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사건을 보면서 그시간 그장소에 본인이 있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많겠지..
마음이 무척 아팠다.
놀러가다가도 사람이 죽을수 있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집에서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구조로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나 몸하나 움직여서 근근히 먹고 사는 사람이던 누구나 뜻밖의 죽음을 맞이할수는 있는 거지만 이천 화재를 당한 그 사람들은 정말 이사회에서 힘든 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어릴때 일이 생각난다.
빨간색 돼지 저금통에 돈을 가득 모았다.떡볶이 하나 안사먹고 10원짜리 운이 좋으면 50원-100원짜리를 정말 열심히 모았다. 마침내 돼지가 꽉차서 더 넣을수가 없게 되자 나는 그 돼지를 개봉했는데 저녁시간이라 온가족이 다 한방에 있었다. 돼지가 개봉되고 이루 말할수 없이(?) 많은 동전이 쏟아졌다.
그때 내 나이 열살이었다.
나는 기뻐서 입이 귀밑까지 걸리며 돈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던 우리 엄마 하시는 말씀-
애가 완전히 돈에 환장했군.돈을 보더니 애가 미쳤어.돈땜에 저 눈 돌아가는 좀 봐
내귀를 의심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그 말씀은 정말 상황에 안맞는 해서는 안될 말씀이었다
무시하고(?) 돼지에서 나온 돈을 계속 세고 있는 나를 본 엄마 내가 엄마 말을 못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세번이나 더 똑같은 말씀을 반복했다.
나는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돼지와 돈을 모두 버려두고 집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뒤 내돈들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다만 그뒤로는 한번도 돼지 저금통에 돈을 모을 생각을 안했다.
우리 엄마는 좀 심한 케이스였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그 당시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을 돈맹으로 키우는게 자식을 잘 교육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늘 학교공부 학교공부만 중요시했고 입버릇처럼 커서 약사나 교사가 되라고 주문을 외우다시피 했다.
성적이 모든 것이었다.
나는 못배워서 사회에서 대우 못받고 험한 일 하고 살지만 너만은 커서 번듯한 직장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씀이셨다.
부모님의 주문대로 세상에 대해서도 돈에 대해서도 정말 아무것도 모른체 학교 우등생이 되었고 대학을 갔고 취직을 했다.
학교 다닐때 죽어라 공부만 했고 성인이 되어서 이날 이때가지 죽어라 직장만 다녔다.
어릴때부터 간절한 꿈이었던 문학은 애저녁에 접은지 오래고(너무 철저한 생활인이 되다 보니 머리에서 글샘이 다 말라버렸다)
직장에서 상사 눈치보며 동료들과 아옹다옹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온갖 트집 다 잡히며(난 교사이다)그렇게 꿈도 하고 싶은 일도 다 접고 산지 15년- 월급은 적고 (내 월급으로 아이들 키우고 가족들 부양하는 일을 못해낸다.)세금은 터무니 없이 많고 쟤는 안정적인 직업 가져서 좋겠다는 주변의 질시어린 눈에 시달리며 산다.
먹고 사느라 그때 그장소에 가서 그 일을 하다가 죽음까지 맞은 이천 노동자들보다는 내 입장이 낫겠지..이글을 읽는 많은 직장인들의 삶도 그들보다 나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먹고 살기 위해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고달픈 직장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그기서 그기다.
직장인들의 애환은 사실 정도 차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나를 이렇게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그렇게 애쓰시고 성적 1점에 울고 웃고 하셨으며 내가 취업한 순간 이제 쟤 인생은 완전히 불행끝 행복 시작이라고 믿으셨던 것이다.
오늘날 나를 만들기 위해 행여 어린아이가 돈에 관심을 가지면 빗나갈까 자식 가슴에 못박는 소리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하여튼 성에 대한 조그만 관심 돈에 대한 조그만 관심도 그분들은 질색하셨다.
그 모든 것들은 다 오직 공부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믿으셨던 것이다.
왜 그토록 공부를 중요시 하셨을까?
다 직장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분들의 일생일대의 사명은 자식 직장인 만드는 것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부모들이 아직 많이 있다.
신문에 보니 우리나라 보통 부모들의 열망이 자식 키워서 공무원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자식에 대한 꿈이 더 큰 부모님들도 물론 있지만.
그래서 있는돈 없는 돈 끌어모아 학원에 보내고 성적에 올인하며 모든 것을 자식에 투자한다고 한다.
그것이 내자식 인생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일지는 몰라도 행복의 길이라고 꼭 보장할수는 없다.
나도 얼마전까지 내 부모님이 걸어오신 길을 걸어왔다.
미술을 좋아하고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의 꿈을 초장부터 싹둑 잘랐다.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미술학원은 일부러 안보내고(미술에 대한 관심 초장부터 끊으려고)공부학원을 보냈다. 그런데 공부학원은 초등생인데도 어찌 그리 비싼가?
빠듯한 살림에 속으로 끙끙 앓으며 매달 근근히 돈을 마련해서 아이를 공부학원에 보냈고
아이 중간고사 기말고사점수 등락에 전전긍긍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토요일 에도 특강이라며 아이를 학원으로 부르는 공부학원 선생님들께 감사했다.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의 꿈은 어떻게 되던 말던..아이 인생은 어떻게 되던 말던..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삶에 회의가 왔다.
학교는 참으로 덥고 추운 곳이다.
서울은 어떤지 모르나 내가 사는 지방의 학교는 환경적으로 몆십년과 달라진게 없다.
나는 체력이 약해서 겨울에 난방이 안되는 교실에 있으면 금방 감기에 들어버린다.
교직 생활 15년 나는 해마다 추위와의 전쟁을 벌여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교직을 그만둔다면 가장 큰 이유가 아마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일 것이다.
친구 선생님이 추위를 견디다 못해 몰래 전기 방석을 깔고 앉아 생활하다가 하필이면 교실에 불이 나 그 선생님이 사용하던 전기방석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돼 섬으로 강제 전보되고 말았다.
그뒤로 혈관이 얼어붙을 것 같은 맹추위에도 전기제품은 교실에서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튼 돌아보니 춥고 덥고 말많고 시비많은 학교생활 15년에 남은것이 별로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남은 것이 없다.
아이를 바라봤다.
내가 죽어라 없는돈을 만들어 학원에 기십만원씩 갖다 바치는 것도 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인데..
이제 10대에 접어드는 자녀의 관심이 오직 공부에 있기만을 바라는 것도 다 자식을 위해서인데..
뻔히 보이는 미술적 재능을 그렇게 무참히 잘라 버린 것도 다 내자식 배고픈 화가가 될까 걱정이 되서인데..
과연 오늘날의 내모습이 자식의 미래의 행복한 인생을 끌어낼수 있을까?
아서라 말아라 싶은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내가 해봐서 알지만 공부는 아주 특출하게 잘하기가 매우 어렵다.(나는 고3때 반에서 1-2등을 했다)
그리고 사실 그 잘하기 어려운 공부를 특출하게 잘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나와서 기껏 공무원이다.(물론 더 잘되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그렇게 너나없이 전부 공부 공부 타령이다.
공부 공부에 쏟아넣은 돈과 시간과 노력- 그렇게 애쓰고 힘쓴 결과가 기껏 공무원이다.
그나마 요즘은 청년 실업이 너무 심각해서 학교공부 그렇게 잘하고 심지어 유학에 어학연수에 토익토플에 수백씩 쏟아넣어도 취업이 안되 집에서 노는친구들도 많다.
청년 실업은 전세계적 현상이고 지금 20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지 않는가?
천신만고끝에 취업해도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다.
내 아이가 정말 공부를 원한다면 말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아이의 소질과 희망이 딴데 있는데도 오직 공부로 몰아가야 할것인가?
나는 최근에 아이에게 미술학원에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이가 뛸듯이 좋아한다.
내 아이는 유아때 열이 39도까지 나도 미술학원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서던 아이였다.
그모습이 두려워서 내가 초등 저학년때 아이 미술학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공부 학원에 바치는 돈은 미술학원을 세개를 보내고도 남을 돈이다.
미술이던 뭐든 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고 싶다.
공부 그냥 중간쯤만 해도 된다.
아니 못해도 된다.
잘하면 칭찬해 주고 못해도 나무라지 않을 작정이다.
그리고 아이랑 같이 즐겁게 텔레비젼도 많이 보고 영화관에도 데려갈 생각이다.
얼마전 아이와 이야기중에 아이 입에서 난생 처음으로 섹* 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옛날같았으면 내가 기함을 했을 것이다.
아이는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별 이상한 느낌없이 그 단어를 말한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놀라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아이가 제데로 잘 자라줄것이라고 아이를 믿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도 자라면서 온갖 상황에서 선악을 잘 판단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릴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를 위해서 입출금 통장을 만들었다. 금액은 적지만 주기적으로 용돈을 주어야 아이도 돈관리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매월 단돈 오 만원이라도 펀드 계좌를 터줄 생각이다.
저 다니던 학원비 나가던 생각하면 이것은 새발의 피다.
그러나 먼훗날 많이 다를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저하는 것을 봐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이것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공부를 하도록 놔두고 공부는 아니구나 싶으면 야간 자율학습 같은거 보내지 말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게 하고 싶다.
책도 많이 읽고 신문도 읽고 주유소 같은데서 아르바이트도 해보라고 할것이다.
대학도 서열이 낮은 대학일지라도 저 전공하고 싶은 과가 있는데로 보내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취업도 꼭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젊을때부터 재테크를 열심히 해서 재산을 불려가라고 권하고 싶다.
젊은이들의 재테크는 결코 시건방을 떨거나 돈에 미쳐서 환장한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재테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 세대들의 필수덕목이다.
돈은 결코 직장생활을 통해서만 벌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이나 직장생활을 통해서 번돈만이 정당한 돈이라는 의식은 깨져야 한다.
돈의 귀중함을 알고 낭비하는 습관만 없다면 젊은이들이 사회 입문할때부터 펀드 하나만 야무지게 잘해도 직장생활안하고 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얼마든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자식 경제교육이 그렇게 중요한다.
어린자식에게 과감히 경제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본격적인 투자교육을 10대 후반에 벌써 실시한다고 했다.
돈에 대해 정당하고 올바른 철학을 갖추게 하기 위해 과감하게 아이를 공장의 비정규직으로 집어 넣은 부모도 있다.
대학에 떨어진 자녀를 꾸짖지 않고
네 힘으로 딱 1000만원만 벌어오면 부모가 돈 보태서 자립할 종자돈을 주겠다는 부모가 있었다.
아이는 멋도 모르고 좋아라 일을 하러 갔다
주유소 까페 햄버그 집 공장일 심지어 건물청소일도 하면서 아이는 돈을 벌었다.
주유소 사장한테는 욕설을 듣고 뺨을 맞았고 공장의 비정규직으로 하루 열두시간씩 일하고 한달 3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건물 청소를 하다가 도둑으로 몰린 일도 있다고 했다.돈 몇푼 벌려고 눈물꽤나 쏟은 것이다.
그리고 3년동안 천만원을 벌어서 부모가 준 종자돈을 보태서 20대 중반에 자립했다.
직장은 없어도 절약정신이 매우 투철하고 경제감각이 탁월해서 종자돈 안날리고 계속 잘 불려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의 취미는 사진인데 아마추어 사진전에 입상도 했다고 한다.
사진 원할때 맘대로 찍으러 다닐수 있고 그럼에도 탁월한 경제감각으로 먹고 살만큼 돈을 버는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한다.결혼하면 증권사 투자 상담 전문가로 일하고 싶은 희망이 있고 그러나 그것이 정말 싫어지는 날이 오면 훌훌 털고 나올수 있는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젊은이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어이했거나 남과 다른 철학을 가진 부모덕에 아이는 돈 10원을 허투로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가 된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젊은아이한테 종자돈을 주었으면 어찌 되었을지 알수 없다.
물론 경제적 실패도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지만..
나도 내 아이에게 세가지를 가르치고 싶다.
네가 평생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후회없이 하라.
(미술이던 문학이던 아프리카 봉사건 신이 네게 주신 재능을 100% 발휘하고 꿈을 이루며 살아라)
직장에 안나가도 먹고 살만큼 돈을 벌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키워라.
네가 준비가 되었을때 종자돈은 너에게 줄것이다.(소도 비빌 언덕은 있어야 하니)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봉사하며 살아라.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가 40이 되어서 깨달은 이것을 꼭 아이에게 실천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