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 맏며느리 카페에서 어떤 분이 쓰신 글이에요.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라..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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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지나 찾아간 친지댁에서
그댁 며느님과 주방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며느리들만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 다 딸 둘, 아들 둘 있는집의 맏며느리지만
그이보다 나이어린 나는 동서가 있어도
그이는 장가 안가는 마흔두살 시동생 덕택에(?)
동서가 없어서 항상 혼자 일하다시피 한다.
시골 일가친척이 많아 집안이 며칠을 북적거린다.
'일가친척 많아 힘드시지요?'하고 물으니
이 나이에, 이만한 살림경력에도 힘들다고 하면
안되지 않느냐며 감당할만 하다고 했다.
(그이는 이제 마흔넷이다.)
명절이 이틀이나 지난 후라서 친정에 안 가시느냐 물으니
돈만 더 들게 뭐하러 가냐고 시큰둥하게 말했다.ㅜ.ㅡ;;
시누이만 둘이다 보니 어디에 마음열고 얘기할 곳 없던
그이는 이런저런 시집살이 얘기를 했다.
남편이 군인인 그이는 결혼생활을 참 빠듯하게 했다고 한다.
시댁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는데
무슨무슨 날이라고 해서 시댁에 오면 샌님 같으셨던 시아버지는
늘 돈을 요구하셨다고 한다.
그때는 여유없는 아들에게 그렇게 돈을 요구하시는
시어른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는데
이제 나이먹고, 그 어른 돌아가시고 나니
홀로계신 어머니께 남기신 그 돈이 꽤 많더란다.
수첩에서도 나오고, 책장에서도 나오고,
꼬깃꼬깃 접힌 돈과 통장의 돈을 모으고 보니
경제적인 주권이 없던 어머니가 몇년쯤은
든든하게 갖고계실 만큼이 나오더란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적은 용돈을 모아서
며느리인 자기 손으론 덥썩 드릴 수 없는 큰 돈을
어머니께 남기신 아버님께 감사의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이의 시어머니께서는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시다.
그이가 첫 아이를 낳았을때
산후조리를 위해 상경하신 어머니의 손엔
참기름이 한병 들려져 있더란다.
그이가 산전에 사다놓은 쇠고기 한근을 잘게 떼어
미역국을 끓여 주시던 어머니는 고기가 다 떨어지자
참기름을 대신 넣어 끓여주시면서 '고기보다 맛있쟈?' 하셨는데,
고기가 먹고싶던 며느리는 그게 그렇게 서운하더란다.
산후조리 끝나면 어머니 드리려고 넣어 두었던 돈밖에 없어
차마 꺼내어 쓰지 못하고 고기 한근으로 산후조리를 마쳤다 한다.
삼칠일(21일)이 지나자 어머니는 하루도 더 안 봐주시고
며느리가 드리는 돈봉투를 쓰다달다 말씀 한마디 없이
받아들고는 그대로 내려 가시더란다.
아이 가졌을때 서운했던 그런 일들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때 경제적인 주권이 없던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고기 한 근 사주실 마음의 여유도,돈도 없었고
어머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모습을 생각하니
당시 혈압이 높았던 어머니가 산후조리중인 며느리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힘들다는 말씀 한마디도 못하고 서둘러 내려가신것 같더라는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어제,오늘 TV 연작 에세이 '어머니'에서
작가 박범신님의 한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 그때 어머니가 화를 내신 이유가 내 나이를 먹을때마다 달라집니다"
당시에는 그저 서운하기만 했는데
좀 더 지나서 생각하니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또 좀 더 지나서 생각하니 그보다 더 다른 각도로
이해가 되고 점점 더 그 마음을 알 수가 있더라고 한다.
나 역시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한다고 말하더라도
그 연륜을 통해서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거라고...
해서, 어느날 내가 연세드신 어느 어머님께
'그 심정을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린 일이
후회가 된다. 내가 감히 어찌 그어른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그 나이가 되어 자식을 키우면서야 비로소 알아볼 수 있는것을
벌써 알 수 있을것 같다고 감히 말씀 드리다니?
그러니 어느 노랫말처럼,
'이다음에 내가 부모되어 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