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x년 x월 겨울
23살 내맘을 사로잡은 남자가 나타났다.
오랜 시간 혼자였던 나에게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말한마디도 못하고,
스쳐지나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였지만
인사도 나눌 수 없었다. 바보...
어느날 부터인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인사,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리고 3개월...
그러다 갑자기 그가 군대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럴 수가!
난 갑자기 돌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고
그때만큼 내 우유부단한 성격이 너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이때 반성을 했으면 다음부터는 고쳤어야 했는지만
바보는 그래서 바보인가 보다.
'지금 고백을 하면 그가 받아줄까? 혹시 군대가기 전이라 부담스럽고
그래서 거절하지는 않을까?'
'아냐 내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성격이 그래서 거절할거야.'
'아냐 자기 취향이 아니라서, 아냐 아냐 느낌이 아니라서 싫다고 그럴거야...'
내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갈등하는 사이에 환송회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결국 난 아무 말도 못했다.
바보...
기다려 달라는 약속이라도 했으면 행복했을 텐데
바보에게는 그나마의 행복도 주어지지 않는가 보다.
날짜를 하나 둘 세어가며 100일 휴가를 기다렸다.
바보는 날짜가 하나 둘 지나갈때 마다 행복했다.
100을 다 채운 어느날
그가 왔다.
잠시 휴가를 나온 것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기뻤다.
짧은 머리 봄 햇살에 그을린 얼굴...
군생활이 어떠냐 물어보기는 커녕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바보...
바보는 없는 용기를 내어 부대 주소를 물어보았다.
지금까지 바보가 한 일중에 유일하게 용기를 내어서 한 일이었다.
그는 x월에 일병이 되고 그 후 정기 휴가를 나온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비록 바보지만 그 말에는 나에 대한 감정이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바보는 이젠 기다림에 면역이 되었나 보다.
오늘도 그를 기다리며 답장도 없는 편지를 썼다 찢는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람...' 하지만
난 '바보같은'이 아니라 바보니까...
좋아한다고 기다려왔고 앞으로도 기다릴 거라고 말할테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