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세적(王世績)을 패배하게 한 강이식(姜以式)의 뛰어난 지략
왕세적이 이끄는 수군(隨軍)이 개모성(蓋牟城)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성주인 모달(模達) 손자연(孫子然)은 행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성문을 걸어 잠그도록 하였다.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은 장수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모달(模達) 재증협무(再曾協武)를 돌아보며 말했다.
“치욕을 씻을 기회를 주겠다. 자네에게 일만의 군사를 내줄 테니, 낙수계곡(落水溪谷)으로 가서 매복하고 있거라. 내가 왕세적을 그쪽으로 유인하겠다.”
재증협무는 강이식의 마음 씀씀이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부장(副將)으로서 주장(主將)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자책감이 그의 마음속에서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패잔병을 거느리고 개모성으로 도망쳐 왔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해서 그만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 자진(自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죽음조차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연자유의 복수는 그가 완수해야할 의무였기 때문이었다. 고구려의 무사에게 있어 패배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만일 누군가 대신 그 고통을 적군에게 되돌려 주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안식(安息)을 얻을 수 없었다. 재증협무는 연자유가 영계(靈界)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니 강이식은 재증협무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었다.
강이식은 이어서 개모성주 손자연에게 명령했다.
“성주께서는 개모성을 지키며 저항하다가 적당한 때에 패전한 척 북문으로 달아나시오. 왕세적은 의심이 많아 쫓으려 하지 않을 테니, 북림(北林)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수군(隨軍)이 도망쳐 오면 그들의 퇴로를 막으시오.”
모든 장수들에게 할 일을 일러준 강이식은 출전 준비를 위해서 처소로 돌아왔다.
왕세적의 군대가 성 앞에 도착하자 개모성에서도 고구려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달려 나와 대형을 갖추었다. 개모성은 험한 산 위에 위치한데다가 요동성이나 신성에 비해 주둔한 군사가 그리 많지 않은 규모가 작은 성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수성전(守城戰)으로 이점을 취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왕세적은 개모성 안에 있는 고구려군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항해 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강이식이 마상(馬上)에서 등편(藤鞭)으로 적진을 향해 내뻗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고구려군은 요란하게 말발굽 소리를 내며 수군을 향해 돌격해 들어왔다. 왕세적도 응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좌우에서 깃발이 흔들렸다. 수군의 진영이 두 대로 갈라지고 선두에 선 수군의 경기병(輕騎兵)들이 고구려군의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고구려군의 중장기병(重裝騎兵)들이 이에 맞섰다. 하지만 수군의 경기병들은 이들을 지나쳐 고구려군의 보병(步兵) 부대가 위치한 후미를 쳤다. 이곳이 바로 고구려군의 허점이었다. 고구려 중장기병은 무거운 철갑을 두른데다가 전속력으로 내닫고 있었기에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날렵한 수군의 경기병은 수적 우세를 이용해서 고구려군의 후미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중장기병의 뒤를 따르던 고구려군의 보병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 보고 수군의 경기병들에게 쫓겨 달아났다. 강이식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본 왕세적은 별장 장덕평에게 개모성을 공격해서 탈취하라 명하고, 자신은 주력군을 이끌고 달아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였다.
장덕평의 부대가 개모성을 공격해오자 개모성주 손자연은 강이식의 지시대로 한동안 교전하다가 못 이기는 척 성을 버리고 북문을 통해 달아났다.
왕세적은 강이식이 뛰어난 양장(良將)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를 한시라도 빨리 자신 앞에 굴복시키고 싶었다. 전장(戰將)에서 호적수(好敵手)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런 상태와 맞붙어 완벽하게 무릎을 꿇리는 것은 장수(將帥)로서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왕세적은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런 허영심은 왕세적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평소대로 냉정을 유지했다면 자신이 너무 깊숙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달아나는 강이식의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한참을 쫓다 보니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고구려 군사들은 숲 속으로 뛰어들어가 모습을 갑추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왕세적은 자신이 어느새 산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덧 계곡으로 변했다. 어찌나 좁은지 두 사람의 기마병이 나란히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왕세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이 막히고 등줄기에는 식은 땀이 홍건하게 배었다. 왕세적은 말을 세우고 주변을 살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더 이상 고구려군을 쫓는 것은 위험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봄날의 안개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왕세적은 군사들에게 그만 추격을 단념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함성과 더불어 수백대의 화살이 수병(隨兵)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왕세적은 당황하는 부하들을 진정시키고 고구려군의 위치를 파악하여 다시 추격을 명령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몇 차례 화살을 날리다가 이내 등을 보이며 계곡의 바위들을 뛰어 건넜다. 인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수나라 군사들은 고구려군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고구려 군사들은 수군과의 간격을 점차 벌리더니 결국 종적을 감추었다.
초저녁 때에 이르자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하더니 앞사람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낭장(郎將) 악소부(岳素浮)가 상관인 왕세적에게 간했다.
“이곳에 계속 머물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숲을 벗어나야 합니다.”
왕세적이 주변을 둘러보니 계곡에 가득 찬 부하 군졸들이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왕세적은 자신이 부하들을 사지(死地)로 끌여들였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실을 직시하고 군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사방을 경계하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수나라 군사들은 명령에 따라 횃불을 들고 계곡의 하류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내려갔는데 군사들의 발걸음이 더뎌졌다. 선두에서 전령이 달려와 계곡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군사들이 술렁였다. 하류로 갈수록 계곡이 넓어지는 것이 보통인지라, 왕세적은 적이 당황스러웠다. 만일 자신이 적장이라면 이곳에 복병을 숨겨 두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는 최대한 이 험지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왕세적의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하고 말았다. 수군(隨軍)이 좁은 계곡을 힘겹게 빠져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계곡 양쪽의 높은 절벽 위에서 통나무와 염초뭉치들이 굴러 내리더니 곧이어 불화살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재증협무가 강이식의 지시를 받고 미리 절벽 위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나라 군사들은 좁은 계곡에 호박 속처럼 꽉 들어차 있었기에 몸을 돌리기조차 어려웠다. 군사들은 비명소리와 더불어 통나무와 바위에 깔리고 불화살에 몸이 관통되어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왕세적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낙수계곡을 빠져나왔다. 그는 패잔병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앞에서 한떼의 군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이제는 죽었구나.”
왕세적은 그 순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그가 넋을 잃고 마상에 앉아있는데 낭장 악소무가 기쁨에 들떠 외쳤다.
“저것은 고구려군이 아니라 장덕평이 이끈 아군입니다.”
왕세적은 그제야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개모성을 공격하라고 보냈던 장덕평의 부대가 분명했다. 장덕평의 믿음직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덕평이 달려와 왕세적을 위로했다.
“부원수께서 낙수계곡에 갇히셨다 해서 이렇게 군사를 끌고 오는 길입니다. 조금만 가면 개모성입니다. 우리 군사가 개모성을 점령했습니다.”
간신히 기운을 차린 왕세적은 장덕평이 거느리고 온 군사들과 합세해 개모성으로 나아갔다.
개모성으로 가는 길에 울창한 수풀이 있는데 인근 백성들은 이를 북림(北林)이라 불렀다. 왕세적 일행이 북림의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함성이 울리더니 좌우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화살은 사정없이 수나라의 군마를 덮쳤다. 여기저기에서 수병(隨兵)들이 고통스럽게 죽어나갔다. 낙수계곡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수나라의 패잔병들은 기진맥진해서 더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간신히 장덕평이 거느린 군사들이 고구려군에 대항해 싸우려 했지만 불가항력(不可抗力)이었다.
화살 세례가 그치더니,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면서 매복하고 있던 개모성주 손자연의 군사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살아남은 수병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낙수계곡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진 왕세적은 눈앞에 선 고구려 군사들이 저승에서 온 사자처럼 여겨졌다. 그는 타고 있던 군마(軍馬)조차 잃고 호위 무사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다가 다리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수나라의 명장 왕세적이 바로 그대인가? 이곳까지 오느라 노고가 많았다.”
위압적인 기세로 버티고 서 있는 고구려의 군마 사이로 봄바람처럼 살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적이 힘겹게 고개를 드니 칠십대 후반의 기품이 흐르는 노인 하나가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세적은 강이식을 굴복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오히려 그의 계책에 놀아나다가 비참한 꼴이 됐다고 생각되니 참담한 패배감이 밀려 왔다. 일이 이쯤 되니 왕세적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장에게는 오로지 죽음만 있을 따름이었다.
왕세적은 바닥에 주저않은 채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이를 본 강이식은 황급히 맥궁(貊弓)을 들어 왕세적의 오른팔을 향해 쏘았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왕세적의 오른팔에 적중했고, 왕세적은 비명을 지르며 칼을 놓쳤다.
“이곳은 네놈이 죽을 자리가 아니다. 내 너를 살려 줄 터이니 장안으로 돌아가서 너의 주군에게 고구려 공격을 단념하라고 일러라. 만일 헛된 야욕을 버리지 않고 다시 쳐들어온다면, 그때가 바로 수(隨)가 멸망하는 날이 될 것이다.”
강이식의 호통 소리에 왕세적은 넋을 잃고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이렇게 하여 고구려를 침범하여 개모성을 공략하던 왕세적의 군대는 강이식의 뛰어난 전술과 주도면밀한 계략에 말려들어 2만에 이르는 병력을 잃고 쓸쓸히 요하를 건너, 기다리고 있던 한왕 양량의 군사들과 함께 장안으로 철수했다.
그리하여 고구려 침략을 시도하던 삼십만 수군(隨軍) 가운데 삼만명 남짓 되는 패잔병만 살아 돌아갔던 것이었다. 이로써 제1차 여수전쟁(麗隨戰爭)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제1차 여수전쟁 때에 고구려군을 총지휘하여 수군의 침략을 물리친 강이식(姜以式)은 진주(晉州) 강씨(姜氏) 가문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최고 저작『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의하면「서곽잡록(西郭雜錄)」이라는 문헌을 이용해 강이식의 전공(戰功)을 전하고 있는데,『수서(隨書)』의 기록에는 고구려를 침략한 수군이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태풍과 전** 때문에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철수한 것임을 강조한 왜곡된 서술로 중국사의 치욕을 은폐하고 있다며 비판하였다. 강이식의 묘는 만주의 심양현(瀋陽縣) 원수림(元帥林)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봉길선(奉吉線) 원수림(元帥林)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고 새겨진 큰 비석이 있었으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때에 소멸되었고, 묘역에는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남아 있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