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아 선호사상이 아주 강한 집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아주 가난한 시골 빈농집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무척 고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릴때 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이 소위 말하는 곰보였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스무살에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는데 아버지 입장에서 볼때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얼굴이 곰보인 아내를 맞이할수 밖에 없는 억울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성격상 남들에게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자존심과 공명심이 강했는데 돈이 없어서 정말 어쩔수 없이 곰보 아내를 맞이했다는 자격지심으로 평생 자신도 불행하고 아내도 불행하게 만든 분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시집의 구박덩이였습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밥도 주지 않고 황소처럼 일만 시켰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벌레보듯 싫어했고요.
그런 어머니가 첫딸을 낳자 시어머니의 서슬은 더 강해졌습니다.
둘째를 임신했고 어머니는 가난한 데다 시어머니 눈치때문에 제대로 드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아이가 아들이기만 하면.. 하고 바랬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나온 아이는 태중 영양실조로 살지 죽을지 모르는 여자아기였습니다.
어머니는 다음날부터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야 했습니다.
그뒤 어머니는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제 바로 밑의 동생입니다.
여기까지는 들은 이야기이고 지금부터는 저의 기억에 의한 이야기입니다.
그뒤 제가 한 네살무렵인가 일나간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저만 놔두고 외출해 버렸습니다.
저는 밖에서 걸어 잠긴 창호지 문을 붙들고 울었지만 아무도 저의 물음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 자기들끼리 다 놀러 나가버렸으니)
정신을 차려보니 창호지 문에 발려 있던 종이들은 다 찢겨 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와서 그꼴을 보더니 갑자기 저를 번쩍 들고는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제 인생 첫번째 죽을 고비였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살았고 저는 먼 시골 외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미 팔순을 넘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분들은 아버니나 어머니 친할머니와는 다른 아주 인자하고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하고 살았던 때 저의 유년기는 행복했습니다.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동네에서 엄마 아빠없는 아이라고 장난꾸러기에게 시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셨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셔서 행복한 유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두분이 돌아가시자 어쩔수 없이 저는 지옥 같은 집으로 되돌아 오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세살위의 언니가 있었는데 질투심이 많고 성격이 극도로 포악했습니다.
갑자기 사라졌다 또 갑자기 나타난 동생 -그것도 나약한 여자 아이-는 언니의 가장 만만한
밥이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잠시도 몸도 마음도 쉴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철저히 그것을 묵인하고 방조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큰딸은 그들인생의 첫번째 아이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들데로 당연히 금쪽보다 귀한 존재였고요.
막내 여동생(내가 시골집에 가있는 동안 태어났다고 합니다) 은 막내라서 의미가 있고 귀한 자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쓰레기보다 못한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공평하신 것일까요?
의무교육법 위반에 걸릴까 두려워 (지금은 이법도 우습게 돼 버렸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했던 1970년대 후반에는 나라에서 강력하게 의무교육법을 추진했습니다. 미운 자식을 집에 가둬놓고 일만 시키면서 국민학교를 안보내는 그런 몰지각한 부모들에 대한 국가적 단속이 심했습니다)
밥도 얻어못지를 못하고 옷도 얻어입지를 못한체 학교에 보내진 제가
정말 황당하게도 집에서 귀하게 자란 남학생 여학생들을 제치고 수위를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이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느낄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제가 그분들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것은 아닌데 그분들은 저때문에 자신들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통 부모들 같으면
어려운 상황 잘 이기고 이제 원한한 사회인으로 주부로 아무 탈없이 살아가주고 있는 중년의 자식이 고마울 만도 한데 정반대로 저한테 아직도 이를 갈고 있습니다.
제가 아들이었대도 그랬을까요?
단지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가 겪은 일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면에 다쓰지 못해서 그렇지 언니는 저를 짐승처럼 취급했습니다.
제가 아들이었대도 형제간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을까요?
언제가는 저의 어머니도 이 세상을 떠나겠지요?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제가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엄마 엄마자식으로 태어난거 사실은 나도 평생동안 미안해 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엄마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엄마 자식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 마음도 조금은 풀어질수 있을 거야.
저 아이도 지가 원해서 나 괴롭힐려고 일부러 내 자식 된것은 아니지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풀어질수 있을 거야.
그러니 모든 원망을 풀고 편안하게 가시라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나
우리가 서로 부모 자식으로 만난게 사실 따지고 보면 부모 탓도 제탓도 아니지요.
양측다 서로를 부모 자식으로 원한바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일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땅의 여성들이 눈물과 한숨속에 살아가고 있을까요?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여자의 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와중에도
여자가 자기가 버는 돈이 있으면 모진 운명이 조금 상쇄되는 효과를 누릴수도 있습니다.
여성일수록 인생수레바퀴 굴러가는 양상이 더 가혹하고 힘들수록 더 돈에 대해 철저해 지십시오.
경제적 자립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생길에서 만나는 남자를 주의 하십시오.
여자 인생은 잘못된 남자와의 만남때문에 종종 망쳐지는 것입니다.
혼전 임신은 절대 하면 안됩니다. 안그래도 힘든 인생 더 꼬일뿐입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남자에게 복속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전 길을 가는데 교복치마를 줄여도 넘 심하게 줄여서 짧게 입은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남자친구의 허리에 거의 매미처럼 붙어서 매달려 가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저 아름다운 나이의 젊은 학생은 지금 관심이 남자친구가 아니고 공부에 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나 있을까?
저러다 남자친구가 원하면 몸이라도 덜컥 내주는게 아닐까?
(저도 딸둘가진 엄마입니다)
그런다 남자친구가 배신이라도 하면 세상이 끝난것처럼 절망하는게 아닐까?
솔직히 그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남자보다는 돈을 사랑하고 어찌하던 남자를 조심하고 남자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복속되지 않는 여자에게는 아무리 힘든 여자로서의 운명도 살짝 비켜 갑니다.
그리고 결혼할때 남자의 조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격 인격을 추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수입이 필요합니다.
내가 버니까 남자가 벌어들이는 수입에 목숨을 걸지 않을수 있는 것이고 수입부문이 좀 약하더라도 인간으서의 인격만을 추구한다면 정말 숨어있는 보석같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남자중에서 정말 내 인생을 함께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인격자들이 있습니다.
인생관도 훌륭하고 여성관도 훌륭하고 사람됨됨이가 정말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은 마치 폭풍우 치는 들판에서 안전한 장막을 찾아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정말로 펼쳐질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여자로서의 제 인생 후반부는 그래서 어느 여자보다 행복합니다.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즘 맞벌이안하고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수도 있었겠지만 제가 추운날 직장 나와서 조금 고생을 하는 대신 마음의 행복을 원하는 만큼 누리고 있으니까 절대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보다 오히려 경제력이 조금 약한 사람이 더 겸손하고 아내를 소중히 여겨줄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과 살아야 마음의 진짜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