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말 쓰기,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세요"
지난 12일, 이해인 수녀와 피아니스트 노영심이 함께하는 시와 고운 말 특강이 혜화동 성당에서 열렸다. 시인이자 수도자로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시를 써온 이해인 수녀는 1984년 ‘두레박’ 연재를 시작으로 샘터와도 끈끈하고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올 해 1월부터는 샘터에 ‘해인 수녀의 고운 말 차림표’를 싣고 있는데 건강상 이유로 예전처럼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대중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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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도 아름답고 유서 깊은 혜화동 성당에서 특강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고 첫 인사를 건넨 이 수녀는 혜화동 성당의 특징으로 명동성당과는 다른 아늑한 분위기를 꼽았다.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첫 영성체를 떠올리면서 혜화동 성당의 이미지를 하얀 옷, 떡국, 수녀님들의 하얀 고깔, 하얀 밀떡, 하얀 눈 등으로 기억했다.
"부산에는 상록수가 많아서 가을 분위기가 안 나는데 서울은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네요. 가을을 떠올리며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라는 시와 제가 썼던 '익어가는 가을'이라는 시를 낭송할테니 한 소절씩 따라해 주세요.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하시고 함께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해인 수녀는 올 한해 월간 샘터를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왔다. 건강관리를 위해 무리한 일정은 피하는 탓에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 번씩 '해인 수녀의 고운 말 차림표'라는 코너로 고운 말을 이야기했고, 마지막 두 달은 특별기고문 형식의 글을 통해 한 해를 되돌아보는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된 이번 특강은 이 수녀가 올 한해 샘터에 연재했던 10가지 고운 말 차림표 중에서 다섯 가지를 뽑아서 보충설명을 하고 노영심 씨의 피아노를 함께 감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근래에 생각하는 것들 몇 가지도 피정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말을 이으며 이 날의 특강을 시작했다.
고운 말 차림표를 생각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이 환자의 입장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간들을 꼽았다. "인간의 장기를 가지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거슬렸어요. 암환자 앞에서 암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감기 몸살하고 똑같다니까.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죽음 가까이 있는 게 암인데. 내 일이 아니라고 말을 쉽게 하는 것이 마음에 안 좋았어요." 이 수녀는 좋을 때뿐만이 아니라 남을 위로할 상황에서도 나는 어떤 말 차림표를 갖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말에는 세련되고 좋은 말들이 참 많은데 왜 비속한 말을 많이 쓸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 때와 장소에 맞는 말을 하자
"우리는 살면서 축하의 말이나 위로의 말을 건넬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으시겠어요', '행복하시겠어요'라는 말보다는 '땡잡았네'라는 말을 많이 쓰죠. '너무 아름다워요'라는 말보다는 '뽕간다', '죽겠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죠."
둘. 비록 흉을 보더라도 좀 더 고운 말로 순화시켜서 하자
"직장 상사를 욕하는 자리에서 '성격이 독종이다', '지랄 같다', '죽을 맛이다'보다는 '그 분 워낙 우리와 다른 데가 있으시다', '특이한 면이 있다',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녀는 어두운 이야기나 배우들의 스캔들 이야기도 너무 많이 하면 향기롭지 못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흉을 볼 경우가 있더라도 단어 선택과 표현을 조금 더 순하게 하기를 강조했다.
셋, 함부로 인격을 비하하는 표현을 삼가자
" '생각이 부족해', '조심하지' 같은 말과 '당신 IQ가 얼마야', '집에서 뭘 배웠어' 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새끼, 놈, 자식' 보다는 '몹쓸사람', '나쁜 사람'으로 바꾸어서 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또한 '돼지같이, 곰같이' 보다는 '느티나무같이, 장미같이, 버들같이' 로 바꾸어 말한다면 욕을 해도 향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쓰는 말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한 번쯤 짚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넷,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푸념과 불평은 자제하자
"푸념을 자신에게 돌리고 남을 탓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더욱 성숙한 모습입니다. '사는 게 별거 있나요', '죽지 못해 살지요' 이런 말들은 향기가 나지 않아요. 그리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고운 말로 상대방을 배려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덧붙여서 한탄과 불평의 표현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장점을 드러내서 말을 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다섯, 화가 나더라도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라
"졸도하겠다, 돌아버리겠다, 웃기고 자빠졌다는 등의 자극적인 표현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총 맞은 것처럼, 미친 존재감, 폭풍 카리스마 등 요즘에 자극적인 말들이 많은데 제가 미풍 같은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번쯤 언어습관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고운 말 쓰기에 대한 짧은 특강 후, 이해인 수녀의 시낭송과 함께 이루어진 노영심 씨의 피아노 연주는 혜화동 성당을 찾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이 수녀는 과거 수도생활 당시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해바라기 연가'를 비롯하여 투병하면서 썼던 '백일홍 편지' 등 6편의 시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주었고, 청중들은 눈을 감고 시를 음미하며 잔잔한 시 세계에 잠시 빠져보기도 했다.
이 수녀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피아니스트 노영심 씨. 그녀는 이해인 수녀와의 오랜 인연을 슬며시 풀어놓았다. "수녀님 안지 15년~16년 정도 되었는데요. 처음에 제가 부산으로 수녀님을 찾아 갔었거든요. 어렵다기보다는 이모님 같은 느낌이에요. 많이 사랑주시고, 또 이렇게 복 많이 받고 크고 있습니다(웃음).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사랑을 많이 받으면 크는 것 같아요. 마치 그늘진 곳이 햇살을 받으면서 더 크는 것처럼요."
그녀는 올 해 크리스마스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데 "봉사하면서 공연을 시작하려고 한다"면서 다문화가정을 돕는 공연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서든지 여러분들을 기쁜 얼굴로 만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서로에게 축복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게 겨울이면 저는 항상 크리스마스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건네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인사가 되네요. 너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녀는 이어 따뜻한 느낌이 나는 곡들을 몇 곡 더 연주했는데 "올 해 힘든 일이 있으면 연주 속에 함께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속에 다시 내일을 꿈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 수녀는 "가톨릭에서는 11월이 위령의 달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묵상을 많이 하게 된다" 면서 전에는 "무심이 들어 넘기곤 했던 말이 생생하고 주의 깊게 살아온다"고 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 날' 또는 '삶이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 시간' 같은 구절을 접할 때면 이러한 말들을 "굉장히 깊이, 절절하게 되새김하게 된다"고 하면서 "이 또한 아픔이 주는 축복인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조금만 더 감사하고, 조금만 더 감탄할 줄 알고, 조금만 더 겸손하고, 조금만 더 고운 말을 쓰는 우리가 되자.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아픔을 체험하면서 달라는 기도보다는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견주어서 나는 괜찮으니까 고맙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감사해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삶을 누군가와 비교할 때의 감사가 아니라 그 자체를 감사하면서 삽니다." 또한 "조금만 더 놀라워하는 연습, 감탄하는 연습을 하라"고 주문하면서 "당연한 것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는 우리가 되도록 그런 은총을 청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겸손도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남한테 잊히는 것, 조금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겸손함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연말연시에 가져야 할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해인 수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었지만 너무 똑같은 말들만 하니까 말이 위로가 되기는 하는데 고독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특히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며 말을 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옆방에 계시던 추기경님께서 저를 불러서 갔었는데 최고의 종교 지도자는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지 솔직히 궁금했어요." 힘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이겨내고 있는 그녀에게 거룩한 종교적 말씀이나 위로의 말을 하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들은 말은 신앙이나 기도에 대한 거룩한 말이 아닌 이 말 한 마디였다고 한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그녀는 그 한 마디가 너무 진심으로 다가와서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대단하다는 그 말씀 속에 앞으로 잘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있는 것 같았다" 면서 어떤 교훈적인 말보다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고 그 날을 회상했다.
그녀는 특강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보내는 하루만이 전 생애라는 묵상을 하면서 2011년 한 해도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한다"면서 12월호 샘터에 실린 연말 인사도 함께 전했다.
또다시 가는 한 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참 고마워요. 힘들어도 아름다운 일 년이었어요!"
또다시 오는 한 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참 고마워요. 또 하루하루 살아갈 새 힘을 당신이 주실 거지요?"
이해인 수녀와 노영심 씨. 이모님과 조카의 다정한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던 시간이었다. 녹음된 목소리가 아니라 직접 옆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강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이 수녀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말과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었을 것이다. 이해인 수녀가 전해준 꽃다발 같은 말,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특강에서 이 수녀가 전해주는 고운 말들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밝고 훈훈한 온정이 느껴졌다. 특강에 참석한 이들은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가운데 이해인 수녀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말 속에서 언어의 향기를 듬뿍 얻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하는 많은 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하고, 무심코 전한 한 마디의 말 때문에 친했던 사이가 서먹서먹해지기도 한다. 자신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아름다운 말 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 날의 특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올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신 이해인 수녀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를 통해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해인 수녀님, 늘 건강하세요!
글, 사진 / 샘터 대학생 명예기자 성도현(서강대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