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m를 지나고서부터 다리가 경직되기 시작하더니 뛰는것 자체가 고통 그것이었다.
'포기하고 싶다!'
연도에 선 사람들의 열렬한 격려의 응원도 가을하늘 아래의 끝없이 펼쳐진 코스모스의
방싯거리는 웃음도 힘을 복돋워 주지는 못할 것 같았다.
'보이지도 않는 반환점을 언제 다 갈까?'
풀코스도 아닌 하프코스의 반환점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진도 화이팅!"
풀린 다리를 질질 끌고 걷는 내게 광주에서 오신 마라토너 한 분이 손을 들고 소리치며
휘익 지나 간다.
3개월 전 같은 조기축구 회원이 자신은 마라톤을 하겠노라고 공언하고서 축구를 떠났다.
사람들은 무관심했지만 난 마라톤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언젠가 꼭 마라톤을 제대로 해보고야 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다닐 때 뛰어 본 4km단축이나 교회 마라톤과 군민달리기에서 5km 미
만 코스만 뛰어 봤기에 풀코스에 대한 꿈을 항시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삶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 까닭에 현실에서 그 꿈을 실행해 가는 일은 쉽지 않아 보
였다.
그러던 차에 이 곳 진도에도 마라톤클럽이 생겼다는 소식은 대단한 뉴스로 내겐 들려 왔다.
일단 인터넷클럽에 등록한 후 무려 한 달을 끌다가 첫 모임에 나갔다.
신발도 옷도 없이 그냥 늘상 하는 운동복 차림으로 모임장소에 나갔더니 클럽 총무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형님. 그렇게 해가지고 달릴 수 있겠어요?
신발이라도 하나 구입 하셔야 되겠네요."
"아무렴 어때요.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지.
근데 신발이 얼마 쯤 한답디까?"
"요즘 세일해서 13만원 정도면 되요."
난 내심 놀랐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롤러코스터 하나 못 사주고 있는 형편에 거금의 마라톤화라!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고 함께 코스를 따라 첫 달리기를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7km 구간을 뛰었다.
몸이 묵직하게 느껴지고 여름밤의 끈적함은 당장 물 속을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덜컥 김제지평선마라톤대회에 하프코스를 신청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 핑계 저 핑계로 연습을 게을리했고 대회일은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두 달여 동안 기껏 세 번 정도를 단축 코스를 뒤어 보았다.
대회 전 마지막 클럽 모임에서 회원들은 자신만만하게 출사표를 내 보였다.
"석진씨는 이봉주를 닮아 잘 뛸 것 같아요."
회장님이 한 마디 하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난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어 조용
히 듣고 웃음만 지었다.
대회전 날 토요일.
아침 일찍 함께 대회장에 가기를 열망하던 둘 째 아이가 머리를 창틀 모서리에 찧어 다섯
바늘을 꿰는 불상사가 일어 났다.
뜨끈한 피를 손으로 감싸고 쑥으로 임시봉함을 한 후 병원으로 달려가 수술을 받았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로 했던 계획이 틀어짐과 동시에 이런 아들을 두고 대회에 가야만 하는
가 하는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밤을 맞이 했다.
"은아야, 은성아."
"네. 아빠."
밤에 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 이제 마라톤 대회인데 너희들을 데려 갈 수가 없게 되었구나.
어떡하면 좋지?
아빠도 그냥 가지말고 은성이 병원에 갈까?"
"아니, 아빠!
난 괜챦으니까 아빠가 내 몫까지 뛰어야 돼!"
머리에 붕대를 감싸 백군이 된 아들이 용감하게 말을 했다.
"그래. 아빠.
내가 은성이 병원에 데리고 갈 테니까 아빠 걱정말고 다녀 와."
딸이 거들면서 고민은 해결되나 싶었다.
새벽 다섯시에 출발 하기로 클럽 회원들간에 사전 약속이 되어 있어서 눈을 붙이고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꼭 아들녀석을 두고 가야 하는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뒤척이다 보니 오전 세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게 네 시가 되었고, 다시 눈을 감고 있는다는게 눈을 떠 보니 다섯시 하
고도 십 오분이 되어 있었다.
급히 차를 몰고 나섰으나 계속 망설임이 가중 되었다.
회원들은 출발했고 스스로 운전하여 대회에 가야 하는데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망설임으로 어느덧 진도대교를 넘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목포까지 가는 길도 힘겹게 느껴졌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올라섰으나 망설임은 끝이 나지 않았다.
함평휴게소.
이젠 가야한다는 결정이 완전히 내려지자 아이들에게 전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일곱시가 넘어 있었지만 대회시간까지 여유는 있어 보였다.
"여보세요.
은아냐?
뭐하고 있어?"
"응, 아빠 어디야?
지금 테레비 보고 있어."
"그래. 은성이는?"
"옆에 있어.
바꿔 줄까?"
"아니 그냥 두고 병원에 잘 다녀 와."
"그래. 아빠.
아빠도 꼭 일등해!"
딸아이의 당돌한 주문에 쓴웃음이 나왔지만,
"그래. 알았어. 열심히 할께."라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동안 펼쳐 보지 못했던 대회 안내책자를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다.
대회참석자는 오전 여덟시까지 입장해야 된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차에 올라타 차가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껏 달려도 중고자동차의 한계에 짙은안개와 위험성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다시 갈등이 생겼다.
이렇게 달려서 대회 출전도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최선을 다해 달리기로했다.
그러나 서김제 톨게이트에 닿았을 때 이미 시간은 오버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대회장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의 움직임이 태평하게 보였다.
분명 대회 참가자들이 분명한데도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엔 급한 느낌이 전혀 없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본부석 앞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흩어져 있어서 가슴을 쓰어 내리게 만들었
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아침을 먹을 수 없어 미량의 씨리얼과 물을 마셨다.
그런데 잠시 후 어떤 사람이 영양제라면서 알약 세 알을 건네 주길래 도움이 될까 싶어 입
에 털어 넣었다.
그러나 알약은 목에 걸린듯 답답하고 쓰라렸으며 결국 제채기가 나오게 하더니 알약 가루
가 연기처럼 목구멍에서 토해져 나왔다.
풀코스 선수들이 출발하고 십 분후 하프코스의 출발선상에 섰다.
총 참석인원이 7,500명이라는데 실상은 일 만명도 넘어 보였다.
긴장과 추위에 오줌이 찔끔 거리고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열, 아홉,...셋, 둘, 출~발!"
스타팅 구호와 함께 "와~!"하는 물결이 구름떼처럼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잠깐이나마 배웠던 숨쉬기와 주법을 동원해 천천히 출발한 다음 시내를 통과하면서
조금씩 페이스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에 묻혀 어디가 선두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선두권까지 치고 달려 가고 싶었다.
매 2km마다 물이 있고 어디는 사탕고 있고 바나나도 있고 해서 꼭 좋은 성적을 내고야 말리라
고 스스로 다짐하며 뛰기 시작했다.
3km 지나는데 어느 부부 한 쌍이 지친 걸음으로 쳐지고 있었다.
"여보. 그래도 걷지는 말아요."
오히려 더 지쳐 보이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격려하며 뛰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4km를 지나면서 갑자기 농촌풍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난 기분이 좋아져서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코스모스의 시선을 채 느끼기도 전에 갑자기 발가락 양 쪽 끝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묵직한 일반 운동화가 좁고 작게 느껴지면서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뒤이어 장딴지들도 굳어
오기 시작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선두그룹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5km를 지나면서 난 더이상 뛸 힘이 나지 않았다.
걷고 싶었다.
아니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노인도 여자들도 학생들도 포기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딸아이와 아들녀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귀를 울리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은 완주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속도를 줄이며 급기야는 걷
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 많은 건각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뛰고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뛰는 무리들을 보면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희망!
이렇게 많은 건강한 사람들이 있는데 어찌 매스컴은 짜꾸 어두움을 부각시키면서 사람들의
희망을 꺽어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절룩거리면서 걷는 모습을 보며 이사람 저사람 지나 가면서 파이팅을 외쳐 준다.
한 없이 고마웠다.
내가 무엇이관대 그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지 너무나도 고마워서 그냥 걷기만 할 수는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연도에서 응원하고 어떤 할머니께서는 아예 수돗물을 끌어다 놓고 호스로 물세례
를 퍼부으시며 "힘 내!"라고 격려 하시는 것이었다.
가을날씨 답지 않은 강렬한 태양과 높은온도는 뛰는것 자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나 따뜻한 관
심과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으며 의지가 있어서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했던 누군가의 말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래. 인생도 수없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지.
그러나 일찍 목표에 간 사람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끝까지 목표를 완성한 사람들의 삶이 중요한
거야.
이게 바로 마라톤이구나!'
삶에 대해 더 겸손해져야 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등이 아닌 꼴찌가 되더라도 완주하는 그 발길의 아름다움이 그림처럼 떠 오르기 시작했다.
휙휙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젠 관찰자로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인상깊게 다가 온 마라토너들은 부안에서 온 핵폐기물유치반대운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뛰고 있었는데 얼굴마다 결의에 찬 표정이었으나 결코 비굴하지도
의기가 꺽인 표정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동료와 가볍게 담소하면서 뛰어 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8km를 걷다뛰다 하니까 어느새 출발 한 시간이 넘어 있었다.
벌써 많은 무리들이 반대쪽 길에서 뛰어 달아나고 있어 완주의 길은 더욱더 멀게만 느껴졌다.
어느쯤 일까?
우리 마라톤클럽의 총무가 반화점을 돌아 뛰어 오면서 힘차게 "화이팅!"을 외쳐 주었다.
그 뒤를 이어 회원들이 하나 둘씩 지나가고 결국 내가 제일 마지막 주자라는것을 알았다.
반환점.
드디어 반환점을 돌았다.
바나나 한 조각을 물고 물을 양껏 마시고 빨간 딱지를 받아 팔에 끼우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젠 걸어가도 된다.'
정말로 걸어서만이라도 가고 싶었다.
아니 기어서라도 가고 싶었다.
여자마라토너들이 자세하나 흐트러짐없이 뛰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양다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시 뛰오 보았다.
다리가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그래도 다시 뛰기 시작하니 통증이 남아 있지만 뛸만했다.
약 500m를 뛰고 다시 걸었다.
웃통을 확 벗어제낀 할아버지 한 분이 중앙선을 따라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뛰어 가신다.
어느 틈엔가 걷는 사람들의 무리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고 앰뷸런스가 소리를 내는 횟수가 잦아진다.
"아! 더 이상 못 뛰겠어."
40대 후반의 한 분이 옆에서 걸으시면서 한 숨을 푹 내쉰다.
"어디서 오셨어요?"
"예. 목포에서 왔는데 오늘처럼 힘든것은 첨 이예요."
"아! 여러번 참가하셨나 보군요?"
"예. 보통 2시간 안에 하프코스를 완주했는데 오늘은 못 하겠어요.
근데 어디서 오셨어요?"
"네. 진도에서 왔습니다.
오늘 새벽에 올라왔지요."
"이그! 멀리서도 오셨군요.
우리 힘을 내서 다시 뛰어 봅시다."
"아니요. 전 지금은 도무지 뛸 수가 없어요."
"그래요. 그럼 먼저 갑니다."
그 분은 다시 밝게 웃으시면서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힘 내서 뛰어요."
안타까운 눈으로 도로통제를 하던 경찰관이 응원을 한다.
눈으로 인사만 하고 뛰지는 못하고 코스모스를 한 잎 따서 냄새를 들이 마쉰다.
짙은 향이 콧구멍으로 몰려 오지만 피로를 풀어 주지는 못한다.
새만금방조제조기완공이라는 플래카드를 머리에 두른 수자원공사직원들이 두어사람
대화를 나누며 뛰는 모습이 부안핵폐기물반대회원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남은지점 8km.
사탕과 포카리스웨트가 가득 쌓여 있다.
그늘이 있다.
사탕하나 입에 물고 도로옆 그늘에 털썩 주저 않았다.
운동화 끈을 풀어보니 발가락끝에 물집이 잡혀 있다.
머리는 또 고통스럽게 두통을 수반하고 온 몸은 불덩이와 같다.
옆에 구경하던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어 온다.
"어디서 오셨어요?"
"네. 진도에서 왔습니다."
"멀리서 오셨군요.
뛸 만 하세요?"
"아니요. 딱 죽을 맛입니다.
처음 하프에 도전했는데 전 준비에서부터 모든걸 실수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여러분들을 보고 있으니까 나도 한 번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열심히 준비하셔서 뛰어 보시면 참 좋을 겁니다.
저도 다음에 좀 더 준비해서 도전할 생각입니다."
"아! 꼭 그러셔야죠.
전 요즘 배드민턴과 등산을 하고 있는데 이제 슬슬 달리기를 해 봐야 겠군요."
"네. 꼭 그렇게 하셔서 건강을 지켜 나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도로 곳곳에 유리파편들이 영롱하게 무지개빛을 내고 있어서 신발을 벗을 엄두
를 내지 못하고 다시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기를 쓰고 달리고 있는데 아줌마 한 분이 걷고 계셨다.
"아줌마. 힘 내세요!"
"네. 고마워요."
하시면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난 또 다시 걷기 시작한다.
5km지점.
갑자기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리면 읍내서 우리집 거리쟎아.'
전봇대를 세면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4km.
이젠 기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뛰어 본다.
통증이 오는 발가락을 오므리고 굳어진 근육은 보동에 잠시 앉아 맛사지해가며 시내에
진입해 기를 다해 뛰었다.
"우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힘을 더 하고 조금만 더 가자 하는 자기격려의 메세지가
가슴으로 울려 퍼진다.
2km.
굴다리를 지나 오르막길은 다리의 무게를 최대 중량으로 올려 놓았다.
벌써 레이스를 완주한 사람들이 중도에 나와 ,
"이제 다 왔어.
힘 내!"하고 외쳐댄다.
체육관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운동장 트랙을 보고 싶어 다시 힘을 내어 본다.
'차마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건 아니겠지.'
그러나 운동장을 들어선 순간 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느린 달리기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전자칩의 감지음이 들려 왔다.
"짝 짝 짝짝!....."
"화이팅! 화이팅!"
낯 모르는 사람들의 외침이 귓전을 스친다.
난 전자칩을 교환하고 간식을 제공받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옯겼다.
두 시간 삼십분대의 기록으로 들어온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든것을 떠나서 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은아야,
은성아!
아빠는 끝까지 해 냈어!"
완주메달을 들고 난 이제 피어나는 꽃들에게 활짝 웃어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