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경찰서에 까지 가서 진술을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불과 3시간 전쯤의 일이군요..
이야기에 앞서 ㅎㅎ 전 대구사는 25세 남자구요~
군 전역후 6개월 가량 회사를 다니다가 적성에 안맞아서 그만두고 백수짓 좀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때 부터 알던 형님이 피자가게를 하시는데 형수가 출산하고 몸조리 하는 동안 좀
도와달래서 거기서 배달 및 잡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6월 6일 자정이 되어 갈때쯤..주문이 하나 들어와서 배달을 갔다왔는데
가게에 와보니 형님도 뒤이어 들어온 주문 배달을 가셨는지 가게가 비워져 있더군요.
(동네 음식장사이고..요즘 워낙 불경기이다 보니 둘이서 일을 합니다. )
그래서 이제 형님 오면 가게 문닫으면 되겠구나 하고..담배를 피려고 밖에 나왔는데..
제가 바라보고 있는 정면 골목에서 왠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술에 취한체
비틀거리면서 담배를 물고 지나가더군요..
저희 가게가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번화가가 아니고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자정 무렵엔
이곳에 사는 사람들 이외에는 발길이 드뭅니다.
그 남자가 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전방 10m 정도의 차 위에서 불길이 올라오는겁니다.
전 깜짝놀라서 불길이 이는 방향으로 뛰어갔고 불이 난 차를 살펴보니 다행이 차체에 붙은
불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누군가 장갑과 장화를 포개어 차량 트렁크 부분 위에 올려놓고
장갑에 불을 붙여 놓았더군요.
전 급히 차에서 장화와 장갑을 끌어내리고 발로 밟아 불을 껏습니다.
장갑은 이미 반쯤 타있었지만 다행이도 포개어 놓은 장화는 고무라 불이 붙지 않아서
두 세번 밟자 금방 꺼지더군요.
담뱃 불도 아니고... 순간 '방화'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더군요..아까 제 옆을 스쳐지나간
그 남자를 제외하고는..
..전..학창시절때만 해도 불의를 보면 꾹 참는 성격이었습니다.
..아니..제 생각엔; 분명히 어제까지도;
그런데..낮에 먹은 김치볶음밥이 잘못된건지; 콘푸로스트를 먹은것도 아닌데..
어디서 주체못할 용기가 솟아 난겁니다.
" 거기 아저씨 서봐요. "
..이때 저와 그 남자는 20m 가량 떨어져 있었고 남자는 비틀 거리면서 천천히 골목길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전 다시 한번..
" 거기 아저씨 서보라고. "
이때부터 제 머릿속은 수만가지 생각들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 아 신발 진짜 서면 어쩌지?..저 사람이 아니면 어쩌지?..마음먹고 방화 하는 놈이면 흉기도
들고 있지 않을까!? "
하지만 그 남자는 못들은건지 아니면 듣고도 모른척 하는건지 같은 걸음걸이로 절 뒤로 하고
걸어가더군요. 비틀거리면서..
그래서 전 마지막으로..
" 야 방화범 거기 서보라고!!! "
..이 말이 끝나자 마자 비틀거리던 남자가 칼루이스 처럼 튀어나가는 겁니다!!..
..제 눈앞에서 멀어져 가는 방화범을 보면서 짧은 순간..정말 제대로..낚았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저도 바로 뛰어 나갔습니다.
골목길을 벗어나면 2차선 도로가 있고 건너편에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그쪽 샛길로 방화범
이 들어가는게 보이더군요. 저도 도로를 건너서 전력질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로 들어서자 뒤도 안돌아 보고 도망치는 방화범이 보이더군요..
정말 젖먹던 힘까지 짜낸다는게 이런건지..상대방이 술을 마신탓도 있겠지만..200m쯤 더 뛰자
방화범과 저의 차이가 5m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하는데..순간 방화범이 인도블럭에 발을 헛딛이고 넘어지더군요.
바로 뒤에서 목을 조르고 팔을 제압했습니다. (..뭐 전 그랬다구요..ㅠ_ㅠ 남들이 보기엔 올림픽 레슬링 같았을지도 ㅠ_ㅠ )
방화범은 넘어져서 인지 바로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하면 힘이 쎄진다는 말도 있고;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일단 계속 제압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위에 걸어오는 아파트 주민인듯한
아줌마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 아줌마 이사람 방화범이니까 112에 신고좀 해주세요!! "
..그렇게 그 아주머니가 제 앞을 스쳐지나가기 까지 5번 정도를 외쳤지만..저희 주변을
피해가시더군요 제 눈도 피하시고..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사실 제가 방화범을 잡았다고 자랑이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
이라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저런 모습에 너무 큰 실망감을 느껴서입니다.
그 아줌마 뒤로도 애들을 안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었지만 다 피해가시더군요..
뭐 하필 그떄 주위에 남자분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제가 잡고있는데 신고만 해달라는 데도
무시하고 가는것이 전력질주해서 숨이 가쁜 것 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정말 요즘은 도둑이 들어도 불이야 라고 외쳐야 사람들이 나와본다는 말이 새삼 와닿았습니다.
전 그래서 결국 제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해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방화범을 끌고 나와 근처 지구대 경찰 분들께 넘겨 드렸습니다.
다행이 넘어 질때 충격과 술기운 때문인지 한손으로도 제압이 가능했고 본인도 도망치지 않을
테니 숨막히니까 그렇게 세게 잡지 말라더군요 ㅎ;
뭐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차에 불 왜질렀냐고 하니까 자기가 안질렀다면서
그럼 왜 도망쳤냐니까 잘못한게 있어서 도망쳤다더군요.
" 나도 운전하는 사람인데 차에 불을 왜 지르겠냐 " 라고 하길래..
" 넌 운전면허 있다고 음주운전 안하냐? " 라고 해주고 나머지는 경찰한테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경찰분들이 경찰차 두대에 나눠 타고 5분 정도가 오셨더군요;
일단 현장을 보자길래 현장에 가보았더니 방화범이 썻던 장갑과 장화는 그 방화장소
바로 옆에 주차되있던 트럭에 있던 물건들이더군요. 짝 잃은 장갑과 장화가 실려있더라는..
배달 갔다 온 형님이 무슨일이냐고 물어보셔서 설명을 해드렸는데..
형님을 보자 갑자기 죄송하고 겁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사실 제가 잡은 사람이 정황상으론 99퍼센트 방화범이지만 제가 불을 붙이는 장면을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만약에 죄가 없다는 식으로 석방이 되서 형님 내외분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이동네 사람이 아니라 상관없고 저한테 해꼬지 하는거야 상관없지만 형님 내외분에게
까지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또 파출소에 처음 진술을 하러 갔을때 안 사실이지만 그 남자가 동네 주민이라고 하더라구요..
현장조사 이후 형님 혼자 가게를 지키시고 파출소에 가서 첫 진술을 대충 끝내니.
오늘 안으로 경찰서로 사건이 넘어 갈것 같으니 잠시 뒤에 데리러 온다더군요..
그렇게 6월7일 새벽 2시쯤 대구 성서경찰서에 가서 당직형사 분께 진술을 했습니다.
대부분이 처음 파출소에서 물어본것들을 재차 확인 하는 형식이었고..
파출소에서는 자신이 불을 질렀다고 했던 방화범이 경찰서에서는 저를 가르키면서
" 저 사람 한테 내가 불 지르는거 봤는지 물어보세요 " 라더군요.
저도 저 사람이 불을 지르는건 못봤다고 말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고 왔습니다.
저와 그 방화범이 파출소와 경찰서에서 마주쳤던 시간은 짧았지만 저를 바라보는 눈이
원망으로 가득차 있는거 같았습니다.
진술을 마치고 일어나려는 길에 당직형사분께서 100퍼센트 확실하고 지문등 검사 하면
나올테니 나중에 전화로 알려 주시겠다더군요
그렇게 지금 가게로 돌아와서 컴퓨터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가게에 방이 있어서 도와드리는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거든요 ㅎㅎ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형님이 전화오셔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 요즘 사람들 진술이다 뭐다 증인이네 자기 시간 뺏기기 싫어서 안나서는데..
넌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할일을 했다고. 다행이 불이 크게 나진 않았고 그 사람이
전과가 없을 지언정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울수도 있다고 만약에 그 차가
다 타버리거나 사람이라도 죽었으면 어쩔뻔 했냐고 그러니 형이랑 형수는
걱정 하지 말라고. "
좋은 일을 하고도 기분이 좋지 많은 않은 세상인것 같습니다.
앞으로 톡커 여러분들이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신다면..꼭 경찰에
신고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이 불신이나 외면으로 가득차지 않았음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이만 끝내겠습니다. 눈꺼풀이..천근만근..이네여-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