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선수들은 얼짱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본질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선수 개인에겐 과도한 관심이 부담이죠. 경기 때마다 카메라가 따라다니고 경기 외적인 면을 자꾸 들여다보기 때문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면 화장을 한다든지, 얼짱 포즈를 취한다든지 하는 거죠.
이보다 더 걱정인 것은 동료들의 시선입니다. 많은 스포츠 종목이 단체경기이거나 단체전과 연관돼 있습니다. 똑같이 힘든 미션을 수행하는데 유독 얼짱이라는 이유로 특정 선수에게만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진다면 동료들의 질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코칭스태프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얼짱’이라는 수식어를 받는 선수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실력도 월등히 뛰어나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그런 모습이죠. 속된말로 ‘엄친딸’이라고나 할까요.
<남자 단체전 시상식이 끝나고 모두가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있을 무렵 김은별선수가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해 줬습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시작하면서 ‘5대 얼짱’이라는 화두가 등장했습니다. 차유람 손연재 정다래 이슬아 한송이 등인데요. 특별한 이슈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대회 초반, 5대 얼짱은 나름대로 제 구실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아시안게임에 쏠리게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5대 얼짱은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작위적일 수 있습니다. 연말에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고민처럼 말이죠. 자칫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피해자라고나 할까요? 근대5종에 출전하고 있는 김은별(21, 한국체육대학교)이 내심 서운할 뻔 했습니다. 그래서 제 6의 얼짱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봤습니다.
당연히 스포츠 선수를 외모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실력이 갖춰져야 합니다. 김은별은 아시안게임 근대5종 여자 단체전 은메달 리스트입니다. 양수진 문예린 최민지와 함께 인간 한계에 도전해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종목은 어떨까요? 하루에 펜싱, 수영 200m, 승마 장애물 비월, 크로스컨트리 3km와 권총사격 등 5가지 종목을 치러야 합니다. 마지막 종목인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은 복합경기로 치러지는데 결승점을 통과하는 선수들은 마라톤 완주 이상의 피로도를 호소합니다. 각 종목의 점수를 모아 총점을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순위를 정합니다.
근대5종 여자 대표팀은 17살의 고교생과 스물 한두 살의 대학생들로 구성 돼 있습니다.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힘들게 응원석에서 김은별 선수의 모습(맨 오른쪽)을 찾았습니다. 남자 대표팀을 목청껏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선글라스도 잘 어울리네요.>
이만한 업적이 있으니 이제 얼짱을 이야기 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김은별은 선이 굵은 서구형 미인입니다. 승마 종목이 있기 때문에 평소 상무에서 훈련을 했다는데 ‘상무의 이민정’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한눈에 미모가 확 들어옵니다. 이런 김은별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눈물’로 통합니다. 지난 23일 여자부 경기가 있었는데요. 매 종목을 마칠 때마다 눈물을 쏟아냈다고 하네요. 수영 경기를 할 때는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이 한국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죠.
24일 아오티 근대5종 경기장에서 김은별을 만났습니다. 김은별은 전날의 격한 감정을 추스르고 남자부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관중의 자격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김은별에게 눈물에 대해 물었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것처럼 기록이 안 나와 속상해 운 것이 아니었어요. 사실 성적은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은메달도 충분히 값지고, 개인 기록도 목표했던 것만큼 거둘 수 있어서 별로 아쉬움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냥 이번 대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를 때부터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23일 경기 때는 종목이 끝날 때마다 펑펑 울었죠. 아마도 운동을 너무 힘들게 해서 그런가 봐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김은별은 중학교 때까지 수영을 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수영 스타의 꿈을 키웠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종목을 바꿨습니다. 일종의 전향인데요.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결정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근대5종은 체력적인 고통도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마음의 눈물, 인간 한계의 눈물이 범벅이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김은별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이 그 동안 경험한 가장 큰 대회이고 그 대회에서 값진 은메달을 수확했습니다. 이제 눈물이 이해가 가나요?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한 근대5종 선수단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가운데뒷줄에 김은별 선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큰 대회를 앞두고 얼짱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김은별도 역시 스포츠맨이었습니다. “당연히 부담스러웠죠.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별로 바람직한 모양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로 인해서 근대5종이라는 종목이 알려지는 것은 좋았어요. 이번 대회를 계기로 근대5종의 저변이 확대됐으면 해요. 선수층도 두터워지고 여자 실업팀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데 실업팀이 없어 대학 졸업 후가 걱정이에요.”
혹시 5대 얼짱에 뽑히지 않은 것이 서운하지는 않았을까요? 이 질문에 김은별은 수줍게 웃었습니다. “사실 여기 와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기사가 화제가 되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친구가 알려줘서 알았어요”라며 웃기만 했습니다. 여자의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요?
박수를 받을 만한 일에는 큰 박수가 필요합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해 값진 결실을 거둔 이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김은별의 말처럼 실업팀도 생겨서 척박한 스포츠 토양도 살찌워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