 타이노(Taino)문명, 아즈텍(Aztec)문명 등을 말살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북미대륙에서도 개신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라는 미명하에 역시 1억여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였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지금 미국사회의 최하층민으로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천주교도나 개신교도나 잔인한 침략, 약탈자 근성에 있어서는 피차일반인 셈입니다.
지금은 개독교가 사랑과 정통과 선의 가면을 쓰고 탈레반의 납치 살상을 비인도적 만행이라 외치고 있지만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입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총칼로 빼앗은 땅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 공급을 위하여 약 300년 동안에 아프리카에서 1,200~1,500만 명의 흑인들을 잡아와 남북아메리카와 서인도지방 등에 팔아 버렸습니다. 노예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치부에 열중한 것입니다.
마 하트마 간디는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도 닮지 않고 속엔 야욕만 가득 찬 기독교인들이 복음전파란 미명하에 끊임없이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이들이 학살한 원주민들은 히틀러가 학살한 유대인보다 몇 십 배가 되는 엄청난 숫자인데 양심적인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아무도 인정하지도 않고 문제 삼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2000년 기독교 선교역사는 한마디로 이단시비와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박해로 붉게 물들여진 역사였습니다. 기독교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인간 이하의 잔혹 행위로 내 이웃을 살육해온 역사였습니다. 과거에 기독교가 이단종파와 타종교와 이교도를 박해한 행위는 이웃 사랑을 핵심적 진리로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자 배신행위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기독교여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가라!
오늘날 예수 믿는 분들이 예수쟁이로 욕먹는 데는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심각한 잘못이 무엇인가를 원점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반을 다 잃을 지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가야합니다. 지금의 기복적이고 당파적인 개독교로서는 예수님의 인류구원의 성업을 절대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역사가 증명합니다. 과거나 현재나 국민의 90%이상이 기독교인인 기독교국가가 얼마나 많이 나왔습니까? 그러나 단 한번만이라도 평화에 접근해보지 못했는데 무얼 더 개독교에서 바랄게 있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해야 뜻이 이뤄지니 참고 기다리자고요.... 솔직히 동료 목사님들! 요즘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목사님이 계시기나 합니까?
만약 예수님이 귀하의 기도 중에 나타나셔서 기독교의 잘못된 신학을 가르쳐주시면 바른 신앙을 위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굶어 죽더라도 고난의 길을 선택할 각오는 되어있으신지요?
지금의 기독교와 신학은 인간의 본심과 양심 법에 맞지 않는 것이 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예수님의 언행을 분석해보면 모든 인간의 본심과 양심 법에 딱 들어맞게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은 지금의 신학이 크게 왜곡되고 만 것이지요. 신학이 잘 이해가 안 되도 불신 죄를 벗어나기 위해선 무조건 믿어야 복 받는다는 신학??? 이미 신학이 아닌 도그마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한 개독교에 이슬람과 불교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된 개독교의 전성시대는 과학의 발달과 인간 이지의 개발로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3의 종교개혁의 봉화로 개독교를 깨우쳐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을 실천하여 참된 기독교가 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탈레반(잘못된 개독교와 피장파장)에게 잡혀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더는 피해 없이 어서 석방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실은 탈레반에 피랍된 그들도 개독교의 “예수천당불신지옥”의 아편에 취한 피해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