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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생일상 차리기

라쿨 |2003.12.09 23:11
조회 2,188 |추천 0

오늘은 시어머님 생신입니다.

하지만 제가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는 바람에 지난 일요일날 어머니 미역국을 끓여드렸죠.

제가 머리털 나고 처음 미역국을 끓여보기 때문에 무척 긴장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보고 여직원에게 물어보고 또 살림 잘한다는 남자동료에게도 물어봐서 이론으로는 완벽하게 갖추었죠.

다들 제가 첨 미역국 끓여본다는 말에 그렇게 쉬운걸 어째 모르냐고 어이없어 합니다. 심지어 저희 엄마도 그러십니다. 한번도 나한테 끓이라고 해본적도 없음서..

암튼 토요일 아침 아가씨에게 전화했습니다.

 

나 : 아가씨 뭣 좀 사가야 할텐데 미역은 있을까요?

아가씨 : 언니...우리 집에 없는게 뭐가 있겠어요? 안그래도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물어보는 것 마다 다 있대요.

나        : ...그럼 이건 없을거 같은데...갈비는 있어요?

아가씨 : 그것도 있어요.

나       : 엥? 그런건 원래 평상시 집에 항상 있는건 아닌데 왜 있죠?

아가씨 : 며칠전에 아빠가 드시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사놨어요. 언니 아무 걱정 말고

             맨손으로 와요. 집에 다 있으니까.

나        : 아가씨 우리 뭐뭐 차릴까요? 미역국하고 또 모하지? (긁적긁적)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저 할줄 아는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면이나 끓일까..)

아가씨 : 미역국하고 해물탕하고 잡채하죠 모.

나        : 해물탕하고 잡채?......그건 누가 하죠?....

아가씨 : 그것도 엄마한테 물어봐서 다 여기 써놨어요. 언니 맘 푹 놓고 두비나 신경

              쓰면서 와요. (두비는 제 뱃속 아가 애칭이죠.)

 

그래서 저와 신랑은 근무가 끝나고 대전을 향해갔습니다.

저도 아가씨 말을 믿고 맘 편하게 갔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비장하게 말합니다.

 

나        : 아가씨!! 이따 10시에 나 좀 봐요

아가씨 : 네? 왜요 언니?

나        : 음식 준비해야죠. 10시부터 새벽2시까지 하면 될거에요.

아가씨 : ...엄마가 해물도 다 손질해놨는데...음...

나        : 그래요? 그럼 미역을 불려야겠네. 10시에 모여요

아가씨 : ...그냥 물에 넣기만 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나       : 그래요? 그럼..뭐 할거 없나? ....그럼...뭐...내일 아침에 만나요.

어머니 : ..........  (며느리와 딸의 대화를 들으시면서 무척 스트레스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친목회 나갔던 신랑이 새벽 3시에 들어오는 바람에 저 늦잠 잡니다.

7시반에 눈꼽도 안떼고 아가씨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가씨 깨웁니다.

안방에서는 이미 일어나셨지만 조용한 부엌의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못나오는 어머님의 숨죽인 아버지와의 대화소리가 들리고...

어쨌든 잘 불려진 미역을 꼭 짜서 들기름 넣고 달달 볶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엄마나 여직원이나 남자동료나 얼만큼 볶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거에요.

물기가 다 없어질때까지 볶아야 하나? 아님 어떤 느낌이 올때까지만?

그리고 또 한가지! 국물을 낼 고기는 어디 들었을까?

아가씨를 채근하니 아가씨 안방 문에 대고 소리지릅니다.

'엄마! 언니가 국물 낼 고기 찾는데 좀 찾아줘!!'

잠시 후 아가씨가 소식을 가지고 오죠. '언니. 그냥 고기 국물 안내도 된다는데요?'

저 할 수 없이 물을 부어 끓입니다.

참다 못해 나오신 어머니 국간장이 어떤건지 알려주십니다.

저 소심하게 쬐끔씩 넣고 어머니 얼만큼 더 넣으라고 뒤에서 코치하십니다.

불안하신 어머니 저쪽에 가셔서 마늘을 까시고 아가씨는 어머님이 다 손질해놓으신

해물탕을 그릇에 담습니다. 양념도 어머니 감독하에 두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만듭니다.

 

아가씨 : 엄마!! 여기 콩나물 넣으라고 써있는데 콩나물 어딨어?

어머니 : .....!!! 깜빡하고 안샀네...어차피 게도 사야하니까 교회갔다 오는 길에

            들러서 사자.

나        : 어머니! 이상해요.

어머니 : .......? 뭐가?

나       : 왜 깊은 맛이 안나죠? 이상해요. 어머니 뭐 더 넣어야 해요?

어머니 : (한국자 이상 마시시고는 결론 내리십니다.) 맛내는건 교회 갔다온 다음에

             하자. 교회 늦겠다.

아가씨, 나 : 네~~~

 

교회 다녀온 후 또 다시 부엌에 복닥거립니다.

어머님이 게도 손질해주시고 미나리 다듬을 줄 모르는 저는 아가씨와 머리를 맞대고

여기저기 지저분한것들을 잘라냅니다.

 

전화기 : 때르르릉~

어머니 : 여보세요? 아 그려? 난 오늘 안되는데...응 애들이 내 생일이라고 점심 해준다고

            해서  집에 있을건데..응 나중에 모이지 모.. 바쁘긴....애들이 다 하고 나는

           앉아있는데 뭘... 

아가씨, 나 : (눈빛 교환)

 

결국 애초에 계획했던 잡채는 못하고 상에 오른 음식의 리스트를 보면

내가 끓인 미역국, 아가씨가 만든 해물탕, 내가 양념사다 재우고 아가씨가 구운 갈비, 어머님이 준비한 고추튀김과 맛든 김장김치, 김, 햄 그리고 상 한가운데 모카케잌.

너무도 고마운 것은...아버지도 어머니도 신랑도 아가씨도 모두 저를 위해서 그 얼토당토않은 미역국을 싹싹 비워주신겁니다.. 아아..여러분 알라뷸~!

신랑은 제 기를 살려주느라고 미역국을 어머님이 끓인줄 알았다고 칭찬합니다.

이제 신랑에게 미역국을 자주 끓여줘야 겠더라구요.

 

암튼 그 힘든 시어머니 생신을 그렇게 보내고 왔습니다.

물론 저희 엄마가 준비하신 선물과 제가 준비한 선물과 또 어머님 옷 사입으시라고

적지만 아가씨와 보태서 용돈 드리고 왔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 조금이라도 엄하신 시어머님 밑에 있었다면 이런 대책없는 며느리 분명 미움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시댁 모두 저를 딸같이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고

요리책을 사서 반드시 내년 생신에는 제대로 된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서울로 오는 동안 덥고 불편한 버스 안에서 시달린 제가 왼쪽 배가 아프고

불쾌감을 느꼈는데 신랑은 무슨 일이 날까봐 어머님께 어쩌면 좋냐고 전화를 해댔고 어머님은 괜찮냐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대전 오지 말라고 전화하셨습니다.

저 지금 8개월을 마감하고 9개월째로 접어들고 있거든요.

생신상 제대로 챙겨드리지도 못한 미련하고 못난 며느리때문에 보내놓고도 걱정하시느라 전전긍긍하셨을 어머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글썽하더라구요.

혹시 저처럼 미역국 한번 안끓여보고 결혼하시려는 분들!!

시집가면 저절로 음식솜씨 생긴다는 말 믿지 말고 지금 친정엄마를 대상으로 열심히

음식해드리세요. 저도 평상시에 친엄마 생신때 미역국 끓이고 음식준비해드렸다면

오늘날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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