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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우리 엄마...

지원마마 |2003.11.26 14:54
조회 598 |추천 0

제목: 어머니 마음

 

“어머니, 오늘 유난히 내 어머니 당신의 모습과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엄마의 그 환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을 한번이라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02년 7월 7일. 오늘은 지난 4월 태어난 우리 첫 딸 지원이를 위해 시골에서 우리 가족과 몇 분의 친지 어른들을 모시고 조촐한 백일잔치를 치룬 날입니다.  백일상 위에는 흰 백설기랑 수수팥떡, 시골 포도밭에서 처음 막 따낸 싱싱한 포도와 수박 등 고마운 정성으로 잘 차려진 참으로 정겨운 음식들로 넘쳐 났고, 우리 지원이는 백일 상 앞에서 열 손가락에 금 빛 백일반지를 가득 끼고 사진도 찍었답니다.  이 자리에 우리 지원이의 외할머니, 바로 엄마가 계셨더라면… 계셨더라면 하는 서럽도록 아쉬운 마음은 시골집 건너편 복숭아 나무를 지나고, 애기 주먹만한 아직은 파란 자두가 주렁주렁 열린 자두 나무 두 그루를 지나 넓은 포도밭을 돌아가면 계시는, 아니, 굳이 먼 거리가 아니라 그 길을 따라 걸어가지 않아도 시골집 마당에서도 훤히 건너다 보이는 좋고 널찍한 양지에 모셔 둔 엄마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날이면 나는 더욱 더 엄마가 그리워 힘들게 눈물을 삼키려니 목이 메어와 아프기만 합니다.  이제 아이도 낳고 엄마가 된 지금도 난 내 엄마가 그리워 그저 목놓아 울며 떼쓰고만 싶습니다. 

 

엄마의 투병생활 중이던 작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도 여전히 엄마는 혼자서는 거동조차 힘드신 어려운 상태였지만, 엄마가 조금씩 나아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나의 생각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그 즈음에 난 뱃속에 아기를 갖게 된 걸 알았고, 결혼한 지 4년이 지나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생긴 새로운 생명이었지만 내겐 마냥 기쁘고 축하해야 할 일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쇠약해지시는 엄마 곁을 지키며 손과 발이 되어 간병을 하는 일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몸과 마음 모두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엄마에게 내 임신사실을 말씀 드리기 위해 누워계신 엄마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그 옆에 누웠고, 눈을 돌려 날 바라보는 엄마를 보자 울컥 울음이 나오는 걸 팔베개를 해달라며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엄마는 천천히 팔을 올려 뻗어 주셨고 난 가늘어진 내 엄마의 팔뚝위로 머리를 살짝 올려 놓고 엄마를 안고 말했습니다. 

“엄마, 사랑해… ” 살짝 목소리가 떨린 것은 목에 잔뜩 힘을 주어 머리가 들린 채로 엄마의 팔베개를 베고 있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냥 말없이 그대로 한참을 엄마를 안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휠체어에 엄마를 앉혀 드리고 베란다로 모시고 나가 바깥 공기를 쐬게 해드리면서 그 옆에 앉아 말했습니다.

“엄마, 나 임신했대…”

엄마는 천천히 나를 내려다 보며 휠체어에 올려져 있던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축하해…  잘 먹어야 해.”

짙은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시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엄마는 그렇게 어리다고 만 생각했던 막내딸의 임신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셨다는 것을 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소리없이 많이 울었고, 당신의 그러한 축하의 인사말을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내게 하셨던 엄마의 그 말씀이 당신으로부터 듣고 기억될 수 있는 마지막 말씀이 될 것임을 그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시면서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잘 먹어야 한다고 당부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일거라고는 그 때는 정말 미처 몰랐습니다.

엄마를 눈물로 보내드리며 마지막으로 약속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엄마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살겠다고, 엄마의 사랑과 가르침 그대로 내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그들에게도 외할머니를 늘 존경하게 기억시키며 살겠다고… 

 

점차 배가 불러오고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더 엄마의 존재가 그립고 그리워 울기도 많이 울고, 가끔 우울하고 슬픈 마음에 제대로 먹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다 보고 계신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이 통한 걸까요.  그 때마다 종종 꿈에 나타나신 엄마는 집에 반갑게 찾아와 주시기도 했고, 내게 맛있는 것을 먹이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도 했는데 이런 꿈들을 꾸고 난 뒤 얼마간은 다시 기운이 나고 또 기분도 밝아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기를 갖고서 꿈꾸게 된 태몽에서 또한 엄마가 나타나 뱀을 보여주신 것으로도 나는 그 뒤 엄마가 내 곁에서 항상 날 지켜주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마음을 강하게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겨우 임신 후기에 들어서야 뱃속의 아기를 위해 태교에 좋다는 십자 수를 놓고, 좋은 책과 음악들을 접하고, 아기를 위한 음식도 잘 먹고 힘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거의 9시간의 진통을 겪고 고생 끝에 우리 딸 지원이를 출산했을 때에도 그 출산의 고통을 함께 해주신 것에, 그리고 아기와 내가 무사히 출산을 마치게 된 것에 하나님과 동시에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이 세상 엄마들이 모두 존경스러워’라며 연발할 때도 분만실에서 내 곁을 내내 떠나지 않고 지켜주며 도왔던 남편 또한 ‘맞어, 엄마들은 위대해, 대단해’ 하며 맞장구를 치더군요.  처음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는 일, 목욕시키는 일, 그리고 낮이고 밤이고 울어대는 아기 달래고 재우는 일 등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나 같은 초보엄마에겐 진땀 나고 힘든 육아의 연속이었습니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고생하며 힘들게 키우셨으리라,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가 그리워지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보채기에 품에 안고 살살 흔들며 조용한 노래들을 생각나는 대로 부르면서 힘들게 달래는데 나도 모르게 ‘어머니 마음’노래가 튀어나오더군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부르던 노래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주저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복받쳐 오르는 눈물로 불렀던 노래, 어머니 마음. 엄마~ 엄마~ 부르며 꺽꺽 서글프게 한참을 우는데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이 일 때문이었을까요.  그 뒤 우리 딸 지원이는 크게 보채고 우는 일 없이 순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어느새 백일을 맞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는 우리 아기의 얼굴을 들여 다 보며 미래의 행복한 그림을 그려봅니다. 

앞으로 우리 지원이에게 엄마가 나를 키우며 쏟아주신 그 헌신적인 사랑과 정성 그대로 잘 키울 수 있을까.

다 컸다 해도 철부지 어린시절 엄마 마음을 속상하게 하고 혼자 자란 양 제 멋대로 하려고만 했던 때 엄마가 내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너도 너랑 똑 같은 딸 낳아 키워봐야 해’

 

언젠가 먼 훗날 그 때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내 딸을 향해 이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될 지 모릅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그 뜻을 저도 깨닫게 되겠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절절히 그리운 것이 바로 부모의 자식 사랑이란 것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으며 내 가슴에 녹아 있는 어머니의 내리사랑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끝이 없을 것이며, 나 역시 어머니의 가슴으로부터 배운 그대로 소중한 내 딸 자식을 믿음과 사랑으로 기르면서 또 하나의 내리사랑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흘러 어머니의 모습을 가진 나이가 되어도 난 어머니 당신께 더욱 더 큰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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