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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예천읍의 지명 유래

hanolduol |2006.11.10 10:53
조회 244 |추천 1

유 래 명

유 래

군방골(軍房洞)
궁방골(弓房洞)
관혁동(貫革洞)

○ 군청앞 정문에서 동쪽으로 뻗은 큰길 근처에 있는 노하동의 원마을인데,

    東軒을 지키던 군 인들이 과녁(貫革)을 세우고 활쏘는 훈련을 하던 곳이고,

    병사가 있었다고 하여 군방동이 라 부르기도 하고, 활을 만드는 궁방이
 
    있었다 하여 궁방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하(路下)
길알, 질알 

○ 원래 漢川이 흐르던 곳이었으나, 고려 의종 (1147~1170)때 林椿이 서본2리

    굴모롱이에 암석 20m 가량을 뚫어 "林椿천"이라 불리면서, 노하리에 작은

    마을이 생겼으나, 배수가 잘 되지 않아서, 1919년에 임춘천의 확장공사 를

    하여 배수가 잘 되어 일 일대를 매립하여 집터가 확장되어갔다. 군청앞에

    동서로 큰길 이 트여있어 이 길을두고 길위는 질우(路上) 길 아래는 질알(

    路上)로 부르게 되었다.

봉란(鳳卵)거리 

○ 노하리 32번지에 봉란산이 있어서 불리어진 마을인데, 현재 파라다이스(

    樂園)호텔 동쪽 네거리이다.

성기골

○ 자리전골에서 북서쪽으로 현재 醴泉敎會로 가는 길목인 노하리 36번지에

    성기(성기) 공장이 있었다.

자리전골
 

○ 노하리와 동본리의 경계를 이루는 골목의 마 을로서, 1960년대 까지 자리를

    파는 노점전이 열리었다.


◎ 路上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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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막골, 새맛골
새마골, 사마골(司馬洞)

○ 연계당골 동쪽에 있는 골로서, 조선 시대에 생원과 진사가 모여노는 司馬

    所가 있었다.

연계당골(蓮桂堂谷)

○ 군청 바로 동쪽 골목 마을인데, 조선시대 연계당이 있었다. 예계당터 옆을

    지나 서북쪽으로 올라간다.

향교골(鄕校谷)
행교골

예천향교로 올라가는 골목의 마을로서 북서쪽으로 가는데, 대창중고등학

    교로도 가는 주된 통로이다.

홰나무골(槐木谷), 괴목정(槐木亭)
굇대, 굇디

노상리 안동통로에서 북쪽으로 바로 관통되는 골목의 마을로서, 경노당과

    관속골의 동쪽이 되는데, 골 막바지 북쪽에 적은 골목에 큰 홰나무가 있

    었고 굇디라는 측량푯대가 있었다 .

골안(谷內)

○ 관속골을 올라가다가 경로당 뒤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는골목의 마을이다.

관속골(官屬谷)
강석골, 광석골

○ 노상리 복판에 있는 마을로, 사마골 동쪽에 있는데, 이 골에는 군청이 노

    상리에 설치되고부터 관원(吏屬)들이 살았다. 지금 대창중고등학교로 가는

    길목 마을이다.

깃디, 깃뒤, 귓디

○ 조선 말까지 군청 뒷산에 暗葬이 발견되면, 이것을 파가라는 의미로 여러

    색갈의 旗를세워 告知했다. 군청 옆 연계당골을 올라가면, 동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의 윗쪽에 있는 마을이다.

노상, 길우

○ 군청 앞의 한길보다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이 일대를 길우라고

    한다.

산동네

예천군청 뒤 흑응산 중턱에 있는 마을로서, 노상리 6반에 해당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 어느 집에서 뱀 한 마리가 담장에서 기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 집주인이 뱀을 죽였다 그 후 수 많은 뱀이 그 집에서 득실거리기에

    놀란 가족들이 상에 물을 떠 놓고 기도하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니 겨우

    뱀들이 물러갔다고 한다. 이 뱀은 집뱀이었다는데, 이 집뱀을 해롭게 하

    거나 잡으면 그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 東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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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설운동장옆마

○ 동본2리로 한천변에 있는 마을이다. 농촌지도소와 공설운동장 사이에 조

    선시대 동읍 내면의 치소가 있다. 

도덕골(道悳洞, 道德洞) 도득골(道得洞)
장자동(長者洞)

○ 동본2리 공설운동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18세 기에 어느 도사가 마을

    뒤의 바위 위에서 수도하 여 得道를 했다는 전설이 있어 도덕골이라 불리

    어진다. 또 부자가 살았다고 長者洞이라고도 한다. 남을 비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도둑골이라고도 불리어 진다. 해가 10시에 뜬다는 음지마

    을이다.

돌고개(石峴)
돌꼬지 (石串,石串村)

○ 동본2리 돌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1592)때 明나라 장군 李如

    松이 보낸 地士가 이 곳 지형이 큰 인물이 태어날 곳이라 하여 군사들을

    시켜 큰 바위를 깨트리고 혈을 잘랐다고 하며 그 뒤 이근처 사람들은 깨

    트린 방위 위에 성황당을 마련하고, 길가는 사람들이 돌을 던져 행운을

    빌었는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 되었다고 저하고, 또 지금 東本橋 자리에

    내건너까지  바위가 물가 운데 쪽 깔려 있어서 돌꼬지라고 하였다.

동읍내(東邑內)
도읍내,매름지
매립지(埋立地)
새마

○ 동본1리이다. 동읍내는 행정구역개편(1914) 전에는 현재 동본2 리인 동쪽

    한천 건너에 대부분 이었고, 1919년 서본리 굴모리의 굴을 확장함에따라

    늪지대가 대지로 확장되어갔다. 그래서 매립지라고 해서 매름지라고도 한

    다.

새마, 새마을

○ 동본1리 상설시장 주변에 새로 생긴 마을로, 원래 논과 미나리깡이었으나,

    매립하여 집들이 점차 들어서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양재이(羊暘山)
양정리
양짓골(陽地谷)
양촌(陽村)

○ 동본2리 도덕골에서 동쪽 보문통로를 가다가 돌 꼬지 근처에 있는 양지

    바른 마을이다. 18세기초에 이 곳에 엽전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옥박골(獄外洞)
옥반골(玉盤谷)
오빠골

○ 동본2리이다. 옛날에 감옥이 있던 자리인데, 그 감옥 터 밖에 있는 마을

    이란 뜻으로 옥박골이라 불린다고도 하고, 또 뒷산이 선녀가 옥을 은쟁반

    위에 굴리는 형국이라 하여 옥반골이라고도 한다.

원골(院洞)
큰원골(大院洞)

○ 들꼬지마을 남쪽 등너머에 있다. 고려때부터 있었던 通明驛 가까이 여관이

    있던 곳이다.

터서리

○ 동본1리 매름지 동쪽, 현 동본교 서편 20m에 있던 논을 매워 1970년경 부터

    주택가가 형성된 마을인데, 이곳은 옛날에 미나리 논이었다.

◎ 南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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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동리, 새동네

○ 예천중학교 정문앞 동네로서 1972년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자, 이 동리 권

    기섭이 남본동 88번지 일대의 전답을 매립하여 가옥들이 들어서면서 부터

    새동리라 하다가 새마을 명칭을 빌어 새동리, 새마을 동리라고 부르게 됨.

외남본(外南本)
외남본동
남산동(南山洞)  

○ 남산 밑에 있어서 남산동이라고도 하는데, 남본2리에 속한다. 읍의 가운

    데로 한천이 흐르는데, 한천 밖, 즉 외곽지에 있다하여 외남본이라 부른다.

◎ 大心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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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실(水谷, 茂里室)

○ 신라때의 예천 이름인 水酒가 이 마을 이름 에서 유래했는데, 무리실은

    옛날에는 물이술 로 불리어졌고, 이 물이술은 곧 수주이다 라고 한다.

옻밭뚝

○ 작은 하무실의 한 부분인데, 옛날에 옻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미기, 이미귀(伊未歸)

○ 대심2리로 옛날에 경상감사가 예천군에 초도 순시를 올때, 용궁군을 거쳐

    이곳까지 왔으나 당시의 법도에는 원이 영접을 안하면, 상관이 그 지경을

    밟을 수 없으므로 원이 영접하기를 기다리다가 감사는 되돌아 갔으며, 원은

    감사 를 마중하기 위해 달려갔으나, 감사가 이미 떠나간 뒤이므로 할 수

    없이 돌아간 곳이라 하는데, 원은 감사를 마중하지 못하고 돌아갔 고, 감

    사는 원의 마중을 못받고 돌아간 마을 아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이미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17세기에 귀양오는 어느 원님이 싫은 길이

    라서 7일 만에 이 곳 까지 왔다고 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이곳을 "이래

    미기"라고 불렀는데, 그후 와전되어 이 미기가 되었다고 한다.


작은 하무실 (小大母谷)

○ 대심리이다. 큰 하무실 동쪽에 길다란 구릉 이 뻗어 있어 그 너머 마을이다.

    작은 하무실이라 부르나, 마을이 다를 뿐이지 어느 마을이 미리 생겼는지

    모른다.

하무실(大母谷)
화무실(花舞室, 化舞室),한모실 대무동(大茂洞, 大母洞)
큰하무실

○ 이곳 상재봉(上材峰) 밑에 있는 무덤이 장마 로 인하여 그 봉분이 붕괴

    되자, "小伐國王 母后墳"이라는 誌石이 노출되어, 이 곳을 大母谷, 또는 大

    塚谷이라고 하였는데, 그중 大母가 대무(大母)가 되고, 대무가 한무가

    되고, 한무가 하무실이 되었다.

홍심동(弘心洞)
홍심리(洪心里)
홍시미, 홍심이

○ 대심2리이다. 임진왜란(1592)때 어느 벼슬 높은 이가 여기서 여기서 피난을

    하던 중 인 심이 하도 후해서 厚心 또는 홍심이라고 했다고 한다.

흘증동(屹曾洞)
흙진개,흙징개,흑진개

○ 하무실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1740년 평해 黃永厚가 개척하였는데, 흙이

    매우 찰져 갯펄 같은 곳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흘진개라 했다 고 하며, 또

    앞산이 개가 흙을 지고 엎드린 모습 이라 하여 흑진개라고도 부른다. 또한

    중국의 성기사라는 장군이 마을 서편에 있는 산의 穴을 보니 개혈(犬穴)

    이라 흙이 찰져서 흙징개라 했다고 한다.

◎ 高坪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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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내(佳水川)
가시네

○ 고평2리 안골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앞을 흐르는 실개천 물이 만병

    통치의 영약이 라 하여 먼 곳에서도 이 물을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들어 물맛이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가수내라 함.

고평(高坪)
고사평(高士坪)
역앞, 안골
안곡(雁谷)

○ 고평2리 경북선 고평역이 있어 역앞이라고도하나, 내성천의 물길보다 높고

    넓은 들을향해 생긴 마을이라 하여 고평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에 藥圃

    鄭琢이 임진왜란(1592)을 수습하고 물러와 살던 곳으로, 그 때는 높은 선

    비가 산다하여 高士坪이라 불렀다 하며, 현재는 동네 앞에 제방이 둘러있어

    안골이 라고도 한다.

부리실, 부루실, 불우실(不遇谷, 不憂谷)
부곡(富谷)
불이실(不二室)

○ 고평1리로서, 안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남향 받이 마을로, 마을 앞에 시

    원한 내성천이 흐르고, 뒷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가 솟아 등잔불을

    켜 놓은 형국이란데서 연유된 동명이라 한다.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따

    뜻하므로 "소구리 동네"라고도 한다.

    조선 세조때 사육신 河緯地의 후손 副司正 河呈海가 화를 피해 들어와 아

    무도 만나지 않 고 숨어 산다고 不憂谷이라 했다고 하며 임진 왜란후 여

    기에 정착한 청주 鄭琢의 후손들이 근심없이 살아가는 마을이라 하여 不

    憂谷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사당골(祠堂谷)
서당골(書堂谷)
강당곡(講堂谷)

○ 고평1리 潘씨 가문의 사당이 있던 곳이라하여 사당골이라 불렀는데, 鄭씨

   집안의 강당도 있었기 때문에 강당골, 또는 서당골로 고쳐부름.

솔친재, 솔친저
솔친정(松伐亭)
재너머, 저너머

○ 고평1리 솔숲속에 옛날에 갖바치가 살았는데, 뒷날 경주 김씨가 솔숲을

    치고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는데, 뒷날 경주 김씨가 솔숲을치고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솔친정, 또는 솔친재라 불렀다.

한질건너, 한길건너, 샘동네

○ 고평1리 솔친재와 서당골 중간 마을이며, 옛날에 안동, 영주로 통했던 한길

    건너에 있으므로 이렇게 불리고 있다.

◎ 葛九里

 

유 래 명

유 래

갈머리, 갈두(葛頭)

갈구리에서 가장 일찍 생겼고, 큰 마을로 칡덩굴을 헤치고, 터를 잡았으며,

    葛花未發形의 첫머리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임.

거서리(巨西里)

○ 갈구2리로서 귀밑 마을의 남서쪽에 생긴 마을이며, 집이 뛰엄뛰엄 있는

    산촌이어서 아주 큰 동네처럼 보이므로 거서리로 불리어 옴. 또한 마을 중

    심에 항상 물이 흐르는 小河川 을 경계로 하여 그 서쪽에 人家가 들어서

    살면서 거랑 서쪽 마을을 약칭 붙여진 명칭임.

귀밑,구밑, 구산(九山) 구미(龜尾)

○ 16세기 말엽 순흥안씨가 터를 잡은 마을이라하는데 금거북이 뭍힌 꼬리의

    형상(金龜浸尾 形)의 명당에 마을이 생겨 龜尾이 귀밑으로 되었다 라고도

    하고 또 지세가 거북의 꼬리 처럼 생겼다 하여 구미 라고도 하며, 마을 앞의

    산이 아홉 골이므로 九山이라고도 한다.


◎ 栢田里

본래 예천군 북읍면의 지역으로서, 잣밭고개가 있으므로 잣밭고개 또는 백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에 백전동이라 한다.
ㆍ 간들고개 : 능골에서 생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ㆍ 구룡다리 : 아홉 골의 물이 한데 모인다.
ㆍ 능골(陵洞) : 사창 북쪽 골짜기 있는 마을, 고려장이 많이 있다.
ㆍ 맛들(馬坪) : 구마니 북쪽에 있는 들. 전에 말을 놓아 먹이었다.
ㆍ 사창(社倉) : 잣밭고개 북동쪽에 있는 마을. 이조 때 사창이 있었다.
ㆍ 쉰거리(신거리) : 백전교 북쪽에 있는 마을 . 현재 예천 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전에 용문면 선동에 사는 서씨가 가난하여 신을 삼아 가지고 장날마다 예천읍에 가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신을 대추나무에 걸어 놓고 쉬어 갔다고 한다.
ㆍ 잣밭고개(栢田峴) : 백전 남서쪽에 있는 고개.
향교골(校洞, 행깃골, 鄕校洞) : 예천 향교가 있는 고개.
ㆍ 효자각(孝子閣) 정문 : 사창 앞 큰길 가에 있는 효자 임즐의 정문


◎ 上里

본래 예천군 개포면의 지역으로서, 개포면의 가장 위쪽이 되므로 웃마, 또는 상리라 하였는데, 1914년 이후 상동이라 하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예천읍에 편입되었다.
ㆍ 갯들(浦坪) : 양지마 앞에 있는 들.
ㆍ 굼들 : 갯들 북쪽에 있는 들. 큰 늪이 있었다.
ㆍ 동녘마(동녘, 東村) : 안골 동쪽에 있는 마을.
ㆍ 안골(內洞, 방앗골) : 양지마 남서쪽 안 골짜기에 있는 마을.
ㆍ 양지마(陽村) : 내동 양지쪽에 있는 마을.


◎ 生川里

본래 예천군 북읍면의 지역으로서, 앞 냇물이 늘 소리를 내고 흘러서, 마치 생황 소리와 같다 하여 생내실 또는 생나실, 생천이라 하였는데, 나평동, 정산동을 병합하여 생천동이라 한다.
ㆍ 나붓들(羅坪, 羅坪洞) : 생나실 남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나부처럼 되었다고 함.
ㆍ 다루리고개(鷄鳴峴, 鷄峴, 닭울이고개) : 나붓들 북서쪽에 있는 고개. 용문면으로 통함.
   ① 임진 왜란 때 두사총(杜師聰)이 이 고개를 지나 금당실(金塘室)에 이르러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으니, 마치 중국 양양(襄陽)의 금곡(金谷)과 같다”고 크게 칭찬했다.
   ②용문면 선동에 사는 서씨가 가난하여 짚신 장사을 해 가며 그 아들을 가르쳐서, 마침내 그 아들이  벼슬을 하여 고을 원으로 도임하는 것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백전동 신거리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나보고 어찌나 기뻤던지 정신없이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이 고개에 이르니, 닭이 울었다고 한다.
ㆍ 못골(池洞) : 생나실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앞에 못이 있었는데. 현재 못둑만 남아 있다.
ㆍ 물방앗간 동네 : 생나실 동쪽 건너에 있는 마을. 물방앗간이 있었다.
ㆍ 서원(書院) 마 : 솔뚜껑이산 북쪽에 있는 마을. 정산서원이 있었다.
ㆍ 정산서원터(鼎山書院터) : 서원마 뒤에 있는 서원. 1912년에 서원을 세워서 이황(李滉), 조목(趙穆)을 제향하였는데, 1677년에 정산의 이름을 따서 정산서원으로 사액되었다가, 1868년에 헐리었다.


◎ 西本里

본래 예천군 서읍면의 지역인데, 본동과 남읍면의 본동 일부를 병합하여, 서읍면과 본동의 이름을 따서 서본동이라 한다.
ㆍ 객사터 : 서본리 52번지에 있는 예천군의 객사 터. 현재 개인의 소유가 되었다.
ㆍ 굴모롱이굴(林椿遷) : 굴모롱이에 있는 굴. 임춘(林椿)이 이 굴을 뚫어서 한천의 물을 끌어다가 서정잿들에 대게 하였다.
ㆍ 임춘전(林椿遷) : 굴모롱이에 있는 벼랑. 전에 큰길이 현산 꼭대기로 나서 매우 곤란하였는데, 임춘이 이 벼랑을 깍아 내어 길을 내고, 또 굴을 뚫어서 물길을 만들어서 서정잿들의 蒙利를 도왔다.
ㆍ 박샘(酒泉) 우물 : 지고개 동쪽 기슭에 있는 우물.
   ① 바가지로 떠서 먹게 되었음
   ② 전에 술이 나왔다 하는데, 한 바기지만 떠 먹어야 되는데, 욕심많은 사람이 두 바가지를 떠 먹은  뒤로부터 술이 변하여 물이 되었다고 한다.
비선거리(길) : 쥐고개 남쪽에 있는 길. 군수(郡守) 유건환(兪建煥), 이인성(李寅聲),
   지응주(洪膺周)의 선정비가 있었다.
ㆍ 산수당(山守堂, 성황당) : 흑응산성(군 산천)꼭대기에 있는 서낭당.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남자의 화상을 걸오놓고 별신굿을 하여 제사를 지낸다.
ㆍ 지고개(酒고개, 酒峴, 쥐고개) : 서읍내 서쪽에 있는 고개.
   ① 모양이 쥐처럼 생겼다.
   ② 고개 밑에 주천이 있다.
ㆍ 홋골(속골, 호혹골, 虎鵠谷) : 섬내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흑응산성 밑이 되는데, 옛적에 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과녁(그 당시는 鵠자를 중앙에 붙였다)을 세워놓고 활 쏘기를 하였기에 호혹골이 되었다고 한다.


◎ 石井里

본래 예천군 서읍면의 지역으로서, 돌샘이 있으므로 돌샘, 또는 석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이후 석정동이라 한다.
ㆍ 근넝골 : 신리 건너쪽에 있는 마을.
ㆍ 까칫골 : 석정 뒤에 있는 골짜기.
ㆍ 깜부기재 : 신리 북쪽에 있는 고개. 신리에서 용문면으로 통한다.
ㆍ 돌샘(石井) : 석정리 117번지에 있는 우물. 절벽사이에서 물이 나오는데 , 몹시 차고 맛이 좋다.
ㆍ 물탕골 : 안석정 뒤에 있는 골짜기. 한길이 넘는 물탕이 있다.
ㆍ 봉웃골(烽火谷) : 물탕골 옆에 있는 골짜기. 봉우재 밑이다.
ㆍ 새터(新基, 新里) : 석정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
ㆍ 안석정(內石井) : 석정 안쪽에 있는 마을.
ㆍ 독실골 : 안석정 동쪽에 있는 골짜기.
ㆍ 흘진갯골 : 독실골 옆에 있는 골짜기. 대심리에 있는 흑진개쪽이다.


◎ 旺新里

왕상동, 신기동과 서읍면의 홍심동 일부를 병합하여, 왕신과 신기의 이름을 따서 왕신동 이라 한다.
ㆍ 무심방우(無心岩) : 새터 남쪽에 있는 바위 마을.
ㆍ 방아실(芳花實) : 새터 북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방아처럼 생겼다.
ㆍ 새터(新基, 新基洞, 新川, 新村) : 왕신동에서 가장 큰 마을. 전에는 바위만 많이 있었는데, 그것을 개척하여 새로 마을이 이룩되었다.
신천서원 : 왕신동 813번지에 있는 서원. 태종 때 좌명공신(佐命功臣) 김영렬(金英烈)의 초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본래 전라남도 장성군 학림서원에 배향하였는데, 1868년에 헐리었으므로, 1945년에 그 자손들이 이 곳으로 옮겨 왔다.
ㆍ 왕상골(旺相谷) : 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王”자 모양으로 되었다.


◎ 龍山里

본래 예천읍 북읍면의 지역으로서, 용처럼 생긴 산이 있으므로 용산이라 하였는데, 석문정, 효동을 병합하여 용산동이라 해서 예천읍에 편입됨
ㆍ 검북골 : 봉웃골 서쪽에 있는 마을. 봉우산백마산 밑이다.
ㆍ 고래장등 : 새박골 앞에 있는 등성이. 고래처럼 생겼는데, 옛 금가락지와 청자들이 발견 되었다.
ㆍ 돌문(石門, 석문바우) : 석문정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 두 바위가 문처럼 길 양쪽에 서 있다.
ㆍ 돌부처(石佛) : 부채집골에 있는 돌부처, 높이 1길이 되는 부처 셋이 있는데, 1967년에 법당을 지어  보호하였다.
ㆍ 새박골(曉洞) : 석문정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동ㆍ남ㆍ서쪽에 산이 높이 둘러있어서 낮에도 새벽같이 어둡다고 한다.


◎ 愚溪里

본래 예천군 동읍면의 지역으로서, 기와점이 있으므로 점마, 또는 욋골, 와계라 하다가 변하여 우계가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광천동, 응동 일부를 병합하여 우계동이라 해서 예천면에 편입되었다.
ㆍ 광대원(廣大院) : 우계동에서 으뜸되는 마을. 앞에 넓은 내가 있으며, 이조 때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광대원이 있었다.
ㆍ 냉정골(冷井一) : 아릇마 남쪽에 있는 마을. 냉정산(군 산천)밑이 되는데, 찬 샘이 있다.
ㆍ 맷골 : 광대원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池內里

본래 예천읍 서읍면의 지역으로서, 큰 못 안쪽이 되므로 못안, 또는 모단골로 변하여 모산,
모산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포면의 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지내동이라 해서 예천면에 편입되었다.
ㆍ 갯들 : 청등들 남쪽에 있는 들. 한(군 산천) 근방이다.
ㆍ 독실 : 독싯골 입구에 있는 마을.
ㆍ 독싯골 : 치실골 옆에 있는 골짜기.
ㆍ 딧골 : 치실골 뒤에 있는 골짜기.
ㆍ 모산골(池內池) : 모산골 앞에 있는 큰 못.
ㆍ 목건너 : 독실 옆에 있는 골짜기.
ㆍ 못안고개(모단고개) : 못안 남동쪽에 있는 고개.
ㆍ 청등들 : 청미 앞에 있는 들.
ㆍ 청미 : 모산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
ㆍ 치실골 : 모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淸福里

본래 예천군 남읍면의 지역인데, 도리촌, 용정, 원고개, 남읍내을 병합하여 청복동이라 한다.
ㆍ 남내(南月村, 南邑內) : 돌태 동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남읍면의 소재지로서 매우 번창
   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면소가 없어지는 동시에 마을이 줄어들었다.
ㆍ 다리끝(龍井) : 남내 남서쪽에 있는 마을.
   ① 돌다리 끝이 되었다고 한다.
   ② 큰 우물이 있는데, 용이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ㆍ 도로변(道路邊) 새마 동북쪽 큰길 가에 있는 마을. 도로변에 이정표(里程表)가 있다고하여 도리촌(道里村)이라고도 한다.
ㆍ 돌태(桃李村, 도리티) : 청복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도는 고개가 있으므로 도리티라 하였는데, 변하여 도리촌이다.
ㆍ 원고개 : 돌태 서남쪽에 있는 마을. 이조 때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원집이 있었다고 한다.


◎ 通明里

본래 예천군 동읍면의 지역으로서 통명이라 하였으며 원동 일부와 승도면의 본동, 고평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통명동이 되었다.
ㆍ 각골(尹村, 윤천못) : 동짝마 북쪽에 있는 마을. 윤씨가 많이 살았다.
ㆍ 골마(通明, 谷村) : 통명리 원마을.
ㆍ 놋티기(雷澤, 네티기) : 동북쪽에 있는 마을.
ㆍ 동짝마(東村) : 골마 동쪽에 있는 마을.
ㆍ 땅골(堂谷) : 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신당이 있었다.
ㆍ 마당(馬堂) : 동짝마 남쪽에 있는 당. 마신을 제사지냄, 1823년에 중수하였다가 1934년 장마에 떠내려 갔으므로 새로 짓고, 매년 정월 15일 밤에 동민들이 제사를 지낸다.
ㆍ 막죽고개 : 골마 서쪽에 있는 고개. 예천읍으로 넘어가는데 마지막이 되므로. 혼인 가마는 꺼러서 일체 다니지 않는다.
ㆍ 사내실(사느실) : 통명 북쪽에 있는 들.
ㆍ 새골(新谷) : 골마 북쪽에 새로 된 마을.
ㆍ 쇠제이(松亭) : 새골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소나무 정자가 있다.
ㆍ 웃마(上村. 上通明, 웃통명) : 통명 위쪽에 있는 마을.
ㆍ 천제등(天祭燈) : 동짝마 북쪽에 있는 등성이. 늙은 소나무 7그루가 있는데. 매년 정월 15일 밤에 동민들이 이 곳에서 천제를 지낸다.
ㆍ 통명역(通明驛) : 골마에 있는 통명역의 터. 이조 때 창락도에 딸린 통명역이 있어서 유동과 안동부 안교에 통하였다.
ㆍ 항구골(黃拘谷) : 골마 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황구형(黃拘形)”으로 되었는데, 맞은편에 범밭등이 있어서 황구가 똥을 싸고 있으므로, 이 마을이 부유하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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