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 깁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네요.
오늘은 호남선 설연휴 기차표를 예매하는 날이었다. 시댁이 광주인데 기차표예매에 번번히 실패하여 명절때마다 고속버스를 이용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임신중이어서 버스는 힘들것같아 기필코 기차표를 구하리라 맘먹고 6시 조금 못되어 집근처 여행사에 신랑과 같이 도착했다.
추석때도 그 여행사에 갔지만 표는 예매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집에서 가까워 또 나가게 된것이다.
그런데 추석때 여행사앞에 도착했을때 번호표를 뽑아야된다고 누군가 말했고 난 그 번호표가 여행사에서 만들어놓은줄 알고 뽑구서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7시 40분쯤 되자 여행사직원이 출근을 했고 줄을 서라고 했다. 번호표를 뽑고 여기저기 흩어져 기다리던 사람들이 번호표대로 하는것 아니냐고 하자 직원은 번호표는 자기네들이 한것이 아니란다. 번호표는 모르는일이니 어서 줄이나 서란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앞다투어 줄을 서느라 일찍온 사람과 늦게 온 사람들의 구분이 없어져버렸다.
난 행동도 느리고 남한테 싫은소리 못하는 성격이라 이리저리 휩쓸리며 겨우 20번대 줄에 서게되었다. 일찍나온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번호표는 여행사에서 한것이 아니기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나중에 줄을 선대로 표를 예매하게 되었다. 그때 10번대쯤에서 표가 매진되었고, 난 그냥 고속버스로 시댁에 다녀왔었다.
이런 일이 있었고...또다시 어제 귀성표예매일...
난 신랑한테 그때 그 사건을 얘기하며 이번엔 같이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들은 여행사앞에 무조건 일등으로 줄을 서있어야 된다며 일찍간다고 나갔지만 우리들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두명이 있었다.
한명은 여행사 출입문앞에 담요을 뒤집어쓰고 의자에 앉아있었고, 다른 한명은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얼른 의자에 앉은 사람뒤에 줄을 섰다. 그러자 그 사람이 번호표를 뽑으라고 했다.
출입문을 보니 워드로 '번호표를 뽑고 여행사 주위에서 기다리세요' 라는 종이가 붙어있고 밑에 번호표통이 있었다. 난 이거 여행사에서 내건것이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아니라고, 일찍 온 사람들이 한것이라 했다.
나는 "아니다, 추석때도 번호표가 있었지만 여행사에서 무효라고 했다. 우린 그냥 줄을 서있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사람은 자기들은 어제부터 번호표를 만들어서 뽑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번호표 뽑구 기다리랜다.
신랑이 번호표를 봤는데 18번이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냐고 묻자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신랑은 사람들이 차에 있는지 번호표를 뽑고 집에 갔는지...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증명하냐며 그냥 줄을 서겠다고 했고, 근처에서 서성이던 다른 한명의 아저씨는 우리들이 얘기하는걸 듣더니 "여행사에서 한것이 아니라면 번호표는 의미가 없다. 너도나도 각자 전날 번호표 만들어서 집에 가있다 시간되어 나오면 다 일등으로 표를 끊을수있겠네요"라고 항의하며 우리말에 동조하며 줄을 섰다.
우리 뒤로 몇몇사람들이 왔고 그 사람들도 번호표가 부당하다는 식으로 반응했지만 그 아저씨와 우리처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없었는지...그냥 좀 뭐라하다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가자 번호표를 먼저 뽑았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사 직원이 오면 일을 수습해줄걸 믿고 그대로 줄을 서고있었다. 추석때의 일도 있고하니 어차피 그 번호표는 무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를 새치기하는 사람으로 매도했고 욕을 해댔다.
자기들은 어젯밤 10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포장마차에서, 차에서 밤새워가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늦게온것들이 새치기한다고...상식이 없다고...쌍으로 얼굴에 철판을 몇개를 깔았네...철면피네...인간들이 재수가없네...등등.
욕을 먹었지만 우린 꿋꿋하게 그대로 서있었다. 우리가 여행사앞에 도착해있을 당시에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고, 몇시부터 어디서 어떻게 기다렸든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턱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냥 우리 앞사람 뒤에 줄을 선것뿐이기 때문이었다.
여행사직원이 도착했고 사람들이 우리는 새치기한 사람이므로 없는사람 취급하라고 했다.
신랑과 나는 당연히 여행사에 항의했다. 번호표는 무효지않냐구...하지만 그 직원은 자기들은 모른다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역시 우리를 새치기하는 몰염치, 몰상식한 사람으로 내세우며 우리를 빼고 시작한다고했다.
고지식한 우리 신랑, 항의하며 자리를 지켰지만 어제부터 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는 사람들에 의해, 또 더이상 욕먹고 있을 까닭도 없고 사람들과 싸우고 싶지않다는 나의 만류에 뒤로 물러났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부정하고, 그들을 기만하며 새치기하려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들 명절표 끊으려 고생하는 입장에서 먼저 온사람이 먼저 끊어가는게 당연한 이치이다.
나는 결코 그걸 부인하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번호표는 그 여행사에서 표를 예매하려는 사람 모두의 동의를 얻고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편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행사앞에 도착했을때-일찍왔던, 늦게왔던-어제부터 밤새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열명이고 스무명이고 있었다면 나는 당연하게 우리가 늦게온걸 후회하며 그 사람들 뒤에 가서 줄을 섰을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갔을때 거기에는 단 두명만이 있었고 앞선 번호표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물론 시간이 흐른뒤에 다들 나타났지만 오히려 우리를 철면피로 몰아세우며 모욕을 했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기분이 상했던건 여행사 직원의 태도였다.
물론 여행사가 모든 책임을 질수없으므로 꼭 그탓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매번 명절표 예매할때마다 겪었을 일인데도 아무 대책없고, 일률적이지 않은 태도와 일처리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못한것과 우리를 마치 파렴치한 부부처럼 대한것에 대해 너무 맘이 상했다.
이미 우리는 그사람들에게 새치기하는 나쁜사람이 되었고, 나에게는 우리부부가 얼마나 융통성없고 고지식하고 고집쟁이인지 확인하는 사건이 되었다.
그 일은 지나갔다...하지만 그냥 맘에 묻고있기에는 조금 억울한 생각에...내 심정을 풀곳이 없어 글로나마 적어본다...
어제 이 일이 있었고 오늘은 경부선표를 예매하는날이네요.
이 시간이면 벌써 입석외 모든 표는 매진되었겠지요.
오늘도 어느 여행사앞에서 이런일이 있었을수도 있구요.
고향 부모님께 가기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뭐라 할수있겠어요. 다들 똑같은 입장인것을.
우리부부도 그런사람중에 일부고 내가 먼저가 되기위해 몸부림치고 큰소리치는...그런 사람인것을요.
어제는 의기소침했지만 오늘은 신랑과 저...내일의 욕심을 위해 또 그렇게 전쟁터아닌 전쟁터로 힘차게 발을 내딛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저희 너무 욕하지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