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는 1800년 무렵 마누엘 데 고도이(1767-1851)를 위해 일했다. 고도이는 스페인 왕비인 마리아 루이제의 애인으로서 고위 귀족인으로 스페인 정책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한 기록에 따르면 고도이는 여인의 나체화만을 보관하기 위해 '에로틱 케비넷' 이라는 방을 마련해 그림들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알바 공작 부인이 고도이에게 선물했던 그림이다. 의 시선 속에는 선정적인 카리스마와 계산된 유혹이 숨어 있다. 그녀가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베개와 쿠션들은 차가운 색조를 띠어, 따뜻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육체의 살색을 강조하고 있다. 의 짝그림으로써 고야는 1805년경 를 그렸다. 붓질은 더 자유롭고 더 인상주의적으로 변했다. 그림의 크기, 모델, 자세는 똑같았지만, 가 관찰자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인물을 그림의 크기보다 부풀리는 바람에 인물이 마치 그 틀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도이는 와 를 나란히 진열하여, 자신의 시대와 계층의 외설스런 위선을 조롱했다. 이 그림은 1797년경 마누엘 데 고도이의 주문으로 그려졌으리라 추정된다. 이 그림은 1800년경 마드리드에 있었던 그의 미술품 전시장에서 명명 되었고 함께 전시할 목적으로 1805년 가 제작된다. 1845년에 루이 비아도르는 '마하'가 알바 공작 부인의 초상화일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1945년 공작 부인의 한 후손이 조상의 명예 회복을 위해 그 유골을 발굴하여 측량까지 하는 일이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확인도, 반박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고야는 현대 미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발견되어 칭송받았던 그는 20세기로 가는 전환기 회화에 있어, 어느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지닌 화가였다. 상징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화가들은 모두 자신들이 고야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내세우곤 했다. ===================================================================================== 램브란트의 이 그림을 으로 명명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이 그림에는 실제로 밤이 배경이 된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프란스 바닝 코크 대위와 빌렘 반 뤼텐부르흐 소위가 이끄는 중대'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1638년 프랑스 여왕 마리아 드 메디치가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당시의 성대한 행렬에 고무되었던 이 중대가 주문해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말을 탄 코크 중대는 다른 중대들과 마찬가지로, 여왕을 환영하기 위해 도열해 있던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다. 코크 중대가 램브란트에게 이 그림을 의뢰한 것은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640년경이었다. 그들은 이 그림을 위해 비싼 값을 치렀다. 사수협회 회관 연회장에 걸리게 될 이그 림을 위해 열여섯 병의 대원들은 1인당 약 100굴덴을 지불했는데, 당시의 통례대로 그림에서 각자 위치한 자리에 따라 어떤 사람은 더 많이 어떤 사람은 더 적게 지불했다. 우선적으로 프란스 바닝 코크와 빌렘 반 뤼텐부르흐는 더 많이 지불해야 했고 중경에 있는 키가 작은 여인은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한다. 램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빛을 이용하여 몇몇 인물들을 부각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 그 빛은 두 명의 지휘관과 그 옆에 있는 한 여인, 왼쪽에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사수, 기수, 그리고 고수를 비추고 있다. 이 여섯 명의 주요 인물들은 비교적 풍부하게 전달된 빛을 통해 강조되고 있으며,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상은 서로 교차된다. 즉 코크가 어깨에 두른 장식 띠는 사수가 입은 옷과 같은 빨간색이고, 여인의 옷과 어깨에 두른 숄의 색상은 뤼텐부르흐와 기수, 고수의 옷이나 깃발의 색상과 동일하다. 동시대의 다른 사수 집단초상화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은 그다지 품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코크와 뤼텐부르흐가 이끄는 부대원들의 복장은 제각각이다. 이 무리들은 언뜻 보기에도 준 국사적인 부대로서의 특성보다는 뒤죽박죽 섞여 있는 자의적인 집단의 특성을 더 많이 지녔다. 마리아 드 메디치의 입성을 기록한 한 연대기는 이에 대해 "몇몇 사수들은 각자 재량에 따라 요란한 치장을 했고 또 다른 사수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갑옷과 투구로 무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 무기인 소총 이외에도 창과 미늘창이 등장한다. 또 몇몇 사수들은 스페인 국와에 대항하는 폭동 당시의 제복이나. 유행했던 모자인 호화로운 투구를 갖추고 있다. 코크는 시민적인 검정색 옷을 입었고, 뤼텐브르흐는 밝은 노란색 제복을 입었다. 사수 집단초상화 작품 속에서 하나의 얼어붙은 순간을 표현했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램브란트는 과거에서 현재에로 이어지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이를 유동적이면서도 조밀하게 정렬시켰다. 은 형식과 초상학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위대한 작품의 전형이다. 램브란트는 이 그림으로 초상화 또는 단체초상화를 '역사'로 승격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