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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뢰군 공군에 입대하다.

sidoi1 |2004.06.17 23:44
조회 150 |추천 0


예비군 훈련도 작년으로 끝이났고 올해부터는 민방위에 편성이 되다니 시원하기도 하고 내가 나이를 벌써 이렇게 먹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10년도 더 지난 나의 군대시절의 힘들었던 기억과 즐거웠던 기억들을 추억속에서 하나 하나 떠올려본다. 나는 공군에 입대를 했었다. 공군에 입대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위에 형님이 공군이었는데 한달에 한번씩 외박을 나오고 하는 일도 비행기 정비쪽의 일을 해서 공군이 편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꿈은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에 도착한 바로 깨어지고 말았다.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데 하필이면 공군의 각종 보직들 중에 최악의 보직인 곳으로 빠져버렸다. 육군출신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방공포병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무늬만 공군이지 실제로는 육군이다. 비행장안에 따로 상주하는 육군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위에 왕고참들은 육군에서 공군으로 재편이 된 사람들이라 공군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대부분 서울출신들이 있는 속에서 경상도 사나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최대한 표준어로 이야기를 해도 고참들은 잘 못알아 듣는 경우도 많았다. “정이병! 제가 정비반의 반납하라는 것 언제 반납했어?” “네! 아레 갔다 줬습니다!” “뭐? 정비반에 주라고 했지 밑에 그냥 뒀다고? 이 녀석이?” “ 김상병님! 그게아니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레는 경상도 말로 그제 라는 뜻인데 도통 통하지가 않았다. 한번은 고참이 내동기와 함께 일을 시켜서 동기를 찾아가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데 “김이병! 있다아이가?” “ 뭐? 이녀석이 벌써 요령피우네.. 있다하긴 뭘 있다가 해!” 김상병이 또 내 말귀를 못알아 들었다. 있다아이가는 있쟎아 라는 뜻인데.. 덕분에 나는 괴뢰군으로 통했다. 괴뢰군 정이병. 하지만 짬밥이라고 해야하나 이병의 딱지를 떼고 나니 어설픈 서울말이 몸에 조금씩 배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오랜만에 집에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습관이 된 어설픈 서울말 때문에 어머니가 처음에는 내가 전화한 줄도 모르셨다. 나중에 내가 한 줄 알고는 한번만 더 이상한 말 쓰면 죽는다고 하셨다. 우리집에는 역시 경상도 말이 표준어이다. 겨울에 눈 치우는 것도 걱정이지만 여름은 풀베기가 장난이 아니다. 넓고 넓은 활주로에 풀을 베는 것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다. 잘못 낫질이라도 해서 혹시 숨어있는 말벌집이라도 건드는 날에는 재빨리 땅에 엎드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후임중 한명은 얼굴을 한방 쏘여서 1주일을 사람의 얼굴이 아닌 슈렉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하는 업무과 방공포병이다 보니 평시 훈련이 없는 경우에는 활주로 한쪽 모서리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몇시간씩 보초를 서는 일이다. 몰래 라디오나 음악도 듣긴 하지만 그 시간이 왜 이렇게 않가는지.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리현상이다. 그 넓은 활주로에 화장실이 있을리 만무하고 같이 보초를 쓰는 고참과 나는 급할때면 할수 없이 넓디넓은 활주로를 향해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날 중대장님의 호출과 함께 우리들은 얼차례를 받게 되었다. 이유는 한가지 조종사들에게서 민원이 들어왔다. 착륙을 하려고 내려다보면 우리의 그 생리현상을 해소하는 모습이 너무도 적날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민망하니 조금 자제를 부탁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중대장님이 부끄러워 고개를 드시지 못하시겠단다. 그 후 우리들의 활주로를 향한 그 짓을 그만뒀나면 그것도 아니다. 비행기가 보이나 먼저 잘 살펴보고 혹시 그래도 몰라서 활주로 반대방향을 이용했다. 힘들고 고생도 많고 고민도 많은 그 시절이지만 지금은 그 추억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싶다. 마음은 늘 그대로 인데 시간은 나를 어느새 지금 이시간 이렇게 머물게 한다. 제대 후에도 한동안 서로 연락을 했었는데 지금은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오늘따라 그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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