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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목사 이야기

김목 |2008.03.23 06:20
조회 374 |추천 0

 교회가 감당해야할 중요한 사명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부류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주일날만 교회에 나가서 교마음에 위안을 얻고 안심하는 부류입니다. 또한 평소에도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는 부류입니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위신이나 위안 등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다니기도 합니다. 동기야 어떻튼 그런 많은 사람들을 나오게 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류를 많이 만들어서 관리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바른 윤리 의식을 부여하고 가르치기에 역부족인 대형교회와 중형교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물론 그들도 언젠가는 은혜를 입어 성경의 교리와 윤리의식을 가진 자로 세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상태로 머물다가 오히려 교회에 해악을 입히고, 교회의 올바른 길로 행하는 길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인터넷에서 수많은 반기독교적인 생각을 가진 네티즌들은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윤리관을 헐뜯기도 하고, 목회자들의 잘못을 들추기도 합니다. 주일 성도들은 오히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동조하고 동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교회를 다니는데 이것은 어떠 저쩌하다. 그러니까 결국 교회를 다녀보니 이런 문제점들이 발견되더라는 체험적인 간증을 하게 됨으로 불난 곳에 부채질 하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네티즌들에 의해 공격되는 동네 북이나 다름없습니다. 최근에 뽑힌 기독교인 장로 출신 대톨령이 뽑힌 이후에 더 없이 기독교의 일거일투족은 반기독교 세력에 의해 감시받고 조금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일시에 폭발하고 말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독교인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가 될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어떠하다는 정도의 기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이 사회에 어떠한 공헌을 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가난하고 청렴하게 살기를 원하는 이유는 이러한 까닭입니다. 자신들은 잘 살아도 되지만 목회자들, 특히 성직자들은 고귀하고 정결한 삶을 살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은 살지 못하는 것을 성직자들에 의해 대리만족하기를 원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의 이유로는 기독교인들의 삶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은 저마다 다른 비젼선언문을 발표하고 그 비젼을 이루어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의 비젼선언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회에 대해서도 결코 관심을 잊지는 않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들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즉 천국을 세워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단마다 다르지만 지향점은 사회에 대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강약이 다를 뿐 결국은 한 가지 목표점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교회에서 매주일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설교 시간을 통한 변화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설교의 대부분은 땅위에서 잘되고 부하게 되어야하며, 긍정적인 삶으로 성공하는 인생이 되어야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믿고 교회에 충성할 때 반드시 이루어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당연히 살아야할 삶의 지표와 삶의 가장 중요한 윤리 의식을 가르치지 않는 설교를 수천번 수만번 들어도 그들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교회의 목사가 최근에 그 교회에서 쫓겨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은 참으로 존경받는 분이셨ㄱ도,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참으로 많은 부흥을 일으켰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성경을 가르치는데 집중되었고, 성도들의 삶을 온전히 만들어가는 주력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그 설교를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소문이 너무도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작은 교회였고, 교세도 약했던 그 교회는 금새 100명으로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건축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아 정말로 보기 드물게 큰 교회로 건축하고 모든 성도들은 기뻐서 행복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행했습니다. 저는 다른 문제들도 많지만 근본적인 이를 찾고자 애를 썼습니다. 가장 중요한 실패의 원인은 그분의 설교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설교는 소위 말하는 복 설교였습니다. 돈을 많이 벌것이라는 예언자적인 선지자로서 선포하였습니다. 큰소리로 복받으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종교와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잘 믿고 교회에 헌금 많이 하고, 긍정적으로 살고, 자신감있게 살며 하나님이 힘을 주실 것을 믿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일반 기복신앙과 다를바 없습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달에게 기독했습니다. 마을에 가장 큰 나무에게 기도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천지신명이시여 복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복이 있습니다. 물질적 복도 말씀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복을 받고자 잘되고자 교회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일반 종교의 모든 성격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어떻게 되든지, 주변의 사람들에게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거짓말해도 돈만 많이 벌면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던 큰 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성경해석에서 비롯된것이 아닌가 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교회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잘되 기 위해서 교회에 헌금하는 것 아닙니다. 자식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목사에게 기도받는 것 더더욱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그 목사는 착각하였습니다. 일종의 목사로서 더 큰 교회가 되어지고, 더 존경받고 더 잘나가는 목사가 되고자 교인들이 무슨 소리를 더 좋아하는 지를 고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더 좋아하는 소리, 교인들을 즐겁게 하는 설교, 교인들의 입맛을 돋우는 설교, 교인들을 즐겁게 하는 소리를 하면 더 많은 교인들이 몰려 올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목사의 부와 영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많은 신학생들과 교회 목회자들의 염원은 교회 부흥입니다. 교회부흥이 모든 것을 다 버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못된 부정된 돈도 얼른 받아 챙깁니다. 교인수가 많아지면 더 훌륭한 집에 살게되니 교회 부흥을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을 연구합니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 삶을 훈계하고 잘못된것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기업의 윤리의식을 심어주어야합니다. 이 땅에서 함께 잘 살고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합니다.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삶의 정결함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습니다. 군수가 기독교인있는 마을은 가려고도 하지않았습니다. 부정과 부패를 저지를 수도 없고, 감당할 일이 어려워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그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 속이 들켜버렸습니다. 성공 지향적인 목회, 결국은 부정에 쓰인 돈을 받고, 부정과 부패를 묵인하고 오로지 많은 성도만을 위하여 부추기다가 발각되어 윤리상의 이유로 물러나야했습니다.

 

교회는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도울지를 가르쳐야합니다. 좀더 본이 되고, 좀더 귀감이 될만한 자로 만들어야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명일 것입니다.

쫓겨난 목사 이야기를 하는 저로서도 참으로 속상합니다. 목사인 저도 이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합입니다. 양심적인 목회, 양심적인 기독교, 양심적인 기독교신자,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한 두명이라도 생겨날때 한국은 변화될 것입니다. 그때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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