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소신 삼군대장군(三軍大將軍) 을지문덕(乙支文德) 어제 하산하여 지금 입궁하였습니다."
을지문덕의 절이 끝나자 태왕은 그의 손을 잡고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어서 오시오, 을지 공. 대체 백두산이 얼마나 좋길래 그토록 소식이 없단 말이오? 몸은 좀 추스리셨소?"
"폐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으로 몇해 동안 정진을 하였더니 괜찮아졌습니다."
문덕은 태왕의 옆에 서 있는 고건무(高建武)를 바라보았다.
"늦었지만 태제(太弟)로 책봉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고맙소. 대장군의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다행이오."
을지문덕은 태왕 주변에 있는 막리지(莫離支) 연태조(淵太祚), 태대형(太大兄) 고량(高亮), 대사자(大使者) 고소심(高少心),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 도병리(都丙利),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 도성 수비대장 온준(溫俊), 태학박사(太學博士) 이문진(李文眞) 등을 돌아보았다.
"대사자도, 강 원수님도, 태학박사도... 모두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푹 쉬다 오셨으니 한동안 일이 많으시겠습니다."
이문진이 반기며 하는 말이었다. 을지문덕은 강이식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강 원수님은 못 본 사이 흰머리가 더 느신 것 같습니다."
"거 무슨 섭섭한 말씀을..... 이래뵈도 아직 젊은 장수 서넛은 충분히 상대하고 남소이다."
강이식이 기백을 뽐내자 을지문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강 원수님은 역시 우리 고구려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군인이십니다."
그때 궁녀들이 주안상을 들여오자 영양태왕이 손짓하며 신료들을 자리에 앉혔다.
"자, 모두 자리에 앉아 잔을 드시오. 대장군은 그동안 백두산에서 아침이슬만 먹고 살았을 터인데, 얼마나 술 생각이 나셨겠소? 오늘 한번 거나하게 마셔봅시다. 대장군은 내 잔부터 받으시오."
영양태왕(嬰陽太王)이 술병을 내밀자 문덕은 잔을 들어 공손하게 받았다.
"예,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동안 아무것도 해놓은 것도 없이 세월만 한참이 가버렸소. 나도 그만큼 늙고....."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요하에 경관을 세우고 천여리가 넘는 장성에 군사를 보강하고 욕살들이 대대적으로 자신의 관할 구역을 정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한 일이 없다 하겠사옵니까? 지금은 모름지기 준비하는 시기로 아옵니다."
그러자 온준이 끼어들었다.
"준비하는 시기라..... 이거 너무 지루한 것 아니겠소이까? 우리가 승리를 거둔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소이다. 창과 칼도 너무 오래 두면 녹이 스는 법이올시다."
강이식도 온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폐하의 말씀처럼 세월은 자꾸 가고 마음만 초조해지는 것 같소이다. 내 생전에 수나라와의 일전을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할 터인데..."
그러자 주화론(主和論)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태제 고건무가 말했다.
"한동안 잠잠하다 하였는데 또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소이다. 이 사람이 알기로 1백만명이 넘는 수나라의 군사들은 배불리 먹고 충분히 쉬며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고, 나라는 풍년이 거듭되어 곳간이 넘치고 있다 합니다. 어찌 그리 가볍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건무의 발언에 동의를 표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소인이야 비록 서생에 불과하지만 만사 튼튼이라 적을 확실히 알고 나서 우리를 살핌이 가할 줄로 아옵니다. 수나라는 여러모로 우리보다 앞서 있음은 분명합니다. 국토가 크고 인구도 몇배나 많고 농토도 풍족하고 말입니다."
"허나, 우리의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은 저들보다 빠르고 용맹스러우며 우리의 제철기술은 천하제일이라 우리보다 좋은 철제무기를 가진 나라는 아무도 없소이다. 또한 우리의 과하마(果下馬)는 높고 낮음에 구분이 없이 산이나 강이나 아무 곳이나 원하는 대로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습니다. 저들에 비해 무엇이 모자라는 것입니까, 태학박사?"
강이식이 이문진에게 반박하자 이문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허허... 뭐 조심을 하자는 것이지 우리가 모자란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소이다."
영양태왕이 껄껄 웃으며 주변의 분위기를 정리했다.
"허허... 이거 시작부터 이야기가 뜨겁구먼. 역시 대장군이 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니까... 대장군도 한 말씀 하시오. 수나라가 다시 우리 고구려에 군사력으로 도발할 것은 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우리가 무얼 준비하면 되겠소이까?"
문덕이 머리를 조아리며 태왕의 질문에 대답했다.
"외교전을 비롯해 신무기 개발 등 여러 대안이 있겠으나 우선적으로 정신훈육이 필요하옵니다. 고구려인 모두가 정신이 바로 서야만 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일당백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사옵니다. 경당(經堂)에서는 모든 서민의 자제들을... 그리고 태학(太學)에서는 이 나라의 지도층 젊은이들 모두에게 천손(天孫)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고구려인이라는 자긍심을 강조하시오소서. 조의선인(早衣仙人)을 교육시키는 것처럼 말이옵니다."
"일리가 있소이다. 먼저 생각이 있어야 행동이 있는 법이지. 고려해 봅시다."
고건무가 문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 평온할 때에 아래로 신라와 백제를 쳐서 없애고, 뒤쪽에 후환을 막는게 급한 것 같습니다만..."
"신라와 백제 어느 나라를 치든, 한쪽을 공격하면 저들은 금방 둘이 연합해 하나가 됩니다. 그럴 때 수나라마저 들어온다면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신라와 백제는 우리와 한 뿌리이니, 적당히 억압하거나 달래면 우리의 천하관에 편입될 나라들입니다."
태왕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자, 이거 너무 오랜만에 조정에 복귀한 을지 공에게 벌써부터 나랏일을 의논하게 하여 골치를 앓게 하는구먼. 오늘 하루만은 나랏일을 잊고 거나하게 마시고 취해보세."
"그런데, 폐하의 용안이 너무 어두워 보이십니다. 혹시 편찮으신 데라도..."
"허허... 의원도 아닌 을지 공이 내 건강도 염려하시는구료. 뭐 나이가 들면 몸이 쇠약해지고 고뿔도 앓는 것은 누구나 있는 일이니 그리 신경쓰지 마시오."
태왕은 더없이 맑은 모습으로 신료들에게 술잔을 권했지만 태왕을 바라보는 을지문덕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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