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은 처음 되어봅니다. ^^
좋은 말 해주신 리플러님들 감사합니다.
불효자란 닉네임이 많긴 한데....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누구나 삶은 힘들고 그 삶의 무게는 이런 글에 담기에 가볍지 않습니다.
참..18년 전에도 후시딘과 멘소래담은 있었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한도가 없지요.... 자식은 그걸 절대 이해 못하구요...
맞아요...저를 때리신 날......아버지는 제 상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가슴에 안고 진~한 눈물을 흘리셨겠지요.
부모님께 말씀 안드리고 해병대 846기로 입대할 때도,
이틀 전에 아버지 군대갔다오겠습니다 하니까
아버진 내 몫까지(!!!) 잘 갔다 와라 이 한마디만 하고 마셨는데, 저 입대 후에
어머니랑 아주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마시고
그것을 해주고 싶어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이땅의 모든 부모님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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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들 연말 잘 보내고 계시지요? 연말 마감하느라
엄청난 양의 품의서와 씨름을 하고 있는 평범한 29세의 4년차 직장인입니다.
연말만 되면 18년전 아버지와 있었던 일이 생각 납니다.
18년전 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직전 무렵......
한적한 시골 출신인 저는 추운 날 애들하고 하루종일 놀기에 바빴더랬지요.
저녁에 일 보고 들어올테니 가게를 비우지 말라는 엄명을 어기고
저는 그날도 애들이랑 당시 유행하던 쇠구슬치기(요새 이런 놀이 하는 애들 있나요?^^)에 쓸
쇠구슬을 구하러 동네 공업사에 굴러다니는 베어링 찾으러 눈이 벌개갖고 싸돌아다녔습니다.
아버지가 7시정도에 보통 돌아오시니까 한 6시 반에 들어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시간 맞춰 들어갔는데, 아뿔싸, 아버지는 이미 들어와계셨습니다.
더 문제는, 제가 가게 문을 잠그고 나가는 것을 깜빡하여 손님 몇분이 가게 오셨다가
그냥 가신 거였습니다(워낙 시골이었고, 당시에 도난 사고는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겁이 더럭 난 저는 아버지께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 "언제 나갔어?"
저 : "5시요"(실제 나간 시간 1시반인데, 그나마 욕 좀 덜 먹어보겠다는 잔머리~~)
아버지 : "얘가 거짓말을 하네...." 하시면서 준비하신 몽둥이로 저를 무차별가격하셨습니다.
아무데나 때리시길 수십차례~ 아버지는 일어날 힘도 없게 절 때리시더니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절 바깥으로 내쫓으시고 집 문을 잠그셨습니다.
겨울밤에 팬티도 안입은 12살짜리가 갈 데가 어디있겠습니까.....
집 앞의 논으로 가서 수확하고 남은 볏짚 쌓아놓은 그 속에 들어가 누워 잤습니다.
생각보다 따뜻하더라구요 ^^
두어시간 자다가 일어나서 용서를 빌어야겠다 생각하고 집쪽으로 가니까
집에선 경찰에 신고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추운 겨울밤에 벌거벗은 아이가 행방불명되었으니,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진거지요.
온 몸이 심하게 붓고 멍투성이인 저를 보신 동네 어른들은 해도 너무한다고
아버지가 애를 잡는다고 수군댔습니다.
어쨌든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또 저를 때리셨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일을 벌이셨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책, 학용품 가방 일체를
집 밖으로 꺼내시더니 불을 질러서 모두 태웠습니다.
너같은 놈은 공부해도 아무 소용없다. 집에서 농사짓고, 일이나 배워라. 하시는 겁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한학년에 6반, 300명정도 되는, 시골 치고는 큰 학교였습니다.
지금은 한 반에 몇 명 안되지만 그땐 한 반에 50명정도 되는 시절이었거든요.
저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전교 2등도 한 번 안해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고
성역을 굳게 지킨 부동의 전교 1등이었습니다.(고1때 반에서 40등으로 추락합니다 ^^)
근데 아버진, 공부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불태우셨습니다.
그리고는 들어가 주무시더라구요...... 저도 통증과 서러움에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밤새 제 옆에서 간호를 하시구요.....
멍에는 맨소래담...... 찢어진 상처에는 후시딘....^^
아침에 일어나니까....10시..... 학교가야 하는데 장독이 올라 꼼짝도 못하겠더군요....
어찌어찌 일어나서 학교에 가려는데,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학교에 가시더니 저를 바로 교장실로 데리고 가시는 겁니다.
안그래도 제가 학교 안와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시던 교장선생님께서는
얼굴이 붓고 멍투성이인 저를 보시고는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셨습니다.
근데 아버지께서는 대뜸 "이 아이를 퇴학시켜주십시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교장선생님은 당최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서 궁금해 하시는데, 아버지께서는
"공부 잘하는 거 아무 필요없습니다. 얘처럼 공부 잘해도 부모님한테 거짓말하는 놈은
나중에 커서 사기를 쳐도 크게 치고 사회에 독이 되어 집안 망신만 시키니까,
아예 지금 싹을 잘라서 제가 집에서 농사지으며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교장선생님도 이유를 짐작하시고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한참을 설득하셔도 진전이 없자,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도 퇴학시켜달라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셨습니다.
타협점이 나오지 않자, 아버지는 교장선생님께 앞으로 졸업할때까지 저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선에서 벌을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교장선생님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학생용 화장실이 초대형 푸세식 하나 뿐입니다 ^^;
1사로부터 25사로 정도까지 있는 대형 화장실....맞은편은 전부 서서쏴인 남자 소변대...
왜 아시지요....오줌 높이 싸기 가능한 시멘트를 일직선으로 조잡하게 발라놓은 벽....
그걸 꼬박 2년간 혼자 청소했습니다...
첨에는 도저히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청소를 마칠 수 없었습니다. 1시간도 더 걸리더라구요.
근데 6학년이 되고, 적응이 되니 30분이면 넉넉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철없이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근데, 나이가 드니까 아버지가 저를 교육시키시려고 초강력 옵션을 사용하셨다는 점을
서서히 깨닫게 되더라구요.
참, 제 아버지는 무학에 장애인이십니다. 아주 많이 불편하신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약간 다르다는 점 하나만으로 불이익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시절도 겪었고 초등학교땐 점심도 자주 굶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커서 하신 말씀이지만 아버지는 아무리 당신 자신은 무시당하고 천대받아도
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땐 아버지가 참 미웠지만, 지금은 제 아버지 같은 분이 세상에 흔하지 않다는 걸 알고
더욱 더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도 아들 낳으면 아버지가 쓰신 초강력 옵션 한 번 써볼까 해요.....
이번에 성과급 800만원으로 부모님 1주일간 유럽여행을 보내드렸는데,
비행기를 처음 타보신다는 어머니 아버지 말씀을 듣고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나는군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불효자는 아버지 마음을 언제 다 이해할 수 있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