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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와 된장찌개

nulpurn |2003.09.29 11:17
조회 442 |추천 0

 

"아저씨! 우리 오늘 점심때 피자 먹으러 가요!"
나보다 기껏 9살 아래인 비서실 미스 김은 늘 젊디젊은 애인(?) 같은 나를 이렇게 부르곤 해 웃음짓게 만드는, 가끔은 인스턴트를 먹으러 같이 가는 점심 파트너 중 한 명이다.
"갑자기 엊저녁부터 땡기지 뭐예요~, 오늘은 내가 쏠게요"하며 어쩌구 저쩌구...
"어때요 괜찮은 점심 선택이죠"하며 쭉 늘어진 치즈를 입에 옮기며 내게 묻는다.
"피자가 그렇게 좋아?"
나 한 조각 먹었을 때 벌써 2조각을 작살(?) 내고 또 하나를 막 집어 든 그녀를 보며 물었다.
나도 꽤 잘 먹는 편(내가 아는, 나와 같은 또래 중에서...) 이지만 내 앞에 앉아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이 앳된 아가씨에겐 못 당하겠다.
"그럼요! 당근이죠!"

 

우리세대들에겐 별 부담없이(친근하게) 다가서는 음식, 식사대용으로 또는 간식으로 먹는 피자와 햄버거, 그리고 치킨 등 패스트푸드들.
그 옛날(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 감히 엄두도 못 냈던(내게) 이 음식들이 언제부터인가 꽤 친한 척하며 다가왔다.
나 역시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은 즐겨 먹는다. 요즘은 운동하느라 저녁을 늦게 먹는 경우가 허다한데 저녁 먹기가 귀찮으면 운동 끝내고(대략 저녁 9시 사이) 2~3분 걸어 가까운 곳에 들어가 세트 하나를 해치우고 가기도 한다.
요즘 세대들에겐 없어서는 안 되는 먹거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우리 회사에서 자체 리서치조사 기관에 의뢰해 나온 자료에 따르면...)
역으로 된장찌개와 같은 찌개류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신세대가 상당수 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거기엔 손이 안 가더라고요"
"된장찌개 같은 찌개류는 어때?" 하며 묻자 역시 예상했던 대로 대답한다.

 

하긴 나도 십여 년 전만 해도 된장찌개(김치찌개와 청국장 역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된장찌개와 청국장(특히)은 왜 그리 냄새가 싫었던지.
"아휴~ 엄마! 그것 좀 안 먹을 수 없어요"하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어떤 날은 손도 안 댔으니까.
"욘석아! 너도 한 10년만 지나봐라 안 먹고 배기나"웃으시며 한 어머니의 말씀.
후~훗! 그 말씀 그대로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어줘야 배 속이 편안하다.
김치찌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싫어진 경우다.
유년시절 그리 풍족하지 못한 생활(뭐~ 대부분이 힘들었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로 인해 겨울부터 한여름까지 김장김치를 가지고 지지고 볶고 끓이고 등등 매일 밥상에 김치와 관련된 음식뿐이었다. 해서 매일 올라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김치찌개.
그래서 한동안 먹질 않았다.(아마도 군 제대 후부터 다시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입맛이 변해 선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런지 모르지만, 식사 때면(특히 점심 때) 간격을 두고 먹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또다시 몇 년이 흐른 뒤 내 나이 40을 넘기면 나도 이런 패스트푸드 음식들을 멀리할까? 지금이야 그리 부담없이 먹어줄 수 있지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번은 피자를 먹으러 때지어 몰려가려 할 때 나와 친한 모차장님,
"치사하게 나를 빼고 간단 말이야"하며 따라 나선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해 그날, 아니 다음날 오전까지도 속이 거북해 고생을 했다 한다.
"이걸 먹을 수 있겠어요?"
"이거 왜 이래! 나도 감각은 신세대야! 무시하지 마"하며 잽싸게 집어 든 피자 한 조각 그리고 콜라.
두 조각까지는 그런 대로 먹는 것 같더니...
참고로 모차장님은 올해 마흔 넷이며 슬하에 딸만 둘인 소위 딸딸이 아빠 시다. 얘들과 외식 때면 아이들이 KFC로 가면 애들만 들여보내고 혼자서 옆 카페나 다른 음식점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한다.
하나 더 그 모차장님 얘기를 하자면, 한 번은 KFC에 같이 간 적 있는데 그 때 이렇게 말해 우리를 곤란하게 한 적이 있다.(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뭐야~ 소금이 없잖아! 아가씨 여기 소금 좀 줘요"
"뭐요~ 아니 닭 먹는데 소금이 없으면 뭘 찍어 먹으라는거야"하며 기어이 후렌치후라이 만들 때 사용하는 소금을 한 움큼 받아 온 적이 있다.
그렇다고 그걸 사용한 것도 아니다.
"어라~ 짜내! 얘기를 하지 소금 필요없다고..."

 

피자와 된장찌개라...?
하나는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고유의(난 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음식이다.
같은 점이라면 숙성된 재료를 사용한다고 할까? 피자는 치즈를, 된장찌개는 된장을 말이다.
또 하나는 두 음식 모두 그 나라의 오래된 전통음식 이란 점(하지만 우리의 된장찌개는 세계적으로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속상하다.)
차이점이라면 뭘까?
우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못하다는 것 정도...
피자야 그 자체로 먹을 수 있고 반찬이 필요없으며 또한 수저 같은 도구가 없이도 먹을 수 있지만, 된장찌개야 어디 그런가. 기본적으로 밥이 있어야 되며,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있어야 하고,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해야 하며, 후~후 하고 불며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뜨거워 자칫 잘못하면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피자는 굽는 것이며 된장찌개는 끓인다는 것, 피자는 기술을 요하지만 된장찌개야 손 맛(이것 역시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이며 또한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다.)과 정성이 들어가야 제 맛이 인다.(단순히 기술만으론 맛이 안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 속에는 늘어나는, 피자집을 포함한 패스트푸드점들.
비례적으로 사라져 가는, 고향(시골) 어디에서든 꼭 있는-넉넉한 된장찌개를 정말로 맛있게 끓이는-그러한 식당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가정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요즘 결혼하는 신혼 부부들 역시 만들어 먹기를 꺼려한다고(아마 끓일 줄 모르거나 먹을만한 정도의 맛을 못 내기에...) 한다.
푸근하고 정이 듬뿍 담긴, 그래서 먹고 나면 정말로 속이 후련할 정도의 우리 고유의 숙성 음식들이 점점 더 푸대접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이러다 우리 뒤의 세대들, 자손들은 정말로 된장찌개를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뭐 이런걸 다 먹었지?’하며 미개인 취급을 받으면서 말이다.
또 한편으론 된장찌개를 끓이는 사람을 인간 문화재로 당당히(?) 대접해 주고 말이다.

 

오늘 점심엔 된장찌개를 먹으러 가야겠다. 정말로 제대로 맛을 내는 식당을 뒤져서...
구수한 냄새와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에,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로 인해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어야 겠다.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지 생각만으로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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