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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펌] [소설+펌]

에효;; |2011.02.15 13:29
조회 466 |추천 1

필요없는 말씨름은 끝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naver.com/dlsp333?Redirect=Log&logNo=50098849860

님 블러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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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 게이트  <상>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실제 지명은 사정상 밝힐 수 없습니다.)


쉴 곳을 잃은 자는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살의를 품고......

 

 


때늦은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습기가 얼굴을 스치자, 재원이와 함께 만났던 그 여자
가 생각났다.
재원이, 자식... 아직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 여자를 만난 날도 이렇게 스산한 날씨였다.
재원이는 내키지 않았던 내게 귀찮을 정도로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항상 들어갈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병원은 차가운 느낌을 준다.
특히 철문으로 닫혀있는 정신병동에 들어갈 때는 일말에 공포까지
느껴진다. 재원이가 정신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미리 받았다고 했지만, 워낙 패쇄적이고 엄격한 곳이라 밤 늦은 시
간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가야 했다. 재원이 말로는 자기와 친한
선배가 당직 일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
만, 그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알려진다면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캄캄한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원 제일 구석에 있는 격리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 레지던트는 그 격리실 문을 열기전에, 약간
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조심해라!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뛰어나와서 날 부르고!
스테이션에 있을테니.."

그 말에, 생각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갑자기 으시시함이 느껴
졌다. 격리실안에 말로만 듣던 미친 살인마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
였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격리실 문을 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격리실안의 불을 켜자, 서너평 남짓한 하얀 병실에 침실
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졌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신병
자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압박복을 입고, 침대에 묶여져 있는 것
이었다. 꽤 발작이 심한 환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섬?함이 느껴졌다. 광기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첫 눈에 봐도 그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재원이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두 개 끌고와 그여자 머리맡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지연씨, 제가 지연씨 얘기 믿어줄 신문기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얘기 다 해주세요...
이 분은 정말 지연씨 얘기 다 들어줄거예요.."

재원이의 거짓말덕분에 갑자기 기자가 된 나는, 누운채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치곤 괴기할 정도로 낮은 목소
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내게 얘기했다.

"기자 아저씨, 내 모든 얘기 다 해줄테니,
제발 날 여기서 끄내줘요!
여기 이렇게 있다간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다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어 드리겠다고 했지만, 정신병자
를 속인다는 것이 마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괴
기함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얘기인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재원이 나는 침대에 묶여있는 미친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보였고, 얘기 중에도 계속
주위를 돌아보는 등 불안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얘기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지 설명 아닌 설명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일 줄은 아직 모르지만...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의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거예요.
꿈속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언제가 나를 데리러 오겠죠.
지옥에서..
그러니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줘요! 제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했었어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이었죠..
그 일을 5년동안이나 하고 있었죠.
아시다 시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에요.
다만, 매연을 들이마시며 하루 8시간씩 자리에 앉아 돈을 받는 일
이란 단조로움과의 싸움이지요.
일이 단순할수록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았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담당하는 톨게이트는 충청북도 P시로 나가는 곳이었어요.
아주 작은 곳이었죠.
통행료 받는 곳이 왕복 6개 밖에 없고, 그나마 평상시에는 3곳을
운영해요. 추석 등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요..
추석때 말이 나와서 그렇지, 그때는 정말 난리가 나요.
바로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면 큰 공원묘지가 있었거든요.
추석때만 되면, 하루종일 한번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통
행료를 받아야 해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요.
돈 없다고 배째라하는 식의 운전사들, 술취한 채로 운전하고 오다
가 톨게이트에 차를 박는 사람들, 졸고 있다 통행료를 내고 있던
앞차를 박아 싸우는 사람들, 통행증을 잊어버렸다며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사람들, 납치범들, 범죄자들, 차 막혔다고 욕하고 가는 사람
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요..
하지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돈만 내고 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않하고 끝날때도 있어요.
사람들과 차는 많이 지나가지만, 마치 무인도에 혼자 앉아 있는 기
분이지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되면, 하루종일 문을 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아요..
눈이나 비 올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비오는 밤마다 나타났어요...
날씨가 스산해지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항상 우리 톨게이트를 지
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인줄 알게 되었냐고요?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연은 그리 많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가을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요.
작년에는 여름에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이 난리가 났었는
데, 가을에도 역시 비가 많이 왔어요.
가을비 내리는 밤은 특히 톨게이트에서 일하기에는 참 나뻐요. 낮
에 비해 쌀쌀하고 손이 시려울 정도죠.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다만 밤에 혼자서, 간간히 지나가는 차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이 무료할 따름이었죠.
같이 당직인 숙자언니는 피곤하다며, 내게 톨게이트를 맡기고 톨게
이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자러 들어갔어요.
밤에는 돈받는 톨게이트는 하나만 열거든요.
그런데 그 날따라 비가 심하게 내려서인지, 정산소안의 전등이 나
갔어요. 통행료 정산기는 말짱한데 전등만 나간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대비해서 손전등과 촛불은
항상 준비되어 있죠. 돈은 줘야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불이 나간 날은 재수 없는 날이지요.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곳에 혼자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니까
요. 더구나 지방의 소규모 톨게이트는 아시다시피 인적이 가장 뜸
한 외곽이 있잖아요.
비까지 내리는 음산하고 으시시해졌어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등
을 들으면서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밤 3시쯤 되었을까..
지나가는 차도 뜸해지고 저도 슬슬 졸려오기 시작했어요.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잠깨라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는 DJ의 졸린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더니 잡음만 들리는
것이었어요. 몇번 만져봐도, 계속 잡음만 들렸어요.
비 때문인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고속도로쪽을 쳐다보니, 빗속을
뚫고 천천히 들어오는 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백번이상 보는 헤트라이트 불빛인데, 그때는 이상할 정
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진 것이죠.
어둠속에 혼자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것이죠..
그 불빛은 저의 두려움을 아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왔어요.
나는 괜히 겁먹을 필요없다며, 손을 내밀어 표를 받을 준비를 했어
요. 그 차는 비속에서 천천이 미끌어져와 정산소 옆에 섰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거예
요. 원래 정산소에 앉아있으면,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다 볼수 있
거든요. 정산소는 검문 목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어둠에 쌓여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표를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
기 그 사람으로부터 뭐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확 나는 것
이었어요.
그러고는 어두운 차안에서 불쑥 손이 나와, 표와 함께 돈을 내밀었
어요. 자기가 낼 금액을 이미 아는지, 돈을 같이 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히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돈과 표를 받았아요.
그런데, 그 표와 돈이 젖어있는 것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젖었으려니 하고, 표에 묻은 물기를 닦기 위해 책상위
에 있는 휴지를 집어들었어요. 젖은 채로 표를 정산기에 넣으면 고
장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채 출발해버렸어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저는 멀어지는 그 차의 뒷
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번호판은 물론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
어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고, 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차 운전사 가짜 돈을 내고 도망가는 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되
면 가끔 그런식으로 아무런 종이나 내놓고 도망가버리는 차들이 있
거든요.
그 차도 그런 차인줄 알았아요.
혹시나하고 젖어있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춰보
았어요.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해 돈이 아닌 줄 알았어요.
시커먼게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어요.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쳤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환해졌죠.
그 순간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돈과 표에 묻은 것은 빗물이 아니라,
새빨간 핏물이였던 것이었어요.
몸서리를 치며, 그 피묻은 표와 돈을 치웠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제대로 켜지고, 정산소안의
불도 들어왔어요.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표와 돈을 줏어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차에 탔던 사람이 단지 코피를 흘렸다거나, 손을 베서 피가 묻
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피묻은 표와 돈을 집어들자, 왠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그래서 대충 핏물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리기 위해 책상 구석에
치워놨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숙자 언니가 정산소로 들어왔어요.
이제 자기가 교대해줄테니, 사무실에서 눈좀 붙이라고 했어요.
그날 밤은 더 이상 정산소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 그냥 사무실에 들
어갔어요.
사무실 당직실에 누워, 그 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
었어요.
기억나지 않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웅성웅성하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어느새 환한 아침이더군요.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있고..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요. 저는 퇴근 준비나 할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
데, 전화를 받고 있던 소장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어
요. 사무실안에 있던 우리들은 소장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갑
자기 조용해졌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소장님은 자기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
다보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그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야간 근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지금 들은 얘긴데,
어젯밤에 경상남도 L톨게이트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직원이 살해당했데요.
그것도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군요.
뭐, 팔이 잘리고, 목이 난도질당한 채로 발견되었데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통행료를 노린 강도일 것 같으니
각자 조심하도록 하세요..
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고 있어...'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뭔가 맞은 듯한 충격으로
멍해졌어요.
전날 밤 받은 피묻은 그 표가 바로
L 톨게이트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톨 게이트 <중>

그 여자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이런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을때는 담배라도 한 대 피면서 듣고 싶었
다. 담배를 꺼내며 재원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가로젖는 모습
에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묶여진 채로 고개만 움직이며 얘기를 하고 있는 그 여자와, 의자에 앉
아 이상한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물을 먹여주었고, 그 여자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 지 숨돌리기가 무섭게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놀란 저는 전날 밤 제가 경험했던 얘기를 해 주었어요.
소장님은 좀 심각하게 받아들었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어
요. 사실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해봤거든요. 받은 표와 돈에 피가 묻
어있었던 적도 있고, 숙자 언니는 자기가 받아든 표에 어떻게 된 일인
지 냄새가 고약한 대변이 묻어져 있는 적도 있었대요.
그러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얘기는 잘 믿겨지지 않나
봤어요.
소장님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해서 제가 받은 피묻은 표와 돈을 가져
갔지만 피를 닦아내고 밤새 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 핏자국만 남아있
는 상태였어요.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젊은 형사가 직접 그 표를 가지러 왔어
요. 그 형사 말로는 그 피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 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인데, 이 정도 핏자국으로는 밝혀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어요. 무슨 DNA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형사가 살해당한 검표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줬는데, 정
말 끔찍했어요. 살해당한 시체의 모양을 보면, 차를 몰고 톨게이트로
들어온 살인범이 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민 피해자의 손을 잡아당긴
다음에 날카로운 칼로 얼굴과 목을 난자했데요. 그리고 발버둥치던 그
불쌍한 피해자의 팔을 잘라버렸데요.
범행 현장을 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정말 끔찍하다고 했어요. 피해
자는 즉시 죽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
어 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받았던 그 표에 묻어있던 피가 그런 끔찍
한 살인의 자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다
리 힘이 쫙 풀렸어요.
그래도 곧 범인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그 젊은 형사의 말에
나름대로 안심을 하고 퇴근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얼굴 없는 사람의 악몽에 시달렸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에 느꼈던 공포심도 점차 사라지고, 일상적인 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아직 그 톨게이트 살인범의 단서조차 못 잡
았다고 했어요. 제가 준 표에 묻은 피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래도 며칠 동안 무서워 야간 당직을 피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
탁해 당직을 계속 바꿨던 거예요.
며칠은 그런 식으로 당직을 안 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어요.
야간 당직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어지고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저녁 먹고, 톨 게이트로 나서는데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어
요. 비가 오니 괜히 불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번잡한 퇴근 시간이 지나자, 금새 톨 게이트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
어요. 가늘던 비는 더 굵어졌어요.
비가 오는 밤이 되니, 괜히 그날 밤이 생각났어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는 헤트라이트만 보면 가슴이 괜히 철렁해졌어
요. 우습게 생각하시죠.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동차 불빛만 보면 무서워한다는게.
몇 번을 마음을 졸이면서 빨리 밤이 새기를 바랬어요.
시간은 참 느리게 갔어요.
밤 3시쯤 되서 같이 당직을 서게 된 경수엄마와 교대를 했어요.
몇 시간만 버티면 차도 많아지고 날도 밝아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주위는 칠흙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있고, 비는 점점 거세
지고 있는 거예요.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어요.
한 30동안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아요.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정산소 전등이 지지직거리고 깜박거리기 시작했어요.
몇번을 지직거리다가 전등이 나갔어요.
동시에 라디오도 꺼졌어요.
갑자기 그날 밤 생각이 나서 겁이 덜컥 났어요.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둠이 정산소 주변을 덮고 있었어요.
단지 빗소리만 들렸지만, 그 빗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무서워졌어요. 어디서 뭔가가 나타날지 몰랐어요.
손전등과 촛불을 켜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켤 수 없었어
요. 마음 같아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 고속도로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하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
어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붓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어
요.
점점 다가오는 그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마치 악마의 눈처럼 느껴졌어
요. 왠지 모르게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불빛 같았어요.
그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너무 무서워서 손하
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빗속을 뚫고 그 차는 미끄러져 왔어요.
이윽고 톨게이트로 진입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있던 정산소 앞에 차를 세웠어요.
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차쪽을 바라보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날 밤 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두워서 차 색깔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이나 어두운 색
같았어요. 차속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창문이 열리고, 표와 돈을 든 손이 나왔어요.
그날 났던 그 뭔가 썩는 듯한 기분나쁜 냄새가 확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손을 내밀어 그 표와 돈을 받을 수 없었어요.
그냥 그 차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하지만 그 차는 시동을 건 채 그냥 서 있었어요.
손에 그 표와 돈을 든 채.
마치 저를 기다리는 죽음의 사신같았어요.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갑자기 "빵"하고 그 차가 경적을 올렸어요.
빨리 표와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같았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어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뻗어 그 표와 돈을 받았어요.
저는 자동차 안 어둠 속에서 칼아 튀어나와 내 손을 자를 것 같아 숨
마저 쉴 수 없었어요.
그 표와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그 차는 출발해버렸어요.
그 차는 이번에도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그 차가 주고 간 표를 쥔 채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표와 돈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어요.
확인하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표와 돈에 시뻘건 피가 범벅이 되어있던 거예요.
그 시뻘건 피에 충격을 받아 저는 의식을 잃었어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어요.
간신히 눈을 떠보니, 같이 당직을 서던 경수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경수 엄마가 새벽 4시반 쯤 당직을 교대해 주려고
정산소로 왔는데, 제가 기절해 있었다는 거예요.
한손에는 손전등을 쥐고 있는 채로.
저는 놀라서 경수 엄마에게 그 표에 대해 물어보았죠. 경수 엄마는 그
런 피묻은 표는 보지도 못했다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저는, 어안이 벙벙한 체 나를 보고 있는 경수 엄
마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산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 비를 맞으
면서 미친 듯이 그 표를 찾아봤어요.
손전등을 가지고 찾다보니, 바로 정산소 앞에 떨어진 표 한 장을 발견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빗물에 씻겼는지, 그 표에는 핏자국이 거의
않보였어요.
이번에는 진입지가 경상북도 M 톨게이트로 되어있는 표였어요.
경수 엄마는 그 표를 가지고 멍하는 서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어요.
저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수엄마에게 설명했지만, 경수 엄마는 오
히려 제 말을 믿지않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소장님이라도 빨리 출근하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요. 소장님이라면 제 얘기를 믿어 줄 것 같았어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경수엄마는 저를 사무실에서 쉬게 했어요.
아침이 되자 한 사람씩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전날밤 또 그 차가 피묻은 표를 주고 갔다고 말했지
만, 다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소장님이 출근하지 마자, 저는 또 그 차를 봤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소장님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저를 대했어요.
똑같은 일이 똑같은 사람에게만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 좀 이상했나봐
요. 다들 제가 졸다가 꿈꾼 것을 착각했거나, 그냥 지어낸 얘기로 생
각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소장님도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소장님에게 전화가 한통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던 소장님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목소리
가 높아졌어요.

'뭐라고요? 경상북도 M 톨게이트라고요?
이번에도 똑같단 말이예요?'

M 톨게이트라는 말을 듣자 저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무서워졌어요.
전화를 끊은 소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얘기했어요.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데요.
이번에는 경상북도 M 톨게이트에서 일어났데요.
지난번과 똑같이 정산소에서 표 받던 직원이 팔을 잘린채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네요.
어쩌면 지연씨가 본 그 차에 진짜 범인이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휴..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야?'

다들 그 얘기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벽에 걸려있는 고속도로 지도를 보고 눈을 땔 수
없었어요. 왠지 지도에 자꾸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잘 알 수 없
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멍할 정도의 전율과 두려움으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어요..
처음에 살인사건이 난 경상남도 L톨 게이트와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
생한 M 톨 게이트 사이에는 3개의 톨 게이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살인 장소인 M 톨 게이트로부터 4번째에 위치한 톨 게이트는
바로 우리 톨 게이트였어요.
지도에 따른 다면,
다음 살인은 바로 우리 톨 게이트에서 일어난다는 얘기였죠.....


두 번째 사건이 있은 후, 모두들 공포에 떨었어요...
특히 야간 당직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더구나 저는 다음번
에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더욱
무서웠어요. 그래서 고속도로 관리공단 측에서는 모든 톨게이트에 호
신용 가스총을 비치하고, 야간 당직은 당분간 남자 직원들만 세우기로
했어요. 경찰의 추리에 의하면, 그 살인범이 정신 이상자이거나, 톨게
이트만 노리는 살인 강도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살인범은 현장에서 살인만 했지 돈을 훔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단지 한적한 톨게이트를 골라 표 받는 직원들을 잔
인하게 죽여왔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그러니 더욱 무서워졌죠. 차라리 강도면 그래도 난데, 이건 살인을 일
삼는 싸이코라니...
여하튼 제가 목격했던 그 차가 살인범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
기에 다시 그 젊은 형사가 찾아왔어요.
그 형사는 제 얘기를 듣더니, 제가 봤다는 차와 안에 탄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아보았어요. 그러나 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 차와 운전사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도 않았고, 특징
적인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아요, 단지 어두운 색깔의 차와 기분나
쁜 냄새가 전부였어요.
처음에는 흥미를 가진 것으로 보였던 그 젊은 형사도, 저의 모호한 증
언에 좀 실망한 듯 보였어요. 나중에는 암만 제가 강하게 얘기해도 건
성으로 듣는 것 같았아요. 제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나 봐
요. 더구나 그 차가 나타날 때 마다 꺼지는 전등과 라디오의 얘기까지
해 주었더니 완전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더군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형식적으로 수사에 고맙다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형사에게 제가 처
음에 받았던 그 피묻은 표에 대해 물어봤어요. 형사는 피식 웃더니 그
검사결과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 표에서 나온 피는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
다더군요. 그러니 저를 더욱 안 믿은 거였어요.
이번에 받은 표도 거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살인이 발생한 톨 게이트들을 보면 다음은 우리 톨
게이트 같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형사는 그 얘기 역시 상상력 풍부
한 저의 황당한 추리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어요. 수사에 참고하겠
다는 의례적인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고..
형사는 시간낭비 했다는 듯이 돌아갔어요.
제 얘기를 안 믿는데 안타깝고 답답했어요.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 얘기가 지어낸 황당한 얘
기를 들릴 수 있을 것 같았아요. 형사 말대로 한 미친놈이 돌아다니면
서 닥치는대로 살해한다는 것이 사실이고, 제가 본 것이 그 미친 놈이
라고 생각하니 무섭고 끔찍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차라리 제가 헛것을 본 거나, 평범한 사람인데 겁에 질려 상상해낸 것
이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퇴근할 때마다, 야간 당직 때문에 출근하는 남자 직원들을 볼 때 마다
안쓰럽고 걱정되었어요. 하지만 가스총 때문인지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살인마가 이제 살인은 멈추고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강박관념처럼 저를 따라다니던 그 차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잡담을 하다가 경수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께.
우리 바깥양반이 톨 게이트 지나자마자 있는 공원묘지에서
관리인을 하고 있잖아.
며칠전 그이에게 톨 게이트 살인사건하고 지연이가 봤다던
그 시꺼먼 차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더니,
자기가 농담조로 그 범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지난 여름에 비가 엄청많이 왔잖아.
그때 온 비로 남편이 근무하던 공원묘지도 난리가 났데.
너무 많이 온 비로 많은 묘지들이 유실되고, 시신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다는 거야. 300구가 넘는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거야.
불행중 다행인지 공원 묘지 근처에 강이 없어, 시체들이 다른 곳처럼
강물에 떠내려가지는 않았데.
그래도 자기 조상이나 가족의 시체가 없어진 사람들은 난리가 났지.
빨리 시신을 찾아내라고 난리였대.
우리 남편도 몇주동안 그 없어진 시체를 찾아 묘지 근처를
돌아다녔대. 대부분의 시체는 묘지 입구 어귀 밭에서 찾아냈대.
딴데보다는 쉬웠지만, 그래도 썩을대로 썩고 물에 불은 시체들을
찾는 것 정말 싫은 일이었데.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했는데, 시체를 찾아주며 돈을 받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는 거야, 글쎄..
그 사람들은 시신을 못 찾아 안달이 난 가족들에게 얼마씩 받고
시신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는 거야.
남편은 처음에 별일로 돈을 다 버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기막힐 정도로 시신을 잘 찾아왔데.
그것도 가족이 원했던 그 시체라는 거야.
남편은 그 사람들이 너무 시체를 잘 찾아, 어디서 훔쳐오는 줄
알았데. 그래서 찾는 것을 보러 직접 따라 갔데.
그 사람들은 남편처럼 무식하게 돌아 다니는 식으로 시체를 찾는 것
이 아니었데. 먼저 가족으로부터 찾으려는 시신이 살아생전 쓰던 물
건을 하나 받는데. 그것이 없으면 가족이 쓰던 물건이던지 아니면 제
일 좋아했던 물건과 같은 종류라도 달라고 했데.
그 사람들 중에 멀쩡한 젊은이가 그 물건을 가지고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같더니 눈을 번쩍 뜨고 외쳤다
는 거야. 서남쪽으로 330보! 이런식으로..
그 말을 따라 그 곳에 가서 시체를 찾아보면 정말 찾을 수 있었대.
남편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믿을 수 없었대.
하지만 확실히 시체를 찾아내긴 찾아내더래.
그 사람들이 온 후로, 사실 남편도 편해졌데.
시체들을 다 찾아주니 한 시름 덜었다는 거야. 가족들도 공원 묘지
측에 맡기기보다는 몇푼 더 주고 금방 찾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찾아
달라고 했다는 거야.
일주일도 안되서 300구가 넘는 시체를 다 찾아냈데.
그런데... 딱 1구의 시체는 찾지 못했데.
딱 1구의 시체를..
남편 말로는 그 사람들도 그 시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아 찾으려
고 했지만, 못 찾았다는 거야.
무서운 얘기는 여기서 부터야.
부자로 보이는 노인이 와서 자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며
거액을 내 놓더래.
그 사람들은 그 시체가 생전에 쓰거나 좋아했던 물건을 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 노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날카로운 사냥칼을 주더래.
아무 생각없이 그 칼을 받아든 그 사람들은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칼을 쥐고 뭔가를 찾는 듯 했데.
그런데 예전에는 5분도 안 돼서 찾던 사람들이, 그 때는 1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거야.
한참을 그런 식으로 집중하던 그 젊은 사람이 갑자기 창백해진 얼굴
로 벌떡 일어나더니 한마디 내 뱉었데.

'제기랄!
이렇게 되다니! 씨팔!!!'

그 뒤 아무말 없이 그 노인에게 받았던 돈을 돌려주고, 일행들
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더래.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
남편이 그들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았데.
처음에는 그냥 떠난다고 하다고 하다가, 자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
로 이상한 대답을 하고 사라졌데

'우리는 시체만 찾는단 말요! 돌아다니지 않는...'

남편은 그들의 이상한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돌발스런 그들의 행동에 그 노
인 역시 멍한 채로 서 있더래. 남편은 그 노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냐고 물어봤데. 노인은 한 숨을 내쉬며 신세 한탄조로 얘기하더래.

'휴... 이게 다 내 업보지.
자식 하나 잘못 둬, 이런 일까지 당했지..
죽어서도 속 썩이다니...
그 놈이 살았을 때는 지 마누라와 딸을 죽였던 잡놈이었소.
사형당한 시체를 수습해 여기다 묻었더니, 그 시체마저
없어져 속을 썩이고 있다우...'

그랬다는 거야.
이 얘기를 해주면서 남편이 그랬어.
그 톨 게이트에서 살인하고 다니는 놈이 찾지 못한 시체일지도
모른다고..
그럴 듯 하지?
자기 식구를 몰살시킨 살인자가 무덤에서 나와서 또 살인한다!
어때 좀 무섭지?'

경수 엄마의 얘기에 같이 듣고 있던 직원들은 막 웃으면서 재미있고
소름끼치는 얘기라고들 했어요. 어떤 직원은 아예 모든 얘기가 경수엄
마가 지어낸 것 아니냐고 놀려대기도 하고요. 경수 엄마는 자기 남편
이 정말 겪었던 얘기라고 했고. 여하튼 분위기는 떠도는 으시시한 얘
기 들은 것처럼 가벼운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서로 농담하는 그 분위기에서 저 혼자만은 이
상할 정도의 두려움과 불길함이 느꼈어요.
내가 본 그 차에 마치 그 사라진 살인범의 시체가 있었던 것 같은....


경수 엄마의 이야기가 제겐 그럴듯한 공포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아무
도 그 얘기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도 그 무시무시한 얘기를 잊어버
리려 했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표 받을 때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 차가 지나갈 때 나던 기분나쁜 냄새가 생각났어
요. 생각해보니, 꼭 시체 썩는 냄새 같았어요.
이런 생각까지 나니, 그 살인마는 정말 무덤에서 나온 악령같이 느껴
졌어요. 혼자만 고민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제 생각을 동료들에
게 얘기했어요.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재미없는 농담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점점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동안 그 톨 게이트 살인마가 잠잠 했어요.
분명히 제 생각에는 곧 우리 톨 게이트에 그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저는 점점 마음이 놓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신경과민증상으로 생각했어요.
긴장이 느슨해진 것은 저 뿐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남자직원들도 전부 야간 당직을 싫어했는데, 시간이 가고 아
무일도 않 생기니까 모두들 야간 당직을 자기가 하려고들 하는 것이
었어요. 그 동안 그 살인사건 때문에 야간 당직을 모두 회피하니까,
공단에서 야간 당직 수당을 좀 인상했거든요. 그러니 그 살인 사건이
없어진 것 같으니 남자 직원들은 야간 당직을 오히려 하고 싶어했던
거예요.
범인에 대한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덧
한 달이 좀 넘게 지났어요. 그 사이에 톨 게이트 일 중에서 가장 힘들
다는 추석도 지났어요.
그런 평온한 어느날이었어요.
그날도 여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고, 야간 당직을 하
기 위해 남자 직원 두 명이 출근하고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몰라 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들은 지급 받은 가스총을 카우보이처럼 흔들더니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늘 밤에 가을 가뭄을 해소할 비가 내
린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어요.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예보를 들었
어요.
밤에 잠을 이루려는데 자꾸 뭔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어
잠을 잘 잘 수가 없었어요. 잠이 덧 든 상태에서 계속 기억도 나지 않
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천둥소리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아직 밤이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3시 반이 좀 넘었어요.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한참은 더 잘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잠을 청
했어요. 번쩍 하고 번개가 치고, 좀 있다 하늘이 무너질 듯이 천둥이
쳤어요.
그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로 비 였어요.
두 번 다 그 살인마는 비올 때 나타나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 떠올랐
어요.
두 번째 살인 사건이후로 그때까지 비가 한 번도 안 내렸던 것을 깨
닫게 되었어요.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소름이 쫙 끼치고 온 몸이 부
르르 떨렸어요.
밖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어요.
잠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톨 게이트 사무실로 전화해봤어요.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안 받는거예요.
그러니까 더 불안했어요.
내가 틀렸겠지 하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잘 수가 없었어요.
대충 옷을 챙겨입고, 차를 몰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톨 게
이트로 향했어요.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떠올랐어요.
불빛 한점없는 비오는 밤길을 달리다 보니, 무서워졌어요.
저 어둠 속에서 그 살인마라도 나타날 것 같았아요.
뭔가가 뒤에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길가 암흑속에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도 같았어요.
비는 오고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자꾸 뒤가 신경쓰이
는 것이었어요. 운전하면서 뒤가 불안해 힐끗힐끗 뒤를 봤어요.
어둠 속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마저 느껴지기까지 했어요.
뭔가에 쫓기듯 빗속을 뚫고 톨 게이트를 향했어요.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톨 게이트 쪽에서 이쪽을 향하는 자동차 헤트
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톨 게이트를 지나오는 것 같은 자동차 불빛을 보자 좀 마음이 놓였어
요. 자동차가 지나다닌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얘기잖아요.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며 차의 속도를 좀 늦쳤어요.
그런데 그 차의 불빛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것이었어요.
그 차의 불빛을 보고 있던 저는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
았어요.
그 차의 불빛은 보통 헤트라이트 불빛이 아니었어요.
마치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붉은 눈빛처럼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차가 다가오자, 무서워 미칠 것 같았어요.
내 정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일초라도 빨리 그 차에서 벚어나기 위해 속력을 높였어요.
그 차는 시시각각으로 기분나쁜 헤트라이트 불빛을 발하며 덮치듯이
나를 향해 다가왔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죠.
순간 그 차는 내 옆을 지나갔어요.
눈을 감았지만, 확실히 느낀 것은 그 차에 타고 있던 그 무언가가 나
를 보고 웃었다는 거예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전 느꼈어요.
그 차는 이제까지 내게 피묻은 표를 주던 그 차였고, 그 차를 운전하
던 그 무엇은 나를 보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순식간에 그 차는 제 옆을 지나갔어요.
혹시나 하고 백밀러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에 분명히 내
옆을 지나갔던 그 차가 안보이는 것이었어요.
백 라이트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아무런 흔적 없이 암흑만이 보이는
것이었어요.
불안해하는 도중에 톨 게이트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정산소의 불빛이 다 꺼져 있던 거예요.
비가 와서 톨 게이트 안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였어요.
저는 차를 톨 게이트 앞에 세우고 손전등과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
어요.
불길한 얘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정산소로 향했어요.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비 소리 때문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를 비춰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요.
정산소 문앞에 서자 피비린내 같은 것이 났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 안을 비춰보았어요.
그 순간 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가스총을 들고 여유 있어 하던 남자 직원이
팔이 잘려 나간채 피투성이가 되어 난도질 당한채 죽어있는 것이예요.
시체의 쾡한 눈은 흉칙함을 더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 정신없이 거기에서 뛰어나왔어요.
시체가 벌떡 일어나 제 뒷덜미를 채갈까봐 비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렸어요.
나도 모르게 사무실 쪽으로 달려갔어요.
헉헉대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어요.
사무실 역시 불이 나가서 깜깜했어요.
누구 없냐고 소리쳤지만, 들리는 것은 비소리 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어요.
짧은 순간이나마 사방이 환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너무 끔찍한 것을 봤어요.
제 바로 눈앞에 고깃덩이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가 하나 보이는 것이
었어요. 그 시체의 멍한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사람들로 북적되었을 때였어요.
경찰, 직원, 응급차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어요.
내가 깨어나자, 경찰들이 몰려와 사정없이 질문을 해대는 거예요.
저는 간신히 전날 밤 본 것에 대해서 얘기했죠.
하지만, 경찰들은 제 말보다는 왜 제가 한 밤중에 여기에 왔냐고 캐
묻는 것이었어요.
마치 용의자 심문하듯이 나를 심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밤에 본 그 기분 나쁜 차와 살인마가 비올 때 마다 찾아온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역시 아무도 안믿고, 오히려 저를 의심하는 것 같더
군요.
무섭기도 답답하기도 해 미칠 것 같았어요.
경찰 말로는 피해자들이 사냥칼로 수십 번 난도질당한 채로 죽어있다
는 것이었어요.
경찰의 심문이 끝나자 저는 톨 게이트 근무를 해야 했어요.
사람은 죽었지만, 고속도로를 패쇄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오히려 직원이 둘이나 죽었기 때문에, 일손이 딸리는 형편이
었으니까요.
경찰도 벌써 3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각
톨 게이트마다 밤에 두 명의 경찰을 배치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무서워질 대로 무서워진 직원들은 야간 당직은 피하려고 했어
요. 사실 톨 게이트에서만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언제 어디서 나타
날지 모르니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 비오는 날 분명히 또 나타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여하튼 그래서 경찰 두 명이 지켜줄 때까지 우리 톨 게이트 야간 당
직은 1명으로 하기로 했어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야간당직이었지만, 직장을 그만둘 형편도 못 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도 하게 되었어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경찰
은 범인에 대한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경찰 역시 매일 밤 톨 게이트 당직을 서야 하는 것에 피곤함도 느끼
는 것 같았고요.
그러다 결국 그 날이 온 것이지요.
야간 당직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일기 예보를 확인했거든요.
혹시 밤에 비라도 오는지.
그런데 그 날은 비 올 확률은 10%미만이라도 예보에서 나왔어요.
그걸 믿고 야간 당직을 서게 되었죠.
그 실수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예요.
저와 같이 야간 당직을 하게 된 경찰은 공교롭게도 이 사건을 담당하
는 형사였어요. 왜 이쪽 담당도 아닌 그 사람이 저와 당직을 같이 하
게 되었는지 좀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어요.
여하튼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단지 아무 일도 없길 바라기만 하면서
정산소에 앉아 있었어요.
그 형사는 저와 같이 정산소에 앉아 있었고, 그와 같이 온 동료 경찰
은 톨 게이트 근처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있었어요. 두 명의 경찰은 서
로 교대하며 정산소와 차를 왔다갔다 했어요.
저는 낮에 푹 자서 별로 피곤하지 않았어요.
매일 혼자만 앉아 있는 정산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려니 좀 이상
했어요. 그것도 경찰과.
밤이 깊어지자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지고 무료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형사와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다가, 슬슬 많은 얘기를 나누었
어요. 특히 젊은 담당 형사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젊은 사
람답지 않게 침착한 것 같았어요.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무서움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경찰이 지켜주고 있는데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 저것 얘기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2시가 지나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않했던 그 형사가 점점
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제가 보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얘기했어요.
그 무덤과 못 찾은 시체 얘기까지 다 해 주었어요.
그 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 얘기를 다 들었어요.
제 얘기가 끝나자 형사가 살인사건에 대해 몇가지 의혹을 얘기해 주
었어요.

'음... 그랬어요...
하긴 이번 사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저도 많지는 않지만, 살인 현장은 꽤 봐왔거든요.
그런데 이번 살인 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좀 이상해요.
살인범이 살인을 할 때 아무런 감정없이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
원래 살인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람의 감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범죄인데, 이번 살인은 하나의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무슨 껍데기만 있는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점은 더 있어요.
이 톨 게이트에서 발생한 살인만 해도 그래요.
두 명의 피해자가 똑같이 그렇게 심하게 난도질을 당했는데도 아무
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마치 무슨 최면에 걸려있었던 것처
럼, 또는 자다가 당한 사람들처럼 전혀 반항의 흔적이 없었어요.
자다가 습격을 당해도 그 정도의 난도질을 당하면 바둥거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당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살인범이 면식범일 가능성도 있어요.
혹시 모르죠.
지연씨 말한대로 무덤에서 나온 악령이 그 범인일지도...'

형사의 말을 잘 들어보니 제 얘기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내리는 것이었어요.
비가 오기 시작하자, 저는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오늘도 분명히 그 살인마가 나타날 것 같았어요.
그 형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절부절 못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
썼어요. 하지만 두려움이 미칠 지경인 저는 빨리 여기서 도망가자고
소리쳤어요.
형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걱정말라고 하며 저를 정산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지지직 거리더니 정산소 불빛이 꺼졌어요.
그 살인마가 나타날때랑 똑 같았아요.
비가 내리고, 정산소 불이 나가고.
저는 무서움으로 실신할 지경으로 소리쳤어요.

'이제 그 놈이 나타난다고요! 그 놈이!
우리를 죽이러!!!'

불이 나가도 침착해하던 그 형사는 저를 진정시키다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었어요.
제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본 것 같았어요.
형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게 지연씨가 말하던 그 놈이 온 것 같네요'

그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악' 하는 비명 소리를 질렀어요.
거기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그 어두운 색 차가 톨 게이트 앞에서 악마
의 눈 같은 헤트라이트를 밝힌 채로 서 있는 거예요.
우리를 노려보며....

 


톨 게이트 <하>

...형사는 그 자동차 불빛을 노려보며, 다급히 무전기를 들고 차에 있
을 동료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러댔어요.

'이봐 최 형사, 그만 자고 일어나!'

최형사라는 사람은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뭐야 무슨 일이야?'
'기다리던 손님이 오신 것 같아.
톨게이트 앞쪽을 봐.'

잠시 있다 긴장된 최형사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잠깐... 어! 짙은 색 자동차가 한 대 보여.
저 차 왜 서 있지?'
'그 놈일지도 몰라'

무전기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러더니 최 형사의 목소리가 들
려왔어요.

'신발! 하필 비올 때 지랄하는거야!
차안에 우산도 없는데...
내가 나가보지.'

그 말과 함께 무전기 너머로 자동차 문소리와 함께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외쳤어요.

'최 형사! 조심해!
혼자 설쳐대지 말고!'

그런데 비 때문인지 무전기에서는 최 형사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어요. 하이빔을 켰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자동차 불빛
때문에 최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아요.
최형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전기에서 들렸지만, 뭐라고 말하는 지
잘 알아들을 수 없고 지직거리며 목소리의 일부만 들려왔어요.

'....지금....앞이야.....
..........................
차.....안.....아무도.. 안......
...............
문....앞......
경찰.......
...............
잠시.......차....내려........'

나와 형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차만 바라보고 있었
어요. 이상하게도 그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요. 지금 생각해도 왜 저와 형사가 그 순간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
는지 의문이예요...
그때였어요.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최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뭐야!.......
......아악!!'

무전기에서의 비명과 함께 창 밖에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와 동시에 총구에서 번쩍이는 듯한 불빛과 함께 '타앙!'하는
총소리가 여러번 들렸어요.
총소리는 빗속에서 매아리쳤어요.
그리곤 죽음 같은 적막이 갑자기 흘렀어요.
총소리를 듣자마자,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제기랄!'하며, 제가 말리
새도 없이 권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어요.
빗 속을 헤치고, 형사는 그 자동차로 달려갔어요.

'경찰이다!
꼼짝 말고 차에서 내려!
최 형사! 최 형사!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있어?'

불빛 때문에 형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다급한 외침만 들려왔어요.

'아니! 최 형사!!
씨팔! 어떤 새끼야!!
숨어있지 말고 빨리 나와!!
이 살인마 강아지!!'

갑자기 분노한 형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최 형사가 무슨 일을 당한 것
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저는 무서웠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 미칠
것 같았어요. 차의 불빛만 보이고, 형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어
요. 형사가 제게 뭐라고 외쳤어요.

'지연씨, 밖으로 나오지 말고 꼼짝 말고 있어요!!'

그리고는 형사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빨리 문열고 나와!!
손들고!
나와!! 이 강아지야!!'

형사가 차안에 탄 누군가를 발견하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는 차에 타있던 그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지도 몰랐지만, 형사
가 그냥 그 사람을 총으로 쏴버렸으면 했어요. 하지만 형사는 그러지
않았아요.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문열고 나와!!
빨리! 이 새끼야!!'

그 다음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게는 정말 오랜 시간처럼 느
껴졌어요. 나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철컥'하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소리와 함께 목이 쉰
것 같은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천천히 나와...'

정말 숨막힐 것 같았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릴대로 질린듯한 형사의 처절한
외침과 비명이 들려왔어요.

'뭐야..... 넌..
설마.......
아악!!!'

형사의 절규하는 비명이 들리며,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총소리가 계
속 들렸어요.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소리가 멈췄어요.
형사의 정신나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제발...
더 이상 다가오지마!!
제발!
아악!!!!!!'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처절한 비명이었어요.
그리고는 갑작스런 적막이었어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아요.
그 차의 불빛은 살기를 띤 것처럼 눈이 부실정도로 비춰대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저 불빛 너머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어
요. 두 형사는 정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요. 머리 속은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몸이 도저히 움직여지질 않았아요.
그때였어요.
죽음 같은 적막을 깨고, 자동차 불빛너머로 뭔가가 휙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요. 움직이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
릴 수 있었어요. 그 움직이는 무엇이 이번에는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
는 것을...
본능적으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산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왠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마치 밖에서 잠근 것처럼 꼼작을 않는 거예요.
미친 듯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릴 생각을 않는 거예요.
문밖에서는 뭔가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놓고 창밖을 내다 봤어요.
여전히 눈 부신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아요.
다시 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고,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런데 꼼짝도 않던 문고리가 저절로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것을 본 순간 저는 무서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 밖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것 같았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돌아가는 손잡이를 잡았어요.
하지만, 문을 열려는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해서, 필사적으로 두
손으로 잡았지만, 계속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무서워서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어요. 이 문이 열리면 나도 칼로
난도질 당해 죽을 것 같았어요.
문밖에 무엇이 문을 열려고 하는지 볼 수 없었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잡은채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머리속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를 벋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어요.
두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어느새 문 손잡이는 거의 다 돌아갔아요.
곧 문이 열릴 것 같았어요.
저는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들었어요. 단지 이 무서움에서 빠져
나가야 겠다는 생각에 몸을 전면 유리창으로 날렸어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큰 충격을 느끼며 창밖으로 나동그라
졌어요.
떨어질 때 충격으로 잠시동안 몸을 가눌 수 없었어요.
유리의 파편 때문인지, 얼굴에 끈적끈적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
요. 억수같이 내리는 비와 섞인 피는 입속으로 흘러들어와 찝찌름한
맛이 느껴쪘어요.
손이 유리 파편에 베어지는 것도 못 느끼면서,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그 놈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밖으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몸이 비틀거렸어
요.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지는 헤트라이트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불빛 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어요.
뒤에서 그 무언가가 나를 쫓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아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어요.
내가 그 때 할 수 있었던 전부는 단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뿐이었어요.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어요. 빗소리인지 그것의 발소
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제라도 제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어요.
자동차 불빛을 지나는 순간, 저는 뭔가에 걸려 호되게 넘어졌어요.
발버둥치며 일어나려는데, 발에 걸렸던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
요. 자동차 불빛에 비춰 보이는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이 있던 형사의
끔찍한 시체였어요.
가슴팍은 칼로 수십번 난도질당한 모습이어서, 허연 뼈까지 보일 듯
했어요.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눈은 공포에 질린 채로 떠 있었어요.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불빛 너머로 그것이 다가오는
것이 언뜻 보였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놈이 한 손에 들고 있
는 칼은 확실히 보였어요. 칼 끝에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요.
저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어요.
그 놈은 점점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앞을 보며 필사적으로 바둥거리며 뒤로 갔
지만, 그 검은 그림자는 점점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뭔가가 건들어졌어요.
피묻은 권총이었어요.
그 형사가 놓친 것같았아요.
본능적으로 그 권총을 쥐어서 다가오는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권총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한 손으로는 들 수 없어서, 두 손으로 잡았아요.
내게 다가오는 그 놈은 권총을 못 봤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내게
로 걸어왔어요.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어요.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손이 반동으로 위로 올라갔어
요. 하마터면 권총을 떨어뜨릴뻔 했어요.
눈을 떠보니, 그 놈은 총에 안 맞았는지 거침없이 바로 제 앞으로 다
가와있는 것이었어요.
겁이 난 저는 다시 한번 권총을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권총이 무거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겁이 나서인지 총을 든 두 손이 걷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어요.
그 놈이 바로 제 앞에 서서 칼을 든 손을 치켜들었어요.
나를 난도질하려는 것이었어요.
이번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그 놈의 안보이는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어요. 예의 강한 충격과 함께 권총이 발사된 것을 느꼈어요.
그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끈적거리는 피가 제 얼굴에 튀겼어요. 그 피
는 마치 썩은 것처럼 악취를 풍겼고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렸어요
이번엔 제대로 맞았는지, 그 놈의 고개가 뒤로 재껴지면서 주춤거리며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그 놈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것
을 그?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총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았는데도 쓰
러지기는커녕 주춤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서는 것이었어요.
그 놈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놈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이 생겼어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무서움이 극도로 다달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나 봐요.
생각할 새도 없이 그 놈의 머리통을 향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어
요.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의 머리가 다시 한번 뒤로 제껴지며 몸
까지 뒤로 밀렸어요.
알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저는 그 놈의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
어요. 그 놈은 총에 맞을 때마다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어요.
그 놈을 차 있는 데까지 몰아부치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총소리 대신
철커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였어요.
몇번을 당겨봤지만, 철커덕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어요.
차에 기대고 있던 그 놈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어요.
얼굴은 총에 맞아서 인지, 만신창이가 되어있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
로 끔찍했어요. 얼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 풍겨나오
는 사악함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하여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정도였어요.
저는 그 놈을 향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겼지만,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찰카닥 소리만 날 뿐 나가지 않았어요.
그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칼을 든 손을 다시 한번 높게 쳐들었
어요.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포기한 채로 힘없이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순간 총알이 발사되는 충격과 함께, 자동차가 펑하고 폭발하고 그
폭발력에 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랐다가 바닥에 사정없이 내 팽겨
쳐졌어요.
갑작스런 폭발에 영문도 알 수 없이 나가떨어진 저는 그 충격에 정신
을 잃었어요. 정신을 잃기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칼을 든 그 놈이 화
염에 휩싸인 채로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의식을 잃으면서도,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고 그 놈에게서 도망치
려고 했어요, 하지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았어요.
그 놈이 내게 다가와 내 몸을 난도질 할 것 같았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만 날 뿐 사방이 뿌옇게 되고 의식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은 밝아있고 경찰들과 사람들이 부산거리며 왔
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아요.
눈을 뜨자, 경찰들이 달려와 쉴 틈도 안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
했어요. 영문도 모르는 저는 어제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 물어봤어
요. 자동차는 연료통에 총알을 맞아 폭발했다는 거예요..
경찰 말로는 아침에 새까맣게 타버린 자동차 한 대와 갈기갈기 ?겨
나간 형사 두명의 시체가 그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형체도 알 수 없게 타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도 한 구
발견되었고, 좀 떨어진 곳에 피 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저를 발견했다는 거예요.
저는 경찰의 질문에 그날 밤 제가 봤던 일들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어
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었어요.
아무도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타버린 시체의 신원을 밝혀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심하게
타버린 데다가 총에 맞아 치아와 턱구조도 박살이 나서 알아볼 방법
이란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해도 제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에는 미친 여
자로 취급해 나를 이 병원에다 가둔 거예요.
기자 아저씨,
제발 저를 미친 여자로 보지 말고, 믿어 주세요.
직접 그 톨게이트 가서 조사해 보시면 제 말이 맞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대로 여기 있다간, 언젠가 그 놈이 나타난 나를 죽일 거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제 말을 믿어주고,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런 죄도 없고, 미치지도 않았어요.
부탁이예요..
제발!!!!"

그 여자의 믿을 수 없는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믿어야 하는지..
더구나 처절하게 자기의 얘기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여자가 미쳤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재원이는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고 이제 나가자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왔지만, 그 여자의 얘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병실에 머무를 수 없는지
재원이의 재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녀는 외쳤다.

"저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나를 놨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제발!!!"

문을 열고 나가는 재원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동
정심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마시고...
얘기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병실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사지가 결박
되어있는 채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니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정신 병동 복도를 말없이 걸어나오는데, 재원이
가 말을 건넸다.

"저 여자 말 어때?
진짠 거 같아?"
"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래?
그런 내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게..
날 따라와.
저 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 레지던트를 만나보자."

재원이는 나를 데리고 정신과 레지던트 당직실로 갔다.
거기에는 아까 재원이와 나를 병동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던 레지던트
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면서, 그 여자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한씨라고 했죠?
어때요? 그 여자 얘기 들어보니깐..."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얘기는 그래도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상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잘 구분 못하겠어요.
그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살인을 하고 다니는 악령을
본 것인지..."

그 레지던트는 내 얘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를 시
작했다.

"사실 그 환자의 얘기만 듣고는 아무도 그 얘기의 진실성을 알 수가
없죠.
일한씨,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진실의 양면성이라는 것이요..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래요.
그 환자의 얘기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 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그 환자를 치료하고 검진해본 결과, 그 여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진실만을 말하고 있죠.."

그 여자가 진실만을 얘기했다는 레지던트의 말은 나에게 더 큰 충격
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사실을 말했다면..
그 여자가 본 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예요?"

당황한 나의 질문에 그 레지던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요..
그 환자가 진실을 얘기했지만,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해두는
것이 맞죠.
그 환자는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환자가 이 병원에 이송되었을때는 환자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살인 용의자로 왔어요.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범인으로 병원에 왔어요.."

나는 처음에는 레지던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친절한 설명은 나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일한씨도 그 환자로부터, 무덤에서 나왔다는 살인자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 살인자의 악령이 톨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살인했다는 얘기
였죠?
그 환자는 입원 첫날부터 그 얘기를 되풀이 했어요.
하지만 그 환자를 이송한 경찰의 보고서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었어요.
그 보고서에 따르면, 그 환자가 얘기한 모든 살인 사건은
바로 그 환자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것이였어요.
젊은 여자가 칼로 그 많은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인 것이지요.
경찰은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정황증거로 그 환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집중했다더군요.
그 환자가 받았다는 표에 묻었던 혈액은 다름 아닌 그 환자의 피로
판명이 되었데요. 그래서 그 날 그 지역 경찰이 아닌 담당 형사들이
정산소에 온 것도 사실은 유력한 용의자였던 그 환자를 감시하기 위
해서였데요. 그러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서도 그 여
자의 지문이 채취되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 여자는 자기가 한 일을 전혀 기억못하고,
무덤에서 나온 살인자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검진 결과 그 여자는 정신질환자로 밝혀졌어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진짜로 기억못하고, 전부 자기가 굳게 믿고
있는 그 악령이 살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고 있고...
아, 물론 약간에 의문은 있데요..
현장에서 태워진 채로 발견된 차는 도난차량으로 발견되었데요.
그리고 타버린 시체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데요.
경찰은 그 시체가 차를 훔쳐달아나다 죽음을 당한 차량 절도범으로
결론 짓고, 신원파악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고요..
또 짧은 밤 시간에 그 환자가 그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약간 신빙성 없고요. 하지만 경찰 주장에 의하면
시속 160킬로 정도로 달리면 살인하고 돌아올 수 있다더군요.
아무리 차가 없는 시간이라도, 심야 빗속을 그런 속도로 달렸다는 것
이 좀 이상하긴 하지요...
그래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여자였기 때문에 살인범으로 체포했지
만, 진술이 너무 황당해서 정신감증을 의뢰했고..
결국은 정신질환자로 판명되어서 이 병원에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 환자가 말한 진실의 다른 면이지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가 사람을 몇 명이나 난도질해서 죽인 살인자라니..
갑자기 의문이 머리에 스쳤다.

"그 여자가 진짜 살인범이라면 살인의 동기는요?
아니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미치게 된 원인은 도대체 뭐지요?"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그런 의문을 갖게 되지요..
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상식때문이예요..
모두들 정신병 하면, 뭔가 큰 충격이라던가 아니면 성장기에 겪은
비정상적인 일이 원인이 되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직 정신질환의 정확한 원인은 의학계에서도 규명하지 못했
습니다. 그런 개인적 경험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고요..
쉽게 말하면, 이유없이 미친다는 것도 성립될 수 있는 거예요.
멀쩡하던 사람이 자다가 이유없이 급사하듯이, 정상인이 어느날 갑자
기 미쳐버릴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미친 사람을 마귀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이 환자도 이유 없이 미쳐 버린 수많은 정신질환자 중에 하나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나는 레지던트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
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말이 휠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귀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할 말도 잊고, 찜찜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당직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 침묵을 깨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아스라히
들렸다. 멀어서 그런지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 비명소리를 들으니 이
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그와 동시에 당직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
렸다. 레지던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요? 또 시작했다고요?
지금 제가 가보죠."

전화를 끊고 레지던트는 다급하게 일어서며 멍해있는 나와 재원이에
게 얘기했다.

"그 환자가 또 발작을 시작했다더군요.
매일 밤 심한 발작을 해요.
정말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지금 가 봐야하는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도 없어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당직
실을 나서는데 레지던트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사실 나도 그 환자의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알아봤어요.
그 동네 보건의로 제 동기가 하나 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환자가 말한대로 그 동네 묘지에서 시체를
한 구 못 찾았데요. 그것도 그 환자 말대로 살인 전과자의..
그리고 좀 무서운 얘기가 하나 있어요.
국립과학 수사 연구원에 다니는 선배가 얘기해 준건데요.
그 신원을 알 수 없다는 타버린 시체 있잖아요?
그 시체가 부검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부검하기 위해 시체를 옮겨 놓았는데, 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
다는 거예요. 살아서 걸어나간 것처럼요..
국과수에서는 난리가 났더래요.
중요 피해자의 시체가 사라졌으니..
결국 용역회사의 착오로 화장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종결지었다고 하더군요..
참 이상하지요...
그 환자 말대로 정말 그 시체가 살인마의 귀신이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던지고 레지던트는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선 채로 음산한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레지던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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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택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일까?
모든 것을 모두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
생명까지도..

 

 


그 사람은 자기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 역시 한 사람을 사랑해서 평생을 같이 하기로 서약했지만, 그 사람같
은 방식으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의 정답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곳은 우리의 신혼 여행지였던 몰디브였다.
그 때는 설레임과 행복에 겨워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비행기
안에서 부터 불길한 일이 있었다.
늦은 시간에 결혼식을 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
침 비행기로 신혼 여행을 출발해야 했다.
전날 피로연에서 ?굳은 친구들 때문에 억지로 마신 술 때문에 속도 불편
했고 머리도 지끈 거렸다. 찬경이도 그리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신혼 여행지인 몰디브로 가는 경유지인 싱가폴로 가야했다.
최종 목적지인 리조트까지는 꼬밖 24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정이었지만,
지구 최후의 낙원이라는 몰디브를 가기 위해서는 감수하기로 했다. 물론
찬경이가 가고 싶어한 것도 큰 원인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낙원이라도 모든 것이 다 아
름다울 수는 없었다..
여하튼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우리는 몸은 좀 피곤해도 설레
임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결혼식 얘기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를 향하는 따가운 시
선이 느껴졌다. `
그 시선이 오는 곳은 바로 내 반대편 옆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잿빛 승려복을 입은 늙은 비구니였다.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할머니 스님이었다.
그 비구니가 입은 승려복은 흔히 볼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두 젊은이는 어제 결혼 했나 보군요?
축하해요.
하지만....하지만..."

그 할머니 승려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멈추었
다. 우리는 그 비구니의 괴상한 행동에 호기심과 이상함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싱가폴로 가시나요?"

그 비구니는 우리 둘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천천히 대꾸했다.

"아니, 저는 싱가폴을 거쳐 스리랑카로 돌아갑니다.
저는 스리랑카에서 살 거든요...
그런데..."

그 비구니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망설임이 마음에 걸려 물어보았다. 솔직이 우리 둘만의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뺏기는 것도 싫어서, 그 스님의 이상한 관심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 의미있는 시선을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스님, 뭔가 저희께 말씀 해주실 것이 있으세요?

그 할머니 스님은 약간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이 얘기를 시작했다. 그 얘
기가 끝났을 때, 서늘함이 느껴지며 차라리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분은 정말 천하가 질투할 정도로 행복해 보이네요..
속세와 인연을 끊은 저 마저도 부러울 정도로요..
하지만, 삼라만상이 모두 두 분을 축복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네요.
앞으로 호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두 분의 얼굴에서 저는 볼 수 있어요..
가능하면, 신혼 여행은 동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바다쪽도 피하는 것이 좋았는데...
제가 노파심에서 한마디 드리죠.
기분 상해 마세요.. 만약 제가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리면, 늙은이의 노망
이라고 무시하셔도 되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분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세요..
미워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해하도록 하고... 그냥 그대로 놔 주세요...
방해하지 말고, 끼어 들지 말고....
행복하시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 스님은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하고, 마치 자기 임무는
다 끝났다는 듯이 우리가 질문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앞을
보았다.
황당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우리의 앞길을 축복한 것인지, 저주 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한 마디로 정신 나간 늙은 중의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찝찝했지만, 그 비구니도 더 이상 얘기하고 싶은 것 같지도 않고, 우리도
그 얘기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안했기 때문에 그냥 무시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스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경험할 것을 알았던 것 같
았다. 일종의 경고요, 영험한 예언이었던 것이었지만, 그때 우리는 쉽게
그 얘기를 잊어버렸다.
그 스님은 자는지, 명상을 하는지, 비행기가 싱가폴에 닿을 때까지 감은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방해를 받지 않아 더 좋았다.
비행기가 싱가폴에 도착하자, 그 스님은 먼저 자리에서 출구로 향하면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부디 행복하시고, 이번 시련도 잘 넘기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참 이상한 스님이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싱가폴 창이 공항에 내렸
다. 싱가폴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쾌적하다는 것이 느
껴졌다.
몰디브로 가기 위해서는 8시간을 싱가폴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이스트 코스트로 잠깐 나가서 저녁을 하기로 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이스트 코스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왕게 요리로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을 중국계 택시운전사로부터 듣고
찾아갔다. 유명한 집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대기중이었다.
다행히 두명 자리가 있었는지, 우리는 별로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200명 정도 앉을 만한 큰 홀에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웨이터에게 요리를 주문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요리를 기
다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우리 옆에서 "쨍그랑!"하는 그릇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여자의 날
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중년의 웨이트레스가 우리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뭘보고 놀란 것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
다. 다시 그 겁에 질린 모습의 웨이트레스를 돌아보니, 우리를 향해 손가
락질하면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미친 여자 같은 그 여자의 행동에 멍해있었다.
식당안의 400개의 시선은 우리를 향했고, 왁자지껄하던 주위는 갑자기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고 그 여자의 공포에 질린 듯한 괴성만 들렸다.
중국어인지, 동남아 어느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지껄여대는
것이었다. 당황한 듯한 식당 매니저와 동료 웨이터들이 몰려들어, 그 여자
에게 뭐라고 말하고 강제로 식당밖으로 끌고 갔다.
그 여자는 끌려가면서도, 우리를 저주하듯이 노려보며 발악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그 여자의 겁에 질린 눈은 끝까지 우리를 노려봤다.
황당해 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온 매니저는 매우 당황해하며 지금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문한 요리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매니저의 사과는 받아들였지만, 그 여자가 갑자기 왜 우리들을 보고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궁금했다.
매니저 말로는 갑자기 그 여자가 미쳐버린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여자가
우리에게 떠든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얘기는 안 해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우리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
다. 뭔가 우리를 좀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정하는 것 같기도 했
다.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시선을 피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었다.
너무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주문한 요리가 나왔는데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다. 매니저는 정말 미안한지, 식비를 받지 않고 식당밖까지
따라 나왔다.
우리가 식당을 가로질러 나가는 동안, 식당 안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우리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피했다.
찬경이는 궁금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해대
는 매니저에게 그 여자가 한 얘기가 무슨 뜻이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았
다. 매니저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
였다. 나까지 나서면서 얘기 해달라고 하니, 잠시 망설이다가 주위를 조심
스럽게 둘러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그 얘기를 해 주었다.
너무 신경쓰지 말라며 매니저가 해준 얘기는 정말 황당했다.
우리를 겁내며 소리친 그 여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무당의 일을 돕는 사람
인데 파트타임으로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우리
를 보고 '뤼촨'의 기운이 주위에 맴도는걸 봤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매
니저 말에 의하면 뤼촨은 싱가폴 원주민들의 고대 전설에 나오는 악령으
로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고 생명을 죽음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
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와 찬경이 곁에 뤼촨이 웃고있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매니저가 말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뤼촨
이 맴도는 사람은, 반드시 그 주위 사람이 죽거나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
리고 맨 마지막에는 그 사람도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끝낸 매니저는 요즘은 아무도 믿지 않는 황당한 전설일 뿐이라고
했지만 찬경이는 겁이 나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 역시 별로 기
분이 좋지 않았다. 신혼 여행길에 그런 얘기를 들으니 솔직히 화가 났다.
하지만 찬경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웃으면서 그 레스토랑을 나왔다.
나오면서 돌아 본 레스토랑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우
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찬경이는 연신 그 뤼촨의 얘기가 맘에 걸
리는지 밝지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찬걍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
니 나 역시 찝찝했다.
하지만, 긴 기다림 끝에 몰디브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자, 싱가폴에서 있
었던 그 불길했던 일은 금새 잊게 되었고, 설레임만 남게 되었다.
4시간의 비행은 좀 지루했지만, 밤 바다 사이에 군데 군데 빛나는 섬들의
불빛은 마치 별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비행기는 별나라에 내리듯이 바다 한가운데에 내렸고, 드디어 우리는 지
상 마지막 낙원 몰디브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리조트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 수도 말레에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수상비행기를 타야했다.
말레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옥색 바다와 하늘이 맞 다아있는 몰디브
를 상공을 날아올랐다. 수상 비행기에서 바라본 몰디브의 전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다에 띠엄띠엄 떠있는 산호섬들은 숨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곳이 어두운 얘기를 숨기고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하
지 못했다. 앞으로 경험할 일들이 어떤 것일지 전혀 몰랐던 우리는 그 광
경에 감탄만 보낼 뿐이었다.
생각보다 부드럽게 옥색 바다위로 착륙한 수상 비행기 앞으로 리조트에서
나온 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다위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 조심스럽게 배로 ?겨탔다.
그런데, 보트에 타고 있던 리조트 직원들의 표정들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 직원들은 비행기로 뭔가를 옮겨 싣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흰 천으로 둘러 쌓인 사람 크기 만한 물건 두 개였다.
흰 천에 곳곳에는 빨간 핏자국도 보여있었다.
찬경이는 겁이 나는지, 내 옆에 바싹 붙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리조트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그들은 영어를 알
아듣지 못하는지, 아니면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지 대답은 안 하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런 대답도 못 들었지만, 그들이 뭔가에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들이 옮겨 싣고 있는 것은 대충 봐도 시채로 보였다.
비행기로 옮겨 싣는 일이 끝나고, 우리는 리조트로 향했다.
리조트의 직원들의 굳은 표정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분정도 배를 타고 가니, 우리가 묵을 리조트 섬이 보였다.
밀가루 같은 산호가루로 이루어진 하얀 백사장, 푸르디 푸른 야자수들...
한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불길한 분위기를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배가 리조트 간이 항구에 도착하자, 리조트에 상주하는 한국인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가이드 역시 표정이 어둡고, 뭔가 겁이 난 표정이었다.
나는 호기심을 못 참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자기 이름이 경태라고 밝힌 그 가이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믿기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이 리조트에서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두 달 전부터 끔찍한 살인사건이 이 리조트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계속>


그 경태라는 한국인 가이드는 끔찍한 얘기를 계속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참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이 나라 경찰 한 30명이 이 섬에 와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도 계속 일어
나고 있어요."
"계속이라뇨? 한번이 아니고요?"
"예... 벌써 5건이나 발생해, 10명이 죽었어요.
내가 그래서 서울 본사에 잠정적으로 이곳 관광을 중단하자고 몇번이나
얘기했는데...
신혼 성수기를 놓치기 아까운지, 계속 보내고 있네요.
하긴 이 리조트 놈들도 똑같지. 이런 일이 났는데도 장사를 계속하려 하
다니... 들리는 얘기로는 이 나라 정부에서도 리조트 문을 닫는 것을 반
대한데요.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 들어오는 외화는 전부 관광수입이니 그
렇죠 뭐..."

신혼 여행지에 연쇄살인이라...
정말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찬경이는 겁이 난 표정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인데요?"
"저도 잘 몰라요. 무슨 이유인지, 이 나라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꺼려서
요. 대충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희생자들은 모두 맹수에 당한 것처럼 살
점이 심하게 뜯겨나갔고, 과다 출혈로 죽었데요..
그런데 그 희생자들 모두 쌍쌍이었데요.
부부 동반 여행자들이거나, 애인과 함께 온 사람들었데죠..
좋지 않을 때 이곳으로 오신 셈이네요.
원래 이곳은 정말 지상 천국인데...
여하튼 조심하세요...
밤에 나갈 일 있으면, 꼭 리조트 직원에게 에스코트를 부탁하세요.
요즘 그 서비스는 되거든요.
그리고 아침마다, 체크 전화가 방으로 갈 것입니다.
귀찮아도 대답해주세요.
무슨 일이 났는지 확인하는 것이니까요.."

그 가이드는 우리들의 어두워진 표정을 봤는지, 위로조로 한마디 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아직 한국분들 중에 변을 당한 사람은 없거든요.
일본 부부는 한쌍 있었지만..
그리고 이 작은 섬에 경찰이 30명이나 있으니, 곧 범인은 잡힐 것입니다.
낮에 즐기는 것들은 모두 괜찮고요.."

나와 찬경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정 취소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죄송합니다만, 교통수단이 없어요.
아시다시피, 이 섬으로 오는 10인승 수상 비행기는 하루에 한편인데, 이
미 꽉 찼어요. 정부에서 증편도 허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수도까지 가는 배도 없고, 있는 배로는 주위 무인도로 나가거나 낚시배
가 전부여서...
불쾌하셨으면, 귀국하셔서 본사에 항의하세요.
죄송합니다만, 현실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어요.
어제도 몇 분이 제게 화를 냈지만, 제게 화내봤자 아무 소용없잖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가이드 말대로, 그때 우리로써는 아무 선택권이 없었다.
그 가이드 역시 좋아서 이곳에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화내봤자 아무런 방
법이 없는 것도 옳은 말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러 온 신혼 여행지에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
나다니...
로비에서 가이드가 수속을 하는 동안, 우리는 3박 4일동안 이런 무시무시
한 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까 막막했다.
가이드가 숙소인 수상방갈로까지 안내해주고,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인
사를 하고 돌아갔다.

"짐은 이 객실 담당자가 가지고 올 거예요.
그 사람이 이 객실 전담이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그 사람에게
부탁하세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조심하시고요...
아차, 이 나라 원주민들이 얘기 하기로는 달무리가 생기는 밤에 살인
귀가 움직인다고 하네요.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달무
리가 생기는 날이면 더 조심하세요.."

으시시한 기분에 들어간 객실은 분위기와는 달리 너무 좋아보였다.
계곡물처럼 맑은 바닷물 위에 둥실 떠 있는 수상 방갈로는 그런 끔찍한
사건만 없었더라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운 곳을 즐기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잠시 후, 원주민으로 보이는 직원이 우리 짐을 가져왔다.
그런데, 선량해 보이는 그 직원은 끔찍하게도, 한쪽 팔과 한쪽 귀가 떨어
져 나가 있었다. 문을 연 찬경이는 그 모습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나역시 그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그 직원은 그런 반응에 익숙한지, 빙그레 웃으면서 친절하게 짐을
방으로 옮겼다. 이 나라 사람치고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 이름이 비시뉴
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팁도 거절한 그는 방문을 나가면서, 우리가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그가 나간 후 찬경이는 그 사람에 대해 좀 이상한 것이 있다며 얘기해 주
었다.

"그 사람이 우리가 행복해보인다고 얘기할 때, 'She said'이라는 말을
덧붙였어. 그녀가 누구지? 이 나라 사람들이 영어할 때 붙이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나..
그리고 오빠, 그 사람 슬퍼 보이지 않았어?
괜히 안 되 보이더라...."

나는 못 느꼈지만, 찬경이는 그 사람에게 대해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내가 느낀 것은, 그래도 국제적인 리조트인데 그렇게 보기 흉한 사람을
직원으로 일하게 한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데...
다음날 우리는 리조트를 돌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파란 해변과 맞물려 있는 수영장,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수상 식당, 해변
이 한 눈에 보이는 비치 바, 온갓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산호 해
변...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곳에서 만나는 직원이나 여행객이나 모두들 불
안한 모습이 보였다.
다들 겁이 난 것을 감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잠실 운동장 만한 작은 섬을 돌아다니는데, 우리를
계속해서 주시하는 불길한 시선을 느꼈다. 기분 탓이려니 하고, 무시했다.
좋은 곳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어두운 분위기가 싫어 일찍 방
으로 들어왔다.
방에는 어제 그 외팔이 직원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자기가 청소를 늦게 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나며 너무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하니, 그 사람은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바닥에 떨어진 모래 한 톨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깨
끗하게 치우는 것이었다.
한참을 깨끗하게 방을 치운 그는, 역시 팁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한쪽 팔로 고생 고생하면서, 방을 치운 그를 보고 우리는 오히려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괜찮다며 방을 나서던 그는 갑자기 하늘을 보고, 표정이
험악해 지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잣말로 지껄였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그는, 나의 놀란 표정을 보고 당황한 표정
으로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그 사람 말로는 오늘 날씨를 보니, 밤에 달무리가 질 것 같다고 했다.
그 사람 역시 달무리가 불길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
도 아니고, 미개한 자기들 만의 미신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은 마음에 걸렸다.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우리 방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쪽 편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여자쪽으로 다가갔
다. 그리고는 그 여자의 휠체어를 한 손으로 밀고 멀어졌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모습은 왠지 불길해 보였다.
이런 동떨어진 리조트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환자가 있는 것도 이상했고,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 않은 무표정한 그 여자의 모습도 좀 어색해 보였
다. 하지만, 그는 그 휠체어에 탄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극진히 대하는 것
같았다.
이상해 보였지만, 괜히 과민반응이겠지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밤이 되자, 그 사람 말대로 달무리가 생긴 달이 떴다.
남국의 낭만적인 밤일수도 있지만, 섬 전체에 내려앉은 불길한 기운 때문
인지 기분이 별로 였다.
우리는 발코니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달빛이 반사되는 수면을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찬경이는 피곤한지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왠일인지 잠이 안 와 발
코니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러다 발코니에 앉은채, 깜박 잠이 들었다.
무슨 날카로운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구름이 꼈는지 그렇게 밝던 달도 모습이 안 보이고
사방은 암흑천지였다. 찬경이는 침대에서 잘 자고 있었다.
나도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잘까 했는데, 내 잠을 깨웠던 그 기분나쁜 소리
가 옆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 리조트에서 일어났다는 연쇄살인 사건 얘기가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방에 있던 비상 렌턴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무기가 될만한 카메라 삼밭이를 들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오니, 그 소리는 더욱 또렷히 들렸고 옆방에서 나오는 것이 확실
한 것 같았다. 아무런 빛도 새어나지 않는 옆방은 문도 열려 있었다.
온 몸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천천히 그 방안으로 다가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또렷해진 그 소리는 불쾌하게 느껴졌다.
뭔가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심호흡을 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비린내 같은 것이 풍겼다.
비상 렌턴을 키고 방안을 비춰봤다.
피가 홍건히 있는 것이 보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떨리는 손으로 렌턴을 들고 천천히 방안을 비춰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렌턴에 비친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피 투성이가 된 두 구의 시체가 뒹굴어져 있었고, 머리를 풀어
헤친 사람이 그 시체에 얼굴을 박고 뭔가를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는 것
이었다. 전율로 움직일 수 없었다.
불빛이 비춰지자, 시체를 파먹던 그것은 나를 돌아다 봤다.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그것의 쾡한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뱀앞에 몰린 쥐처럼 다리에 맥이 풀리며 정신을 차릴 수 없
었다. 다음 순간 그것은 내 시선에 사라졌다.
카메라 다리를 든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쥐어졌다.
온 몸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내 옆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할 사이도 없이 손에 든 카
메라 다리를 힘껏 휘둘렀다. '퍽'하고 뭔가가 내리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쪽으로 렌턴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이번에는 뒤통수가 뭔가 묵직한
것으로 내려치는 충격을 느꼈다.
머리에 뭔가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지며, 다리 힘이 풀리며
자리에 쓰러졌다.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쓰러지면서도 발버둥 쳤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
었다. 눈이 감기며, 마지막으로 내 눈에 비친 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
람을 부축해 문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힘을 다해, 방안의 전화를 들어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찬경이의 눈물이 글썽거리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찬경이 말로는 내가 쓰러지자 마자, 몰디브 경찰이 몰려왔고 옆방에서 잔
인하게 살점이 뜯겨나간 시체 두 구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피해자도 독일에서 여행 온 부부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나라 경찰에게 천천히 내가 그 옆방에서 보고 경험했던 모든 사
실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솔직히 경찰들이 과연 내 얘기를 믿을까 걱정
했는데, 몰디브 경찰들은 이상할 정도로 내 얘기를 믿어주었고 두려워하
는 것 같았다.
뒤통수에 혹이 난 것을 보니, 살인자들에 의해 뭔가로 얻어맞은 것이 확
실했다. 리조트쪽에서 나온 의사는 내 머리를 치료해 줬다.
나와 찬경이는 리조트 담당자에게 당장 이 섬을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
다. 그때 그 기분으로는 도저히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담당자는 비행기에 자리가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나는 거의 화를
내며 그 담당자를 닥달했다.
한참을 소리치고 있는데, 담당자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점잖은 목소리로 자기 비행기를 이용하라고 하는 말소리가 들
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나라 사람으로 보이지만, 뭔가 권위를 풍기는 초
로의 사람이 서 있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 말 한마디에 냉담하던 담당자가 갑
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이 리조트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몰디브 나라 전체 경제권의 20 퍼센트를 좌
지우지하는 이 나라 최고의 재벌인 라만 그룹의 총수인 라만이었다.
이런 리조트도 다섯 개나 가지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이 리조트에 머무
르고 있다가 우리에게 자기 전용 비행기를 쓰게 하는 것이었다.
그 라만 회장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다며, 내일 해가 뜨는
데로 자기 비행기를 타고 이 섬을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손해나는 비용은 전부 배상하겠다고 했다.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힌 우리는 라만 회장에게 고맙다고 하고 방으로 돌
아왔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찬경이는 그 라만 회장이 왠지 모르게 슬
퍼 보인다고 했다. 나는 자기 리조트가 살인 사건으로 장사가 안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내일 출발하기 위해, 짐을 쌓다.
그런데, 동이 트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걱정했지만, 비는 점점 거세졌다.
라만 회장에게서 기상 때문에 오늘 비행기가 못 뜨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
다. 그 전화를 받고 우리는 힘이 쭉 빠졌다.
이런 끔찍한 섬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것이 두렵고, 싫었다.
하지만 더욱 무서워 할 것 같은 찬경이 때문에, 겉으로는 티를 안 냈다.
그날 우리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면서, 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식사는 라만 회장이 제공해주는 최고급 룸 서비스로 해결했다.
오후가 되자, 방을 치우기 위해 그 외팔이 직원이 왔다.
그는 전날 밤 있었던 사건에 대해 들었는지, 더욱 조심스럽게 방안을 치
웠다, 그리고 마치 내가 변을 당한 것이 자기 잘못인 것처럼 민망할 정도
로 용서를 구하고 미안해 했다.
나는 괜찮다며, 이번에는 꼭 받아달라며 팁을 줬다.
몇번을 거절하던 그 사람은 팁을 받더니, 잠시 기다려 달라며 방에서 나
갔다. 얼마 후 그는, 주황색 색깔의 상쾌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병에 담아
서 가져왔다. 그리고는 그것이 이 나라 고유의 과실주인데, 맛 보라며 주
었다. 맛을 보니, 참 상쾌하고 이상 야릇한 맛이었다.
팁 한번에 그런 것까지 가져다 주니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상할 정도로 'I'm sorry'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방을 나갔다.
찬경이는 그 과실주가 맛있었는지, 저녁과 함께 몇 잔을 들이켰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한잔 정도 마시고, 저녁도 걸렀다.
밤이 되자, 비는 그치고 구름도 없어졌다.
달을 보니, 전날과 같이 달무리가 져 있었다.
그 달무리를 보니, 괜히 으시시해졌다. 오늘밤도 뭔가가 일어날 것 같았
다. 비가 그쳤으니, 비행기가 뜰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수상 비행기는
밤에 움직일 수 없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찬경이는 전날 밤일이 너무 힘들었는지,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는지, 잠이 안 왔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 위성 티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이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떠보니, 우리 방을 담당하는 외팔이 직원이 침대 옆
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역시 내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움찔 하며 놀라며 한 손에 들고 있던
것으로 나를 향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가 나를 향해 겨냥한 것이 뭔가 봤다.
그것은 권총이었다.
찬경이는 무슨 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꼼짝도 않고 잠에서 깨지 않고 있
었다. 나는 그 외팔이 직원의 황당한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 사람은 총을 겨누고 있지만, 여전히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총을 겨눈 그 사람 옆에는 휠체어에 전에 봤던 여자가 앉아있었
다. 무슨 일인지 그 여자는 휠체어에 묶인 채였고, 이전의 감정없는 무표
정한 얼굴이 아니라 뭔가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괴로워하는
모습이 너무 처절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내게 권총을 겨눈채 한동안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다가,
정말 충격적인 얘기를 했 주었다.

"당신은 오늘 저녁과 내가 준 술을 안 먹었군요..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있지. 당신 아내는 수면제를 탄 그것들을 먹었고.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내게는 이 방법 밖에 없소.
죽기 전에 제발 나를 이해해 주기 바라오.
나는 의사였소.
일류 의사가 되기 위해 인도까지 유학을 갔다왔소.
하지만, 최고의 의사라 불리던 나도, 내 아내의 병을 고치진 못했소.
그래서 이 방법을 택하게 되었지..
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여자가 내 아내요.
지금은 병 때문에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한때 그녀는 천사 그 자체였소.
나의 모든 것이었소.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
도로 그녀를 사랑했소.
우리는 당신네들만큼 행복했소.
저주받은 이 섬에 오기 전까지...
이 섬이 리조트로 개발되기 전부터, 이상한 전설이 있었소.
죽어 가는 가오리의 침을 쏘이게 되면, 그 원한으로 괴기한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오. 현대 의학을 공부한 나는 그런 미신적인 전설은 당연히
믿지 않았소.
그러던 중, 해변을 거닐던 아내가 해변에 올라와 죽어 가는 가오리를 다
시 바다로 돌려보내다가 그 침에 쏘였소.
기절한 아내는 고열에 시달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소.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내는 정신도 못 차리고 점점 악화되었소.
아무리 큰 병원, 좋은 병원을 찾아 미국까지 같지만, 그 혼수상태는 치료
할 수 없었소. 세계적인 권위자를 만나봐도, 내 아내의 증세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소.
아내는 내 눈앞에서 점점 죽어갔소.
나는 괴로움으로 미칠 것 같았소.
그때 이 섬의 주술사가 찾아왔소.
이런 환자를 죽지않게 하는 방법을 안다고 했소.
나는 그것이 어떤 희생을 치뤄야 하는 것이라도, 아내를 살리는 것이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고 하늘에 맹세했소.
그런데 그 주술사가 얘기해 준 방법은 정말 참혹한 방법이었소.
이대로라면, 내 아내는 2번의 달무리가 지난 후 죽는다는 것이었소.
그런 아내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달무리가 질 때마다, 산 사람의 피와
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소. 그것도 여자와 남자의 살과 피를 동시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소.
하지만, 한 번의 달무리가 지난 후 악화된 아내의 모습을 보고 괴로움에
견딜 수 없었소.
나는 결심을 해야 했소.
마지막 달무리가 있던 날,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내 팔을 그녀의 입에
갖다대고 물게 했소. 그러자 괴기한 일이 일어났소.
그때까지 죽은 듯 누워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 걸신 들린 사람처럼 내
팔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소.
나는 팔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팔을 ?소.
그랬더니, 아내는 벌떡 일어나, 내 귀를 물어뜯어 먹었소.
나는 고통으로 이성을 읽고, 그녀를 내리쳤소.
그녀는 내 귀를 문채 떨어져 나갔고, 이내 기절했소.
나는 대충 출혈을 막고, 아내의 상태를 살폈소.
그런데 이게 왠 일이오.
아내의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이었소.
그때부터, 나는 아내의 약이 되는 사람을 찾아 다녔소.
달무리가 질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두 사람을 구해다 주었소.
아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의 살점과 피를 동시에 먹어야 ?소.
그 때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산 사람의 살점과 피를 먹어치웠소.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혈색이 돌고, 말은 아직 하지 않고 있지만 혼수상
태에서는 벗어났소.
이제 더욱 많은 사람을 섭취하면, 내 아내는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오.
나는 내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사람이 많은 이 리조트에 일하게 되
었고..
내 행동을 심판하려 들지 마시오.
나는 내 아내를 살리긴 위해서는 뭐든 다 할 것이오.
신의 심장이 필요하다면 잘라낼 것이고, 악마에게 내 영혼도 팔을 수
있소. 이미 팔았는지도 모르지만...
고통은 없게 해 주겠소.
이 과실주를 마시오. 그러면 아무 것도 느끼지 않을 거요.
당신 아내처럼....."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과 함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내가 반항할 것을 대비하는지, 총구를 찬경이 쪽을 향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사람은 천천히 휠체어에 다가가, 그 여자의 결박을 풀었다.
그 여자는 굶주린 짐승처럼 나지막히 으르릉 거리며 찬경쪽을 게걸스럽게
노려봤다. 결박이 풀리면 순식간에 덮칠 것 같았다.
미칠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모두 저 광기 어린 여자에게 뜯어 먹힐 운명이었
다. 총을 맞는다 하더라도, 여기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까닥하면 찬경이에게 총이 발사될 것 같았다.
찬경이는 지금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이윽고 휠체어의 결박이 다 풀렸다.
그 여자는 게걸스러운 눈빛으로 찬경이를 노려보며, 덮치려고 했다.
나는 "안돼!!!"라고 소리쳤다.
그 여자가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고 짐승처럼 찬경이로 향하는 순간, 나
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찬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다음 순간에 나를 덮칠 충격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화약냄새가 났다.
눈을 떠보니, 그 여자가 피를 흘리며 내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 외팔이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소리가 난 문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다음 순간 다시 한발의 총성이 울리며, 외팔이 직원이 쓰러졌다.
그 사람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에도 자기 아내에게 기어갔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광기가 뒤섞여 보였다. 그러다가
자리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우리를 구해준 사람을 바라 보았다.
총을 쏜 사람은 이 리조트의 주인인 라만 회장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슬픔이 가득찬 눈으로 말했다.

"이 애는 하나뿐인 내 딸이오..
죽어가는 내 딸을 살리기 위해, 사위의 행동을 다 묵인했지.
여기서 일하게도 해주고...
그것이 이런 끔찍한 죄악인지도 알면서...
다 내 죄요...
그러니 내가 처리해야 하오...
미안하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서..."


몰디브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몰디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라만 회장은 경찰에 자수했고, 자기가 그 살인범이라고 자백했다.
딸과 사위의 죄를 덮고 싶어했다. 나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들의 처절
했던 범죄는 영원히 비밀이 되었다.
나는 라만 회장의 뜻을 존중해, 그의 자백대로 증언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회교국에서 그런 정도의 엽기적인 범죄는 공개 참수
형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 최고의 재벌이 모든 것을 포
기하고 그런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약에 중독되어 있느라고, 아무 것도 모르게 된 찬경이에게는 나중에 모든
것을 얘기해주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몰디브는 그 끔찍한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름다움이 더 할수록 그 끔찍함은 더해지는 것 같았
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 사람의 처절한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 행동을 심판하려 들지 마시오.
내 아내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소.
이미 팔았는지도 몰랐지만...."

몰디브의 옥빛 바다는 모든 것을 깨끗이 삼킨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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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낚시

이곳는 익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오니,
수영 및 밤낚시를 절대 금합니다....
- 어느 저수지 경고문에서

 

 


일한이 너도 아마 잘 믿지 않을꺼야..
내가 직접 경험했지만, 아직까지 믿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두 눈으로 본 것은 확실해..
의심나면 상호에게 물어봐. 그 놈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같이 있었으
니까...
그날은 오늘처럼 몹시 무더운 날이었어..
찌는 듯한 날씨때문인지 모든 일에 의욕까지 상실될 정도였어.
시원하게 어디 피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
그때 마침 상호에게 전화가 왔어. 좋은 낚시터가 있으니 밤낚시나 가자
고.. 원래 나는 낚시같은 것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더워서 그런지
어디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것에 흔쾌히 응했어.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해...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낚시를 하필 그때 거
기로 가게 되다니.. 여하튼 평소에 낚시를 즐기는 상호가 모든 것을 준비
하고, 나는 텐트하고 술만 준비해서 가기로 했어.
끈적끈적한 도시를 탈출할 수 있다는데 마음이 설레기 까지 했지...
시외 버시 터미날에서 상호을 만나, 가자는 대로 따라 갔어.
버스안에서 상호는 정말 한적하고 좋은 저수지라며 한참 떠벌렸어.
3년전에 거기를 갔다온 선배가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거야. 원래는 낚시터
가 아닌데, 그 선배도 우연히 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고기반 물반이었다고
자랑했다는 거야. 상호도 그 얘기를 한참전에 들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가 그날에서야 처음 가게되었다는 거야. 나는 3년전 정보를 믿고 가야되
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때는 별로 마음에 두지는 않았어.
서울에서 한 두시간 반정도 갔을까..
시외 버스는 고개를 몇 개 넘더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은 마을에 섰어.
상호는 다왔다며 내렸어. 너무 작은 마을이어서 이 마을에 저수지가 있을
것 같지 않았어.
나는 상호에게 이런데 무슨 저수지가 있내고 계속 핀잔했어.
상호는 자기도 확실히 들었다고 했지만, 너무 왜딴 곳이었는지 자신 없는
목소리였어.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볼까 했지만,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이 어무도 없었어.
유령마을 같았지...
상호는 들은 기억을 되살려 마을을 가로질러 갔어. 아무도 안 사는 마을
처럼 쥐죽은 듯 했어. 마친 버려진 마을 같았지...
좀 겁이 났지만, 저수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잊었어.
마을을 벗어나 좁은 숲길을 10분정도 걷다보니, 이윽고 눈앞에 저수지가
나왔어. 인공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은 저수지였
어. 산골 마을에 있다고 보기에는 꽤 큰 저수지였어.
저수지 주위에 무성한 나무들을 보니, 사람의 손이 꽤 오랫동안 거치지
않은 곳 같았어. 너무 한적해 나는 상호에게 이곳에서 낚시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
상호의 대답은 간단했어. 말리는 사람도 없고, 특별한 간판도 없으니 그냥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것이었어. 혹시 누가 못하게 하면 담배값이라도 집
어주고 하자는 거였어.
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가 뭐해 상호의 말을 따라 자리를 잡
고 텐트를 쳤어. 상호는 재빨리 낚시준비를 했어.
빨리 고기를 잡아 매운탕으로 저녁을 해 먹을 생각이었어.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나와 상호는 놀랐어. 세상에 그렇게 쉽게 고기가 잡
히는 곳을 아마 없을거야. 미끼를 달아 던지자 마자, 고기가 잡히는 거야.
얼마나 신나던지...
한시간도 못되어 10마리도 넘게 잡었지. 물고기들도 다 큼지막한 것들이
었지.. ..
주위는 어느새 어두워졌어.
물고기가 잘 잡혀서 그런지 시간이 금방 가더라.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2
시가 되가는 거야..
우리가 켜놓은 랜턴만이 불빛의 전부였어..
분위기가 음산해지니까 상호가 무서운 얘기를 들려줬어. 자기는 진짜라고
하는데, 글ㅆ.. 아직도 믿을 수는 없는 얘기지만..
"한승아...
너 귀신 본적이 있니?
하긴, 이 정도 분위기면 물귀신이라도 나올지도 모르지...
작년 이맘때 쯤이었을거야....
그때도 오늘같이 더운 날이었어. 친구들과 함께 피서차 설악산으로 가는
길이었어. 차가 막힌다고, 서울에서 밤 11시가 다 되어 출발했어.
쉬엄쉬엄 가다보니 새벽 3시쯤 미시령에 도착했어.
대낮에 가기에도 험한 길인데, 밤이면 오죽하겠니...
더구나 밤안개까지 껴서 천천히 운전했어.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는 하나도 없었어...
운전은 친구가 했고, 뒷자리에 탄 애들은 잠자고 있었어.
나는 운전하는 놈이 졸릴까봐, 졸음을 참으며 옆자리에 앉아 있었어.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천천히 가는데, 저 앞 길가에 헤트라이트 불빛에
뭔가가 히끄므레한 것이 보였어.
차가 다가가면서, 그게 가까이 보이는 데 깜짝 놀랐어.
어떤 할머니가 흰옷을 입고 우리를 보고 서 있는 거야.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소름이 쫙 끼치더라...
헤트라이트에 비치는 흰옷 입은 할머니의 모습은 섬ㅉ했어...
휙하고 지나가는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이런 시간에, 아무 것도 없는 산중턱에서 뭐하고 있는지...
운전하던 놈도 그 할머니를 봤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무서웠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지나가고 보니 왠지 그 뭔가가 이상한거야...
그 이상한 점이 뭐였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등골이 오싹해졌어.
그 할머니는 그냥 서있던 것이 아니라 뒤로 걷고 있던거야...
운전하던 놈에게 얘기했더니 무서운 얘기 좀 그만 하라고 하는 거야...
이윽고 정상을 지나게 되었어. 나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겁
이 났어. 잠이 확 달아난 거지...
그 할머니 섬뜩한 모습을 잊어버리기 위해, 운전하는 놈과 이런 저런 얘
기를 했어. 험한 내리막 길이라 더욱 천천히 갔지...
운전하는 친구를 보면서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벌벌떨면서
그 놈이 내 손을 꽉 쥐는 거야.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앞
을 보았지... 휴...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아까 봤던 그 흰옷 입은 할머니가 저기 앞에 서 있는거야..
이번에도 똑같이 뒤로 걸어가고 있는거야...
나는 움직일 수도 없었어. 운전하던 놈도 움직일 수 없었는지 그 할머니
옆을 지나 낭떨어지 쪽으로 계속가는 거야.
내 비명소리에 간신히 핸들을 틀었어. 지금도 아찔하다...
최면에서 깨어난 듯,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뒤를 돌아보았지..
어둠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그 흰옷입은 할머니는 깜쪽같이 사라진 거야...
식은 땀으로 온 몸이 젖었지..
그때 뒷자리에서 자던 놈들도 차가 갑자기 흔들리자 깨어났어.
그런데 그 자다 깨어난 친구들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얘기하는데, 둘
다 똑같은 꿈을 꾼거야...
바로 흰옷입은 할머니 꿈을 꿨다는 거야.
자기들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했다는 거야.
싫다고 하는데도 손을 꽉 붙잡고 안 놓아 주었다는 거야...
그러다 갑자기 잠이 깨었고...
더욱 섬ㅉ한 것은 둘 다 똑같은 꿈을 꾼거야...
우리 모두는 모두 창백해질 정도로 겁에 질려 간신히 미시령을 내려왔
어. 우리 넷은 그 할머니가 귀신이라는 것을 확신했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중에 속초에서 우연히 만난 버스 운전사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인데,
미시령의 귀신 얘기는 유명하데... 밤 늦게 운전하던 사람 앞에 나타나
교통사고로 목숨을 앗아간다는 거야...
때로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때로는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이의
모습으로.. 다들 뒤로 걷고 있는 모습이라는 거야..
그 귀신들이 왜 거기 나오냐고..
옛날에 산사태로 죽어간 사람들의 혼령이 미시령에 어려있다는 거야...
그 아저씨 말은 믿기 힘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본 것은 귀신이었다
는 거야...
무섭지....."
상호 그 자식 얘기를 들으니 소름이 쫙 끼쳤어.
하지만, 너도 상호 알잖아? 그 자식 워낙 그런 얘기를 잘 지어내고, 뻥이
심한 놈이라 이번에도 또 지어낸 얘기겠지 하면서 거짓말 그만 하라고 핀
잔을 주었지.
그랬더니 그 자식은 정색을 하더니 진짜라는 거야..
나는 괜히 주변이 음산하니, 분위기 잡으려고 쓸데 없는 거짓말 그만하라
고 했어.
그렇게 상호를 핀잔 주는 동안에도 물고기는 계속 잡혔어.
메기, 붕어 등등.. 종류도 여러 가지고 다들 살이 통통히 찐 준 월척급이
었어.
저수지 분위기는 어둡고 아무도 없어 좀 으시시했지만, 물고기가 잘 잡히
니까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상호가 갑자기 내가 잡은 물고기들을 손전 등을 비치며 살펴보더
니 황당한 소리를 해대는 거야.
"한승아, 이 고기들 좀 봐!
좀 이상해..."
상호의 약간 긴자된 목소리에 나는 좀 귀찮았지만, 낚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상호 있는데로 갔어.
상호는 내게 우리가 잡은 물고기들을 모아둔 그물을 들어 보여주었어.
그 그물안에는 10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서로 엉켜있었어.
언뜻 보기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뭐가 이상하냐고 상호에게 물어보
았어. 상호는 여기 자세히 보라며 손전등으로 그물의 한 부분을 보여 주
었어.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
처음에는 단지 물고기들이 엉켜있고, 낚시 바늘에 ㅉ긴 것치고는 좀 피가
많이 흐른 것 같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이상함을 못 느꼈어.
그런데, 상호가 말하던 이상한 점을 발견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껴졌어.
그 그물안에는 물고기들이 무슨 이유인지,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거야.
어떤 물고기는 몸통의 반이 떨어져 나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어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의 아랫배 부분을 물어뜯고 있는 거야.
그렇게 서로를 물고 있는 것이 엉켜있는 것으로 보였어.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 일은 처음이었어.
같은 붕어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다는 것은 처음 들었거든.. 더구나 자기보
다 더 큰 메기마저 물어뜯는 것은...
그것도 무슨 상어가 먹이를 공격하듯이, 서로의 몸을 먹고 있는거야.
자세히 보니, 엄청 참혹하더라... 보통 물고기 같지가 않았어.
너무 이상해서, 손전 등을 가까이 대고 그 물고기들을 살펴봤어.
내 상식으로는 보통 민물 붕어나 메기와 외관으로는 다른 점을 발견했어.
기분탓인지, 평소에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물고기의 눈에서 뭔가
흉폭한 느낌이 들었어.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보면 볼수록 뭔가 공격적
이고 괴기한 것 같았어. 상호에게 얘기하니, 자기도 왠일인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야.
일한아, 너도 생각해봐라..
항상 봐오던 멍한 듯한 물고기 눈이 살기를 풍기며 희번덕거리는 모습을..
보기에도 끔찍했어.
갑자기 낚시 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어.
상호도 그런 것은 처음 보는지, 좀 겁난 것 같더라. 나는 그런 물고기 메
움탕 해먹기 그러니까, 다시 버리자고 했어.
상호는 그래도 좀 아까운지, 좀 망설이다가 다시 잡으면 되지 하며 그물
을 들어올렸어.
나도 옆에서 도와주었지.. 그물을 뒤짚에 피 범벅이 되고 거의 한 덩이가
된 물고기를 저수지에 다시 버렸지.
그런데, 갑자기 상호가 '아악!' 소리를 지르더니, 그물을 팽개치며 미친
듯이 손을 흔들었어.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상호는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더니, 손에 든 뭔가를 땅에 패대기를
치더니 욕을 헤대며 사정없이 그것을 짓밟는 거야.
무슨 일인가 보니, 상호가 손바닥 만한 물고기를 발로 짓이겨 놓는 거야.
가까이 보니, 상호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어.
상호의 집게 손가락을 그 물고기가 물었다는 거야.
설마 했지만, 상호의 손을 보니 그 얘기는 진짜였어. 상호의 손은 무슨 개
에 물린 것처럼 날카로운 이빨 자국과 함께 피가 흐르는 거야.
그물을 뒤집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물고기가 상호의 손가락을 물었다는
거야.
믿겨지지 않지?
하지만, 정말이었어. 물고기가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사람의 손을 물어뜯
은 거야.
상호는 피가 흐르는 손을 감싸며 욕을 헤대고 있었어.
나는 상호가 형체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짓이겨놓은 그 물고기를 살
펴보았어. 징그럽더라..
나뭇가지로 그 물고기의 입을 살펴보니...
세상에.. 그 물고기의 입에는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나와있는거
야. 황당하더라...
이런 물고기가 있다니.. 말로만 듣던 아마존 강에 서식한다는 식인 물고기
파라냐인 것 같았어.
그런데 그 물고기가 여기에 살리도 없는데 말야...
더구나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잡아올렸을 때는 분명히 보통 물고기였는
데 말야. 그런 이빨이 있었으면, 낚시 바늘을 ㅃ 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때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정말 말도 안되는 삼류 영화에만 나오는 얘기같았어.
하지만 그 때는 상호의 손을 치료하는 것이 더 급했지.'
피는 많이 났지만, 다행히 깊게 긁힌 정도지 손가락이 잘려나갈정도는 전
혀 아니었어.
가져온 손수건으로 대충 묶고, 가져온 반창고로 임시 치료는 했지.
우리는 낚시대는 신경도 않쓰고, 텐트에 앉아 이 황당한 것에 대해 얘기
를 했어. 마음같아서는 당장 여기를 떠나고 싶었지만, 마을로 나가봤자 너
무 늦은 시간이어서 아무런 방법이 없을 것 같았어.
하는 수 없이, 메움탕에 넣으려고 가져온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시기 시
작했어. 대충 여기서 시간을 때우다가, 아침에 버스가 다닐 시간이 되면
여기를 나서기로 했어.
그때 기분은 황당하더라.. 모처럼 낚시 하러 왔는데 골 때리는 일을 당하
고 낚시는 종쳤고..
 우리 둘은 투덜되면서 불어터진 라면을 안주삼어 소주를 계속 들이켰어.
아마 우리는 스멀스멀 느껴지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더 술을 빨리 들이
켰을 거야.
생각해 보니 밤에 아무도 없는 저수지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서워진 거겠
지.. 더구나 그런 이상한 물고기가 사는..
소주 두 병째를 비고 나서, 좀 술이 취한 듯한 상호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기분나쁜 얘기를 시작했어.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상호에게 좀 화가 나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도,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그 놈에게 좀 짜증이
났어.
"한승아, 너한테 깜박 잊고 얘기 안한게 있는데...
나도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이 저수지를 추천해 줬던 선배가 예전에 술자리에서 자기 낚시 무용담을
들려 주면서 자기가 갔던 괴상한 저수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
그때는 몰랐는데, 아마 이 저수지에 대한 얘기였는지도 모르겠어.
그 선배의 술자리의 뻥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낚시를 좋아하던 그 선배는 곧잘 혼자서도 밤낚시를 다녔대.
그러다 보니, 전국에 저수지는 안 가본 곳이 없다는 거야.
물고기나 물이 있는 곳은 정말 다 찾아가 봤다고 하더라. 이 저수지도
아마 그러다 찾아냈을거야.
그런데 그 선배가 한번은 밤낚시하러 갔다가 좀 기괴한 경험을 했대.
그날도 남들이 잘 모르는 저수지에서 혼자서 밤낚시를 하고 있었대.
낚시꾼이 없어서 그런지 물고기가 참 잡혔대..
너무 물고기가 잘 잡히니까,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는 거야.
밤새도록 혼자 있기가 그날은 좀 심심하더래.
그때쯤, 저쪽에서 불빛이 보이더래.
선배는 같은 낚시군이면, 가서 소주나 같이 할 생각으로 다가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불빛의 주인공은 혼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중년의 낚
시꾼이었대.
선배는 인사를 하고, 옆자리에 않아서 말을 걸었데.
그런데 그 사람은 낚시찌로부터 눈을 떼지도 않더래.
들고온 소주를 한잔 권했지만, 낚시에 푹 빠졌는지 못 본척하고 찌만 응
시하고 있었다는 거야.
머쓱해진 선배가 일어나서, 자리를 뜨려고 하자 갑자기 그 사람이 고개
를 돌리며 기분나쁠 정도로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는 거야.
'여보슈... 미끼는 뭐 쓰고 있수?'
갑작스런 그 사람의 질문에 선배는 얼떨결에 그냥 떡밥하고 지렁이라고
대답했대.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기 옆자리에서 뭔가를 부시럭대더니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비닐 봉지를 하나 내밀며 그러더래.
'이 미끼 한 번 써 보슈...
고기들이 떼로 몰릴거유..'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찌로 고개를 돌렸다
는 거야.
황당한 선배는 얼떨결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났대.
참 이상한 낚시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때는 그렇게 이상한 지 느
끼지 못했데.
자리에 돌아와서, 그 낚시군이 준 미끼를 살펴보았데.
말랑말랑한 것이 크기는 새끼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였고, 무슨 껍질 같
기도 하고, 고기 조각같기도 했지만 전혀 처음 본 미끼였데. 한 열댓개
정도 받았데.
호기심 반으로 그 미끼를 껴서 낚시를 던졌데.
그런데, 황당한 것은 정말 낚시를 던지자 마자 팔뚝만한 월척이 걸려올
라왔다는 거야. 선배는 놀라면서도 신이 났데.
흥분한 선배는 그 미끼를 다시 껴서 던졌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번에도 바로 물고기가 걸려 올라왔데.
더 큰 몰고기가 걸렸다는 거야.
아무리 물반 고기반이라고도 해도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데.
선배는 그 미끼가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데.
무뚜뚝해도, 미끼를 준 낚시군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 그쪽을 보니, 어
느새 가버렸는지 불빛이 없어졌더래.
그렇게 낚시에 집중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이상했지만, 그려러
니 하고 다시 한 번 그 미끼를 썼데.
그때도 낚시대를 들여놓기가 무섭게 고기가 딸려왔데.
선배는 그제서야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미끼를 자세히 관찰했데.
냄새도 맡아보고, 위아래를 살펴보았지만, 너무 특이하게 생겨서 뭔지 감
이 안잡히더래..
그런데 그 미끼의 촉감이 너무 익숙했다는 거야.
그 미끼를 계속 만지작거리니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미끼를 다 꺼내 손전등 아래 놓고 펼쳐보았데.
자세히 보니, 하나의 덩어리르 잘라놓은 모양이었데.
선배는 조각그림 맞추는 것처럼, 잘려진 미끼 조각을 맞추어 보았데.
미끼를 하나 하나 맞추던 선배는 완성된 원래 미끼 모양을 보고 '비명'
을 지렀다는 거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고, 그 발에 차여 그 미끼들
은 저수지를 빠졌고...
선배 말로는 그걸보고 그 자리에서 토했다는 거야.
그 미끼가 뭐였을 것 같니?
아직도 그 선배가 거짓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선배가 맞춘 미끼 조각들
은 사람의 귀를 자른 것들이었데.
사람의 귀를 형체를 짐작 못할 크기로 잘라놓았던 거라는 거야....
..선배는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짐을 쌌데.
오바이트 한 입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무작정 짐을 챙겼다는 거야.
세상에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정말 처음이었데.
닦치는 대로 짐을 싸고, 저수지를 벗어나려는데 그 미끼를 주었던 낚시
군이 있던 반대쪽에 불빛이 보이더래.
선배는 혼자 있기가 너무 겁나, 그 불빛쪽으로 뛰어갔데.
거기에는 할아버지 낚시군이 있더래.
숨이 찬 선배는 그 할아버지 낚시군에게 뛰어가, 숨을 헐떡 거리며 말을
걸려고 했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침 그 낚시군이 뭔가를 잡았는지
낚시를 들어올리더래.
선배는 무의식중에 낚아올려지는 것에 시선이 갔데.
낚시대에 걸려올려진 것은 고기같지가 않았데. 그 노인 낚시군은 그 걸
려온 것을 손으로 잡았데.
선배는 그 순간, 손전 등에 비춰진 그것을 똑똑히 보았데.
그리고는 충격으로 기절할뻔 했데.
그것은 바로 사람의 손이였다는 거야.
선배는 두려움과 충격으로 자기도 모르게 '끄응'하고 신음소리를 냈데.
그 노인 낚시군은 그제서야 선배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돌아다보았데.
그 낚시군은 자기가 사람의 손을 건져 올린 것에 별로 놀라지도 않은 얼
굴로 선배를 돌아 보았데. 오히려 자기를 보고 빙그레 웃더라는 거야.
선배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 노인을 보고 있는데, 그 노인이 자기가 잡아
올린 것들이 든 그물을 들어 보이며 자랑이라도 하듯이 씨익 웃으면서
말을 하더래.
'오늘은 이렇게 많이 건졌수다...'
선배는 먼저 그 노인의 괜히 등골이 오싹해지는 웃음이 싫었데.
하지만, 그 그물에 들어있던 것이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다리의 힘이 풀
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데.
그 그물안에는 물에 젖고 반쯤 썩은 사람의 머리, 팔, 다리 등이 토막된
채로 담겨 있었다는 거야.
선배말로는 분명히 자기가 똑똑히 봤다는 거야.
다음 순간 선배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데.
몇번을 넘어져도 개의치 않고 도망쳤다는 거야. 선배 말로는 자기 등 뒤
에서 그 노인의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가 들렸데..
죽을 힘을 다해, 자기 차있는데 까지 와서, 뒤도 안 돌아보고 차 시동을
걸고 그 길로 180 놓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거야..
그때는 아무도 그 얘기를 안 믿었어.
단지 선배가 애들 재미있으라고 지어낸 얘기로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선배가 고기 잘 잡힌다고 얘기했던 여기가 거기였
다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왠일인지 그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어.
어때 좀 오싹하지..."
상호 자식 얘기를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정말 무섭더라.
하지만, 그 얘기가 사실 같지는 않았어.
상호가 지었냈던지, 그 선배가 지어낸 얘기같았지.
여하튼 상호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에 만족해 하며 술을 들이켰어. 소주를
다섯병 가져갔는데, 왠일인지 상호가 술을 많이 마시더라. 평소에는 소주
한병이면 떨어지는 놈이 연신 들이키는 거야. 나중에 물어보니, 솔직이 너
무 무서워서 그랬다는 거야.. 술로 공포심을 잊으려고 한 거지..
그게 화근이었지...
너도 알잖아? 상호 항상 취하면 경애 얘기 끄내는 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어.. 갑자기 경애 얘기를 꺼내더니 혼자 술을 막 마
셔대는 거야.. 말려도 소용없더라...
한참을 넋두리 하더니, 푹 쓰러지는 거야.. 그 자식 술 먹으면 항상 그러
잖아.. 취해서 그 자리에서 자는 거야.. 지겨운 자식..
그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거야..
황당했어. 아무리 깨워도 상호는 이미 인사불성이었어.
이의가 없더라... 자기가 여기까지 낚시하러 오자고 했놓거선....
더구나 그런 찝찝한 곳에 혼자 깨여있다는 것은 정말 싫어지더라..
어쩔 수 없이 텐트로 그 놈을 옮겼어...
그 놈을 탠트로 옮기고 나니 갑자기 무서워졌어.
이렇게 어둡고 아무도 없는 곳에 나 혼자 깨어있다는 것이...
상호 자식은 무심하게 코까지 골고 자고 있었어...
나도 상호 옆에 누워 잠이나 청할까 했지만, 잠이 안왔어.
할 일이 없어 그냥 일어나서 낚시대 앞에 앉았지...
시간은 어느새 2시가 넘어있었어..
얼마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저수지 주변에 갑자기 물안개가 끼기 시작
했어. 순식간에 주위는 자욱한 물안개로 뒤덮혔어.
정말 음산하고 으시시했어.
그런 분위기에서 가만히 앉아 찌만 보고 있으니, 더욱 무서워지기 시작했
어. 뒤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물에서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떨렸어. 상호가 들려준 얘기까지 생각나니 더욱
무서워지더라...
그리고 이상한 것은 아까 초저녁에는 그렇게 잘 잡히던 물고기들이 다 어
디 갔는지 입질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 괴기한 물고기는커녕, 물결마저 없는거야.
수면까지 잔잔하니까 더욱 무서워지는 거야...
정말 세상에 나 밖에 없는 것 같았어...
어느새 사방에 풀벌레 소리도 안들리는 거야.
도저히 무서워 무슨 밤낚시냐하고 짐을 챙겨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였어.
"여기서 밤낚시하고 계신가요?"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린 거야.
너무 놀라서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어. 목소리 나는 쪽을 돌아다 보니
중년의 사내가 어느새 내 옆에 있는거야..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대답했어. 그 사람은 자기는 이 마을 사람인데 잠이 안와서 산책나왔다가
불빛을 보고 왔다는 거야. 이 시간에 산책이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왔다
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별 생각없이 들었어. 그런데 그 사람은 음산한 목
소리로 내게 경고를 하는거야.
"그런데 하필 여기서 밤낚시하고 계시죠?
여기 올 때 경고판을 못 보셨나보죠.
거기에 보면 여기서 밤낚시와 수영은 하지 말라고 써 있는데...
금지하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3년전부터 지금까지 이 저수지에서 20명이 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
어요. 수영하다가 익사한 사람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밤낚시하다가 익사
한 사람도 많은 거예요...
그래서 결국 밤낚시도 금지하고 수영도 금지한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저수지에 빠져 죽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3년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한 처녀가 자살했거든요..
그 후 여기서 물에 빠져 자살한 사람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그러더니
수영하던 아이들도 물에 빠져 죽고, 낚시꾼들도 익사체로 발견되고....
들리는 얘기해 의하면 그렇데요..
오늘 밤같이 짙은 물안개가 자욱하개 낀 날, 여기서 밤에 낚시하고 있으
면, 밤 3시쯤에 저수지 저쪽에서 부터 철썩 철썩하는 물소리가 들린데요.
그 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그 처녀의 귀신이 물속에서 천천히 떠올라 낚시꾼을 물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는 거예요...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좀 으시시하죠....
저수지마다 도는 믿거나 말거나 스토리죠.
하지만 이 말을 믿으시면, 빨리 낚시대를 거두고 여기서 떠나는 것이
좋을 걸요... 흐흐..."
그 사람은 음침한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어.
나는 무서워서 식은땀이 흘렀어. 하지만 그 사람의 사악한 눈빛과 기분나
쁜 웃음을 보니, 나를 겁주려고 거짓말하는 것 같았어.
괜찮다며 낚시나 계속하겠다고 대답하니, 그 사람은 노골적으로 비웃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겁이 별로 없으신가봐요...
저라면 이렇게 혼자라면 무서워 집에 가겠는데...
그럼 낚시 잘하세요...
아무 일 없이...."
기분나쁜 말을 던지고, 그 사람은 올때처럼 마찬가지로 어둠속으로 스르
륵 사라졌어. 사라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소롬이 쫙 끼
쳤어. 앉아있을때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걸어가는 것을 보니 방금 물에서
나온 사람처럼 온 몸이 젖어있었고 맨발이었던 거야...
내가 잘못 봤으려니 하고 좀더 자세히 보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별 사람 다 있네라는 생각을 하고 낚시나 다시 하기로
했어. 가만히 떠 있는 찌를 보고 있는데, 자꾸 그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나
는거야...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꾸 시계를 보게 되었어.
시계바늘은 점점 3시로 다가가고 있었어. 그 사람이 한 말은 전부 거짓말
이다라고 위안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맥박이 점점 빨라지며 겁
이 나기 시작했어. 물고기는 웬일인지 입질도 안하고 있었어.
3시간만 참으면 동이 틀 거라고, 위안을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의 3시간은
영겁과 같이 길게 느껴졌어.
자꾸 딴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시계쪽으로 눈이 가는거야. 신경쓰지 않으
려고 시계를 풀어놓고 낚시에 집중했지만, 점점 무서워지는 거야.
사방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어. 짙은 밤안개는 솜처럼 소리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어. 모든 것이 멈춰있는 것 같았어.
나도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가만히 있었어.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풀어놓은 시계를 보니, 어느새 3시가 된거야.
가슴이 철렁하더라...
나도 모르게 떨리더라..
유심히 귀를 기울여 봤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거야... 휴, 하고 한숨
을 내쉬며, 그 헛소리 한 사람에 대해 속으로 욕을 했지.
그때였어.
저 멀리서 희미하게 철썩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했어. 정신을 집중해서 귀를 귀울였어.
잘못 들은게 아니었어.
그 철썩하는 소리는 천천히, 하지만 점점 가까이오기 시작했어.
온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어. 빨리 상호를 깨우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그 소리는 점점 다가왔어.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던 그 소리는 순식간에 바로 앞에서 들려왔어.
나는 간신히 렌턴을 들어 그 소리가 나는 쪽을 비췄어.
휴...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무서워 죽는 것 같았어.
불빛에 비친 것은 지저분해진 소복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어.
수심이 그렇게 얕을 것 같지는 않은데, 다리는 반쯤 물에 잠겨 있었고, 온
몸은 물에 젖은 채였어. 젖은 머리는 풀어해체져 있었고, 얼굴은 섬ㅉ할
정도로 창백했어.
제일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의 눈이었어.
두 눈을 뭔가가 파먹은 것처럼 횡한거야. 눈에 눈동자가 없이 검은 구멍
만 보이는 거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그 여자는 물에 반쯤 잠긴채로, 한손으로 물을 철썩 철썩하고 치
는 거야.
그러면서 점점 다가오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나는 앉은채로 필사적으로 뒷걸
음질쳤지. 그런데, 뭔가 축축한 것이 뒤에서 나를 물쪽으로 미는거야.
너무 놀라 뒤를 돌아다 보니, 세상에... 아까 내게 물귀신 얘기를 들려준
그 남자가 씨익 웃고 있는거야. 그 사람 역시 온 몸이 젖은 채로 나를 물
로 밀고 있는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지. 하지만 소용없었어.
어느새 물속에서 다가온 그 여자가 내 다리를 잡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뒤에서는 그 남자가 밀어대고... 아무리 저항했지만, 내 몸은 점점
물에 빠져 들어갔어. 다리에 차가운 물의 감촉이 느껴졌어. 서서히 내 몸
도 물에 빠져 드는 거야.. 상호의 손을 물어뜯던, 몰고기들이 내 다리에
달려들기 시작했어.
저수지 물은 내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벌겋게 되었어.
그 여자와 남자는 계속해서 나를 물로 집어넣었지.
나는 차라리 이 공포의 순간이 일찍 끝나고 그냥 죽어버리기를 바랄 정도
였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저항도 못할 지경이었어.
결국 얼굴까지 물에 잠기고,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발목은 잡은 그 여자는 나를 계속해서 물 속에서 잡아 당겼고...
이제 그 식인 물고기는 온몸을 덮쳤고..
점점 숨이 막혀오고, 정신이 희미해졌어.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머리를 잡고 물밖으로 거칠게 꺼냈어.
나는 물밖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물속에서 꺼낸 사람은 바로 상호였어.
상호 말로는 자다가 목이 말라 일어났는데, 밖에 낚시대만 보이고 내가
안보여 텐트에서 뛰어 나왔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저기 물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뭐가 밑에서 잡아당기듯이 쑥하고 가라앉았다는 거야. 그걸보고
뛰어 들어 나를 구한 것이지.
상호는 나를 물밖으로 꺼낸 다음에, 무슨 일이었냐고 흥분해서 물어보는
거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대답하기에 앞서 랜턴으로 사방을 비추어봤지
만, 아무 것도 안 보였어. 재촉하는 상호에게 내가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다 얘기해주었지..
상호는 당연히 믿지 않더라..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시간이 새벽 4시인거
야. 나는 시간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
분명히 물위의 그 여자를 본 것이 3시였는데, 어느 순간 한시간이 흐른
것이야. 상호는 내가 술에 취해 낚시 중에 졸다가 물에 빠진 거라는 거야.
내가 본 귀신들은 꿈을 꾼 것이고...
그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내가 생생하게 경험한 것이였거든...
내가 하도 강력하게 주장하니까, 상호는 혼잣말 비슷하게 한마디 했어
"..그래서 그 선배가 밤낚시는 하지 말라고 했나?"
상호와 나는 젖은 옷을 말리며, 이제 낚시고 뭐고 집으로 가자고 했어. 나
는 더 이상 이런 무서운 곳에 있고 싶지 않았아.
옷을 말리고 짐을 싸니 어느새 주위가 뿌옇게 밝아왔어. 그렇게 자욱하던
안개는 흔적없이 걷히고....
나는 꾸물럭거리던 상호를 재촉해서 그 저수지를 빠져나왔어.
저수지를 벗어나오려는데, 발밑에 뭔가가 밟혔어.
뭔가 보니 간편같았어.
혹시나 하고 그 쓰러진 간판에 쓰여 있는 것을 읽어 보았는데...
충격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어.
거기에는 빨간 글씨로
<이곳은 익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오니,
수영 및 밤낚시는 절대로 금합니다.>
라고 써 있는 것이었어. 그 사람이 아니, 그 귀신이 얘기해준 그 간판이었던
거야. 그러니 내가 본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거야.
저수지를 빠져나오며, 나는 흥분해서 상호에게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자전거
를 끌고 한 사람이 지나는 거야. 그 사람은 낚시꾼차림으로 저수지에서 나오
는 우리를 보고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당신들 거기서 밤낚시하고 오는 거예요?
간판은 못 봤수.... 당신네들은 아무 일 없었소?
거기는 들어가면 안되는 곳인데..
3년전부터 거기서 밤낚시하거나 수영한 사람은 거의 물에 빠져 죽었어
요. 아무리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해봐도 소용없었죠...
거기에는 한에 서린 물귀신이 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근처에는 얼씨도 않하죠...
아니 다들 이사갔수다..
저수지 때문에 유령마을이 된 거외다...
3년전 어느날 바람난 정씨와 딸 또래의 술집여자가 거기서
자살했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하도 손가락질하고 괴롭혀서 였는지....
그 후 그 저수지를 맴돌면서, 사람을 물로 끌어들이는 거에요..
한을 품은 물귀신이 된거죠.....
그 저수지에 시체의 살을 뜯어먹고 사람고기에 맛을 들인 게걸스런
물고기 밖에 없을거외다.
그리고 또, 가끔씩 이상하게도 썩지도 않은 조각난 시체 조각들이
건져 진다우..
정말 저주 받은 저수지라우...
탐욕스럽게 사람을 먹어치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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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恨江)

너희가 과연 생명의 존귀함을 아느냐...

 

 

낮에는 그렇게 무덥더니, 밤에도 그 더위는 물러가지 않았다.
그래도 한강변은 강바람이 선선히 불어 시원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주상이 형이 맥주 한잔 하자며 고수부지에 나왔는
데, 나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건너편 가로등불이 강위에 반사되어 나름대로 예쁜 모습이었
다. 강변에 앉아 주상이 형과 캔 맥주를 들이키며 이런 저런 얘기
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처음 발견한 사람은 주상이 형이었다.

"야, 저것 봐라..
저기 떠 내려오는 거...
어떤 놈이 저렇게 큰 쓰레기를 한강에 버린 거야.."

주상이 형이 가르킨 곳에는 허연 것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형은 저런 것을 버려 한강이 오염된다며 분개하며, 맥주를 들이켰
다. 나는 주상이 형의 오버 액션에 피식 웃으며 맥주 캔을 입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떠내려오는 허연 것에 시선이 자꾸 갔다.
그 허연 것은 점점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주상이 형과 얘기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 그것을 보게 되
었다. 그것이 점점 가까이 오자, 나는 말을 멈추고 그것을 뚫어지
게 보았다.
가까워짐에 따라, 그것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허연 부대처럼 보였다.
거의 우리 발밑까지 왔을 때, 같이 떠내려오던 나무 판자에 부딪
혀서 그것이 뒤집혔다.
뒤집혔지만, 처음에 나는 그것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뭔가를 먼저 알아챈 주상이 형이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
을 떨어뜨리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어..억...이것이...억.."

나 역시 주상이 형의 신음소리와 함께 그것이 뭔가를 알아차렸다.
그 순간 충격과 함께 구역질이 느껴졌다.
떠내려온 그것은 퉁퉁 불은 갓난아기의 시체였다...

 

사건현장에 도착한 김 형사는 의아함을 느꼈다.
강력계 형사인 자신을 88도로에 일어난 교통사고현장으로 호출한
것을 보고, 뭔가 업무에 착오가 발생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장에는 반장도 나와 있었다.
반장은 김 형사를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괴기한 지시를 내렸다.

"김 형사, 오늘로 2주일째 11건 발생했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교통사고 같지만, 똑같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네.
피해자는 모두 20대 여자고, 자동차 전용도로인 88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네.
내 직감으로는 분명히 단순 교통사고는 아닌 것 같네.
자네가 이 사건을 파헤쳐봐..
늑장부리고 있다가, 신문에서 먼저 터트리면 곤란하니까..."

김 형사는 반장의 황당한 지시에 잠시 멍해있었다.
하지만, 반장의 심각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엠브란스에 실려가는
시체를 형식적으로나마 살펴봤다.
심하게 으깨진 전형적인 교통사고 피해자였다.
그런데 김 형사의 이상하게도 시선을 끄는 점이 있었다.
시체의 눈은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극도의 공포에 질
려 있었다....

 

신고를 받은 강변 초소의 경찰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 갓난아
기 시체가 떠내려온 곳으로 갔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더니 그 갓난아기 시체를 건져냈다.
그 시체를 검은 비닐 봉투에 집어넣고,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를 보고 한마디했다.

"휴.. 불쌍한 것...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
요즘 이런 일이 빈번 합니다.
올해만 들어도, 이 근처에서 벌써 20구도 넘는 갓난아기 시체를
건져냈수다.
어떤 천벌 받을 연놈들이 이런 짓을 하는지...
내 경찰로써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런 놈들 있으면 다 쏴 죽여야
돼요!"

경찰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와 주상이형은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가슴속이 답답해지고 알 수 없는 응어리가
느껴졌다....


김 형사는 어디서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15년 경찰 생활에 이런 황당한 사건은 김형사로서도 처음이었다.
우선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 자료 조사부터 시작했다.
교통 사고로 죽은 피해자는 모두 20대 미혼 여성이었다.
직업은 술집 접대부, 대학생, 공무원, 직장인, 스튜어디스 등등 다
양했다. 주거지 역시 다들 다른 곳이었고,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처음부터 김형사의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교통사고로 죽은 피해
자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부검기록도 없었다. 간신히 유가족의
허락을 맡아 부검을 하게된 마지막 희생자로부터도 특별한 사항
은 발견할 수 없었다.
김형사가 그런 기괴한 사건을 맡았다는 소문이 경찰서 내에 퍼지
자 동료 경찰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상천외한 추리를 내 놓
았다.
사이비 종교 교도들의 집단 자살극, 전염성 몽유병, 화장품에 들
은 정체 불명의 환각제 등등 글자 그대로 황당한 얘기들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봐도,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일을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이 저질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모두 20대 미혼 여성이라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던 중에 똑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도 이십대 초반 여성이 88 도로를 한밤중에 무단 횡단하다
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다. 김형사는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
다. 반장 말대로 결코 우연한 교통사고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유가족을 간신히 설득해 철저한 부검을 실시했다. 하지
만 역시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희생자에게서도 김형사의 시선을 끄는 점이 하나 있었
다. 바로 지옥을 본 듯 공포에 질린 희생자의 눈이었다.
공포에 질린 그 눈을 보는 순간, 김형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느끼고 있던 꺼림직함이 생각났다. 어디를 가던지 자신을 주시하
는 그 무엇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히 혼자 밤길을 걸을때나, 서에 남아서 밤늦게까지 자료를 검토
할 때 항상 그 무엇이 자기 주변에 맴도는 괴기한 느낌이 들었다.
김 형사는 이번 사건에 너무 몰두해서, 체력적으로 지쳐 그런 느
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그 기괴한 시선이 혹시
이 사건과 관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수사는 진전을 못하고 있었다. 김 형사는 마치 어둠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포자기 상태로 퇴근길에 혼자 소주를 마시던 김형사는 갑자기
피해자들 사이에 공통점일 지도 모르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 길
로 서로 돌아와 두 희생자의 부검기록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그
리고 집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담당 부검의에게 전화를 걸어, 몇
가지 확인을 했다. 날벼략을 맞은 격이었던 부검의는 짜증을 냈지
만, 그래도 김형사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김형사는 그 공통점을 확인하기 위해, 나머지 10명의 피해자 유족
들을 찾아갔다.
예상을 했던 일이지만, 유족들은 하나 같이 그 사실들을 완강히
부인했다. 사실 유족들 대부분도 정말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검증되지 않은 공통점만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었
다. 피해자들의 병원 기록을 다 찾아봤지만, 그 공통점을 검증해
줄 기록들은 찾기가 힘들었다. 다들 가명을 썼거나, 작은 병원에
서 처리했기 때문에 기록을 찾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형사의 수사는 다시 한번 난항에 부딪혔다.
그 공통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단서였다.
수사가 답보 상태였을 때, 김 형사에게 뭔가 단서를 제공해 줄 것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똑같은 교통사고에서 피해자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그 여자 역시 한밤중에 88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자동차에 치인
것이었다. 그런데 노련한 운전사의 운전 기술덕분에 가벼운 타박
상만 입게 된 것이다.
김 형사는 그 피해자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 김형사는 그 피해자가 입원실이 아닌 정신병동에
입원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담당 의사 말로는, 외상이라고는 팔과 무릎에 타박상정도로 가벼
웠고, 후유증 검사를 위해 엑스레이와 CT촬영까지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피해자는 특별한 원
인없이 갑자기 정신 이상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발작이 너무 심해, 보통 입원실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정신병동으로 보냈다고 했다.
김 형사는 주치의 입회 하에 정신병동에서 그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피해자는 역시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격리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여자를 보자마자, 김 형사는 충격을
느꼈다. 겁에 질린 그 눈빛은 이제까지 봐 왔던 시체들의 눈빛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발!!! 내가 잘못했어요!!!
나를 그만 놔주세요!!
나도 그냥 죽으면 되잖아요!!
제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압박복으로 묶여있는 그 여자는 연신 발작
을 해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의사가 아무리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여자가 한 소리란 고작 이
한마디였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어!
차라리 그냥 나를 죽여줘!!"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김형사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
너졌다. 정신과 의사에게 이 여자가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설명
을 부탁했지만, 의사역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글쎄요...
이런 경우는 좀 특이해서요.
대부분 교통사고등으로 끔찍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그 충격으로
자아를 닫고 정신 질환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는 좀 다르네요.
극도의 공포심과 죄책감, 그리고 거기서 오는 자살 욕망이 나타
나고 있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변화고 극단적인 증세를 나타내고
있어 저희들도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환자가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끔찍한 일을 경험한 것이죠...."

처음에는 우연한 사고나 자살로 생각하던, 김 형사는 정확한 추리
를 해낼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이 타의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확
신을 가졌다. 하지만, 그 확신을 입증해줄 구체적인 단서는 하나
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피해자 역시 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한 김 형사는 이 사건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역시 그 확신을 뒷받침할 논리마저 생각해낼 수 없었다.
수사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김형사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일찍 퇴근하고 사
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에 혼자 남아, 피해자들의 자료를 보던 김 형사는 피곤함을
못이기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뜬 김 형사는 자기책상 스텐드만 불이켜
져 있고 사무실 전체가 불이 꺼진 것을 알았다. 시계를 보니, 어
느새 밤 2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기지개를 피며 뻐근한 몸을 풀
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고
으시시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난 김형사는 예의 그 불길
한 시선을 느껴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무실 구석 구석 그늘진 어둠 속에서 뭔가 끔찍한 것이 자리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평생 무서움을 모르고 자라왔다던 김형사도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피곤해서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무실 구석의 어두운 곳을 자세히 보자, 붉게 빛나는 눈
동자들이 하나씩 눈에 띠기 시작했다.
그 붉은 눈동자들의 수는 점점 많아 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희미하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
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그 소리가 또렷해질수록 김 형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숨도 제
대로 못 쉴 정도였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그 순간, '삐리릭'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무시하고 이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온 몸이 후둘
후둘 떨리고 움직일 수 없었다. 휴대폰 소리는 계속해서 어둠속으
로 퍼졌다. 마치 나 여기있다고 알리는 소리 같았다.
김 형사는 벨소리를 없애기 위해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받았
다. 휴대폰에서는 여자의 흐느낌과 함께 욕설이 쏟아졌다.
두려움으로 정신을 거의 못 차리고 있던 김 형사는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천벌받을 놈아...
흐흑... 소희가 오늘 죽었어...
다 너 때문이야... 개자식....
니 놈의 씨를 밴 것이 잘못이지... 흐흑...
불쌍한 것...
죽어도 그렇게 죽다니.....
88에서 차에 치여 끔찍하게 죽었어..
이 빌어먹을 놈아!!"

김 형사는 처음에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희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을 소희를 돌봐주던 김마담 같았다.
소희라면, 김 형사가 경찰이라는 신분을 앞세워 억지로 범한 술집
종업원이었다. 김 형사는 소희가 자기 애를 임신한 것을 안 후,
억지로 낙태시키려 했다. 하지만, 소희는 자기 손으로 애를 낳았
다. 김 형사는 자기 비리의 증거인 애기를 없애기 위해, 소희를
찾아가 갖은 협박을 했다. 애비 없는 아이가 얼마나 비침해 지는
지.. 차라리 고아원에 맡기라고 윽발질렀다.
고아원 출신인 소희는 그것만은 안 된다고 반항했지만, 김 형사는
안그러면 자기가 애를 갖다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한달전 소희는 사라졌고, 김 형사는 그 기억을 머리속에
서 지웠다.
그런데, 그 소희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조사하는 사
건과 동일한 형태로....
휴대폰 속에서는 계속 김형사를 저주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구석에서 빛나던 수십개의 빨간 눈동자 점점 또렷해지면서, 김 형
사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김 형사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답을 생각해내는 순간, 공포로 얼굴이 이그러졌다.
점점 또렷해지는 그 기분 나쁜 소리는 이제 알아들을 수 있을 정
도였다.

"아빠...엄마....
아빠... 엄마...."

김 형사는 두려움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빨간 눈동자들이 가까이 오자, 김 형사는 그 끔찍한 모습을 보
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빨간 눈동자들은 수십명의 갓난 애기들의 눈들이었다.
반쯤 썩은 갓난 애기들이 서로 녹아 붙어서 '아빠... 엄마....'를 부
르며 김 형사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참혹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으로 썩은 고사리같은 손을 휘저으며
김 형사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지옥 그 자체였다.
김 형사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옥상으로 올라온 김 형사는 문을 잠그고, 품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꺼내 문쪽을 겨냥했다.
김 형사는 이 사건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죽은 여자들은 모두 미혼모였다. 다들 출산한 적이 있지
만, 그 아기들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다들 그 아기들을 어디론가 버린 것이다. 소희도 아기를 버린 것
이었다. 김 형사는 몰랐지만, 그 아기들은 모두 한강에 버려졌다.
산채로...
김 형사는 문을 권총으로 겨누며 뒷걸음질 쳤다.
"엄마.... 아빠...." 라고 부르는 감정 없고 단조로운 소리가 점점 가
까워졌다. 김 형사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고막 속을 파고 들어왔다.
이윽고 옥상의 문이 열리고 다시 수십 개의 빨간 눈동자와 그 참
혹스런 모습이 보였다.
김 형사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오지마!!! 이 괴물아!!!"
"아빠... 엄마.... 아빠.... 엄마...."

그것은 김 형사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김형사에게
로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던 김형사는 자기가 난간에 다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김 형사는 손을 떨면서 권총으로 그것을 향해 쐈다.
그것은 권총을 맞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검붉은 피를 토해냈
다. 하지만, "아빠... 엄마...."하는 소리와 함께 김 형사에게 더욱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느새 김 형사의 권총은 총알이 다 떨어졌다.
그 끔찍한 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김 형사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발밑을 내려다 봤
다. 6층 높이가 그리 높게 안 느껴졌다.
김 형사는 더욱 가까워진 그것을 보고, 망설이지도 않고 뛰어내렸
다. 기다란 비명소리와 함께, 몇초 후 밑에서 '빠지직' 하고 김 형
사의 두개골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강에서 발견된 그 아기의 그 참혹한 시체 때문에 며칠 밤
을 설쳤다. 그날 아침도 그 아기 시체에 대한 악몽에 시달리다 잠
을 깼다.
조간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지는 사회면을 보시더니, 안 됐다는
표정을 하시며 그 신문을 넘겨주셨다.

"쯧쯔... 요즘 살기가 그렇게 힘들어도 그렇지..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이 참...
차라리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나지... 쯧쯔..."

그 신문 기사의 제목은 '자살 급증. 하룻밤 새 7명이 투신 자살!'
이었다.

<요즘 들어 직장인들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어젯 밤에만 강남 경찰서의 김 모 형사를 비롯
7명의 30,40대 직장 남성이 직장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경찰은 자살 원인에 대해 조사 중이지만, 정황으로 봐서
IMF로 인한 격무를 견디지 못한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자살은 직장인 뿐만 아니라, 2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눈에 띠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실례로 지난 한달 동안 88도로에 몸을 던
져 자살한 20대 여성이 20명에 이르고 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0배가 증가한 자살 빈도 수다.
정부와 경찰은 비상 회의를 소집해 대비책을 마련하는등 다각도
의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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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여자

죽은 자여.. 제발 떠나주시오...

 


"야! 그 책장은 여기야. 여기!"

나와 성준이는 인석이가 가르키는 곳에 간신히 책장을 내려놨다.
고등학교 동창인 인석이가 이삿짐을 날라달라고 전화온 것은 며
칠 전이었다. 군대를 면제받아 동기들 보다 먼저 취직한 인석이는
꽤 괜찮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시간이 많아 보이는 나와 성준이에게 이삿짐이나 날
라달라고 부탁했다. 특별한 일이 없던 나는 성준이와 함께 인석이
를 도와주기로 했다.
오피스텔로의 이사라 별 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짐이
많아 3시간 정도 땀흘린 끝에 간신히 다 옮겼다.
고생했다며 인석이가 시켜준 짜장면을 기다리며 담배를 하나 빼
물고 오피스텔 안을 둘러보았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이어서 그런
지 깨끗하고 현대 적이었다.
특히 시원할 정도로 확 트인 유리창은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9층에서 내다 보이는 뒷산의 모습이 기분나뻐
보였다. 곧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다고 그런지, 산이 깍여지는 모
습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석이 말로는 신도시의 이런 새 오피스텔치고는 참 싼
가격이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너 한번 애기해봐라..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인석이는 그 질문에 픽 웃으며 반 농담조로 얘기했다.

"임마,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거야.
IMF라고 직장에서 눈치보면서 불안하게 살기 보다는,
과감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진리야.
이럴 때일수록 아이템만 잘 잡으면 성공은 쉬울거야."

성준이 놀려대듯이 그런 인석이에게 말했다.

"너도 벤처 벤처 하니 거기에 눈이 멀었구나.
되지도 않는 거 언론에서 떠드니까 덥석 달려들었군..
배가 불러서 그래.
나나 일한이는 취직 생각에 머리 터질 것 같은데,
그런 자리 차고 나오다니..
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뭐해서 돈 벌 생각이야?"
"글쎄... 그건 아직 비밀이야..
나중에 얘기해 줄께... 조금 구체화되고 하면..."

평소같으면 이런 일이 있으면 먼저 떠벌릴 놈인데, 이번만큼은 이
상할 정도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몇 번을 채근했지만, 완전히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나와 성준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인석이는 워낙 괴짜라 또 이상한 일 벌린 다음에 우리를 놀래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입이 결코 무겁지 않은 놈이라 며칠
후면 스스로 애기할 것 같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마침 배달 온 짜장면 때문에 중단되었다.
남들보다 음식먹는 속도가 빠른 나는 먼저 먹고 일어나서 오피스
텔 안에 어지럽게 쌓인 인석이의 짐들을 대충 ?어봤다. 혹시나
인석이가 그렇게 비밀로 하고 싶은 사업의 단서라도 발견할까 싶
어서였다.
박스를 정리하는 척 하면서, 짐을 뒤적이다가 밑에 깔린 찌그러진
박스에 뭔가 특이해 보이는 책자들이 들어있는 것을 봤다.
어떤 책들인가 집어 들었다.
조잡해 보이는 칼라에 영어로 써있는 잡지 같아 보였다.
처음에는 조잡한 칼라와 이상한 사진들이 엉켜있는 표지 때문에
무슨 그림인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그림이 무엇인가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들고 있던 그
잡지를 놓칠뻔 했다.
사람이 피를 튀기며 토막나는 사진하며, 온갖 잔인한 장면들이 엉
켜있는 사진이었다. 영어로 된 제목은 피빛 글자로 'World Most
Scary Pictures'라고 써 있었다. 그 잡지가 발견된 Box를 보니 비
슷한 잡지들이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 잡지인가 펼쳐보려는 순간, 인석이
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갑자기 내 손에서 그 잡지를 낚
아챘다.

"야, 왜 남에 물건 막 뒤지는 거야?"

의외의 반응에 당황해 있는 사이에, 인석이는 그 잡지들을 챙겨서
박스에 다시 넣었다.

"뭔데, 그러는 거야?
좀 보자."

하지만, 인석이는 이상할 정도로 그 잡지에 대해서는 굳은 얼굴로
보여주길 거부했다. 나와 성준이는 한참을 졸랐지만, 너무 신경질
적인 인석이의 모습에 포기했다.
성준이와 나중에도 얘기했지만, 그날 인석의 모습은 너무 이상했
다. 평소와는 달리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봤던
그 잡지는 표지만으로 끔찍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인석이가 그런 면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고, 그것을 숨긴
다는 것에 대해 더욱 이상함이 느껴졌다.
결국 본인이 싫다는 것을 더 이상 강요하는 것이 무리라고 느낀
나와 성준이는 그 잡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짐 정리를 끝낸 우리는 오피스텔을 떠날 채비
를 했다.
인석이는 자기의 이상한 행동이 미안했던지, 오피스텔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야.. 오늘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내가 술 한잔 거하게 살게..
오늘 내가 얘기안해 준 것들은, 때가 되면 꼭 애기해줄게..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다..
나도 사정이 있어.."

미안해하는 인석이를 두고, 오피스텔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성준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얘기했다.

"잠깐 조용히 해봐!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무슨 소리?"
"쉿! 잠깐!"

성준이의 갑작스런 말에 우리는 다들 숨을 죽이며 무슨 소리가
나나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준은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다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오피스텔 한가운데 서서 성준은 어리둥절해 있
는 우리들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 들어간 나와 인석은 성준이가 가르키는 쪽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리긴 들렸다.
너무 작아서 잘 들을 수 없었지만, 언뜻 듣기로는 흐느낌 소리같
았다.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고, 머리털이 곤두서
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상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
도 금새 그쳐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인석이가 궁금한 듯 물어봤다.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거야?"

성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확신을 못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잘 모르겠어..
처음에는 분명히 들렸는데, 나중에는 소리가 너무 작아져서..
뭔가가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였는데, 그 소리가 동물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구분이 잘 안가.. 남자 소리 같지는 않고..
여자 아이 소리같기도 하고..
여하튼 기분 나쁜 소리였어.."
"무슨 옆방에서 나는 소리 아냐?
테레비나 라디오 소리겠지 뭐.."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말했다. 하지만 인석이의 말로는 새 오피스
텔이기 때문에 아직 입주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석이의 방 근처에는 아직 아무도 이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인석이는 성준이가 농
담한다고 생각하는 듯이 가볍게 대꾸했다.

"짜식. 내가 좀 안 보여줬다고 장난치는군..
혼자 있을 때 겁 좀 먹으라고 이상한 소리들린다고 뻥치고.."

성준이는 진짜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거기에 대
해 별 생각 안하고 그만가자고 하며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하
고 있던 성준이를 끌고 나왔다.
인석이 오피스텔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성준이에게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진짜냐 농담이냐 물었다. 성준은 사뭇 진지
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너 정말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니?
난 정말 들었어..
뭐랄까..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기분나쁜 소리였어.
분명히 인석이 방안에서 들렸고...
뭘까? 그 소리..."

나도 짧은 순간이나마 그 소리를 듣고 성준이와 같은 느낌을 받
았던 것이 생각났지만, 그런 하찮은 얘기는 버스를 타면서부터 새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소리가 그런 무시무시한 일의 시작이었다는 것은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인석이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2주일 후였다. 이사할 때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나와 성준이에게 술을 한잔 사겠다는
것이였다. 전화 건 인석이의 목소리가 좀 어두워보였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성준이는 자기 말대로 아무 할 일이 없는지 먼저 약속장소에 나
와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인석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인석이의 얼굴은 한 눈에 봐도, 무슨 심한 일을 겪은 사람
처럼 초?하고 말이 아니었다.
인석이는 자리 앉아 마자 목이 탄지 맥주 한잔을 쉬지않고 들이
켰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그래.. 니가 그렇게 비밀로 하던 벤처기업은 잘 되가고 있냐?"

인석이는 내 질문에는 대답도 않하고, 다짜고짜 성준이에게 엉뚱
한 질문을 했다.

"야, 성준아, 니가 지난 번 이사하던 날 내 방에서 들었다는
그 이상한 소리 혹시 여자 목소리 같지 않았니?"

성준이는 처음에는 인석이의 질문을 잘 못알아들은 것처럼 어리
둥절한 표정을 하다가, 잠시 후 대답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그때 내가 그랬잖아? 소리가 너무 희미해 잘 모르겠다고..
어떻게 들으면 여자의 흐느낌 소리같기도 했지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옆방 여자가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너를 유혹하기나
하니?"

인석이는 아무말 없이 맥주를 다시 한잔 들이키더니, 두려움에 가
득찬 눈빛을 번뜩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려줬다.

"내 방 주변에는 왠일인지 아직도 아무도 입주 안했어.
혹시 모르지..
그런 일을 나만 모르고 그 오피스텔에 입주 한건지...
나 벌써 사흘째 오피스텔에 못 들어가고 있어.
그 방에 혼자 있기가 너무 무서워..
니네들은 제발 내 얘기 좀 믿어줘...
지금까지 아무도 안 믿고 있지만..
이사온 지 이틀째 되는 밤이었어...
그날 밤 그 일이 시작되었어..
그 무시무시한 일이..."

 

 

<계속>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하며 내 사업을 한다는데 좀 설레기도 한
밤이었어.
그전까지는 정신없이 이사하고, 짐 정리하느라고 일을 할 수가 없
었거든.. 방 배치는 지난번에 니네들이 짐을 날라준 대로 창옆에
책상과 침대를 놓았어.
책상에 앉아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그리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밖
을 내다볼수 있어 좋았어. 책상에 앉아 창문 열어놓고 담배피기도
좋고..
그래서 그날 밤 처음으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을
하고 있었어. 아직 주변 방에 아무도 입주를 안 해서 그런지 쥐죽
은 듯 고요했어. 밤이라 오피스텔 앞에서 공사하는 것도 멈추었는
지 더욱 조용했어. 사실 낮에는 산을 깎는 그 공사 때문에 좀 시
끄럽거든...
너무 조용해서 라디오라도 켜놓으려고 했지만, 그 놈의 라디오는
이사오다가 떨어뜨린 것 때문인지 켜지지도 않았어.
어쩔 수 없이 쥐 죽은 듯한 적막속에서 일을 했어.
한참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밤 1시가 넘었어..
그 때 갑자기 성준이, 니가 들었다는 이상한 소리가 갑자기 생각
났어. 그 이상한 소리에 대한 생각과 아무도 없는 방안에, 그것도
주위 방에도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다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
자 좀 겁이 났어.
그래서 괜히 귀를 기울여봤지만, 역시 아무런 소리가 안 들렸어.
쓸데 없는 소리한 성준이 너 원망하고, 기지개를 한번 피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
그때였어.
누군가가 오피스텔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거야.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 하고 나가봤어.
문 열기 전에 보안경으로 내다봤는데, 복도에는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 생각없이 문을 열었어.
그런데. 문 앞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복도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드믄드믄 켜져 있는 실내등과 인적
없는 복도만 덩그러니 보였어.
내가 잘못 들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
았어. 너무 조용하다 보니 헛것을 다 듣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
어. 책상에 다시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어.
다시 똑똑하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어.
이번에는 노크 소리를 듣자, 괜히 오싹해지며 무섭더라고..
그래도 무슨 일이야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누구세요?'라고 외
치며 문으로 갔어.
하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었어.
누가 장난치는 것 같아 뛰어가서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었어.
그런데..
이번에도 아무도 없는 거야.
아무리 복도를 둘러봐도 안 보이는 거야.
신경질도 나고, 좀 겁도 났지만, 혹시 누가 장난치는가 하고 엘리
베이터 있는 곳까지 가봤어.
역시 아무도 없었어. 더구나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서있는 거야.
누군가가 장난을 치고 엘리베이터 타고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 짧
은 시간동안 엘리베이터가 1층에 가 있는 것은 불가능했거든..
혹시나 하고 비상 계단까지 가 봤어.
역시 아무도 없고, 인기척도 없었어..
누구 없냐고 소리쳐봤지만, 들려오는 것은 으시으시한 내 목소리
의 메아리 뿐이었지.
이번에도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으로 돌아왔어.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등뒤의 느낌이 이상했어.
꼭 누가 내 등뒤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리털이 쭈볏 서고 무서워지더라고.
확 돌아보았어.
아무도 안 보였어.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 복도 끝에 누군가가 서 있던
것이 언뜻 보인것도 같았어. 하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보니 아무
도 없는 거야.
실내등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착각했나봐.
괜히 찝찝함을 느끼며, 방에 들어와 문을 꼭 잠그고 책상위에 앉
았어. 똑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발생하니 잠도 확 달아나고 일도 손
에 잡히지 않더라고.
잠이나 잘까 했지만, 잠도 안 올 것 같았어..
책상에 앉아 사방에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혹시 누구의 장
난이라면 다가오는 발소리라도 들리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러다 키보드가 눈에 띠었어.
아마 키보드 소리를 내가 노크하는 소리로 잘못 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이 드니 좀 안심이 되는 거야.
별 쓸데없는 착각을 했다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일을 하려고 컴
퓨터 앞에 다가 앉았어.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똑똑'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었어. 이번에는 키보드에 손도 올려놓지 않았을 때였단 말야.
그 노크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겁이 났
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서웠어.
그것도 많이 무섭더라고..
이번에는 문쪽으로 안 나가고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었어.
솔직히 문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더라고..
무섭기도 하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잠시 흘렀어.
그 적막을 깬 것은 또 한번의 노크 소리였어.
너무 무서워서 나는 큰소리로 '도대체 누구야?'하고 소리쳤어. 하
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기에, 책상밑에 있던 빈 맥주병을 거꾸로
쥐어들고 문으로 다가갔어.
천천히 다가가는데, 별 생각이 머리에 다 들더라고..
보안경에 눈을 갔다대서 복도를 내다봤어.
역시 아무도 없는 거야.
문앞에 서서 한참을 갈등하다가 문을 열어보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얼마나 겁이 났고 긴장했는지, 나도 모르게 병을 쥔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맥주 병을 떨어뜨릴뻔 했어.
심호흡을 하고 문을 와락 열었어.
이번에도 아무도 없는 거야.
나는 겁이 나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재빨리
닫아 버렸어. 그리고 문을 잠그고, 문에 등을 기대고 헉헉댔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어.
분명히 노크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헛것을
들은 셈인 것이였어.
무너지듯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었어.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를 든 손이 덜덜 떨려 불붙이기가
어려울 정도였어.
담배연기를 쭉 들이키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려고 애썼어.
담배를 피면서 생각해보니 단지 내가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어.
별것도 아닌 일에 겁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어.
설사 짓굳은 어떤 사람의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겁낼 이유는
없었어.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면서 지레질겁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도 편해지고 겁도 나지 않았어.
그 동안 무서워서 과민반응 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웃음까지
나왔어. 일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별 쓸데없는 헛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았어.
시간은 늦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상태라 다시 일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다가앉았어.
시계를 보니 그 엉뚱한 해프닝에 어느새 30분을 낭비했었어.
빨리 한가지만 끝내놓고 잘 생각으로 그 일에 집중적으로 매달리
기 시작했어. 자꾸 문소리가 날까는 생각에 집중이 잘 되지는 않
았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래서 일은 금방 진행되었어.
자리에 앉은지 한 20분쯤 되었을까..
이제 그 기괴한 노크소리도 안 들리고,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야.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처음에는 게의치 않고 모니터만 들여다 보았어.
하지만 그 느낌은 점점 강하게 느껴졌어.
정확히 말하면, 내 왼쪽 뒤, 그러니까 창문 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왜 그런 느낌 있잖아?
누군가의 시선이 자기를 향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어.
뭐야? 이 느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시선이 느껴지는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 순간 나는 충격으로 얼어붙었어.
아니 충격이라기보다는 공포라는 편이 낳겠지..
창밖에는 머리를 늘어트린 한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
는 거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 방은 9층에 있어.
그리고 발코니도 없는데 말야.
하지만 그 여자는 1미터도 안 되는 앞에 창을 사이에 두고 내 눈
앞에 분명히 있었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여자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
도로 섬뜩했어.
파리한 얼굴에 무표정하게 나를 헤집듯이 쳐다보는 그 눈빛..
그 여자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무슨 악령에 잡힌 것처럼 눈을 땔
수가 없었어.
그 여자가 사람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털이 전부
서버리고, 온 몸이 소름이 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손가락 하나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어.
다음 순간 숨이 갑갑해지고 눈앞이 어두워졌어.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제일 마지막까지 보인 것은 그 여자의 기분
나쁜 시선이었어...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창밖에서 쏟아져 오는 눈부신 햇빛
을 받으며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거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켰어.
전날 밤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꿈이었는지 진짜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더구나 내가 하던 일이 좀 이상한 것이어서 더 알수
없는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작업하다가 쓰러져 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섬뜩한 그 여자를 본 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거야..
불편하게 밤을 보내서 그런지 머리가 좀 지끈거렸지만, 나가봐야
될 일이 있어서 오피스텔을 나왔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도, 전날 밤 있었던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특히 그 섬?했던 여자의 시선은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거야.
그 여자의 파리했던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칠
정도였어.
그 일이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날은 오피
스텔에 제정신으로 들어가기 싫었어.
그래서 선배를 만나 술을 마셨어. 그것도 많이..
늦게까지 마시게 되어, 밤 1시쯤 술이 좀 취한채 오피스텔로 행했
어. 술기운 때문인지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던 그 여자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은 싹 가시고, 하찮은 꿈 때문에 벌벌떨던 내 모습이
오히려 하찮게 느껴졌어.
당당하게 내방으로 들어왔어.
전날 밤에 그 여자가 서 있던 창밖에는 물론 아무 것도 없었어.
술이 핑 돌아, 옷도 벗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어.
술기운에 눕자마자 잠든 것 같아..
잠이 깬 것은 목이 말라서인지, 그 소리인지 기억이 잘 안나..
여하튼 눈을 떴을 때는 아직도 사방이 깜깜했어.
창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 때문에 희미하게 방안의 모습이 보
였지..
과음을 해서 그런지 목도 마르고 머리도 좀 아픈 것 같았어.
물을 마시려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어.
어디선가 아스라하게 흐느낌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 같았어.
옆방에서 나는 소리려니 했어. 하지만, 주위 방에 아무도 입주 안
했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야.
처음에는 희미했는데, 점점 또렷히 들리는 거야.
들리면 들릴수록 그 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기분나빴어.
여자가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같기도 하고,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전날 밤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무서워 죽겠는 거야.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벼개로 귀를 감쌓지
만, 파고들 듯이 소리는 계속되었어.
무서워 눈도 뜰 수 없었어.
눈을 뜨면 또 그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는 것 같았어.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야.
몇번을 뒤척이며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어.
그 괴기한 소리에 무서워서 미칠 것 같더라.
그러더니 갑자기 그 소리가 딱 그치는 거야.
좀 이상했어.
나는 용기를 내어, 누운 채로 눈을 떴어.
불꺼진 방안에는 희미하게 가구와 책상들이 보였어.
다행히 걱정하던 그 여자의 모습은 안 보였어.
안심에 되어 한숨을 내쉬며, 물을 마시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
어. 술 때문에 좀 비틀거리며 일어났어.
창문 반대쪽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가, 물을 꺼냈어.
고개를 들어 물을 마시는데, 창문쪽에 뭔가가 보이는 거야.
나는 물을 마시던 채로, 겻눈질로 창문쪽을 바라보았어.
창문 쪽을 바라보는 순간 충격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창밖에는 전날 밤 그 여자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
다보고 있는 거야....

 


<계속>

...인석은 그 때 그 장면이 다시 생각이 나는지, 잠시 얘기를 멈추
고 몸서리를 치며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그런 인석의 모
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과, 불안이 가득해 보이는 인석이의 눈빛을 보니,
얘기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라도 뭔가 끔찍한 일을 겪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괄괄한 성격인 성준이는 대뜸 인석이의
얘기를 못 믿겠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야. 임마!
또 무슨 거짓말 하려고 하는 거야?
너, 벤처 기업인가 뭔가 하는 거 우리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미
안해 이상한 얘기 꾸며 낸거 아냐?
그런 얘기 나도 수백번 들었다. 토요 미스테리나 이야기속으로
같은데서도 수십 번하고..
대충 그런 얘기지?
새로 이사간 집에서 귀신이 보이고,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집에서 얽힌 얘기가 있더라...
너무 뻔해서 재미도 없다."

성준이의 놀리는 듯한 이런 말에 인석이는 묵묵히 맥주잔을 심상
치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하긴 그래..
내가 생각해도 흔하디 흔한 괴담중에 하나야..
나도 그런 얘기 많이 들어왔고..
그런데, 이번에는 들은 얘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한 거야..
나도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너희들도 잘 생각해봐..
이제까지 들어왔던 그런 일들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에..
떠도는 얘기 중에 진짜였던 일도 있을 수 있잖아?
안 그래?"

인석이의 말에 나와 성준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예전에 접해왔던
그런 얘기들을 떠올렸다. 나도 어릴 적에 있었던 한 얘기가 생각
났다. 한동안 혼자서 잠을 못 이루게 했던...

"그래.. 나도 비슷한 얘기가 들은 것이 생각난다.
특히 창밖에 보인 여자라는 것에..
나 초등학교 때 얘기였어..
한 4학년때로 생각되는데.
우리동네 아파트에서 어떤 여자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어. 그것 때문에 애들 사이에는 별 얘기가 왔다갔
다하고 한동안 화제였지.
그런데, 우리 반에 어떤 아이가 그 자살 사건이후로 계속 결석하
는 거야. 남자 놈이었는데, 지금 기억에도 그 애는 같은 또래 애
들보다 힘도 쌔도 덩치도 커서 소위 우리반에서 싸움 제일 잘
하는 놈이였거든... 바로 그 놈이 그 자살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거야.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집안일이라고 대답해 줄뿐 더 이상
아무 얘기도 안해주는 거야. 하지만 선생님이 그 대답을 할 때,
뭔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던 것이 기억나.
그 애는 그 이후로 학교에 영영 나오지 않았어.
담임 선생님 말로는 집안 일로 전학 갔다는 거야.
그래도 한번쯤은 학교에 나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하
고 가야 하는데, 아무 말 없이 도망가듯 전학 간 것이 어린 생각
에도 좀 이상했지만, 곧 잊혀졌어.
그 자식의 전학에 대한 진상을 들은 것은 한참 뒤, 그러니까 고
등학교 때 일이었을 거야.
기말 고사인가,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 영화보고 나오는데, 누가 극장 앞에서 아는 척을 하는
거야.
처음에는 못 알아봤는데, 바로 아무 말 없이 전학 갔던 그 친구
였어. 나는 같이간 친고도 있고 해서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지려
고 하는데, 그 자식이 나를 붙잡는 거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거야.
좀 황당한 제안이었지만, 그 놈이 그렇게 붙잡는데 거절하기 어
려워 친구들과 헤어져 그 자식을 따라갔어.
그 놈은 고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술집으로 향했고,
나는 속으로는 좀 놀랐지만, 주눅이 들지 않으려고 태연하게 맥
주를 시켰어.
그 자식은 식사와 함께 소주를 시키더니 익숙한 듯이 마셔대는
거야. 속으로는 좀 놀랐어.
인석이 너처럼 몇잔을 들이켜더니 내게 자기의 전학에 얽힌 얘
기를 들려 주더라.
그날 그러니까, 그 여자가 자살하던 날 그 애는 정말 못 볼 것을
본 거야.
그 애는 그 여자가 몸을 던진 그 아파트에 살고 있었데..
7층인가 살고 있었는데, 그날도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데. 그런데, 창밖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까,
창밖에는 한 여자가 언뜻 보이더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여자의 눈과 마주쳤다는 거야.
그리고는 그 여자는 창밖에서 사라졌대.
순식간의 일 이었지만, 그 여자의 눈빛은 너무 소름이 끼쳤다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창밖에서 '퍽'하는 소리가
들렸대. 용기를 내어 밖을 내다 보았는데...
아파트 아래 화단에는 한 여자가 인형처럼 쳐박혀 있었다는
거야.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데..
하지만, 곧 그 충격적인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거야.
바로 그 애가 짧은 순간 창밖으로 본 그 여자는, 자살해서 떨
어지는 순간의 바로 그 여자였다는 거야.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너무 무서웠다는 거야.
너희들도 생각해 봐라. 가뜩이나 겁이 많을 때인 초등학교 4학년
이 그런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컷겠니?
그리고 그 사건이 충격적이어서 그랬는지, 그 여자의 기분 나쁜
눈빛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더래.
마치 다음은 네 차례야 하고 말하는 것 같은 그 소름끼치는 듯
한 눈빛을..
그런데 섬뜩한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대.
그 자식 말로는 아직도 그것이 정말이었는지 자기도 잘 모르겠
지만, 여하튼 그 때 뭔가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났다는 거야
크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날 밤 잠을 자려 하는데 자꾸
그 여자의 눈빛이 떠올라 무섭더라는 거야.
혼자 자기가 너무 무서워, 형방으로 가서 같이 자려고 하는데 침
대에서 일어나기도 무서웠다는 거야. 형방까지 가는 동안 뭔가가
나타나 자기를 낚아챌 것 같이 무서웠다는 거야.
어렸을 때 다들 그런 경험 있잖아.
너무 무서워 화장실도 못 가는 것. 그 애도 그랬었나 봐.
그래서 잠도 못자고,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자꾸
이불 밖에 무언가가 있는 듯한 생각이 들더래.
무서워 죽을 것 같더래.
한참을 이불속에 있는데, 이불 밖에서 무언가가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계속 느껴지더래.
그러더니, 급기야는 '나를 봐.. 나를 봐..' 하는 소리마저 들렸다는
거야. 그 애는 결국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마음으로 이불을
들치고 조심스럽게 방안을 둘러 보았대.
아무 것도 안 보여서, 안심을 했데..
그런데, 인석이 너랑 똑같이, 그 애도 창밖에서 자기를 섬뜩한
눈으로 내려다 보는 그 여자를 봤다는 거야.
낮에 목격한 그 자살한 여자가 똑같은 시선으로..
그 애는 너무 무서워 비명을 지르고 기절했다는 거야.
그 후로 자기는 극심한 신경쇠약에 빠져, 어딜 가나 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는 거야.
학교도 못 나가겠고, 남몰래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었다는 거야.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었나 봐.
결국 그 집에서는 도저히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이사하기로 결
정하고 전학 갔다는 거야. 전학 가서도 그 후유증으로 공부도 제
대로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학교 때려치고 극장에서 잡일 아르
바이트 하고 있다는 거야.
마지막에 그 애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그것도 광기어린 눈빛으로..
아직도 가끔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인데..
그 기분나쁜 시선으로 자기를 쳐다보며..
그 얘기를 들고 나서, 기분이 묘하더라. 괜히 등골도 오싹해지고.
괜찮은 초등학생 한명이, 사실여부야 어떻든 순간적으로 목격한
괴기한 광경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아 그렇게 된 것이
참 찝찝했어.
그런 이상한 경험 때문에, 그 애는 친구가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도 자기의 제대로 된 모습을 알고 있었던 초등학교
동창인 나와 집요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거고..
자주 만나자는 그 애의 말에 솔직히 난 좀 겁이 나고 꺼려졌어.
정말 어떤 애인지도 모르고, 정신병원까지 들락날락 거렸던 놈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그때 나로써는 좀 꺼려 졌거든.
건성으로 다음에 보자라고 대답하고 도망치듯 그 애와 헤어졌어.
그런데 헤어지면서 돌아본 그 애의 뒷모습이 얼마나 마음에 남
는지.. 축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뒷 모습은 그 애가 얼마나 호
된 경험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어..
앞으로 안 만나게 될 것을 알았지만, 그 애 뒷모습을 보고 있으
려니 괜히 가슴이 아파오더라.
그 애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후야.
대학교 2학년 땐가, 그 자식이 아르바이트 하던 극장에 다시 가
게 되었어. 솔직히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애를 다시 만나기가
싫어 그 극장을 가는 것을 그 동안 피했거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만은 그 극장을 가고 싶어지더라고.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했지만, 극장에서 그 애를 다시 볼
수는 없었어. 극장을 나서는데 웬지 모르게 그 애가 어떻게 되었
는지 궁금해 지는 거야.
망설이다가 극장으로 다시 들어가 늙으스레 보이는 극장 직원에
게 그 애에 대해 물어보았어. 몇 년전 일이어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 이름을 얘기하자 대뜸 아는거야.
그 직원 말에 의하면, 결국 그 애는 자기 운명을 못 벗어난 모양
이야.. 극장에서 숙직을 하다가 뭔가 무서운 것을 봐서 미친 것
처럼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하면서 극장을 태워버리려 했다는
거야. 그러다 경비원에게 잡혀 경찰서에 넘겨졌다가 정신병원에
입원되었다는 것이지.. 그 사고를 목격한 경비원에 말하면 그 애
가 어떤 여자를 본 것처럼 주절거렸다는 거야. 그 여자에 대해
욕도 해가면서..
극장 직원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자식이 더 불쌍하
게 느껴지고 가슴이 아련해 지더라.. 미안한 감정까지 느껴지고..
휴...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맞어!
인석이가 본 창밖의 여자 얘기하다가 왔지..
어때? 비슷한 얘기지? 이런 얘기는 정말 많다니까..
그러니까 인석이 너도, 그 오피스텔에서 자살한 사람있는지 찾아
봐라..."

나도 모르게 길어진 얘기를 끝마치고 살펴본 인석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자기가 경험한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
준이의 얼굴에도 인석이를 놀려대던 장난기 어린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인석이는 묵묵히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고, 성준이는 뭔가
떠오른 듯이 아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얘기를 했다.

"일한이 얘기들으니, 나도 비슷한 얘기가 생각난다.
예전에 통신하다가 읽은 얘긴데.....
그 일이 사실인지 지어낸 얘긴지 알 수 없어.
하지만 그 얘기를 쓴 사람에 말에 의하면 진짜라는 거야.
나도 비슷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도 있고..
어떤 사람이 새로 지은 집에 이사를 가게 되었데..
그런데, 밤 3시 정도만 되면 방안에서 희미한 음악소리가 들리더
래. 처음에는 인석이 너처럼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로 생각했지.
하지만 매일 밤마다 그 시간만 되면 그 음악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더욱이 이상한 것은 마루에서는 그 음악소리가 안 들리고,
그 방안에서만 그 음악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그 음악 소리가 더욱 기분나쁜 것은 여자들 요술 상자에서 나는
소리 같었다는 거야. 그런 음악 있잖아. 상자 뚜껑을 열면 은은
히 나는 음악소리..
며칠을 계속해서 그 음악소리가 들리는 잠도 안 오고, 미치겠다
 거였어. 그러던 어느날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어떤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망치로 자기를 내려치는 모습이 보였대.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음악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너무 이상해서, 그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방
안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여서 어디서 나는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는 거야.
매일 밤 그 소리는 계속되고, 잘 때마다 그 건장한 남자가 나와
망치를 휘두르는 악몽을 꾸게 되었대. 그렇게 시달리는데, 언제
부터인가 집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대.
하수구가 막힌 냄새 또는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거야. 공사를 했던 사람들을 불러,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를 해
보았지만, 그 사람들도 그 냄새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대.
냄새는 점점 심해졌는데, 방안에 설치한 붙방이 장에 걸어둔 옷
마저 심하게 냄새가 베기 시작했다는 거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붙박이 장에 있는 옷들을 다 꺼내 다른 방
으로 옮기려고 했대. 그래서 붙방이 장에서 옷들을 꺼내는데, 붙
방이 장 안쪽, 그러니까 벽에 붙어 있는 쪽 벽지가 젖어있는 것
이 발견되었데. 그 젖은 벽에서 바로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고..
천장에서 빗물이 새서 벽지가 썩어서 나는 냄새인줄 알았지만,
그 정도의 냄새가 아니었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썩는
냄새 였다는 거야.
더 이상 그냥 놨둘 수 없어, 그 젖은 벽을 뜯어냈대.
그런데, 거기서 발견된 것을 보고 모두들 충격을 받았대.
벽안에는 목이 잘려나간 썩은 시체가 있었던 거야.
누군가가 사람을 죽여놓고, 공사하던 그 벽에다 묻어버린 거야.
그 음악소리는 시체의 손목시계에서 울리던 알람이었고..
결국 경찰이 잡은 살인범은 그 집을 같이 공사하던 일꾼 이었대.
술 마시다가 싸움이 나서,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방 공사
하는데 벽에다 묻어놨다는 거야.
그런데 그 방 주인은 범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는 거야.
바로 자기 꿈에 나타나 망치를 휘두르던 그 남자가 살인범이였
다는 거였지..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시체가 차고 있던 시계는
이미 부서져 있어, 알람이 울릴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음악소리를 계속 내었다는 거야.
밤마다...
으시시하지..
나도 그 얘기 읽었을 때, 엄청 찝찝하더라...
인석이 너도 그 방에 혹시 그 여자 시체라도 있는지
찾아봐라..."

성준이의 얘기를 들으니, 어릴 때 무섭게 읽었던 에드가 알란 포
우의 검은 고양이가 생각났다. 하지만, 성준의 얘기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였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가벼운 어조로 얘기를 꺼냈
다.

"야, 잘 찾아봐.
그런 귀신은 항상 이유 있게 나타난다니까..
그 오피스텔이 무슨 공동묘지를 밀고 건설한 것일지 모르잖아.
그래, 인석이 니 오피스텔 건너편에도 뭔가 공사하고 있잖아.
거기 혹시 공동묘지 있던거 아냐?"

성준이도 나를 거드는 듯이, 농담조로 얘기를 이엇다.

"아냐, 내 생각에는 그 방안에 뭔가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애.
원한의 유령 같은거..
좀 으시시한데..
인석아, 할 일 없으면 그 유령의 정체를 파악해 보는 것이
어때?"

인석이는 우리의 장난기 어린 말을 듣고, 맥주를 한잔 단숨에 들
이켰다. 그러더니 피식 웃더니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정
말 믿을 수 없는..

"다들 비슷한 생각하는구나..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어.
어쩌면 내가 시작하려는 사업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도 들고.. 아니,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여하튼 이 사람 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
던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놀랄만할 사실을 알게 되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계속>

..인석이는 믿을 수 없는 얘기를 계속했다.

"다음날 정신을 차려 보니, 침대 위였어.
전날 밤 본 것이 또 꿈인지 진짜였는지 헷갈리는 거야.
그래도 그 찜찜한 느낌은 지울 수 없더라고..
더욱이 그 여자의 그 무표정한 얼굴은 꿈이 아니고 사실처럼 뇌
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떠올랐어.
하지만 내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는지, 자꾸 악
몽을 꾼 것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어.
요즘 일 때문에 피곤하고,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쪽이니 이상한 꿈
을 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무섭긴 했지만, 부모님 반대를 무릎쓰고 간신히 독립한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잖
아. 아무 일도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그날도 일이 있어 밖에 나가게 되었어.
생각보다 일이 늦어져 오피스텔로 밤 12시정도에 돌아오게 되었
지. 밤에 돌아오게 되자,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 여자
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더구나 몇 개 불이 안 켜진 오피스텔
빌딩을 바라보니 더욱 으시시해지더라고...
남자가 꿈에서 본 것으로 떨고 있다는 것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
되기도 했어.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오피스텔로 걸어 들어갔
어. 현관 앞에 있던 경비 아저씨는 TV를 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
오는 모습을 힐끗 쳐다봤어.
그런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거야.
가뜩이나 긴장상태였던 나는 경비 아저씨의 이상할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경비 아저씨는 당황한 듯이 아무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잘못 봤다고 하는 거야.
더욱 이상해진 나는 도대체 뭐를 잘못 봤냐고 물었지.
그런데 그 아저씨는 어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만 했어.

'예.. 내가 졸다가 잠깐 헛것을 봤나봐요...
신경쓰지들 마시고 들어가세요...'

이상했지만, 별 수 없어 엘리베이터를 향했지.
엘리베이터는 짜증나게도 15층에 서 있었어.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지.
어두침침한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니 괜히 누가 내
뒤에 서 있는 것 같고, 기분이 이상했어.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나는 재빨리 올라탔어.
하지만 전기를 절약하려고, 닫힘 버튼을 막아놨기 때문에, 문이
닫힐 때 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
문이 닫힐 때까지 몇초동안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문이 닫히고, 나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층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누르지도 않은 4층에서 멈추는 거야.
누가 타려니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도 아무도 타지 않
는 거야. 문이 닫힐 때까지 몇초동안 어두컴컴한 복도를 보고 있
으려니 괜히 겁이 나는거야. 더구나 누가 타는 듯한 느낌까지 들
고.. 그럴 때 닫힘 버튼이 안 되는 것이 그렇게 답답하더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 불과 몇초간이었
을꺼야..
하지만, 늦은 시간, 그것도 기괴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던 나에게
는 정말 무섭도록 길게 느껴졌어.
이윽고 문이 닫혔지, 좀 마음이 놓이더라..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데, 5층이라는 불빛이
깜빡거리기가 무섭게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거야.
엘리베이터가 멈추자마자, 이상할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졌어.
설마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어.
아니나 다를까 역시 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어.
또 저절로 열린 것이었지.
열려진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보여지는 어두운 복도의 모습이
왜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죽을 것 만 같았어.
필사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한참 있다 천천히 닫히는
거야..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어.
다음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솔직히 무서웠어.
너희들은 웃겠지만, 밤에 혼자 엘리베이터 타고 나같은 경험을 해
보면 그 웃음이 사라질걸...
엘리베이터는 나의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다음 층인 6층에
서도 섰어. 나도 모르게 문 반대편으로 뒷걸음질쳤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잠
시 흐른 후, 문이 스스르 하고 열렸어.
숨이 들이켜 지고, 문이 열려지는 것을 노려보고 있었어.
제기랄!
역시 아무도 없는 거야.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어. 물론 그 어둠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박동수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 힘으로는 진정시킬 수 없
었어.
그냥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으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
지만, 어두운 복도로 선뜻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좀 망설이게 되
었어. 하지만 3층 정도야 뛰어가면 얼마 안 걸릴거 같아, 계단으
로 올라가가로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나를 내보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문이 닫히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닌 우연이었지만, 그때만은 엄청 섬뜩하더라..
처음에는 엘리베이터 고장이나, 누군가의 장난으로 생각했어. 하
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때 마다 어둠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은 견디기 어려웠어.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누군가가 올라타는 느낌도 들
고... 여하튼 무서웠어.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 안에 나말고 누가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 시작한 거야.
자꾸 누군가가 내 바로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서늘함 기운마저
느껴지는 거야. 돌아 봤지만, 아무도 없었어.
벽에 등을 붙힌 채, 엘리베이터 안을 둘러 보았지만, 역시 아무것
도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누군가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어.
7층에서도 역시 엘리베이터는 멈추었어.
이번에야말로 내려서 계단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이 열리기
가 무섭게 엘리베이터에 내렸어.
그런데 내려서 복도 저쪽 끝에 있는 계단을 보니, 휴...
전등이 나갔는지 완전히 암흑 그 자체였어.
아직 7층에는 입주자가 하나도 없는지, 복도에는 불빛 한 점 없는
거야..
단지 저쪽 끝에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파란불만 보일뿐, 바로 앞
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거야.
에라 모르겠다하고 가볼까 했지만, 역시 사람이 아무것도 안 보이
는 곳을 간다는 것은 극도의 공포심이 유발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더라...
도저히 그 어둠속으로 발을 때놓을 수가 없더군...
어쩔 수 없이, 그 기분 나쁜 엘리베이터로 다시 올라탔어.
엘리베이터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올라가지 않고 이었어.
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괴물이 자기 입안으로 들어온 먹이
를 삼키듯이 문이 닫혔어.
엘리베이터 안에는 분명히 나 혼자 였지만, 숨이 답답한 것이 마
치 사람들로 꽉찬 엘리베이터를 탄 기분이었어.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벽에 기대고 있었어.
역시 엘리베이터는 8층에도 섰어.
그때는 이미 진이 빠질대로 빠졌고, 두려움에 머리가 멍해져 있을
때였어. 그러니 문이 열리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
어.
문은 열렸다 역시 한참 있다가 닫히는 거야.
이제 다음에 내리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래도 좀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어.
갑자기 닫히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엘리베이터에서 삐 소리가 나
는 거야.
나는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어.
영문을 몰라 주위를 둘러보는데, 엘리베이터 계기판에 뭔가 빨간
글짜가 보이는 거야.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갔지만, 자세히 보니
바로 그것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 이였어.
소리나는 원인을 이해했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정
말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어.
그 글자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나는 충격으로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소름이 쫙 끼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
그 게기판에는 바로, '정원초과'라는 글짜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었어.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 정원초과라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주위를 둘러보았어. 분명히 아무도 안 보였지만,
내 느낌에는 뭔가가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엘리베이터에서 뛰쳐 나가려는데, 갑자기 문이 닫혔어.
정원초과라는 불빛에 켜진채 문이 닫힌 거야.
열림버튼을 누르고 문을 두들겼지만, 문은 닫힌 채 꼼짝도 안 했
어. 나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랑곳하지 않
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무도 안보였지만, 그때 나는 확신했어.
무언가가 분명히 이 엘리베이터에 있다는 것을...
공포에 짓눌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
단지 이 지옥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나가야된다는 것밖에.
무서워서 기절할 것 같아 엘리베이터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도 없었어.
그냥 벽에 붙어, 이 안 어디선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무언가를 필
사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전부였어.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서는 것이었어.
층수를 보니, 9층이었어.
겨우 한 층을 올라왔는데, 한 십년은 걸린 것 같았어.
제발 문이 열리기를 바랬어.
다행히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어.
나는 쓰러지듯 엘리베이터에서 튕겨 나가듯이, 뛰쳐 나왔어.
얼마나 급하게 뛰어나왔는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중심을 잃고 쓰
러졌지.
그 무서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니까 좀 살 것 같더라...
쓰러진 채로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돌아봤어.
엘리베이터를 돌아본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어.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맥이 풀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
분명히 아무도 없던 그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 여자가 보이는 거
야. 그 여자 뒤로는 형체가 뚜렸하진 않지만, 사람모양의 희미한
것들이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차 보였어.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은 바로 그 여자였어.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두려
움을 느꼈고, 무서움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어.
그리고는 복도에 넘어져 있는 채로 정신을 잃어갔어.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기괴한 웃음을 짓던 그 여자의 얼굴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어.....

 

 

<계속>

...성준은 인석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인석
의 말을 막았다.

"너 이 자식,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니?
그 정원초과 얘기 들어도 수백번 들었던 얘기다...
좀 지어내려면 잘 지어내지..
그걸 우리보고 믿으란 말야? 응?"

인석이는 성준의 추궁에 무슨 생각인지 아무 대답도 안하고 가만
히 있었다. 나도 인석의 말이 너무 뻔해 보여 한마디 거들었다.

"그 얘기 나도 여러번 들은 적 있다.
어떻게 된 것이 이번에 니가 들려주는 얘기는 다 뻔한 얘기냐?
새로 이사간 방에 나타나는 귀신이며, 한 밤중에 혼자탄 엘리베
이터가 정원초과를 울리는 것 하며..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너무 흔한 얘기 아니냐?"

우리의 미심적인 어조에 인석이는 맥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더
니, 갑자기 눈에 광기를 띠며 언성을 높였다.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자유야!
나도 알아!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 얼마나 흔하고 뻔한 얘기인지!
그런데 어떡하니? 나는 정말 경험한 것인데....
너희들 잘 생각해봐..
그런 떠도는 무서운 얘기들이 다 지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누군가가 경험한 얘기가 퍼지고 퍼져 사람들이 흔
히 알게 되는 얘기가 될 수도 있잖아..
나도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
너희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해도 해도 너무 뻔한 귀신 얘기를 경험하고
있는 거야. 마치 무슨 얘기 속의 주인공처럼 관습적인 귀신 얘기
를 경험해 나가고 있던 거야..
그래서 미칠 것 같았어...."

소리를 높이며 얘기를 시작했던 인석의 목소리는 얘기를 마치면
서 힘없이 작아졌다. 마치 뭔가를 체념한 사람의 모습처럼...
그런 인석이를 보고 있으려니, 딱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인석이가 하는 뻔한 얘기를 듣고있으려다 보니 약간 화가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흔하디 흔한 얘기를
마치 자기 얘기처럼 떠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성준이도 같은 생각
이었는지 인석이를 더욱 몰아붙였다.

"야! 더 이상 쓸데없는 뻥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봐! 뭐가 문제인지?
너 우리에게 비밀스런 벤처기업인가 뭐 하다가 사고 낸거
아냐? 그래서 맛이 갔는데, 우리가 자꾸 물어보니까 엉뚱한
귀신 얘기 지어낸 것이고..
그렇지?"
"하긴 그래 너 우리에게 아직 말 안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
업을 시작한거야?
그것과 관련있는 일 아냐?
얘기 좀 해봐! 응?"

우리가 계속 떠들어대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석은 담배를 하나
빼물며, 불을 붙였다. 고민 있는 사람처럼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다음 내쉰 인석은 천천히 입을 땠다.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아..
그래, 난 좀 이상한 일을 시작했어..
이렇게 된 것은 그것 때문일 거야.. 어쩌면...
어짜피 너희들은 믿지 않을테지만, 다 얘기해 줄게..
얘기하다보면 내가 어떤 일로 돈을 벌어볼까 했는지도
알 수 있을테니...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상상 못했는데...
휴...
그날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발견
한 것은, 다음날 아침 경비 아저씨에 의해서였어.
누가 나를 흔들어 깨었어.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이 왔는지 환한 엘리베이터 앞 복도가 눈
에 들어오고 경비 아저씨의 걱정스런 얼굴이 보이는 거야.
한 동안 내가 왜 여기 있나 멍해있었지만, 곧 기억이 나는거야.
경비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거야.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술을 많이 마셔 그냥 여기서 쓰러져
잤다고 얼버무리며 거짓말로 대답했어. 그런데 왠일이지 나의
대답에 경비아저씨가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나는 몸에 먼지를 털며 자연스럽게 어젯밤에 혹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어.
경비 아저씨 말로는 아무런 고장도 없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어제 경험한 그 기괴한 일이 진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갑자기 그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떠오
르면서 오싹하고 소름이 쫙 끼치는 거야..
이상할 정도로 나를 유심히 살펴보던 경비 아저씨는 괜찮다며
방으로 향하는 나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했어.

'이봐요,
그런데 어젯밤에 같이 들어가던 그 아가씨는 어디갔소?
오늘 아침까지 나가는 것 본 적이 없는데...'

처음에는 그 아저씨가 무슨 소리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어.
그런데 나의 멍한 표정을 보고 경비 아저씨가 한마디 덧붙이는
거야.

'왜 어젯밤 늦게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잖소?
그 얼굴이 기분 나쁠 정도로 창백했던 여자..
당신 뒤에 바로 붙어 있던데, 일행 아니었소?
나도 어젯밤에 그 여자 얼굴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산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하얗다니...'

그제서야, 그 경비 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어. 전날 밤 그 경비 아저씨 눈에는 내가 그 여자와 같이 엘
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보였던 거야!
경비 아저씨 말대로라면 내가 경험한 것이 바로 사실이라는 거
야. 갑자기 몸이 덜덜 떨리며 무서워지는 거야.
나는 경비 아저씨의 걱정 스러운 말에 대답도 않고, 내 방을 뛰
어 들어갔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걸어잠그고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도대체 그 여자가 누구일까, 왜 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
여자가 귀신이라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이 얽힌 실타래처럼 머리속에 엉켜 있었지만, 어
느 하나 답을 찾아낼 수 없었어.
그러다가 그 소름끼치는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어.
역시 무서웠지.. 그런데 이번에는 떠오른 그 여자의 얼굴이 어디
서 본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로 생각되는 거야.
필시적으로 생각해 봤지.
하지만 어디서 봤으며, 누구였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왜 있잖아?
입에 맴돌며 나오지 않는 이름처럼, 알것도 같으면서 생각이 나
지 않는거야.. 이번에 무섭기보다는 답답해 죽겠더라.
단지 그 여자가 내게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는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거야..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해봤어.
천장을 보니 그 여자가 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으시시했어. 사실 그 소름끼치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냐. 그리고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애쓰던 그 얼굴을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는 내
모습이 갑자기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어.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어.
꿈에서도 그 여자의 머리가 수십개나 내 주위를 맴돌다가 다가
가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어.
그러다가 그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으니 빠지직 터지더니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는 거야.
너무 끔찍한 모습이었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보니, 꿈이었어.
온 몸은 식은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어.
몇 시간이나 잤는지 밖은 벌써 깜깜해 졌어.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가 다 된거야.
어떻게 된건지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거의 12시간을 내쳐 잔
셈이야.
침대에 일어나니 주위가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였어.
방의 불을 켜고, 책상을 보니 밀린 일거리들이 보이는 거야.
일 좀 열심히 해보겠다고 집을 나왔지만, 여기 들어온 이후로 일
의 진행이 전혀 안되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자신이 한심해졌어.
하지만 내가 당한 일 때문인지, 그 일거리들을 보기도 싫어졌어.
e-mail에 예상보다 많은 주문이 와 있었지만, 그런 상태로는 아
무 것도 하기 싫었어. 특히 그런 일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팠어.
뭐 좀 먹으러 나갈 생각으로, 겉옷을 걸쳤어.
아예 이 길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 이 방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싫어졌어.
그것도 밤에 그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도 싫었어.
집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 저편에서 ?어
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거야.
너무 처절한 비명 소리여서,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졌어.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어.
하지만, 그 끔찍한 비명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지는 거야.
문을 열고 복도에 나와 봤어.
비명 소리는 복도 반대편 끝에서 들려 오는 거야.
무시무시한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정말 고통스러운 남자의
비명 소리였어.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어.
어두 침침한 복도 저편에서 울려퍼지는 끔찍한 비명소리는 정말
섬뜩했어.
아직도 우리 층에는 아무도 입주 안했는지, 아니면 그 비명 소리
를 못 들었는지 아무도 복도로 나오지 않았어.
비명 소리는 멈추지 않았어.
나는 어쩔 수 없어, 인터폰으로 경비 아저씨를 불렀어.
졸고 있던 것 같은 경비 아저씨는 내 얘기를 듣고 곧 올라가보
겠다고 했어. 그냥 앉아서 경비 아저씨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릴
까도 했지만, 계속되는 비명소리는 듣기에도 고통스러웠어.
나는 그 비명소리에 홀리듯이 복도로 나와 그 소리가 들리는 쪽
으로 향했어.
천천히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
갈수록, 그 쥐어짜는 듯한 비명 소리는 나를 미치게 하는 것
같았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비명소리는 계속 울려퍼졌어.
복도는 마치 유령의 집의 복도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
었어. 어떻게 보면 비명소리와 그 괴기한 분위기는 그럴듯한 조
화였지. 그만큼 그 복도로 지나고 있던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
고..
발걸음을 옮겨 양옆에 있는 방문들을 지날 때 마다, 누군가가 어
둠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어.
사방에서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어.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가 경비 아저씨를 기다릴 까도 했지만, 비명
소리는 더 심해졌어.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그 비명소리가 들리는 방 앞으로 다
가갔어.
왠일 인지 그 방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어.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비명소리도 그 문틈을
타고 나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어.
내가 방앞에 서자, 그 비명소리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
다는 듯이 갑자기 뚝 멈추었어.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어.
문을 열까말까 망설이다가,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
그때였어.
적막을 깨고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방안에서 짧게 울려
퍼졌어. 그 비명 소리는 가뜩이나 겁을 집어먹고 있던 나를 깜짝
놀라게 했어.
그 짧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후, 복도 전체는 아무일도 없었
다는 듯이 다시 침묵 속으로 잠겼어.
어느새 문고리를 향했던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
복도 저편 엘리베이터를 봤지만, 경비 아저씨는 아직 보이지 않
았어.
인간은 정말 호기심의 동물인지, 그렇게 무서운 상황에서 나는
그 문을 열었어. 내가 왜 그랬느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 끔찍한 광경에 큰 충격을 받고 얼이 빠
졌어.
환한 방안에는 사방이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되었어.
그리고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남자 한 명이 사지가 묶인 채로
누워 있었어.
나는 너무 충격적인 모습에 멍하니 그 침대로 다가갔어.
발 밑에는 끈적거리는 핏물이 밟혔지..
침대에 다가가서 그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 봤을 때, 나는
진정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어.
사지가 묶인 그 시체의 마디란 마디는 다 잘려있던 거야.
누군가가 그 사람을 묶은채, 손가락, 발가락, 손목, 발목, 팔뚝,
어깨, 무릎, 다리 등을 차례로 다 잘라놓고, 그대로 붙여 놨던
거야....

 

<계속>

... 나는 그 끔직한 시체를 보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
사실 끔직한 사진 같은 것은 수 천장이 넘게 봐왔던 나였지만, 실
제로 그런 모습을 보니 너무 무섭더라..
사진들은 이런 실제의 시체 모습에 비하면, 정말 장난같아..
그런데... 그런데 말야..
그 끔찍한 광경이 이상하게 눈에 익더라고...
침대에 묶인채 토막나 있는 시체라...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어..
그런 생각이 들자 더 겁이 나더구나..
그때 누군가가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헉'하는 소리
가 들렸어. 돌아보니, 경비 아저씨가 흙빛이 된 얼굴로 서 있는
거야.
아저씨 역시 충격을 받은 듯 '이럴수가.. 이럴수가...'라는 말만 중
얼거리고 멍하니 서 있는 거야.
나는 아저씨에게 경찰에게 신고하자고 얘기했는데, 그 아저씨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듯이 그냥 일그러진 얼굴로 서
있기만 하는거야.
내가 다가가서 팔을 잡고 흔들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거야.
생각해 보니, 경비 아저씨는 그 시체를 보고 이상할 정도로 놀랐
던 것 같아. 나중에 알고 보니, 월남전에도 참전한 적이 있던 상
사 출신이었다는 경비 아저씨인데 시체를 보고 그럴 정도로 놀랄
지도 몰랐어.
여하튼 우리는 방에서 나와 경찰에 신고했지.
경찰이 올때까지 우리는 경비실에 있었어.
그런데 그 경비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담배를 피는데도
손을 덜덜 떨고 있는거야. 시체를 처음 발견한 나보다도 훨씬 무
서워하는 것 같다라고...
괜찮냐고 내가 물어보니까, 고개는 끄덕였지만 얼굴모습은 완전히
겁에 질린 모습이었어.
시체로 발견된 사람이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자, 이상할 정도로
화를 버럭 내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때는 좀 이상하더라.
화를 낸 것도 이상하고, 몇 안되는 입주자도 모르는 것도 좀 이상
해 보였고.. 너무 끔찍한 시체를 봐서 그러려니 하고 더 이상 경
비 아저씨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경찰 오기만을 기다렸어.
경찰을 기다리면서, 그 방에 참혹했던 장면을 생각해 봤어.
그 여자의 얼굴처럼, 왠지 눈에 익은 것 같은 거야...
이번에 좀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거야.
내가 어디서 그 여자와 그 살인 장면을 봤는지가 대충 짐작이 가
기 시작했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쫙 끼치고
겁나기 시작하는 거야.
내 생각이 맞나 알아보기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경찰
이 들이닥쳤어.
어쩔 수 없이 나는 경찰들을 이끌고 시체가 있던 방으로 갔지.
그리고는 지겨울 정도로 계속 내가 봤던 일들을 말하고 또 말하
고 했어. 나중에는 그 끔직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짜증이 다 나
더라...
더구나 경찰은 처음 발견한 나를 범인 취급하듯이 심문하는 거야.
나중에 알고보니 하긴 경찰도 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
아. 나와 경비 아저씨 발자국을 제외하곤, 그 방을 드나든 사람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거야.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컴퓨터 프로그
래머 였대.
경비 아저씨의 말로는 요즘 일거리가 없는지, 오피스텔에서 나가
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거야.
내 진술을 듣던 형사의 말로는 그 남자를 살해한 살인범은 잔인
하게도, 피해자를 산채로 묶어놓고 사지를 잘랐다는 거야.
묶어놓은 줄에 남겨진 핏자국과 살점 등을 보면,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들으니, 소름이 끼치더라고...
도대체 어떤 살인자이길래, 그런식으로 사람을 죽이는지...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자꾸만 신경쓰이는 일이 떠올랐어.
그 여자 귀신과 살해 현장이 눈에 익었던 이유가...
경찰의 조사는 대충 밤 2시가 넘어서야 끝났어.
나는 내 연락처를 남겨주고, 내 방으로 돌아왔어.
복도는 사건 관계자로 아직도 북적이고 있었어.
나는 방으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어.
그러다가, 내 자료들이 생각났어.
만약 경찰들이 나를 더 의심해, 내 방까지 수색한다면 문제 될 것
같은 자료들이....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했어.
지금이라도 당장 경찰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 방을 뒤질 것 같
았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위에 앉았어.
그리고 모아놓은 자료들을 꺼냈어.
컴퓨터도 켰지...
자, 이제 너희들이 궁금해 하던 내가 시작한 사업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구나...
솔직히 말하기 좀 이상한 일이었어.
쉽게 말하면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 중에 좀 희귀
한 것들을 대리 구매해 주거나, 그런 자료들을 보여주는 거야.
일종에 매니아 층을 겨냥한 것이지...
좀 이상하지?
그런 정도의 매니아들이 자기들이 직접 그런 자료를 구하지, 나
같은 놈을 통해서 구지 돈을 내면서 구입하는지...
답은 간단해..
대 놓고 구하기 좀 이상한 것들인지...
뭔지 알겠어?
너희들은 끽해야 포르노 싸이트나 포르노 테잎 정도를 생각하겠
지.. 그런 것은 절대 아냐...
어쩌면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과 모두들 감추고 싶어하
는 욕망을 자극한다 것에는 공통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전에 통신 게시판에서 시체 사진 사이트니, 뭐 잔혹한 살해
장면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사이트들이 난리였어.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가졌어.
그것을 보고 난 이 사업을 생각했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시체 사진들이나 잔혹한 사진
들을 구해주는 거야.
보고 싶지만, 구할 수 없는 자료들이지.
사실 요즘 포르노나 야한 사진들은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잖아.
하지만, 이런 잔혹 사진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그 만큼 그것을 보고 싶어하는 억눌려진 욕구들이 있지.
나는 그것을 충족 시켜주기로 결심한 거야.
별로 떳떳하지 못하지만, 잘만 되면 짧은 기간에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어.
시험삼아, 각 통신망의 공포물 게시판에 짧게 '시체 사진과 잔혹
사진을 봤는데, 너무 끔찍했다..' 정도의 감상을 올려놨지.
결과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어.
그 사이트를 가르켜 달라기도 하고, 그 사진들을 보내 달라기도
하고 해서 한 200통이 넘는 메일을 받은거야.
그때부터 이 사업에 자신이 생겼어.
이 세상에는 진짜 별놈이 많아. 나야 돈벌려고 이런 짓 하지만,
그런 사진들을 좋아하는 놈들도 있다니..
하긴 그런 잔혹 사진을 찾는 대부분의 애들은 어린애들이야.
순수한 호기심으로 찾곤 하지.
하지만, 정말 매니아처럼 그런 사진 모으고,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
여하튼 공포 관련 IP를 하나 개설하고, 겉으로는 평범하게 이런
저런 공포물 게시판을 만들고, 매니아들만을 위한 회원제 게시판
을 하나 만들었지.
바로 그런 사진들을 구매할 수 있는 게시판이었지..
처음에는 뜸하더니, 입소문이 퍼졌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진
구입을 요청했어.
나는 그 만큼 양질의 사진들을 제공했어.
그런 것을 어디서 구했냐고?
뻔하지.. 인터넷.
한 일주일만 검색하고 다니면, 그런 것을 전문하는 싸이트, 그런
사진의 매니아 개인 홈 페이지, 그런 사람들과 메일 좀 교환하다
보면 무궁무진한 자료들을 구할 수 있어.
솔직히 외국에는 그런 것만 보면 환장하는 변태들이 많거든..
그네들을 좀 치켜세우면서 나도 공감하다는 듯한 메일을 쓰면 금
새 자랑하듯이 자기 수집 사진들을 보내주거든...
그러면 나는 그것을 엄선된 수요자들에게 공급하고..
이런 사업이 다 그렇듯이, 절대적으로 구매자의 신원을 보장해주
었어. 그래서 결재는 온라인 송금 위주로 했고, 그 이외의 개인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어.
물건 배달도, 원하는 방식으로 해 주었지.
파일 전송, 소포, 편지, 배달까지...
꽤 짭짤한 일 거리였어....
주문이 생각보다 많아져, 도저히 집에서는 일할 수 없겠더라고..
피범벅이 된 사진들을 집에 널여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집을 나와 오피스텔을 얻은 것이고..."

여기까지 듣던 성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석의 말을
가로막고 쏘아 붙였다.

"야, 너 임마,
그거 불법 아냐?
내가 듣기에는 포르노 테잎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하려고?"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니네 방에서 본 잡지들이 그런 자료들이었구나..
어쩐지..
여하튼 내 생각에도 좀 위험한 사업 같은데..
지금이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좀 알려지기 시작하면, 곧장 구속일걸...
안 그래도 요즘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하는 불법 거래 때문에
난린데.."

인석이는 우리들의 걱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이 장사 오래 할 생각은 아니였어.
한 서너달 해서 돈 좀 벌고, 다른 사업할 자금이나 마련할 생각
으로 시작한 거니까.."

나는 인석이 얘기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인석아...
너 혹시 스너프 같은 것도 취급하니?
그리고 그런게 정말 있기나 해?"

스너프란 말에 인석의 표정은 굳어졌다.
성준은 그 말을 처음 듣는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스너프란 것은 사실 그것을 다룬 영화들 때문에 대중들에게 알
려지기 시작한 거야.
실제로 사람을 폭행하고 죽이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 테잎인데,
비밀리에 고가로 거래가 된다는 거야..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스너프에 대한 영화는 <무언의
목격자>, <떼시스>, 최근의 <8mm>등등 꽤 되는 편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스너프가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실제로 스너프라는 것이 진짜로 있다면, 내 생각에는 인간의 야
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 스너프야.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그 장면을 보고 즐기는.. 정말 인간
이 아닌 새끼들 얘기지.. 뭐..
여하튼 그래서, 인석이 너도 설마 스너프 필름같은 거 취급한 것
아니겠지? 엉?"

인석이는 나의 추궁하는 질문에 오히려 얼굴이 벌개지며 부인했
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내가 그런 개같은 물건을 취급할 사람같냐?
아무리 돈에 환장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손도 안돼!"

스너프가 뭔지 감을 잡은 성준이는 인석이를 계속 몰아붙였다.

"야, 임마, 돈을 벌려면 좀 깨끗하게 벌어라.
그게 뭐냐?
이상한 사진이나 자료 팔아서..
내가 보기에는 청량리에서 뽀르노 파는 거랑 똑같이 보인다.
그리고, 니 말대로 니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 똘아이
라며?
그런 애들도 스머프인지 스너프인지 알거 아냐.
너한테 그런 것 부탁한적 없냐고?
있지? 그래서 너도 구해보려고 했고?
솔직히 말해봐!"

몰아부치는 듯한 성준의 얘기에 인석이는 머뭇거리고 대답을 제
대로 못했다. 우리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인석이는 뭔가 두려운 생각이 떠오르는 듯이 갑자기 손을 덜덜
떨며 담배불을 붙이려고 했다. 내가 손을 뻣어 라이터를 켜주었
다. 라이터 불빛에 반사되는 인석이의 눈동자는 지옥을 들여다 본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인석이는 담배 연기를 한숨을 쉬듯이 뿜어내고, 우리의 의문에 대
답을 해주었다.

"스너프라...
아마 악마가 인간에게 준 파멸의 선물일거야..
내가 경험한 모든 괴기한 일들이 이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지..
그 참혹한 시체를 발견한 밤으로 돌아가자..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내가 모아둔 자료나 사진들을 경찰들이 보
면 나를 의심할 것 같아 그것을 빨리 치울 생각을 했지..
그런데, 인터넷에서 캡춰해 프린터해 놓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뭔가 불길할 정도로 나의 시선을 끄는 사진을 발견했어.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몇 주전에 내게 이상한 주문을 하던 어떤
미친놈이 생각났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괴상한 주문이었지...."

 


<계속>

...인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인석의 장황한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 확신을 할 수 없
었지만, 잠자코 그 자식의 얘기를 끝까지 듣기로 생각했다.

"그 사람이 이상한 주문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날 밤
사진 자료를 챙기던 도중이었어.
그때는 정말 당장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칠 것만 같았어.
생각해 봐라.
그런 끔찍한 살인이 일어났고, 그것을 혼자서 목격한 사람이 있다
면, 첫 번째로 그 목격자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거 아냐.
거기다가 그 목격자의 방에서 잔인한 시체 사진들이 발견된다면..
잘못하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살인범으로 몰릴 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애써 모은 그 사진과 자료들을 그냥 없애버릴 수는 없
었어.
어떻게든 숨겨야 했어.
우선 그것들을 챙기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많은 사진들 가운데, 갑자기 눈에 띠는 것이 있었어.
이런 말, 너희들에게 하면 나를 더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
지만...
그 사진에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한 시체의 모습이 담겨있었어.
수 많은 사진 중에 그 사진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그 사진
속 모습과 그날 밤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 남자의 시체의 모습이
똑같았다는 거야.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똑같았어.
피 범벅이 된 침대에서 묶여진 채로 사지가 절단되어 있는 모습
이란..
사실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는, 또 하나의 기막한 분장 기술의
승리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말하면 나를 나쁜 놈으로 생각하겠지
만, 나는 스스로 내가 모으고 취급하는 사진들은 전부 진짜 시체
들의 사진이 아닌 그저 공포영화처럼 분장으로 꾸며낸 조작 사진
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 사진들이 모두 조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스스로 편하게 생각
하기 위해 전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취급한거야.
게중에는 끔찍한 사고로 죽은 시체들의 사진도 있었지만, 그런 것
들은 잔인할 뿐 아무 문제도 없는 사진들이잖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살해당한 형태의 사진들이 전부 진짜라면 문
제는 장난이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그런 사진들의 사실 여부는
별로 생각도 않고 단지 매니아들의 조작 사진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어. 실제로 대부분이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조잡한 조
작 사진들이었고...
그런데, 그 사건을 목격한 후, 그 사진을 보니 조작 같지가 않고
진짜 같은 거야.. 그것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머리 끝까지 끼치고
겁이 나기 시작했어.
자세히 그 사진을 살펴봤어.
사지가 잘려나간 부분하며, 묶여있는 형태하며.. 모든 것이 내가
목격한 그 시체와 동일한 거야.
단지 다른 것은 사진 속의 시체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다는 거야.
피범벅이 되어 있지만, 시체의 가는 팔목을 보면 여자인 것 같기
도 하고 큰 키로 봐서는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어.
이리 저리 살펴봐도, 우연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똑같았어.
그 사진을 어디서 구했는지 알기 위해, 장부처럼 사진들을 기록해
놓은 엑셀 파일을 뒤졌어.
기록해 놓은 사진 번호로 찾아보니, 거기에는 내가 입력한 기록이
나왔어. 그 기록을 보니 그 이상한 주문이 기억나는 거야..
휴...
그 이상한 주문은 KillYou라는 재수 없는 Mail ID로 온 것이었어.
그런데 그 주문이 이상했던 것은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을
무료로 제공할테니, 그 사진들 보다 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진을
구하면 보내달라는 거야. 소위 말하면 물물 교환 요청이지..
가끔 변태들이 그런 교환 요청을 하기도 하거든..
메일이 영어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 같았어.
사실 이런 사진들을 모으는 사람들은 전세계에 곳곳에 퍼져 있더
라. 그런 놈들을 인터넷이라는 혁명적인 도구를 통해 묶어놓은 것
이지... 특이한 것은 안 그럴 것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사
진들에 은근히 관심이 많더라.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진
들을 모우고 있는 것 같아..
그건 그렇고.. 그 주문이 좀 괴기했던 것은, 돈을 줄테니 자기가
보낸 사진을 홈 페이지에 공개하고, 모든 회원들에게 보내달라고
하는거야.
좀 황당하더라고..
그런 사진을 모으는 사람들이 좀 특이한 것은 알았지만, 돈까지
주면서 자기가 제공하는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은
마치 노출증 환자의 부탁을 받는 기분이였어.
대개의 고객들은 모든 거래를 비밀리에 하고 싶어했거든...
가끔 자기의 수집물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식
으로 노골적으로 자기의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거든..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KillYou라는 사람이 보내온 사진을 봤어.
그렇게 많이 사진을 봐온 나도, 그 사진을 처음 볼때는 등골이 오
싹할 정도로 끔찍했어.
사람을 처참히 난도질한 사진이었지.
엄청난 사진들이었지만, 그때는 분장술이나 사진의 조작으로 생각
하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단지 돈을 준다고 했으니, 약속대로 홈페이지에 올리고 회원들에
게 서비스라며 사진을 담아 메일을 보냈어.
그리고 KillYou라는 사람에게는 수수료 입금을 확인한 후, 가지고
있던 사진 중에 세로누 달로치라는 그 업계에서 좀 유명한 놈의
사진 하나를 보내 주었어.
분장술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달로치의 사진들은 정말 끝내주게
실감나고 잔인했어. 지금까지도 잔혹사진의 전설로 남아 있는 사
람이지...
90년대 초까지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잔혹 사진사라는데, 그 사람
의 얼굴을 본 사람은 거의 없데. 달로치는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
는 방법에 통달한 사람처럼, 그의 사진에는 매번 새롭고 기상천외
하고 말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살인 장면이 담겨 있다는 거야.
아직도 그의 사진이 진짜였는지, 분장술이나 사진 조작이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거야.
인터넷이나 복제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달로치
의 사진이 한 장당 몇 백불까지 하기도 했데.
나도 몇 장 그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이야 컴퓨터
를 이용한 사진 복사야 누워서 떡먹기는 그 중에 쓸만한 것 하나
를 보내 주었지..
그리고는 KillYou의 주문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어.
그런데, 며칠 후 그 KillYou에게 메일이 왔어.
추가 주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 메일을 열어봤
어.
정중한 어조였지.. 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어.

<운영자님께,
보내주신 달로치의 사진은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우 실망을 하게 되는군요.
제 작품을 달로치의 사진정도로 생각하시다니..
아니면 그쪽 수준이 달로치 정도 밖에 안 되는지..
적어도 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피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작품을 한물간 3류 사진사의 조악한 사진과
교환하다니...
이번에 보내드리는 작품은 제발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번에도 지난번 작품처럼 똑같이 처리해 주십시오.
그리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보수는 지난번과 같은 금액으로 드리겠습니다.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

어떻게 보면 정중한 말투의 메일 같았지만, 은근히 협박하는 것
같은 내용이었어. 달로치의 사진을 알아보고, 무시하는 것을 보니
그쪽으로는 광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같았어.
그리고 재미있던 것은 자기가 보내오는 사진들을 '작품'이라고 부
른다는 것이었어.
한낱 잔혹 사진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작품이라고 부르다니...
그걸 보고 약간 맛이 간 놈이라는 생각이 드니, 약간 무서워지기
까지 하더라.
하지만 별 하는 일없이, 보내온 사진만 회원들에게 발송하고 홈페
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니 당연
히 그렇게 했지.
그때 보내온 사진도 만만치 않게 잔인했어.
첫 번째 사진과 비슷한 희생자로 보이는 사람이 역시 얼굴을 가
린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두 팔과 한다리가 잘려나간 채
로 피를 뿜으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지.
너무 실감나서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구토를 할 것
같았어. 도무지 사진 조작 같지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잔혹한 사진을 보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
러웠지만, 자꾸 보게 되는 거야. 눈에 아른거리고.. 마치 롤러코스
트가 무섭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타게되는 것처럼...
이렇게 잔인한 사진을 요구대로 공개할까 한참을 고민했어.
하지만, 설마 라는 실제 장면을 찍은 사진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
으로 그 사진을 개재하고 회원들에게 보냈지.
그 사진을 보내고 난 후, KillYou라는 놈에게 마땅히 보내줄 사진
이 없는 거야.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변태같은 놈에게 이번에도
섣불리 사진을 보낼 순 없었어.
고민 끝에 사진 하나를 골랐지.
사실 그 사진을 보낸다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었어.
그 사진은 정말로 살인장면을 찍은 사진이거든..
내가 취급했던 사진들의 진위여부는 솔직히 상관하지 않았어.
전부 사진조작으로 생각하고 거래를 주선했지.
모르는 것이 면죄부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진들을 전부 조작된 그
림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이 사진만은 내 스스로 실제 살인 장면을 찍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었어. 신문기자가 살해된 시체를 기사용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살인자가 피해자를 죽이면서 찍은 것이야.
미친놈이 만든 정말 미친 사진이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사진 속의 피해자가 바로 달로치야.
그 KillYou에게 보내 주었던 사진을 찍은 그 장본인이 이번에는
시체가 되어 사진에 찍혀있는 것이지.. 더구나 실제로 살해된 상
태로...
달로치의 사진에 감동을 받은 어떤 미친놈에 의해, 자기의 사진처
럼 잔혹하게 ?겨 죽였다는 거야.
그렇게 끔찍한 죽음을 당한 달로치를 간직하고 싶어하던 그 미친
놈에 의해 카메라에 담겨졌다는 거야. 정말 시체 사진이 된 것이
지..
그 사진은 쾌락을 목적으로 살해 장면을 찍은 스너프 종류라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그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어. 그 정도 사진이면 그 변태놈도
만족하리라 믿었지.
돈은 많은 놈인지, 돈은 즉시 입금했어.
좀 망설였지만, 그 KillYou라는 놈의 비위를 맞추어 주면 돈이 좀
나올 것 같아 그 사진을 보냈어.
그런데 각 회원들에게 두 번째 사진을 보내고 얼마 후에 많은 메
일들이 오기 시작했어.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메일들을 읽어보
기 시작했어.
수십통의 메일은 하나같이 이번에 보내 준 사진에 대한 극찬을
하고 있어.
정말 훌륭하고, 예술이며, 짜릿하고, 자극적이며, 흥분되는 사진이
라는 거야. 그런 메일들을 받아보니, 어안이 벙벙해 졌어.
아무리 잔인한 사진들을 보내주어도 일찍이 이런 반응은 없었거
든.. 그런데 이번에는 황당할 정도로 열렬한 반응이 나온 거야.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도 그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게
되었지..
아까 얘기했던 것 처럼, 그 사진을 보자 마자 느끼는 감정은 극도
의 혐오감과 공포심, 그리고 구토였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상
할 정도로 그 사진에 끌리는 것이 느껴졌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
그 끔찍한 사진이 마치 어떤 신비한 마력을 가진 것처럼 보는 이
를 끌어드리는 거야..
참 기괴한 느낌이었어.
한 동안 그 사진에서 눈을 땔 수 없었어. 사진을 꼼꼼히 보는 것
도 아니고 멍하는 바라보는 것 같은 상태에서...
뭔가에 홀린 것 같았지..
그러다가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정신
을 차릴 수 있었어.
새로 도착한 메일은 바로 그 KillYou라는 놈에게서부터 온 것이
었어.
그 메일이 도착한 것을 보자,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어.
두려움과 기대감, 또 호기심이 뒤섞인 듯한 괴상한 느낌이었지.
나도 모르게 그 메일을 열어보려고 움직이는 마우스를 쥔 손이
떨려왔어.
KillYou가 보내온 메일의 제목은 다름아닌 'Not yet....' 이었어.
그 메일을 여는 순간, 나는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졌어.....

 


<계속>

..떨리는 손으로 KillYou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보았어.
거기에는 사진 파일이 하나 첨부되어 있었고, 예의 그 정중하지만
섬?한 어조의 글이 있었어.

<운영자님께..
이번에 보내 주신 사진은 지난번 것보다는 좀 나아졌네요.
사진에 생명감이 있고, 약간 실감도 나는 것 같고..
하지만 아직 제 사진보다는 한참 떨어지네요...
이번에 보내는 사진을 참고하시고, 더 괜찮은 사진이 있으면
보내 주세요.
그런 작품이 없다면... 실망이 크겠네요..
하나 정도 직접 제작해서 보내 주시는 것도 괜찮겠네요.
감상의 즐거움보다는 한번 창작의 쾌감을 직접 느껴보시죠.
어렵게 탄생한 예술은 그 만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기대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금은 지불하겠습니다.
저를 감탄시키는 작품을 보내주신다면, 돈은 10배를 지불하겠습
니다.
잊지 마세요.
항상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KillYou >

언뜻 읽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무슨 화가나 사진 작가의 편지
같았지만, 그 내용을 한번 생각해보면 섬뜩했어.
더군다나 항상 지켜보고 있다니...
마치 나보고 잔혹한 사진을 만들어 자기의 천박한 욕구를 충족시
켜 달라는 것 같았어. 아무리 이런 사진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실
제 사람을 죽이고 찍은 사진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다니....
점점 내가 상대하고 있는 놈이 정말 미친 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
어..
하지만 그 놈이 보내온 사진이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었어.
그 놈의 메일을 통제로 지우려고 했지만, 악마의 속삭임같이 달콤
이 나를 유혹하는 호기심에 넘어갔어.
그 사진 파일을 열어보았어.
그 사진이 바로 그 남자의 살해장면과 똑같은 사진이었던 거야.
그 때는 또 하나의 잔인한 사진이라고 생각했어.
처음 봤을때는 너무 잔인한 시체의 장면이라, 이번에는 조작이 확
실하다고 생각했어.
생각해봐라. 사람을 침대에 묶어놓고, 마디마디를 잘라놓은 모습
이... 피 범벅이 되 상태로..
여하튼 그 사진은 그 참혹성 때문에 조작으로 치부하고 싶었어.
그리고 더 이상 그 놈이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기로 했어.
원래 조건은 그 사진 역시 회원들에게도 보내고, 홈페이지에 등록
해야 돈을 받기로 했지만.. 휴.. 사람들의 광적인 반응이 두려워져
서 공개하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그 사진을 지우지는 않았어.
몇번을 그 KillYou가 보내온 사진들을 지우려 했지만, 그 때마다
이상하게 지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자꾸 보게
되더라고..
그거 있잖아?
밤에 혼자서 공포영화 볼 때, 무서워서 눈을 가리면서도 자꾸 무
서운 화면으로 시선이 가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올려놓은 사진들도 삭제해 버렸어.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의 메일은 정말 빗발치듯 왔어.
다시 보여달라, 다음 사진을 보여달라, 그 사진 사겠다, 어떤 천재
의 작품이냐.... 등등..
사람들의 반응이 더 크면 커질수록 그 사진과 KillYou에 대한 두
려움이 커졌지. 자꾸 잊으려고 했어.
내가 약속을 이행 안 해서 그런지, KillYou로 부터는 대금 지불도
안되었지..
그러던 어느날, 그 KillYou로부터 메일이 왔어.
그 메일을 읽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어.
경고성 메일이었지. 솔직히 겁이 나더라...

<운영자 님께...
고객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시다니.....
같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대해선 안 되죠..
제가 부탁한 것을 안 하시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무지와 소심함에 대한 경멸뿐입니다.
한번의 기회를 더 드리죠.
내일까지 제 부탁을 무시한다면, 그 대가를 치뤄야 할
것입니다.
제 ID를 잊지 마세요..
KillYou>

그 메일을 받아보니, 그 KillYou라는 놈은 완전히 또라이 같더라.
그 정도로 그런 사진에 집착하고, 자기 사진을 과시하고 싶어하다
니... 글짜 그대로 무시무시한 싸이코가 연상되는 거야..
하지만, 설마 그 놈이 직접 나를 찾아와 해꼬지 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그 협박 메일을 무시하기로 했어.
솔직히 그 놈에 대해 잊어버리고 싶었지..
그러던 중에, 그 날 밤 놈이 보낸 사진이 눈이 띤 것이야.
나는 파일로 보내온 사진들을 다시 고해상도의 프린트로 인쇄해
서 보관하고 있거든..
그 인쇄된 사진을 보면 볼수록, 내가 목격했던 살해 장면과 너무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시체의 잘려진 부위, 묶여진 매듭 형태, 시체의 눕혀진 자세.. 마
치 그 시체를 찍은 사진 같았어. 아니, 오히려 어떤 미친놈이 그
사진을 보고 똑같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았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괴기한 일이잖아.
그래서 나는 경찰의 있을지도 모르는 수색을 피해 그 사진을 없
애버리던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뚫어지게 그 사진을 살펴보
았어.
사진과 내가 발견했던 시체와 다른 점이 보였어.
바로 시체의 크기였지.
내가 저쪽 방에서 발견한 남자의 시체는 침대를 가득 채울만한
거구였거든. 그런데 사진 속의 시체는 침대의 반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였어.
사진속의 침대가 작을 수도 있었지만, 확실히 사진 속의 시체가
더 작았어.
그리고 또 다른 점은....
둘 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 분명치는 않았지만, 사진안의
시체는 여자 같았어.
몸의 굴곡이라든지, 길어보이는 머리카락등을 보았을 때...
하지만 얼굴은 이런 사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사진으로는 보이
지 않았어. 스너프라고 알려진 그 처참한 사진들은 피해자의 공포
에 질린 표정들이 적나라하게 나온다고 하지만, 이 사진에는 우연
인지, 사진을 찍은 미친놈의 연출 때문인지, 시체의 얼굴이 카메
라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었어.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사진속의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
어. 하지만, 뭔가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이 사진 안에 들어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어. 전혀 근거는 없는 예감이었지만, 웬일인
지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어.
컴퓨터에 들어있는 그 사진 파일을 찾아내서, 확대해 봐야 좀 뭔
가가 발견될 것 같았어.
모니터에 나타난 사진을 우선 10배로 확대해서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어. 확대해 보니 그 시뻘건 시체의 피로 21인치 모니터 가
득히 보이는 거야.
처음에는 그 화면을 보고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하고 잔인했
어. 사진을 찍은 놈이 보통 카메라로 찍어 스케닝한 것인지 확대
를 하니 사진의 선명도가 현격히 떨어졌어.
하지만, 뭔가를 알아냐야 겠다는 생각에 모니터에 보이는 사진을
?듯이 살펴갔어.
얼마나 피 범벅이 되었는지, 그렇게 확대를 해 놨는데도 맨 살이
그대로 보이는 부위는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았어. 그래도 혹시 이
사진을 찍은 놈이나, 사진 속의 시체의 신원이라도 알아낼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역겨움을 참으며 확대된 사진을 살펴봤
어. 피 때문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 시체가 여
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
피 범벅이 되었지만, 가느다란 목덜미며 긴 머리칼이며 남자보다
는 여자인 것이 확실했어. 보다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 시체
의 잘려나간 손가락들에 여러 개의 반지가 껴 있는 것이었어.
하지만, 잘려나간 머리가 카메라 반대쪽으로 돌아간 상태로 찍혔
기 때문에 사진 상으로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방법은 없었어.
한참을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뭔가 이 모든 괴상한 일들의 답이
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낼 방법을 생각했어.
내 주변에 나타나던 그 무표정한 여자의 유령, 가끔식 들려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음, 끔찍한 사진을 보내오던 KillYou, 그 놈
이 보내온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잔인하게 잘려진 채로 발견된
저쪽 방의 시체....
이 모든 사실이 뭔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전혀
그 고리를 찾을 수 없는 거야.
경찰의 의심을 피해, 이런 사진들을 없애야 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그 괴기한 일에 대해 생각했어.
그런데, 그 때 등뒤로 싸늘하게 쏟아지는 듯한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어. 갑자기 온 몸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더니,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워졌어.
시뻘건 피 색으로 가득 찬 모니터에 내 등뒤로 뭔가가 희끗하고
비치는 것이 보였어, 등뒤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끝
이 쭈뼛하게 뻗치는 것이 느껴졌어.
하지만, 아무리 두려워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어.
그 기분 나쁜 시선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서,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어.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
뒤를 돌아보자마자, 무서움으로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등 뒤에는 그 여자가 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있는 거야.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어.
그 얼굴은...
휴... 너무 무서웠어...
공포에 질려 솔직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다음 순간 그 여자가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거야.
정말 귀신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스스륵 내게 오는 거야. 아주
천천히...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어.
그런데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
정말 미치겠더라...
점점 더 가까이 왔지만, 나는 그 끔찍한 얼굴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어.
본능적으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어.

'안돼!!! 제발!!! 아아악!!!'

하지만, 그 여자는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어.
피비린내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이 내 눈앞으로 바짝 다가오는 순
간, 갑자기 사방이 깜깜해졌어.
그리고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갑자기 암흑 속에서 '쾅쾅' 소리가 들렸어.
눈을 간신히 뜨니, 스크린 세이버가 작동 되 있는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있었어.
몸을 일으켜 주변을 확 돌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
분명히 두 눈 똑똑히 본 그 여자 귀신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어. 시계를 보니, 한 5분 정도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어.
그 여자의 끔찍한 모습이 생각나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
리고 소름이 쫙 끼쳤어. 생각하기도 싫고 무서워서 진저리가 쳐졌
어.
나를 깨웠던 '쾅쾅'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어. 누군가가 다급하게
오피스텔 문을 두들기는 소리였어.
이 깊은 밤에 누군가 하는 생각에 문을 향했어.
비틀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어.
보안경으로 문밖을 내다보자, 내 심장 박동 소리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어.
문밖에는 형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험악한 표정을 한 채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야. 고개를 책상쪽으로 돌리자. 모니터와 책상에
그 살인현장과 똑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널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띠었어.
문밖에 있던 남자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과 함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문 열쇠구멍에 집어넣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계속>

..생각해봐라.
만약 그 사람이 경찰이었다면, 짤 없이 나는 살인 용의자로 몰릴
편이었어.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도 나였고, 수 많은 잔혹사
진들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살인 현장과 똑같은 모습의 사진을
가지고 있으니.. 정확한 물증은 없어도, 이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
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을 거 아니냐.
생각할 것도 없이, 책상으로 달려가 펼쳐져 있던 사진들을 대충
서랍에 집어넣고 컴퓨터를 꺼버렸어.
문쪽에서는 열쇠를 집어넣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라.
나는 그때서야, 대충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 '누구세요?'하며 방문
을 열었어.
갑자기 문을 열자, 당황한 듯한 표정의 남자가 열쇠비슷한 것을
들고 문앞에 서 있었어.
나는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
그 사람은 옷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이번 살인 사건
을 담당한 형사라는 거야.
몇가지 더 질문할 것이 있어, 찾아왔다는 거야.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었던 것이 좀 이상했지만, 그 사람 말로는
내가 분명히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
이상해서 열려고 했다는 거야.
잠깐 들어와서 얘기해도 되냐고 하더라.
안된다고 했지만, 그러면 더욱 의심을 받을 것 같아 들어오라고
했어.
형사는 내 방을 의미 심장한 눈초리로 둘러보며, 다짜고짜 질문들
을 해댔어.
엘리베이터에서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그 방에 들어가
본적이 있느냐, 그 방에 드나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 등등 아까
몇 번을 대답했던 질문을 또 해대는 거야. 처음에는 좀 성의껏 대
답을 해줬지만 나중에는 짜증도 나더라..
그런데 갑자기 좀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 시체로 발견된 사람 잘 알지도 못한다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뭐 주고 받은 것 없느냐, 시체를 발견했을
때 기분이 어땠냐... 급기야는 사람을 죽여 봤느냐라는 무례한 질
문을 하는 거야.
화가 나더라, 그래서 당신 형사 맞냐고 소리를 질렀어.
그 형사는 내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도, 침착하게 그런 질문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다시 형식적인 질문을 하는 거야.
나는 기분도 잡치고, 그 사람이 형사인지 확신도 안 가서 그만 얘
기하자고 했어.
그 형사는 알았다고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문 쪽으로 가는 것 대신에 내 책상쪽으로 향하는 거야.
당황해서, 나는 그 형사 앞을 가로막으면서, 이제 나가달라고 했
어, 그 형사는 가만히 서서 내 책상 주변을 살펴봤어.
나는 그 형사가 뭔가를 찾아내도록 가만 둘수 없어, 거의 밀듯이
그를 막았어.
그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책상 귀퉁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자리
를 뜰 생각을 안했다. 나는 그의 시선이 가는 곳을 돌아보았다.
제기랄!
거기에는 내가 미처 감추지 못한 사진 한 쪽이 책상서랍에 사이
에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거야.
나는 그 형사를 가만둘 수 없었다. 강제로 그 형사를 문쪽으로 밀
었어. 지금 생각해봐도, 거의 미친 짓이었지.
나를 의심해줘요 하는 식의 행동이었잖아.
하지만,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형사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저항도 안하고, 더 이상 질문
도 안하고 가만히 문쪽으로 돌아갔어.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문을 연 형사는 방문을 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섬
듯한 얘기를 하는 거야.

'인석씨, 협조 감사합니다.
제가 협조에 보답하는 셈치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
죠. 이 동네는 전국 평균 범죄율보다 휠씬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
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도 아마 한 1년만에 처음 일어난 일일거예요.
그만큼 안전한 동네죠. 전국에서 몇번째 안가는 안전한 곳일 거
예요.
그런데, 이렇게 안전한 동네에 좀 이상한 일이 있어요.
한 1 년전부터 괴기한 사건이 발생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죠.
처음에는 종합 병원들의 시체가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달을 간격으로 없어지는 것 같더니, 그 다음부터는 점
점 그 간격이 작아졌어요. 어쩔 때는 1주일 간격으로 시체가 없
어질 때도 있었어요.
수법은 다양했지만, 주로 영안실에서 안치되어 있는 시체가 없어
졌어요. 경찰도 처음에는 병원 측 착오로 생각했지만, 자꾸 비슷
한 사건이 일어나고, 시체가 없어진 유족들의 항의도 점점 거세
져 수사를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죠.
병원에서 없어지는 것은 끽해야 약품 몇 종류, 기기 정도였지
시체가 없어지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수사를 해도 사건을 해결 될 기미가 안 보였어요.
단서도 없었고, 동기도 전혀 알 수가 없었었요.
시체가 없어진 유족들을 협박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발
생하지도 않고 설상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하더라도 별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없는 범죄였어요. 위험 확률도 높고요.
결국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처리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인데,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요.
없어진 시체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없어졌어요. 알 수 없는 일
이었어요.
좀 으시시한 얘기죠...
그러다 갑자기 그 시체의 실종 사건이 뚝 그쳤어요.
무슨 이유였는지, 한 6개월 좀 계속 되 오던 시체 실종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6개월 동안 없어진 시체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구
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물론 그 범인도 잡지 못했고요.
경찰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지요.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 사건들이 미궁에 빠진 채, 세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쯤 한
젊은 형사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 사건이 멈춘 후, 이 근방 30Km 반경에서 실종사건이 급증한
거예요. 예년의 같은 기간 동안보다 두 배의 사람이 실종되었어
요. 시체가 없어지던 기간동안 보다도 역시 두 배 정도의 사람이
더 실종된 거예요.
이번에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라졌어요.
그 사실을 발견한 그 형사는 시체 분실 사건과 눈에 뛸 정도로
증가한 실종 사건과 뭔가 연관이 있다고 확신을 하고, 시체들과
실종자들의 사진과 자료들을 쌓아놓고 며칠밤을 세며, 연관성을
찾아내려고 했어요.
출신지, 식구, 나이, 성별, 가정 환경, 성장 환경 등등... 모든 하
나의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워낙 무차별적으로 없어진 것
같아서 그런지 어떤 연관성을 찾아낼 수 없었어요.
거의 포기 상태였던 그 형사는 한가지 말도 안되는 연관성을 찾
아냈어요. 없어진 시체나 실종자들 모두 각자 연령의 사람들의
평균 체중보다 약간 무겁다는 것이지요.
모두들 자기들의 평균 체중보다, 한 5kg에서 10Kg 더 무게가 나
가는 사람들이었요.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2달동안 밤새고 발견해낸 단서란 고작 그것 뿐이었죠...
그리고는 그 형사는 그 사건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주위에서도 말렸고, 이 사건들이 범죄라는 뚜렷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할 수 있는 명분도 없었어요.
결국, 그 사건에 열정을 가지던 그 형사도 수사를 포기했어요.
없어진 시체 11구와 실종자 12명을 남기고....
그러던 중, 그 형사는 새로운 사건을 맡았어요.
이 구역에서 1년만에 처음 발생한 아주 끔찍한 살인사건을요.
그런데 그 형사는 그 살인현장을 보자마자, 이유도 없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살인 사건과 그 실종사건과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그래서 그 형사는 결심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얘기는 여기가 끝입니다.
그럼 푹 쉬세요...
만약 살인 사건에 대해 작은 기억이라도 다시 떠오른다면, 제게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그럼....'

그러더니 문을 닫고 나섰어.
황당하더라고...
그러면서도 웬일이지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지더라.
그 형사는 분명히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어. 나를 범인으로...
그리고 그 시체 실종 얘긴 이유도 모르게 너무 무서웠어.
나는 그 형사가 나간 문을 멍하는 쳐다볼 수 밖에 없었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러다, 책상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큰 충격을 받았어.
아까 그 형사가 유심히 보던, 그 사진이 없어진 거야.
나는 미친 듯이 책상을 뒤졌지만, 그 사진을 발견할 수 없었어.
없어진 사진은 바로 살인 현장과 똑같은 그 문제의 사진이었어.
그 형사 놈이 그 사진을 가져간 것이 분명했어.
이제 경찰이 곧 나를 잡으러 올 것 같았어.
정신이 멍해졌어.
그런데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만약 그 형사가 그 사진을 몰래 가져가서 그 사진을 봤다면, 이제
까지 안올 리가 없었어. 그 사진을 보자마자 다시 내게 왔을거야.
그렇지 않고는 나중에 그 사진을 내방에서 발견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어. 몰래 훔쳐간 것도 문제고, 아무런 증인도 없었고
내가 나중에 모른다고 시침을 땐다면 그 사진은 아무런 효과도
없을텐데..
그럼 그 형사놈이 안 가져갔나? 어떻게 없어진 걸까?
만약 그 형사놈이 가져갔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아무 것도 알수가 없었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여하튼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분명했어.
더 이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든 사진들을 없애야 하는 것이
었어.
컴퓨터를 다시 켜고, 저장되 있던 사진들을 지우려고 했어.
그러다가 그 문제의 사진파일이 생각났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단서를 위해
서라도 한번 더 살펴봐여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진을 확대해서 다시 살펴봤어.
역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긴장해서 였는지 피곤함이 느껴졌어.
포기하고 그 파일을 지울 결심을 했어.
그런데 뭔가가 눈에 띠었어.
정신을 바짝차리고 그 부분을 더 확대해서 봤어.
그 부분이 뭔가를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뒤통수에 둔기를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느꼈어....


<계속>

..그건 사진의 오른쪽 귀퉁이에서 발견한 거야.
아까도 말했듯이, 그 사진 속 시체의 고개는 사진기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어서 시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사진을 확대하다 자세히 보니, 시체의 고개가 돌아간 쪽
에 희미하게나마 작은 거울이 일부 보이는 거야.
혹시나 하고, 그 부분을 확대해 봤어.
원래 10배 정도로 확대되어있던 사진을 더 확대하니, 아무리 화질
을 보정하더라도, 흐릿하고 거칠게 보이는 거야.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거울에 뭔가 비치는 것이 있다는
거야. 언뜻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세히 보니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어.
전혀 그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사람의 얼굴인 것이 확실해
보였어.
시체의 얼굴일 수도 있는 거야.
어쩌면 이 사진을 찍은 미친 놈의 얼굴이나, 살인자의 얼굴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어.
사진만 취급하던 내가 진짜 살인에 관련되기 시작하는 것이 실감
났어. 사람이 죽고, 사람일 죽이는 그 끔찍한 일에..
몇번을 확대하고, 보정작업을 했지만, 내가 가진 컴퓨터와 소프트
웨어로써는 더 이상 선명해지지 않았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
한승이 형이 떠오르더라..
일한이 너도 알지, 우리 영화제 했을 때 도와줬던 그 사진광 형..
한승이 형이라면, 그 사진을 좀더 정확히 확대해서 보여줄 수 있
을 것 같았거든..."

인석이가 한승이 형 얘기를 꺼내니까, 갑자기 그 끔찍했던 스티커
사진이 생각났다. 은미와 여러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그 원혼의 스
티커 사진이....
한승이 형과는 그 사건 이유로 가끔 연락을 했다. 그 사건으로 한
승이 형도 그런 사진에 대해 좀더 공부를 했다는 얘기만 들었는
데..
한승이 형은 우리 영화제 준비하다가 만난 사람인데, 사진 공부
하기 위해 유학까지 갔다온 사람으로 사진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한승이 형은 예술적인 사진을 잘 찍을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전문가 이상이어서 그 스티커 사진건 때 많은 나도
그 스티커 사진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데 인석이도 한승이 형에게 도움을 청한 것 같았다.
인석이는 목이 마른지 나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얘기를 계속했
다. 인석이는 뭔가 불안한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이 마음에 좀
걸렸지만, 얘기는 계속되었다.

"한승이 형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고, 그 사진들을 지우지 않기
로 결심했어. 좀 위험한 일이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없앤다면 이 모
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
거든...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
었어. 벌써 새벽 5시가 넘어있었어.
거의 밤을 꼬박 샌 격이었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 것을 보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더라.
태어나서 그렇게 피곤하고, 긴 밤은 처음이었어.
혹시 누군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문을 꼭꼭 잠가놓
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어.
얼마나 피곤했는지, 정말 눕자마자 잠이 든 것 같아..
한 5시간 정도 잤을 거야, 아니, 악몽에 시달렸다는 것이 맞지..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온갓 잔혹사진들이 꿈속에서 나를 괴롭혔
고, 내 주변에 나타나던 그 여자는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어.
결국은 내가 침대에 묶여 그 여자에게 온 몸이 잘려나가는 장면
에서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 거야.
너무 끔찍했던 악몽이어서, 머리만 아프고 잠을 제대로 잔 것 같
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앉아만 있을 수 없었어.
몸을 일으켜, 한승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어.
다행히 한승이 형은 어디 나가지 않고 스튜디오에 있더라.
급한 일이라고 좀 도와달라고 하니, 선선하게 그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 한승이 형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니 좀
마음이 놓이더라.
사진과 사진 파일을 담은 zip Drvie를 챙겨 나갔어.
저쪽 복도 끝에는 아직도 조사할 것이 남았는지, 경찰들이 왔다갔
다 하더라고.. 그 방쪽을 보니, 어젯밤 그 끔찍했던 살인 현장이
떠 올랐어.
나도 모르게 두려움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더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니, 갑자기 어디선가 그 여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마저 들더라. 대낮에 그런 생각을 하고 무서워하는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더라.
복도를 나서다 보니, 경비실 쪽에서 뭔가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
렸어. 걸음을 멈추고 무슨 소린가 하고 경비실을 들여다 보니, 어
젯밤 나를 찾아온 그 형사가, 나와 같이 시체를 발견한 경비 아저
씨를 조사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 경비 아저씨는 심하게 기분이 상했는지, 언성을 높이고 말다툼
하듯이 형사에게 대들었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니까요!
아무도 왔다갔다한 사람이 없고, 받은 것도 준 것도 없어요!
당신도 알잖아! 왜 나를 그렇게 안 믿는 거야!
그런 식으로 나를 의심한다면, 나도 당신을 의심할거야!
어떻게 보면,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입장이잖아!
안그래?'

형사는 어제 나를 대할때와 전혀 딴판인 흥분된 모습으로 그 경
비 어저씨에게 소리를 치더라.

'그런식으로 무성의하게 대답하지 말라니까요!
여기서 진상을 밝혀내지 않으면, 다음 희생자는 당신이 될 수도
있소, 그러니 아는 것 있으면, 모두 얘기하라니까요!'

경비 아저씨의 얼굴에는 좀 겁이 난 것 같은 표정이 스쳤지만, 지
지않으려는 기색으로 더욱 소리를 쳤어.

'뭐라고? 다음이 내 차례라고?
지금 협박하는 거요!
만약 내가 그렇게 된 다면, 당신도 온전할 수 없을꺼야!
형사면 다야!'

둘이 싸우는 얘기를 들어봤자, 아무런 소용없을 것 같아 현관을
나섰어. 두 사람은 서로 소리를 치는 통에, 내가 지나가는 것을
못 봤어. 그 형사의 그런 태도를 보니, 좀 안심이 되었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만 의심받는 것 같지 않았어.
한승이 형을 향해 가는데, 갑자기 그 형사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떠올랐어.
어젯밤 만약 내방에서 그 사진을 그 형사가 가져갔다면, 나에 대
해 왜 아무런 조치를 안 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어.
그 형사에게는 그 사진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지, 아니면 그 사
진을 가져간 사람이 그 형사가 아니었는지..
아무 것도 답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어.
단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이 사진이 이 모든 의
문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
한승이 형은 오랜만에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아줬어.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알아챈 한승이 형은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내 주변에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 보았어.
나는 그 여자를 보게된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얘기해 주었
어. 나를 정신병자로 취급할 지도 모른다는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한승이 형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어.
내 얘기가 끝나자, 한승이 형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일한이 니
얘기를 꺼내더라..

'휴... 전에 일한이도 그런 사진을 들고와 내게 부탁을 하더니...
그때도 결국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정말 세상에는 그런 불가사이한 일들이 많나봐..
그런데, 인석이 네가 그런 일을 할줄은 몰랐다.
내가 네게 이런 충고를 할 입장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런 사진들을 팔고 사고 하는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사진은 신문이나 자료를 위해서 있는 그대로를 찍어내는 기능도
있지만, 사물을 좀더 아름답고, 의미를 부여해서 찍는 예술적 기
능도 있는 거야. 그런데 네가 취급했던 사진들은 사진이 가진 기
능을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악용하는 일
이다.
휴... 내가 찍는 사진이 항상 아름답고 훌륭한 사진이라고 자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간의 아름다운 점을 부곽시키려 노력
한다. 대부분의 사진이 다 그렇지..
여하튼 일이 거기까지 갔다고 하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도와줄게..
대신 나와 약속은 하자..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사진을 취급하는 일들은 절대로 안
한다고. 인간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서 잔혹성을 일깨우는 그런
사진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돼..
그런 사진들은 흔한 뽀르노 사진들 보다 훨씬 악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진들이거든...
휴...
여하튼 그 문제의 사진 좀 보자..'

한승이 형의 말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것이 느껴
졌어. 나는 가져온 그 문제의 사진들과 파일을 한승이 형에게 내
밀었어.
한승이 형은 아무런 말을 안하고, 사진을 살펴봤어.
그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어.

'이 사진들은 정밀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그냥 보기에는 조
작된 사진 같지는 않아.
무슨 얘기인지 알아?
어떤 미친 놈이 진짜 이런 끔찍한 장면을 그대로 사진으로 찍었
다는 거야..
어떤 악마 같은 놈이...'

나는 한승이 형에게 내가 발견했던 부위를 확대해서 좀더 깨끗하
게 보여달라고 했어.
작업실로 나를 데려간 한승이 형은, 그 사진을 모니터로 보고 확
대해 봤어. 내 컴퓨터로 본 것 보다는 휠씬 선명하고 또렷하게 볼
수는 있었어.
거울에 비친 것은 사람의 얼굴이 확실해 졌어.
하지만, 어떤 얼굴이 비춰졌는지는 여전히 잘 알수가 없었어.
한승이 형은 한참을 컴퓨터를 조작하며, 몇 시간 동안 이리저리
검사해 보더니 얘기해 주더라.

'이 사진은 네 말대로 일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그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가 걸릴 것 같
아.. 그리고 내 나름대로 좀 조사해 볼 것도 있고 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 빨리 알아볼 테니, 내일 다시 올래.
그때까지는 내가 확실한 사실을 밝혀줄테니...'

한승이 형은 마치 자기일인 것처럼 그 사진을 분석해주기로 했어.
한번에 사실을 알 수없어 좀 아쉬었지만, 너무 고맙더라.
사진의 분석이 끝나는 대로 연락해 주기로 하고, 한승이 형 스튜
디오를 나섰어.
한승이 형은 작업실을 나서는 고뇌에 찬 모습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어.

'나도 처음에는 이런 사진들을 취급하기 싫었어.
그리고 믿지도 않았지.
하지만, 일한이가 예전에 가져다 준 스티커 사진이 내 사진에 대
한 믿음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어.
사진은 결코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냐.
때로는 저 건너편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그것이 암흑의 것인지, 광명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승이 형의 그 말은 내게 뭔가 찜찜함을 남겨 줬어. 하지만, 한
승이 형이 뭔가 진실을 밝혀 주리라 믿고 거기를 나섰어.
거리는 어느새 어둠에 쌓여 있었어.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 되었어.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어.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이 마무리 된 후에는 절대로 그런 사진
을 취급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야..
니네들에게도 얘기하는데, 그 동안 나는 돈에 눈이 어두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헷갈렸던 것이었어.
그 놈의 돈이 뭔지...
휴....
오피스텔에 혼자 일찍 들어가기 실어, 근처 포장마차에서 저녁겸
술을 한잔 걸치고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더라.
피곤한 몸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소주 한병도 안 마셨는지 몸이
알딸딸하고 좀 취기가 돌더라.
경비실 안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경비 아저씨는 잠시 자리를 비
웠는지 아무도 없었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퍽!퍽!'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는 거야.
지하실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엘리 베이터 안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잘 감을 잡을 수 없었어.
사실 어떤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가 내려쳐지는 소리였
어. 괜히 겁이 나더라.
엘리베이터가 오자 얼른 올라탔어.
문이 닫히니 그 소리는 들리지 않더라.
하지만, 혼자 엘리베이터 오르니 또 그 여자 얼굴이 떠 오르더라.
엘리베이터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무서웠어.
너희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겁이 난 나는 엘리베이터 벽
에 등을 붙이고 빨리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만을 빌었어.
한층, 한층 올라갈때마다, 지난번처럼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그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 것 같아 겁이 났어.
하지만, 그 날은 다행히 아무 일도 없더라..
아무일없이 올라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잽싸게 엘리베
이터를 나섰어.
복도에서 서서, 저쪽 살인이 났던 방을 보니 이제 더 이상 조사할
것은 없는지 아무도 없고 불도 꺼진채 였어.
보이는 것은 출입금지를 나타내는 테잎뿐이었어.
그것을 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라.
도망치듯이 복도 반대편에 있는 내 방쪽으로 뛰어갔어.
어두운 복도 구석에서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어.
복도 주위를 돌아보며, 떨리는 손으로 방 열쇠를 들었어.
그런데, 이게 왠일이니..
분명히 낮에 잠그고 나간 방문이 스르르 열리는 거야.
그 순간 얼마나 겁이 나던지...
움직일 수가 없더라..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어. 쉼 호흡을 하고 문
을 열었어.
방안은 칠흙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어.
혹시 뭔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에 힘이 가더라.
식은 땀이 흘렀어.
벽을 더듬어, 방안 전등을 켰어.
방안이 밝아지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어.
누군가가 방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 것이야. 도둑이 들어왔는지
책상이며, 옷장이며 할 것없이 다 꺼내져 있고, 온 방안이 뒤집어
져 있는 거야.
불길한 예감이 들어, 책상을 보니 컴퓨터가 통채로 없어졌어.
그리고 그 문제의 사진들이 한 장도 남지 않고 없어진 거야.
내가 이제까지 모아왔던 잔혹 사진과 자료들이 모두 없어졌어. 더
욱 이상한 것은 그 이외에 없어진 것은 없는 것이었어.
없어진 것들이 그런 사진들이었으니, 경찰에도 신고할 수 없었어.
혹시 경비 아저씨가 누가 왔다갔다 한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
각에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연락했어.
그런데 자리에 없는지 한참을 신호가 갔는데도 대답이 없는 거야.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인터폰을 들고 있었어.
갑자기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인터폰을 받는 거야.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경비 아저씨에게 내 방에 누가 들어왔었다
고 얘기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터폰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
이 없는 거야.
단지 '시..식 시..식..'하는 귀에 거슬리는 낮은 신음소리만 들리는
거야. 나는 계속해서 경비 아저씨를 불렀어.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어.
그때였어.
인터폰을 통해 ?어질듯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야. 얼마나 끔찍한 소리였는지, 소리만으로 그 비명의 주인공이
당하는 참혹한 고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움직일 수가 없었
어. 그리고는 저편의 인터폰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끊어졌어.
나는 본능적으로 복도로 뛰어갔어.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
은 내 이성을 거의 마비시켜 버렸어.
단숨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뛰어갔어.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 버튼를 눌렀어.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는지, 버튼을 눌렀는데 움직일
생각을 안 했어.
잠시 망설이다가, 계단으로 뛰어 내어가려고 하는 순간이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한참을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런데 말야..
지금 그때를 생각해 봐도 참 이상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보니, 그 엘리베이터를 꼭 기다려야 한다
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 다급한 상황에 멍하는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층수만 보고 서 있던 거야.
발이 바닥에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더라...
엘리베이터는 5층, 6층, 7층.. 천천히 올라왔어.
이윽고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9층에 올라왔어.
그리고... 문이 스르륵 열렸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나는 내 앞에 벌려진 모습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
내 앞에 열린 엘리베이터에는 경비 아저씨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
린 채로, 두 팔과 한다리가 잘려나간 채로 피를 뿜으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거야.
경비아저씨는 바로 내가 이전에 KillYou에게 받은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처참히 ?겨나간 것이였어....

 


<계속>

...그 경비 아저씨의 시체는 그 사진속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너무
똑같았어. 단지 다른 것은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처음 봤을때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느꼈지만, 금새 침착해지더라.
물론 두려움도 느껴졌지만, 뭔가 이상야릇한 감정이 느껴졌어.
뭐랄까... 항상 사진으로 보던 것은 실제로 보니 더 좋은 느낌 있
잖아?
비유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때는 생각한 것보다 여
유있게 대처한 것 같아.
하지만, 다음 순간 두려움보다 불안함이 느껴졌어.
이번에도 내가 시체를 발견했으니, 까닥하면 가장 유력한 살인범
으로 몰릴 것 같았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급해지기 시작
했어.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는지, 문이 닫히지도 않고 움직일
생각도 않했어.
우선 난장판이 되어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어.
방안에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뭐 하나 잘못 만졌다간 나중에 더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가만히 앉아서 담배를 꺼냈어.
나도 모르게 담배를 든 손이 떨리더라..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어.
내게 돌아올 의심이 두려웠던 것이었지...
그때였어.
나 혼자 있는 방안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
껴졌어. 서늘하고 기분 나쁜... 어떻게 생각하면 그 느낌에는 익숙
함도 포함되어 있어.
지난번에도 느꼈던...
바로 그 여자가 내 주변에 나타났을 때, 느껴왔던 그 등골이 오싹
한 느낌이었지..
자동적으로 시선은 방안을 돌아, 창밖을 향했어.
머리끝이 쭈볏거리고, 손에 든 담배를 놓쳤어.
창밖에는 그 여자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
어. 내가 더욱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가 머리 머리위부터 발끝까
지 새빨간 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이었어.
소름이 끼치는 그 여자의 모습에 나는 움직일 수도, 시선을 땔 수
도 없었어. 그 증오와 살기에 가득찬 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
았어.
어떻게 해서라도, 이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정말 미칠 것 같더라...
얼마동안 그 여자를 보고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복도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어느새 그 여자의 모습은 창 밖에서 사라졌고, 나 역시 몸을 움직
일 수 있게 된 것이지..
복도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들이 들려오자, 나는 몸을
일으켜 복도쪽으로 나섰어.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
지만, 내게 급한 것은 나를 위협하는 귀신보다는 살인 누명을 벗
어야 하는 것이었어.
복도로 나가보니, 경찰들이 모여서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있는 시
체의 사진을 찍고 부산을 떨면서 조사하고 있었어.
천천히 다가가면서,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고 밝히자 경찰들이 다
가와 쉴새없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어.
나는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얘기했어. 물론 창밖에서 그
여자를 본 얘기는 빼고...
그런데, 경찰의 질문에 답하면 답할수록, 나를 보는 경찰들의 눈
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 느껴졌어.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눈치
였어. 나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되어, 내가 목격한 상황을 설명했
지만, 경찰들은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어.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
결국에는 그렇게 나를 의심한다면 증거를 가지고 와서 나를 잡아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내방으로 돌아왔어.
내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자, 나를 심문하는 경찰들은 어안
이 벙벙한 표정이었어.
방엔 들어와, 불안함을 억누르고 잠시 생각해봤어.
최대한 내 편한 쪽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
히 내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거야.
한가지 물증만 발견된다면, 나는 꼼짝없이 잔인한 이 연쇄살인의
범인으로 몰리게 될 판이었어. 그러다 보니, 어질러진 방안이 눈
에 띠었어.
그 사진이 없어진 것이 생각나자, 그 불안감은 두려움으로 변했
어. 누군가가 가져간 거라면, 내가 살인 사건과 똑같은 사진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거였어.
그런데, 도대체 누가 방문까지 뜯고 그것을 가져갔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분명히 보통 도둑이 든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때 나로써는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였어. 생각하면 생
각할수록 모든 일이 의문 투성이였어.
그때 내게 남은 희망은 한승이 형이 그 사진을 통해 뭔가를 밝혀
주는 것 하나뿐이었어.
저절로 한숨이 다 나오더라..
그때였어.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둘기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어.
왠만하면 모른척하고, 혼자 있고 싶었어.
하지만, 정말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거야.
그리고는 '안 나와! 이 살인마 새끼야!!!' 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어.
무슨 일인가 하고, 문을 내다보니 어제 왔던 그 형사가 엄청 흥분
한 모습으로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고 있는 거야.
나는 단지 목격자라는 얘기를 해주기 위해, 문을 열었지.
문을 열자마자, 그 형사는 성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어.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치는 거야.

'이 강아지야!
니가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고 우리가 겁 먹을줄 알아!
우린 니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허튼 수작 부리면, 다음 차례는 니가 될꺼야!'

그 형사는 어제의 침착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살기 띤 표정을
한채로 씩씩거렸다.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흥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짓도 안 했다니까요!
단지 무능력한 당신들이 못 잡은 그 범인이 갈기갈기 ?어놓은
시체만 발견한 것이라니까요!'

나도 화가 나서 한미디 쏘아 붙었어.
그랬더니 그 형사의 얼굴이 분노로 새하얗게 변하더니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거야. 다음 순간 그 형사가 휘두른 주먹에 나는 뒤로
나동그러졌어.

'니가 무슨 일을 해도 내 손아귀를 벋어날 수 없을 거야!
여기서 죽어라!
살인마야!'

그리고는 그 형사가 권총을 꺼내, 쓰러진 나를 향해 겨누는 거야.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던지...
다행히 달려온 동료 경찰들이 그 형사를 덮쳐, 총알이 내 머리르
뚫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어.
그 형사는 동료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가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거야.

'다음번에 니가 먼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죽여
줄 거야!
반드시!!!'

그 형사가 끌려나가고, 다른 경찰들은 당황한 표정을 한 채 내게
미안하다고 그랬어. 다들 정의감 넘치는 그 형사가 살인마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엉뚱한 데 표출한 것일 뿐이라며, 내게 용서를
구했어.
내가 그 형사의 행패를 확대시킬 것이 걱정되는지, 모두들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어. 하지만, 나는 끌려나가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
한 그 형사의 얼굴이 생각났어.
정말 나를 죽일 기세였거든..
그런데 그 형사는 살기와 더불어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 마치 겁에 질린 자기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욱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괜찮다며, 경찰들을 내 방에서 내보냈어.
방을 나서던 경찰들은 어지러진 내 방안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한
번씩 쳐다보며 나갔어. 그런데 방을 나서던 경찰들이 나누던 얘기
가 내 귓가에 비수같이 ?혔어

'박형사 지난번에도 이러지 않았어?'
'그러게 말야.. 한 2년 됐지.. 그때도 용의자를 거의 반죽음
만들었지. 그 용의자가 범인으로 판명되었으니 다행이지...
휴... 정의감도 지나치면 문제야...'

그 얘기를 듣고나니, 그 형사의 이상한 행동이 약간은 이해가 갔
다. 잔혹한 살인을 하는 살인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와 적개심
을 가진 형사라....
하지만, 그 형사의 두려운 표정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
어쩌면, 그 잔혹한 살인을 무서워하는 것일지도 몰랐어.
여하튼 모두가 빠져나가고, 다시 어질러진 방안에 혼자 남게되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 했지만, 뭔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
어. 하지만, 그 실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신이 가지
않았어.
이 방 주변, 아니 내 주변을 맴도는 그 끔찍한 여인의 혼령,
KillYou라는 미친놈으로부터 온 기괴한 의뢰와 잔혹한 사진들, 그
리고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진 속의 처참한 살인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서로 연관성을 갖고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의문을 풀기는커녕 더욱 복잡해
지는 거 같았어.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었어.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한승이 형이 줄 사진 분석 자료
에서 찾아내길 바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어.
침대에 누워서도 그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들었어.
다음날,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어.
간만에 그 여자의 방해 없이 푹 잠을 잔 기분이었어.
하지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지러진 짐 속에서 간신히 전화를
찾아내 수화기를 들었어.
한승이 형이었어.
한승이 형의 심각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충격과 함께 잠이
확 깼어.

'인석아,
네가 준 사진을 분석해 봤는데...
이게 네가 원하던 답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 눈을 믿을 수 없다.
여하튼 만나서 얘기하자...'

 

<계속>

..문을 나서는데, 아직도 복도는 경찰들이 왔다갔다 했어.
내가 나타나자, 경찰들은 못 본척 했지만 그들 사이에 풍기는 의
심의 분위기는 알아차릴 수 있었어.
나 역시 경찰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애써 못 본척하고 걸어
나갔어. 계단으로 나가다 보니,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튄 채로 말
라붙은 엘리베이터 안이 보였어.
어제의 그 참혹했던 경비 아저씨의 시체가 연상되니,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부르르 떨렸어.
오피스텔을 나서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한편으로는 한승이 형이 내게 모든 의문을 풀 정답을 줄 것에 기
대가 되기도 했지만, 그 답을 아는 것이 두럽기도 했어.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될지...
지하철을 타고, 한승이 형의 스튜디오로 가는데 자꾸 이상한 느낌
이 드는거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따라오는 듯한 기분나쁜 느낌이 계속 느
껴졌어. 주위를 자꾸 둘러봐도, 수상한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어.
괜히 내가 과민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했어.
하지만, 그 기분은 한승이 형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계속 느껴졌
어. 그러다가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뒤
를 돌아봤어.
그때 나를 지켜보던 수상한 두 사람이 눈에 띠었어. 그들은 갑작
스러게 내가 자기들을 보자, 당황함을 감추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
그들이 어디서부터 나를 따라왔고, 대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너무 두려웠
어. 한승이 형 스튜디오로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고... 그들이 경찰일까, 아니면 누굴까?
경찰이라면, 나는 심각하게 살인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경찰이 아니라면, 더욱 일이 심각해지는 것 같았어,
복도에 난 창문으로 밖을 내봤는데, 역시 그 사람들은 건물 입구
에 있었어.
속이 답답해지며, 미칠 것 같더라.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그래도 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승이형의 밝혀줄 수도 있
는 진실이었어.
스튜디오 문앞에 서서 쉼호흡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어.
한승이 형은 밤새 작업했는지, 피곤한 모습으로 20인치 모니터 앞
에서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
한승이 형은 나를 보자 지친 표정으로 한마디 했어.

'너 이 기괴한 사진 정말 어디서 구한거야?'
'전에 말한대로 어떤 사람이 보내준거예요..
그런데, 형, 제가 어제 드린 사진 다 가지고 있조?
어젯밤에 정말 골 때리는 일이 있었어요.
아니,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요...'

나는 한승이 형에게 전날밤에 있었던 것을 모두 말해주었어.
사진들이 모두 없어진 거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경비 아저
씨의 끔찍한 시체며, 그 시체가 두 번째 사진과 똑같은 사실이라
는 것 모두 얘기해 주었어.
한승이 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휴....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하긴 이 사진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한승이 형은 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그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얘기해 주었어.

'지난 번에 일한이가 이상한 사진 갖다주어서 찝찝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인석이 너도 그러는 구나..
이런 사진을 조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는 거야.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여러 가지 있어.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하
고 조작기술이 발달해도, 가짜 사진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항
상 있어. 딴 것은 몰라도 그것은 이제 내 전문분야가 되었지..
여하튼 이 사진은 진짜였어.
몇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 해봐도 이 사진은 가짜가 아니었어.
그리고 나서, 이 사진의 시체 부분을 선명하게 확대해서 법의학
전공하는 친구에게 이 메일로 보냈지.
시체가 진짜인지를 알아봐달라고 했어.
다행히 그 자식이 별로 안 바쁜지, 오늘 아침에 답신이 왔어.
사진만으로 사실 유무를 알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진에
찍힌 시체는 마네킹이 아니라 진짜 사람일 확율이 높다는 거야.
결론적으로 이 사진은 진짜고, 진짜 시체를 찍은 것 같다는
것이지.
그리고 내 나름대로, 네가 부탁한 분석을 시작했어.
자 이 부분 잘 봐..
네가 발견한 그 거울 부분이야.
거울에 비친 것을 확대하고 선명하게 하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어. 좀 시간만 걸리지 그리 힘든 작업은 아니었어.
잘 봐.. 이것이 네가 보고 싶은 것이었니?'

한승이 형이 확대시켜준 것을 처음 봤을때는 무엇인지 잘 알수가
없었어. 그런데 한승이 형의 설명을 듣고 보니 뭔지 알 수 있었
어.

'여기를 잘 봐..
이 부분이 사람의 코야..
나도 처음에는 분간이 잘 안거더라...
피 범벅이 되 있는 바람에..'

한승이 형 말대로 그것은 사람 얼굴의 일부분이었어.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피 범벅이 되 있고, 얼굴의 코와 입부분만
이어서 신분을 알아볼 수 없었어.
갑자기 온 몸의 힘이 쫙 빠지고, 실망감이 몰려오더라.
여기서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니...
하지만, 이상한 것은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이유도 알 수
없게 눈에 익었어. 또 괜히 소름이 끼치더라.
한승이 형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다시 한번 모니터를 보
라며 얘기를 계속하더라.

'인석아, 나도 이 부분을 보고 좀 실망했어.
이 사진에 뭔가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사진의 다른 부분도 내 나름대로 꼼꼼히 살폈어.
한 두 시간 정도 살폈지..
특별히 이상한 것이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아, 포기하려 했어.
그러다 이 부분을 발견했지.
자 봐..'

한승이 형이 확대해준 부분은 사진의 윗부분이었어. 그러니까 시
체의 천장부분이었어. 하지만 내 눈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도 안
보였어.

'별로 이상한 것이 눈에 띠지 않지.
하지만, 이렇게 사진에서 색깔을 빼고 명암을 좀 넣어봤어.
그러니까 좀 선명하게 보이더라.
자, 보이지...'

한승이 형이 조작을 하자, 그 천장 부분에 뭔가 시커먼 것이 희미
하게 나마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흔히 이런 부위는 사진 찍을 때 후레쉬가 터지면 나오는 그림자
일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진을 찍은 방향과 천장의 전등의 방향을
보면, 그림자일 리가 없어. 그림자가 생길 방향이 아니거든..
그래서 뭔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
다음에는 사진의 선명도를 극도로 높이고, 부분부분 확대해 봤
어. 그러니 이런 모습이 나왔어.
휴....'

한승이 형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나는 충격으로 움직일 수 없었
어. 그 검은 부위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는 거야.
피 투성이가 되 있는 시체 위로, 사람 모양의 검은 형체가 떠 있
는 거야. 얼마나 무섭던지...
그런데 한승이 형은 작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이렇게 반 투명으로 찍힌 피사체는 선명하게 그 모양을 알아보
기 힘들어. 그래서 좀 편법을 썼어.
그 반투명 피사체를 불투명 피사체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했지.
쉽게 얘기하면, 빛이 투과되어 선명하지 못한 피사체를 불투명하
게 만들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 더 뚜렷이 보이게
만드는 것이지.
쉽지는 않은 노가다였지.
그리고 나온 것이 바로 이 모습이었어.
나도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어.
그것의 모습을 알아보는 순간, 온갖 사진을 봐왔다고 자부하던
나 역시 소름이 쫙 끼쳤어.
그 섬뜩한 모습에....'

 

<계속>

 

..나도 한승이 형이 보여준 그 사진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어. 그 시체 위에 천장에 어떤 여자가 떠 있는 거
야. 한승이 형은 집어넣은 색깔이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색깔이 빨간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빛 색깔인 여자가 머리
를 길게 늘어뜨리고 천장에 둥둥 떠있는 거야.
얼마나 소름끼치는 사진이던지 숨쉬기가 힘들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승이 형에게 물어보았어.

'한승이 형, 도대체... 이게 뭐죠?
이것이....'
'휴...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 심령사진이라고 하겠지..
나는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령이나 귀신이 찍힌 것일지도
몰라.. 지난번 일한이가 가져온 스티커 사진에도 이런 불가사이
한 것이 찍힌 적이 있거든..
그때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 하고, 사진만 저절로 사라졌어.
일한이 그 자식 말로는 원한을 품은 원귀의 모습이 찍혔다고 하
긴 했지만...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경우
에 그 원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시체인 자기 모습을 보고
악귀고 변한데...
네 얘기를 들어보고 이 사진을 보니, 이 사진 속의 시체도 꽤나
고통스럽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 같아.
그렇다면, 이 허공에 떠있는 것은 시체의 원귀라 할 수 있지.
나도 원래 이런 얘기 믿는 사람이 아닌데, 내 눈으로, 그것도 사
진으로 보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너도 이런 것이 찍혔는 줄 알았니? '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니터에 보이는 그 오싹한 모습을 뚫어지게
보았어. 자세히 보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어.

'형, 이것의 얼굴 좀 확대해 주시겠어요.'

한승이 형은 내 말대로 그것의 얼굴부위를 확대해 줬어.
점점 확대되는 사진을 보니, 그 소름끼치는 얼굴이 또렷해질 수록
등골이 오싹해졌어.
이윽고 얼굴을 알아볼 크기로 확대되자, 나는 그 피빛 얼굴이 왜
그리 익숙해 보였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어.
그 사진 속 얼굴은, 내 주변을 맴돌던 그 여자 귀신의 얼굴이었
어. 충격으로 숨을 쉴수가 없더라.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더라.
한승이 형이 어깨를 잡아 흔들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멍하니 있었어.
나는 목쉰 목소리 한승이 형에게 물어봤어.

'형... 이 사진에 찍힌 것은 정말 뭐죠?'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떻하냐?
한가지 확실한 것이 이 사진에는 분명히 그 무엇인가가 찍혀 있
다는 거야.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한승이 형에게
한가지 더 부탁했어. 어떻게 보면, 좀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었지
만, 그 때 나로써는 한승이 형의 도움이 단 하나의 희망이었어.
그리고, 한승이 형에게 KillYou가 보내왔던 나머지 사진들을 인쇄
를 부탁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사진들은 다 없어졌지만, KillYou
가 보내왔던 사진들은 다행히 한승이 형이 가지고 있었거든.
나머지 사진은 두장이었어.
하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시체와 똑같은 사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KillYou라는 미친 놈이 제일 먼저 보내온 사진 이었어.
이미 두 장의 사진은 실제의 살인 사건으로 나타났고, 남은 것은
한 장의 사진 뿐이었어.
한승이 형이 내가 부탁한 작업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나는 그 사
진들을 들고 스튜디오를 나섰어.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나를 미행하
던 수상한 사람들이 생각났어.
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 아니, 솔직히 신경 쓸 여유가 없었
어. 그 때 내 머리속은 그 여자 악귀의 모습과 모든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냐는 해답을 찾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어.
지하철 안에서 오직 그 생각만 했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어.
그 여자가 진짜로 그런 식으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원한을 품은
악귀가 되서 자기가 죽은 방식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가는 거
야. 그런데 희생자들이 내 오피스텔에 있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것
인거야. 그리고 그 여자는 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이냐
이거야. 또 KillYou라는 놈의 정체는?
한승이 형은 조심스럽게 내 의문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해 주었어.

'어쩌면, 어쩌면 말야...
내가 본 그 여자 원귀는 네 환각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몰라.
너는 이 사진을 이미 여러번 봤어.
하지만, 이렇게 감춰진 여자의 모습은 못 봤겠지.
그런데, 내가 의식은 못했지만, 잠재 의식 중에 그 여자의 모습
을 인식해을 수도 있어, 그런 와중에 그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계속 봐온 것이야.
실제로 그런 일은 발생하거든.
볼때는 인식하지 못한 모습이, 데자부처럼 의식이 희미해질 때
보이는 경우가..
흔희들 꿈이나 잠들기 직전에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대..
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지도 몰라...'

물론 한승이 형의 말은 일리가 있을지 몰랐어.
그 여자의 모습은 항상 내가 피곤할 때 나타났고,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은 적도 있는 것 같았어.
그렇지만, 내가 환각을 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지하철 안에서도 그 수상한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별로 게의치 않았어.
나를 의심하는 경찰이나 형사라고 생각했어.
난장판이 되고, 살인이 계속 일어나는 오피스텔로 들어가기 싫었
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
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한승이 형의 전화를 기다려
야 하는 입장이라 들어가야 했어.
주인 잃은 경비실은 덩그러니 비어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작동도
안하고 있어,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어.
뒤를 돌아보니, 나를 따라오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 사람들도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고, 근처에서 지켜보기만
할 생각인지 나타나지 않았어.
수사가 대충 진행되었는지, 전날 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경찰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출입금지를 표시하는 테잎만 붙여져 있었어.
어두컴컴하고, 아무도 인적 없는 곳에 테잎만 덩그러니 붙여져 있
는 것은 글자 그대로 음산함이었어.
당장이라도 어둠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불길함이 느껴졌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
불꺼진 내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어. 방안은 난장판 그대로였어.
대충 자리를 잡고, 스텐드를 키고 떨리는 손으로 가져온 사진을
꺼냈어.
처음 봤을때도 그 끔찍함에 전율을 느꼈지만, 그때는 또 느낌이
달랐어. 어쩌면 이 사진 그대로의 살인이 또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더 무서워지는 거야.
그 사진의 모습은 다시 보기가 꺼려졌어.
사진에는 얼굴은 나오지 않고, 대상의 상체와 하체만 찍혔어.
벽에 세워놓고 찍은 사진 같았어.
얼마나 많은 곳을 찔렸는지, 온 몸에 수십 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장면이었어.
찌르고 나자마자 찍은 사진인지, 피가 쏟아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사진에 찍혔어. 얼마나 잔인한 미친 놈이 저지른 일인지 몰라도
사람을 난도질 해놓은 거야.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온 몸이 부르르 떨리더
라. 광기어린 얼굴로 희생자를 사정없이 찔러 놓고, 자신의 범죄
를 음미하듯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그 놈
의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그 희생자가 그 여자라는 생각이 들자 불쌍하다는 생각
도 들었어. 어디서 뭐하다 희생된 여자인 줄은 모르지만, 난데없
이 이런 처참한 일을 당한 것이...
나는 그 끔찍함에 구토를 느꼈지만, 꾹 참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
을 했어.
뭔가가 떠오를 듯 했어.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단서를....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어.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더니 한승이 형의 흥분된 목소리 였어.

'인석이니?
네가 부탁한 것 해봤더니...
휴....
세 사진 모두의 그 여자의 모습을 발견했어.
하나같이 증오와 분노로 가득찬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어.
어쩌면 세 사진의 희생자는 그 여자 하나일지도 몰라.
잔인한 놈...
한 희생자를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런 식으로 훼손하고 사진
까지 찍어내더니...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사진에서 알아냈어.
이 사진을 찍은 범인의 모습인데......'

한승이 형이 결정적인 얘기를 하려는 그 때, 나는 등뒤에서 싸늘
한 살기와 불길한 시선을 느꼈어.
한승이 형의 얘기를 들으며, 내 등뒤에 있을 것 같은 그 무엇의
정체를 보기 위해 몸을 돌렸어......

 


<계속>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날 나를 폭행하려 했
던 형사였어. 그는 미친 사람 같은 광기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귀에 대고 있던 수화기 너머로 한승이 형의 얘기가 계속 들렸어

"사진들을 정밀하게 조사하다 보니,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놈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어...
그 놈은....."

중요한 얘기를 하는 때였지만, 형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어.
다짜고짜 내게로 달려와, 나를 쓰러트렸어.
들고 있던 수화기는 저쪽으로 내던져지고, 한승이 형의 '여보세요!
여보세요!' 라고 외치는 소리만 들렸어.
그 형사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내가 겨
누는 거야.
그리고는 한승이 형이 뭐라고 소리치는 전화기 선을 뽑아 버렸어.
나는 갑작스런 그 형사의 발작에 화가 났어.

'뭐하는 거예요? 당신!'

하고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며 화를 냈어.
하지만, 돌아선 그 형사의 눈을 보고, 나는 그에게서 풍기는 살기
가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어.
그의 그 광기 어린 차가운 눈빛은 어디선가 자주 접했던 익숙한
두려움이었어.
그 형사에게 대해 화를 내려고 했던 나는, 그 형사의 그 무시무시
한 모습에 주춤할 수 밖에 없었어.
그 형사는 다시 한번 권총을 든 채, 나를 무지막지하게 때렸어.
나는 저항을 하려 했지만, 권총을 들고 있어서 그냥 맞을 수 밖에
없었어.
간신히 그 형사를 밀쳐 내고 정신을 차렸지만, 그 형사는 씩씩거
리며 총울 겨눈채 아직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형사의 눈빛에 뭔가를 두려워 하는 것 같
은 표정이 들었어.
그러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치는 거야.

'이 강아지야!
오늘은 니가 죽을 차례야!
내가 그렇게 앉아서 당할 줄 알았어!
이 살인마 새끼!!'

나는 그 형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거라곤, 그 형사가 나를 살인범으로 알고 죽
이려고 한다는 거야. 전날 들은 것처럼 용의자만 보면, 이성을 잃
고 폭력을 행사하는 열혈 형사라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에는 황당한 생각마저 들더라.
나는 거의 미친 것 같은 그 형사에게 간신히 말했어.

'무슨 얘기예요?
난 죽이지 않았다니까요!!
도대체 무얼 가지고 이런 불법 행위를 하는 거예요!!'

내가 절규하듯이 소리쳤지만, 그 형사는 그 말을 무시하고 다시
나를 덮치듯이 다가왔어. 나는 다시 한번 나는 이번 살인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소리쳤어.
그 형사는 나를 다시 한번 공격하려다가, 발악하는 듯한 내 목소
리를 듣더니 자리에서 멈춰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어.
그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서 바닥에 던지면서 나를 보고 광기
어린 얼굴로 소리쳤어.

'이걸 보고도 그래! 이 새끼야!!
니가 두 명을 죽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나는 그 형사가 던진 것이 뭔가 봤어.
그것은 바로 전날 내 방에서 없어진, 그 잔혹 사진 자료들이었어.
그 중에 KillYou가 보낸 사진들이었어.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어.
도대체 이 사람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 것인지.. 이 사람이 어떻게
이 사진들을 가지고 있는지... 진짜 형사인지...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었어.
그 형사는 총을 들어 정말 나를 쏠 기세였어. 그리고는 내게 떨리
는 목소리로 물어봤어.

'죽기전에 솔직히 털어놔!
어떻게 우린지 알았어?
엉?'

더 황당해 지더라.
그 형사는 흥분해서 얼굴이 거의 시뻘개졌고, 권총을 든 손을 바
들바들 떨리기까지 했어. 언제라도 총알이 튀어나갈 것 같아, 나
도 모르게 온 몸이 덜덜 떨렸어.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나는.. 안..죽였...다니까요!'

그 형사는 권총을 내 목에 들어대고 다시 한번 물어봤어.
권총의 차가운 감촉은 정말 소름끼치더라..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어.

'그러면 이 사진들은 어디서 구한거야!!
엉!!!'
'그것들..은.. 메일로...받은.,..거예요...'
'메일?
누구한테서?'
'KillYou라는 사라..람..으로부터요...'

KillYou라는 대답을 듣자, 갑자기 그 형사는 내 목에 들이댔던 권
총을 빼더니 놀란 표정을 짓더라.
그리고는 확인하듯이 묻더라.

'KillYou라고 했나?'
'그렇다니까요! KillYou라는 미친 놈이 보낸 거예요!!
이번 사건의 범인은 아마 KillYou라는 놈일 꺼예요!!!
그 놈이 보낸 사진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그 형사의 분위기가 좀 바뀐 것을 알아채고 필사적으로 얘
기했어.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그 형사의 표정이 좀 묘하게 바뀌
었어. 그러더니 정말 의외의 질문을 하는 거야.

'그러면.. 혹시 너 Enjoy Killing과 관계 있어?'

이번에는 내가 황당해 지더라. Enjoy Killing이라는 것은 내가 운
영하던 그 잔혹 사진 site이름이었거든..
그 형사가 그걸 아는 것이 이상했어.
내가 그 site를 운영한다는 대답을 듣자, 갑자기 그 형사의 표정은
이상하게 일그러졌어, 나는 긴장된 상태에서 그 형사가 갑자기 그
렇게 이상해지는지 살펴봤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어.
그러더니, 그 형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차가운
미소를 짓는거야!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어.
그 형사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물어봤어.

'야! 너 정말 안 죽였어?'
'그렇다니까요!!
나는 단지 그 사진을 받았을뿐이라니까요!!'

내 대답을 듣자, 그 형사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는 거야.
그 웃음을 듣자, 나도 안심이 되더라. 그 형사가 오해를 푸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어.
다음 순간 그 형사는 권총을 겨누며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내게
다가 왔어.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나는 겁이 와락 들더라.
그 형사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이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치더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정말 무서웠어.
그가 권총을 겨눈채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
어.

'권총...내려...놓고...
뭐..를 원...하는..거예요?
말...좀 해봐요.....'

내가 겁에 떠는 것을 보자, 그 형사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어. 얼
마나 섬뜩한 미소인지, 그 웃음을 보니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
라. 그러더니 나지막히 한마디 내뱉더라..

'그랬구나..
재미있는 우연이야..
니가 Enjoy Killing의 운영자라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나를 어떻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어떻해든 해보려 했지만, 내 가슴을 겨누고 있는 권총 때문에 어
떻게 할 수 없었어.
그 사람은 다시 한번 권총을 내 머리에 겨누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은 채 얘기하는 것이었어. 난 그 얘기를 듣고 충격으로 몸을 가
눌 수 없었어.

'우리가 그 KillYou였거든..
니가 우리가 보낸 사진을 받은 놈이었구나..
하하!!!'

그러더니, 갑자기 권총으로 내 뒷통수를 내리쳤어.
머리가 충격으로 멍해지더니, 다리의 힘이 풀리며 자리에 쓰러졌
어.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그 형사의 소름끼치는 웃는 모습이 보
였어. 그 순간 그 형사를 보고 내가 느꼈던 두려움의 익숙함의 이
유를 깨달았어.
그 형사의 얼굴에서 풍기는 음산함은 바로 내가 수많이 봐 왔던
싸이코 연쇄 살인자들의 미소에서 느꼈던 거야...
그 형사의 기분나쁜 미소가 시선에서 흐릿해지며, 주위는 어두워
졌어.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형사의 입가에 흐
르는 이유모를 탐욕스런 미소였어....

갑자기 코에 역한 냄새가 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어.
눈을 떠보니, 내 방이었어.
몸을 움직이려 하다가, 내 몸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내 몸이 결박당한채 의자에 앉
아 있는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마자, 두려움이 몰려왔어.
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정신 차렸나...'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그 형사가 기분 나쁜 미소를 띠고
나를 쏘아보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
했어. 몸을 뒤틀며 움직이려 했지만, 결박을 묶여 고개만 흔들 수
있었어.

'무슨 짓이예요!'

내 소리에 형사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어. 그 웃음은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웃음처럼 음산했어.
그리고 말없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들어올렸어. 그 형사에 손에
는 날카로운 사냥칼이 들려있었어.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어.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어.
짧은 순간, 내가 이제까지 생각없이 봐오고 취급했던 잔혹사진들
이 떠올랐어. 산채로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사
방으로 피가 튀는 시체들....
그런 사진들이 실제의 공포로 느껴졌어.
움직일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덩그러니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어.
내가 비명 지르는 모습을 기분 나쁜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바라
보던 그 형사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어.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을걸...
알다시피 입주자도 없잖아?
그리고 보면 세상에는 참 이상한 우연도 많아.
니놈이 Enjoy Killing의 운영자였다니..
언제가 그 운영자 놈을 잡아 손볼까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
미안하네.
내가 결정적으로 착각을 한 것에 대해..
우리는 니 놈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 줄 알았어,
그 싸이코 컴퓨터 프로그래머하고 그 멍청한 경비 놈도 니가
손 봤는줄 알았는데...
엉뚱한 놈 붙잡고 지랄한 셈이네...'
'도대체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이거나 풀어줘요!
경찰이 무슨 짓 하는 거죠!!'
'이 아저씨 아직 아무 것도 눈치 못하고 있는 거 아냐?
나 네 말대로 경찰 맞지.
하지만, 지금은 퇴근하고 취미 생할을 즐기는 중이지..'

그 말과 함께 그 형사는 징그럽게 웃는 거야.
그 웃음을 보니, 소름이 쫙 끼치더라.
결국 그 처참한 시체를 발견된 그 두 사람은 이 형사 놈과 같이
그 여자를 난도질한 사진을 찍었다는 거야.
그럼 이 연쇄 살인은 정말 악귀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형사가 그 끔찍한 사진들을 보낸
KillYou라는 생각을 하니, 그 놈이 나를 묶어놓고 어떤 짓을 할까
무서웠어.

'당신이 KillYou라면 그 사진들은?'

나는 조금이라도 말을 시켜, 시간을 끌 생각으로 그 놈에게 물어
보았어. 그 놈은 금방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 아닌지, 담배를 하
나 빼어 물더니 자랑스럽다는 듯이 얘기를 했어.

'어땠어? 그 사진들?
죽여줬지?
내가 생각해도 그 사진들은 작품이었어.
걸작! 마스터 피스!
우리도 그 작품을 만들어 놓고 감동했어.
벤허가 뭔가 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놈이 그런 말을 했다며..
신이여 우리가 진정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바로 그런 기분이었어!'

그 형사 놈은 미친 놈처럼 지껼여댔어.
그 광기어린 눈빛을 보니 미친 놈 그 자체였어.
나는 계속해서 그 놈을 치켜세우면서 시간을 끌 생각을 했어.
의문도 풀고..

'그래요.
그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니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다들 다음 사진을 기대하고, 어떤 천재가 그걸 만들었냐고 물어
보고 그랬어요,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니네 싸이트에 보내자고 한 것은 그 프로그래머 아이디어였지만,
그 사진을 만든 것은 거의 내가 한 일이었지.
그 여자를 우리 것으로 만든 것도 나였고, 그런 식으로 난도질하
자고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어.
경비 놈은 그냥 보고 즐기기만 했어.
소심한 놈.. 그렇게 될 줄 알았지..'

그 형사 놈은 좀만 구슬리면 자기 자랑하는데 정신이 팔릴 것 같
았어.

'내가 그런 사진을 많이 봤지만, 당신내들이 만든 작품이 최고
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내 상황이 정말 황당하게 느껴졌어.
그런 미친놈 앞에 묶인채로, 기자가 무슨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것
같았거든..
하지만 그 놈은 자기가 정말 어떤 위대한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떠들어댔어.

'나도 내가 그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
2년 ?나.. 그때 어떤 용의자 놈을 심문하다가 화가 나서 족쳤지.
처음에는 그저 위협하는 정도로 몇 대 때렸는데, 그 놈의 얼굴에
서 피가 튀자 흥분되기 시작하는 거야.
피와 함께 살점이 튀기고, 그 놈의 얼굴이 뭉게지는 것을 보니
쾌감도 느껴지는 거야.
그때까지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지..
정말 짜릿했어. 휴...'

거기까지 얘기하고 그 형사 놈은 그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지
몸도 부르르 떨면서 얼굴도 상기대는 거야. 그리고 묻지도 않은
얘기도 시작하는 거야.

'그 쾌감을 찾기위해 나는 뭔가 대상을 찾아야 했어.
그래서 찾아간 것이 병원 시체실이었어.
거기는 생각보다 시체들고 나오기가 쉽거든.
몇번 시체를 가지고 나와 마음대로 난도질하고, 때리고,
잘라봤어. 재미있더구만...
그러다보니,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더라고.
사진을 찍었지.
찍어놓은 사진들을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봤어.
그 사진을 볼 때 마다, 온 몸이 쾌감이 휩쌓이는 것 같았어.
내가 만든 그 훌륭한 사진들을 혼자만 즐기기에는 아까웠어.
그래서 남몰래 인터넷에 올리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 그러다 같이 한번 해보자고 모인 것이 우리들이
었어. 마음에 드는 놈은 한 놈도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하는 것
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길래 같이 작업했지.
시체보다는 진짜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 더 좋다
는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어.
역시 죽은 것 보다는 팔팔한 놈들이 최고였어.
꿈틀거리며 싱싱한 피를 쏟아내고, 겁에 가득찬 그 얼굴들..
정말 한단계 높은 쾌감이었어.
한명씩 돌아가며 작품이 소재가 될 사람을 구해오기로 했어.
프로그래머 놈은 그래도 순서에 맞게 지켰는데, 그 경비 놈은 한
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어.
그래서 거의 내가 구했지.
그 여자는 경비 놈이 찍어놨지만, 아무 짓도 못하고 있던 년이
었어. 그걸 내가 착 채왔지.
그런데 그 년은 그때부터 좀 싹수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보통 놈들처럼 겁에 질려 정신을 못 차리더구만.
헌데, 칼로 몸을 그어대기 시작하자, 고개를 숙이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것 같더라. 우리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기절한 줄 알고
실망했어. 좀 비명을 지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봐야 더 흥분이
되거든..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든 그년의 얼굴은 예상밖이었어.
무서워하기는커녕, 우리 모두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거야.
눈빛으로는 우리를 죽일 듯 했어.
그 살기 도는 눈빛에 우리는 잠시 멈칫했어.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우리는 쾌감을 쫓아 그년을 난도질했어.
그년은 끝까지 저주하듯이 우리를 노려봤어. 하지만 그럴수록 좀
색다른 쾌감이 느껴졌어. 아마 그년이 보통 년이 아니어서 그런
훌륭한 작품이 나온 걸 꺼야.
앞으로도 그런 년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너 이거 알아? 그년을 죽을 때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누군가가 천장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어.
좀 으시시하기는 했지만, 우리를 작품을 보여준다는 기분도 들어
서 흐믓하기도 했지..'

그 얘기를 듣자, 나는 한승이 형과 같이 본 사진이 떠올라 머리끝
이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피를 뒤집어 쓴 것 같은 그 여자
의 끔찍한 모습이 생각나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어.
하지만 더하게 느껴진 것은 그런 기분나쁜 시선을 느꼈지만, 더
쾌감을 느꼈다는 그 형사놈 패거리였어.
나는 그 형사놈의 눈치를 살피면서 몇가지 더 물어보았어.

'그러면 그 시체들은 다 어떻게 처리했어요.
한 두구도 아니고, 수십 구의 시체인데 어떻게 감췄어요?
한강에 버렸어요?'

형사는 나를 가소롭다는 보면서 얘기했어.

'이봐 이봐..
그래도 내가 명색이 경찰인데, 그런 식으로 멍청하게 처리
하겠어?
이 동네가 좋은 게 뭔줄 알아?
개발이 한참 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공사로 붐비지.
사방에 공사장도 널려있고..
그냥 콘크리트에 집어넣어버리면 끝이야.
몇 십년 후에 그 아파트나 건물들을 허물기 전에는 아무도 못
찾지. 이름하여 완전 범죄지.. 안 그래?'

그 놈이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자세히 얘기해 주자, 나는 겁이 나
기 시작했어. 자기 범죄 사실을 그렇게 다 털어 놨다는 것은 나를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것같이 느껴졌어.
점점 절박해졌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해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어.

'그럼 그 동료분들을 죽인 살인범은 누구예요?'

그 질문을 하는 순간,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그 놈은 내 질문을 듣더니, 자만심 가득 찼던 얼굴이 순식간에 어
두워지더니 뭔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어.
흥분되었는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어.

'그건... 나도...모르겠어...
난... 넌..줄..알았는데..
그 사진과 똑같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보니, 범인은 그 사진을
본 놈이 확실해.. 너를 통해 그 사진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도 우리들 관계를 아는 놈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거든...
그런데 너는 살인 현장마다 나타났고, 거기다 우리의 작품을 가
지고 있었으니.. 아무리 뭐라고 하더라도 내 생각에는 너야!'
'몇번을 말해야 나를 믿어주겠어요?
나는 아니라니까요!
설사 내가 사진을 봤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당신들의 관계들을
알 수 있는냐 말이예요!
난 아니예요!'

내 항변에 그 놈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어. 자기도 생각해보
니, 범인이 나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나 봐.
갑자기, 그 형사 놈은 고개를 들더니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어.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중엉거렸어.

'사진을 알고있고, 우리 관계를 아는 놈이 범인이라면...
설마 그 분이....'

거기까지 중얼거리던 형사는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려해졌어.
그런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던 그 형사 놈도 범인에 대해서는 무
서워하는 것 같았어. 뭔가 범인에 대해 의심이 가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어.
나는 눈치를 보면서, 온 힘을 다해 결박을 풀고 있었어. 다행히
오른 손을 묶은 결박이 좀 헐렁해 지기 시작했어.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그 형사 놈이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한
채 갑자기 고개를 들었어.
나는 그 놈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어.
그 놈의 눈에는 다시 끔찍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고,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어.

'이제 남은 일을 할 시간이야.
Party Time이지...
어서 끝내고, 진짜 살인범을 찾아가야 겠어.
내가 당하기 전에..
너도 자랑스러울 거야.. 내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이..'

그러더니 탐욕스런 표정을 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사냥칼을 드는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결박을 풀려고 했지만, 줄만
헐거워질 뿐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어.
그 형사놈은 나의 필사적인 움직임을 즐기듯이 바라보면서 소름
끼치는 말을 했어.

'어떻게 잘라 줄까?
이번 작품의 주제를 피로 할까 내장으로 할까 고민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지..
각오는 되었겠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건이 걸리거든..
그 동안 숨이 끊어지면 재미가 없거든...
아무리 괴로워도 자살 같은 것은 안 해주었으면 해..'

그 말과 함께, 그 형사 놈은 광기어린 눈을 빛내며 칼을 번쩍 들
었어.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였어.
나는 그 형사놈 뒷 편에서 뭔가가 언뜻 보였어.
그 무엇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내 눈을 믿을 수 없었어.
그것이 뭔가를 깨닫는 순간 죽음의 공포보다, 그것의 모습이 더
무서웠어.
형사 뒤에 서 있는 것은 나를 그렇게 따라다니며 이 악몽으로 몰
아넣은 사진 속의 그 여자였어.
온 몸이 시뻘건 피를 뒤집어 쓴 채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어.
더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의 섬뜩한 눈빛이었어.
그 눈빛으로 우리쪽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는 거야.
형사 놈은 나의 공포에 질린 눈이, 자기 때문인줄 아는지 더욱 황
홀해하는 표정을 하고 손에 든 칼을 높이 치켜드는 거야.
나는 공포로 떨어지지 입을 간신히 땠어

'저 뒤에... 그 여자가.....'

그 형사놈은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처음에는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자기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뒤로
획돌아보았어.
그리고는 그 여자의 섬뜩한 모습을 보고, '악!' 하는 비명을 질렀
어.
그 여자는 순간적으로 그 형사놈 앞으로 다가와 뭔가로 목을 갈
랐어. 순식간에 형사의 목이 갈라지고 피가 분수처럼 튀기 시작했
어. 형사는 피가 나오는 자기 목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그 여자로
부터 필사적으로 멀어지려고 비틀거리며 움직였어.
그 순간 나는 그 형사의 눈과 마주쳤어.
나는 아직도 극도의 공포에 질린 형사 놈의 눈빛을 평생 잊을 수
없을거야.
그 형사의 비틀거림도 잠시뿐, 그 여자가 앞에 서자 뭔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
그 여자는 형사의 손에서 그 사냥칼을 ?더니 저쪽 어두운 구속
쪽으로 형사를 이끌고 사라졌어.
잠시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어.
나는 너무 충격적인 모습의 연속으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
어. 다음 순간, '푹! 푹!'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해서 수십번
들리는 거야.
그 소리는 무슨 고깃덩이를 칼질하는 듯 한 소리였어.
나는 그 소리만 들고 있어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움직일
수 없었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다음 차례는 나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야.
온 몸을 비틀며 결박을 풀려고 했어. 느슨해진 결박사이로 오른
손이 자유스러워 졌어.
오른 손으로 나머지 결박을 풀고 있는데, 그 '퍽퍽'하는 소리가 멈
추었어.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시선을 그 벽쪽으로 향했어.
이상할 정도로 어두워졌던 그 구석자리는 다시 밝아져 있더라고..
그런데,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어.
거기에는 그 형사놈이 몸에 수십개의 칼자국이 난 채 피투성이가
된채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거야.
쾡한 눈에는 지옥을 본 것처럼 두려움이 느껴졌어.
세 번째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었어.
결박을 풀다 만 나는, 갑자기 사라진 그 여자의 악귀가 어디있는
지 주위를 둘러봤어.
그 여자는 형사의 참혹한 시체를 남겨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었어. 정말 감쪽같이 없어졌어.
나는 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결박을 풀었어.
그러다, 나를 향해 뚫어지게 쏟아지는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어.
그 느낌만으로 나는 뼈 속 깊은 곳까지 두려움이 느껴졌어.
나는 다리쪽 결박을 풀고 있는 것을 멈추고, 그 시선이 느껴지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어.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공포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
천장에는 한승이 형과 봤던 사진 속과 똑같은 끔직한 모습으로
그 여자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거야...

 

 


<계속>

..너무나 무서웠어.
그 여자는 움직임도 없이 원한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
어. 하지만 그 시선으로도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를 느꼈어.
그 섬뜩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 단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천장에 떠 있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내려오는 거야.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지만, 몸
이 말을 안 들었어. 아직도 내가 결박에서 묶여있는 것처럼 느껴
졌어.
그 여자의 끔찍한 얼굴은 점점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것만큼 다가왔을 때, 간신히 의
자에서 일어날 수 있었어.
나는 미친 듯이 문쪽으로 달려갔어.
하지만 문은 왠일인지 꿈쩍도 안하는 거야. 잠겨있지도 않은데 열
리지 않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그 형사놈을 갈기갈기 ?을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그 눈은 다음 차례는 바로 너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 여자 옆에는 온 몸에 난 수십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형사
의 시체가 정말 글자 그대로 참혹하게 서 있었어.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미친 듯이 소리쳤어.

'나는 아니야! 나는 당신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단 말야!!
나를 가만놔줘!!!'

정말 나도 미치는 줄 알았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그 여자는 미동도 안하고 나에게 똑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 있었어.
그 여자가 처음부터 내 주변을 맴돈 이유가 뭘까...
그리고는 한승이 형에 그 여자가 나온 사진들을 보면서 내게 해
주었던 얘기가 생각났어.

'너 왜 심령사진들이라는 것이 생기는 줄 알아?
영혼이나 귀신같은 것은 무슨 매개체에 달라붙는다고 하더라.
사진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
쉽게 말하면, 사진에 찍힌 그 귀신은 그 사진 주변에서 맴도는
거야. 그래서 귀신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항상 그런 귀신들을 목
격하거나, 악마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해를 입기도 한다고 하잖
아. 마치 무서운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공포 소설을 쓰는
사람 주변에 귀신이 모여든다는 얘기처럼..
예전에 내 가르치던 교수님 동생이 신부였는데, 그 신부님을 찍
은 사진에 악마의 눈동자들이 보였대. 그리고 다음날 이유도 없
이 죽었고.. 그런 불가사이한 일들은 정말 알게 모르게 발생하고
있거든...
그런 귀신이나 악귀가 찍힌 사진을 보면, 수집하거나 보관하기
보다는 그냥 태워버리는 것이 최고야.
이런 얘기하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도 직업 상 그런사
진을 보게 되면 일만 마치고 없애버려. 무섭잖아?
하긴, 일한이가 가져온 그 섬뜩했던 스티커 사진들은 자기 스스
로 불타서 없어졌지만...
아마 네가 가져온 그 사진들도 그 여자의 원혼을 끌어들이는
작용을 하는지도 몰라..'

한승이 형의 얘기가 생각남에 동시에, 그 형사놈이 바닥에 내던진
그 여자에 관한 엽기적인 사진들이 눈에 띠었어.
어떻해서던지,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 사진을 없애
야 할 것 같았어. 말도 안되는 생각같지만, 그 때는 정말 절박했
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무시무시한 곳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
거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꺼냈어.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그 사진들을 들어 불을 붙이려 했어.
그 여자 원혼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채 천천히 내게 다
가왔어. 피 투성이가 되어있는 한 손에는 그 형사를 난도질 한 날
카로운 사냥칼이 그 형사의 피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거야.
그 모습을 보니 무서워서 사진들과 라이터를 든 손이 덜덜 떨리
는 거야. t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라이터를 킬 수도 없었어.
몇번을 시도했지만, 라이터는 불꽃만 튈 뿐 불은 켜지지 않았어.
그 악귀는 점점 내게 다가왔고, 당장이라도 나의 목을 딸 기세였
어. 나는 그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불을 붙이려니 더 안
되는 거야.
그 여자는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다가 왔어.
그 끔찍한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보니, 차마 무서워서 제대로 볼
수 가 없을 정도였어.
우선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빨간 피가 흐리고 있고, 빨간 피를 뒤
집어쓴 그 얼굴에 그 원망이 서린 섬뜩한 눈빛은 정말 똑바로 쳐
다보면 안될 것 같이 무시무시했어.
너무 무서워지니까, 그냥 눈을 감게 되더라.
더 이상 그 섬뜩한 모습을 보다간 무서워서 라이터를 못 켤 것
같았어, 눈을 감으니까 내 심장 고동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
야.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고 라이터를 켜봤어.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불꽃이 솟아올랐어.
불꽃너머로 그 여자 원귀의 모습이 보였어.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라이터에 갖다댔어.
그 사진들은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어. 나는 손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사진을 들고 있었어.
그리고는 그 불타는 사진을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 악귀에게 던
졌어.
그런데 이게 왠 일이니.
사진과 함께 그 여자에게 불이 옮겨 붙어 삽시간에 활활타는 거
야. 그 여자 원혼의 몸에 기름이라도 발라져 있는 것처럼 불 붙는
거야. 나는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런데 그 때 내 눈은 불속에서 사그러지는 사진과 함께 서 있는
그 여자의 눈과 마주쳤어.
아마 평생 그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거야.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도 아무런 동요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기만
하는 거야. 그 눈에 한없는 분노와 증오를 담고서...
그리고는 불꽃과 함께 그 여자 모습은 사라졌어.
그렇게 활활 타던 불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말끔히 사라졌어.
그 여자도 없어졌고..
나는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어.
내 건너편에는 자기 죄값을 받은 듯이 참혹하게 죽어있는 그 형
사의 시체만 덩그러니 서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더라.. 그 때는...
내 발치에는 그 여자가 들고 있든 피묻은 사냥칼이 놓여있었어.
나도 모르게 그 칼을 들었어.
한참을 멍하게 그 피묻은 칼을 보고 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나는 그 칼을 보면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던 같아. 그 칼로 내 목을 그어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고..
그 경험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나 봐...
하긴 너희들도 만약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었을 거
야.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목격한 이 사건들을 과연 사람들이나 경찰이 믿어줄까 의문
이었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거든.. 사실 나라도 믿지 않
을테니...
얼마를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
단지 기억나는 것은 창밖으로 해가 뜨는 것이 보였다는 거야.
밤을 샌 것이지.
햇살이 얼굴에 비치자,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는 아무 생각없이 방을 나섰어.
그리고 하루종일 길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어. 그런데 돌
아다니던 모든 사람들이 무섭게 보이는 거야.
다들 가슴 속 깊은 곳에 그 형사 놈 같은 잔혹하고 악마적인 본
성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나 역시 그들과 똑같아 보였
고... 모든 걸 잊고 싶었어. 정말...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너희들이 떠올랐어.
너희들이라면 내 얘기를 믿어주진 않아도 들어줄 것 같았어.
그래서 너희들에게 만나자고 한거야.
그게 어제 일이야..."

인석이는 얘기를 마치고 목이 마르다는 듯이 맥주를 들이켰다. 나
와 성준이는 충격에 멍해있었다.
나는 목쉰 목소리로 인석이에게 물어봤어.

"그럼 넌 어제 이후로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거야"

인석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을 하며 힘없이 대답했어.

"그래... 어제 아침에 뛰쳐나온 후 뭐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무
것도 몰라. 한승이 형에게는 한번 전화를 해봤지만, 밖에 나갔는
지 전화를 안 받더라..."

성준이는 못 믿겠다는 어조로 인석이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난 좀 못믿겠어.
왜냐하면 그 정도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정말 일어났다면,
신문이나 방송에 난리가 났을텐데, 거기에 대해선 한 줄도 안 났
거든..
그거 좀 이상하지 않니?"

성준의 말을 들으니, 나도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인석이
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건도 보통 큰 사건이 아닌데, 그렇게
잠잠한 것이었다.
인석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것은 나도 이상했어.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방송이나
신문에 아무 얘기도 없는 거야.
안 그래도 한승이 형도 그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솔직히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본 것은 정말 사실이라는 거야.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인석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심정적으로 인석이를
믿고 싶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도 있고, 인석이가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할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황당해서 믿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그런 참혹한 사진들을 올려놓은 사이트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고, 일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그런 사이트를 찾아 다닌다
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진들과 얘기들은 전부 먼나라 얘
기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정말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얘기처럼 들렸다.
성준이는 표정으로 봐서 인석이 말을 안 믿는 것 처럼 보였다.
인석이는 그런 우리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체념 조로 얘기했다.

"휴... 너희들도 잘 믿지 않는 구나..
하긴 나라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잘 믿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고맙다.
너희들에게 다 얘기하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인석이의 초?한 얼굴을 보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걱정도 되었다.

"그러면 이제 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그래도 경찰에 찾아가 니가 목격한 얘기를 해 줘야 할거 아냐.
안 그러다간 정말 살인범으로 몰리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경찰에 가서 믿든 안 믿든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인석이는 내 말을 듣고 땅이 꺼질듯한 한 숨을 내쉬었다.

"네가 경찰이면 이 말을 믿어 주겠니?
사진 속의 귀신이 나와 사람을 죽이고, 형사까지 죽였다는..
휴...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내가 경찰을 찾아갈 필요가 없겠다.
저기 나를 데리러 온 것 같네.."

인석이는 문가쪽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문쪽에는 인석이가 말한 것처럼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우리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인석이는 도망칠 생각도 없는지, 그냥 앉아서 맥주를 들이켰다.
그 사람들은 우리 테이블을 둘러쌓더니, 인석이를 보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 인석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조인석씨죠?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이유는 아시죠?"

인석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혈질인 성준은 그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의조로 경찰
에 얘기했다.

"아니 무슨 이유로 이 친구를 연행하는 거죠?
체포영장이라도 가져온 거예요?"

형사중에 한 사람이 성준의 질문에 품에서 뭔가를 꺼내며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여기 체포영장입니다.
조인석 씨는 김철수, 장석원, 박지석의 살인 용의자로 검거되는
것입니다. 자, 수갑을 차시죠."

인석이는 정말 범인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 없이 수갑을
찼다. 그리고는 우리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나와 성준이는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일에 대해 멍하니 보
고만 있었다.
술집을 나가기 직전, 인석이는 우리를 돌아다봤다.
인석이의 눈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눈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왠일인지 인석의 무죄를 확신했다.
성준은 성이 안 차는지, 아까 체포영장을 들이대던 그 형사를 잡
고 따져 물었다.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는 거예요?
저 친구가 살인을 했다는!"

그 형사는 기가 차다는 듯이 우리를 돌아보더니, 싸늘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증거가 있냐고요?
이봐요.
당신 친구는 살인현장에 온갖 증거를 남겼소.
마치 내가 범인이니 잡아가시오 하는 것 같았소.
자세한 것은 나중에 법정에서 들어보세요.
아마 사형선고 받을거요.
세상에 사람을 그렇게 죽이다니...
그것도 경찰까지..."

그렇게 말해놓고는 그 형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이 휙 돌아서 멍하니 있는 우리를 남겨두고 술집을 나갔다.
나와 성준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
다. 성준이는 내게 물어봤다.

"그 자식, 정말이었을까?"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인석이 그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을 리가 있냐?"

"그래도....
그 자식 좀 이상해 보였잖아?
그런 사진들 취급하는 것 봐도..."

성준이는 인석이가 무죄라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도 겉으로는 인석이가 무죄라도 얘기했지만, 상식적으로 귀신이
그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 정도니, 경찰이 믿어줄리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한승이 형에게 전화를 했다.
인석이 얘기를 꺼내자, 한승이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충격적
인 얘기를 해주었다.

"인석이랑 전화하다가 갑자기 끊긴 이후로 연락이 안되더라.
걱정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인석이가 맡긴 사진들은 진짜였어.
그 여자 모양의 괴기한 현상도 정말로 나타났어.
그리고 인석이에게 얘기해 줄 것이 있었는데...
인석이 부탁대로, 거울에 비친 그 얼굴 주변을 더욱 확대해 봤
어. 인석이 추측이 들어맞었어.
수십배 확대하고 선명하게 하니, 거울에 비친 것이 그 시체의 얼
굴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이 나타났어.
바로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얼굴이지.
카메라에 가려져 전체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굴의 부분만
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더라...."

한승이가 얘기해준 범인의 정체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나는 멍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승이 형은 필요하다면 법정에 출두해 증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승이 형의 증언이 인석이에게 얼마나 도움일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인석이가 그런 참혹한 사진에 광
적인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 비칠 위험도 있는데다가, 아무리 귀신
같은 것이 보인다하더라도 판사가 그것을 조작되지 않는 실제 사
진으로 받아들이지도 의문이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인석이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
니, 스스로가 무죄를 항변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으로 보여 가망은
더욱 없어보였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성준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를 태워
댔다. 그 자식 표정도 밝지 않았다.

"야, 일한아,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자식 좀 이상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겠어?
귀신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고...
너 전화하는 동안, 인석이가 했던 얘기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대충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
우선 범인이 인석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인석이는 그런 사진을 취급하다, 그런 사진에 대해 병적으로 집
착하게 되었어. 그러다가 살인을 하게 되었어.
그 대상이 KillYou가 보내왔다고 얘기한 사진 속의 여자야.
그러니깐 애초부터 KillYou라는 놈은 없었던 거야.
인석이 혼자 살인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지. 공범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가 그 같은 층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를 죽였어. 자기가 만든 두 번째 작품이지.
그렇다면 왜 이미 자기가 만든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찍냐고?
그렇게 이해해보면 돼. 원래 예술가나 뭔가 만드는 사람들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똑같이 생긴 것을 여러번에 걸쳐 만들
잖아.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석이 그 놈도 그런 심리상태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다가 경비 아저씨가 인석이에게 뭔가 석연치 않는 점을 발
견했을 거야. 인석이 얘기를 들어봐도, 그 경비 아저씨와 같이
시체를 목격했다고 했잖아. 그 ? 뭔가 의심받을 짓이나 물건이
경비 눈에 띠었을거야.
그러다가 그 경비가 경찰에 심문받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껴
살해한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형사야.
인석이 말에 의하면 그 형사는 글자 그대로 살인범을 극도로 싫
어하는 사람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형사는 유력한 살인 용
자로 생각되는 인석이를 가만 놨두었겠니.
몇대 때리고 윽발질렀겠지.
그러니 그 형사가 자기를 의심한다고 생각한 인석이가 4번째 살
인을 저지른 거고...
어때? 이정도면 그럴듯한 추리아니냐?"

나는 성준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설마하며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인석이가 봤다던 그 여자 원귀는 어떻게 된거야?"

"그건... 사람을 그렇게 죽였으니 일말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 아니니? 그 가책에 시달리다 환각증세를 본 것일 수
도 있잖아.
아니면, 그 귀신을 목격한 얘기는 진짜일 수도 있고..
그리고 한승이 형의 사진 역시 이렇게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인석이가 그 여자를 죽여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 거야. 그래서 한승이 형에게 분석을 의뢰한 것일 거야.
생각해봐.
자기가 죽인 사람의 사진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면 얼마나 겁이
나겠냐? 그걸 알아보려고 맡긴 거 아닐까?"

성준이의 논리는 한편으로는 황당한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타당해 보였다.
나는 성준이와 헤어지면서 한마디 했다.

"나도 솔직히 인석이가 그런 짓을 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
그래도 친구인데, 한번 알아볼 생각이다.
우리가 모르는 진실에 대해.
만약 인석이가 정말 무죄라면, 내가 진실을 밝히면 자연히
인석이는 풀려날 것 아니니..."

며칠 동안 잡혀가는 인석이 얼굴이 계속 머리속에 감돌아, 아무일
도 할 수가 없었다.
인석이는 정식으로 살인범으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인석이 변호를 맡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유능해 보이는 변호사였지만, 인석이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
어 보였다.

"저도 간신히 인석씨에게 모든 얘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믿을 수 없더군요.
하지만, 변호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우선 한승씨라는 사진 작가에게서 받은 그 사진 속 여자의 신원
을 파악해 봤습니다.
간신히 찾아내긴 했지만, 그리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종 신고가 되있는 여자 였습니다.
인석씨가 살던 오피스텔 3층에 입주해 있던 김주영이라는 여자
였습니다. 소설가라고 하더군요. 2개월전에 실종 신고를 받았지
만, 아직 못 찾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시체라도 발견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
서는 법정에서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여자의 종적을 찾고 있지만, 가망 없습니다.
아, 그 여자 쌍둥이 동생이 있던데, 그 동생 말로는 김주영이라
는 여자는 소설 쓴다고 가끔씩 연락도 없고 사라진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실종신고는 해 놨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며 걱정도
않하고 있더라고요..
인석씨 말대로 그 지역에는 병원에서 시체가 없어지고, 실종자들
이 급증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이 살인사건과 연관있
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증명할 수 있더라도,
잘못하면 인석씨가 그 죄까지 뒤집어 쓸 수도 있을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인석씨 말만 듣고, 그 지역에 세워진 수십개의 빌딩들
을 모조리 부셔서 그 시체들을 찾을 수도 없는거고...
또 아무리 찾아봐도, 그 살해당한 세 명이 서로 모여서 그런 끔
찍한 일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도 없고요..
힘든 사건이네요...
사진 작가가 보내준 그 사진들을 봤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네
요. 그냥 사진이면 모를까,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한승씨
가 컴퓨터로 통해 걸러낸 것이라 법정에서 증거로 체택될지 의
문이고요... 체택된다 하더라도, 판사가 그 황당한 얘기를 믿어줄
리 없습니다. 그러니 한승씨가 밝혀냈다는 범인의 모습 역시 공
개했다가는 사건을 악화시키고 무고죄까지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거기다 검찰이 제시할 증거들이 너무 맹백합니다.
살해 현장마다 인석씨의 지문이 발견?고, 가지고 있던 사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시체들이 발견되었으니까요...
더욱 결정적인 것은 죽은 박형사의 증언과 박형사를 살해될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훙기인 칼에서 인석씨의 지문이 발견되었습
니다.
솔직히 말해 이 사건은 가망이 없습니다.
인석씨가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인정하고, 정신감정을
받고 금치산자 판정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인석씨 본인이 강력하게 거절하고 있어서요.
친구 분이 한번 설득해 보세요.
사실 제 정신으로 그런 살인은 못하거든요.
잘만하면 정신질환자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무거웠다.
나 역시 이제는 인석이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면회로 만난 인석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여자의 저주를 받은 것 같아.
내가 그런 끔찍한 사진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한 것에 대한 천
벌이지. 아냐, 어떻게 보면, 나도 그런 사진들을 보고 쾌감을 느
꼈는지도 몰라..
이제 다 정리했어.
어떻게 보면, 별거 안되는 것 같은 잘못이었지만, 그 사진 속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 천벌받아 마땅할 놈이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
고 즐거워했으니...
죄값을 받아야지..
하지만, 일한아 나는 안 죽였어...."

인석이를 면회하고 돌아오던 길 내내 인석이를 구할 수 있는 방
법을 생각해보았다. 변호사 말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석이는
영락없는 잔인한 살인자였다.
힘없이 집에 들어오다가, 길거리에 날라 다니는 신문지들이 눈에
띠었다. 그때 갑자기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 생각났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 인석이 말에 의하면 그 형
사에 의해 '그 분'이라고 불리던 인물, 그리고 한승이 형이 사진을
통해 범인이라고 한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이라면, 그 사람만이 인석이를 구해낼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해낼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을 통해 인석이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을
생각해 봤다.
밤늦게까지 한참을 생각해 보는데, 생각없이 틀어본 TV에서 정말
충격적인 뉴스가 들렸다.

"....오늘 오후 서울시 **동에 신축건물이 집중호우로 붕괴되면서
수십 구의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발견된 시체들이 모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홰손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살해된 후 유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체들과 함께 잔혹한 살인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World Most Scary Pictures이라는 잡지
가 발견되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 시체들이 바로 인석이가 얘기했던 그 놈들이 유기했다던 희생
자들 같았다. 하지만 나는 TV에서 보여준 그 잡지에서 눈일 땔
수가 없었다. 그 잡지는 내가 인석이 이사를 도와줄 때 그 집에서
우연히 본 그 잡지였던 것이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럼 진짜 인석이가....
하지만 곧이어 나온 긴급하게 방송된 뉴스 속보는 나에게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오늘 밤 현직 경찰청장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최두석 경찰청장은 오늘 밤 자택에서 상체와 하체가 잘려나간
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청장의 시체는 손에 잔혹한 살해 장면을
찍은 사진을 든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경찰청장이 인석이의 결백을 밝혀줄지도 모르는 제 4의
범인이었다. 한승이 형이 발견한 것도 경찰청장의 얼굴이었고, 그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도 그 ?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경찰청장이 살해당한 것이다.
이제 인석이를 사형에서 구해줄 방법은 이 세상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는 풀 수 없는 또 하나의 의문이 남게 되었다.
경찰청장을 또 그런 식으로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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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여행

믿을 수 없다면, 믿지마.
하지만,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이야....

 

 

휴...
아직도 가끔씩 그 무시무시했던 모습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곤 한다.
그래도 너희들도 자세한 얘기는 잘 모를거야.
대학생 때 전국 무전 여행때 겪은 일..
1학년 겨울 방학때였으니, 벌써 10년이 된 이야기 구나..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
너도 나도 유럽배낭 여행이라고 떠날 때, 나는 우선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
니고 싶었어. 그것도 구시대의 낭만이라는 무전 여행으로..
우리나라를 먼저 속속들이 알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그래서 마음 맞는 과 친구 두 놈과 무작정 여행을 떠났어.
우리는 한 사람당 비상금 5만원씩만 들고 무모한 겨울 여행을 떠났어. 모자라
는 돈은 막일이라도 해서 벌어채우자면서.
시작은 즐거웠고, 자신에 찼지..
그때는 몰랐어, 얼마나 어리석고 악몽같은 여행이 될지는...
유럽 배낭 여행에는 기차를 이용한다면, 우리 나라 전역을 돌아다니는데는 시
외버스라는 훌륭한 교통수단이 있어.
니네들이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횡단할 때, 나는 시외버스 시간표 책을 가지
고 계획을 짜서 전국을 돌아다녔어. 왠만한 동네도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거든.. 어쩔 때는 지나가는 차 얻어 타기도 했어.
며칠을 그런 식으로 다니니 완전히 거지꼴 다되었더라.
아무 재주도 없는 우리들이 완전 타향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것도 하루, 이틀 일하고 떠난다고 하니 누가 우리에게 일을 맡기
겠니? 더구나 겨울이어서 농촌에 일도 없더라.
그때는 무슨 깡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여하튼 돈 벌려고 했지만, 일이 없는거야.
간신히 얻은 하루벌이가 바로 시체 염하는 일이었어. 벌이는 짭짤했지만 할
일은 안돼더라. 무섭기도 하고.. 하루일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았지만,
그 찝찝한 기분을 잊으려고 술마시다가 하루밤에 그 돈을 다썼지.
그런 식으로 여행을 했어.
서해부터 돌다가 한 열흘쯤 지났을까..
어느새 돈은 다 떨어지고, 글자 그대로 빌어먹는 여행을 시작했어.
처음에는 흥미 있는 고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힘든 고행이 되었어.
춥고, 배고프고, 잘때도 없고...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지칠대로 지쳤고 겨울이라 잠자리도 마땅치 않아 결국
지리산까지 도착했다가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그때 우리는 지리산 구석의 어느 작은 산마을에 있었어.
우선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나와야 했지. 우리는 그 마을에서 일
도와주고 받은 몇 푼으로 겨우 버스비를 마련했어..
우리는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이 고생에서 벗어나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도
착하길 바랬어. 추위에 떨다 따뜻한 버스에 타니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흔
들림에도 노곤함을 느끼고, 잠이 들었어.
얼만큼 잤는지,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서 버스 밖을 내다보니, 읍내가 아
닌 더 깊은 산속이었어.
주위는 어두컴컴해지려고 했고, 우리를 제외하고 두세명 밖에 되지 않던 승객
들도 다 내리는 거야.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난생처음 들어본 전라북도 산골 마을이래.
우리가 자던 사이에 읍내를 거쳐 엉뚱한 곳으로 와버린 거야.
이 버스는 막차이며, 더 깊은 마을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고 나온다는 거야.
황당하더라고.. 우리는 거기서 내리기로 했어.
밤이 되기 전에 일 도와줄 곳을 구해, 하룻밤 지낼 곳과 나오는 버스비를 구
하기로 했지.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어.
살을 에는 듯한 산바람이 불어오고, 온톤 사방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거야.
시간은 5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해는 지고 있었고.
먼저 내린 사람들을 따라갈 생각을 했지만, 어느새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
가 사라진 거야.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자마자 도망치듯 떠났어.
우리는 떠나간 버스 뒤에 대고, 우리를 태우고 가라고 소리쳤지만 버스는 먼
지를 풍기며 언덕너머로 사라졌어.
정말 막막하더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사는 집이 보이질 않는 거야.
여기서 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분명히 사람 사는 곳이 있다는 얘
기인데, 눈에 띠는 것은 정말 음침한 산 뿐이었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
어. 길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산쪽으로 난 오솔길이 보이더라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그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어.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다닌다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오솔길을 따라 올
라갔지.
앙상한 나뭇가지이며, 길 주변의 괴기하게 생긴 나무들과 바위들을 보니 괜히
으시시해 지더라. 한참을 걸어도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어. 오히려
산 속 깊이 들어와 가딱하면 길을 잊어버릴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
이게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면 어떡하냐 라는
생각이 들었어. 해는 어느새 산너머로 사라졌고, 추위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
어. 배도 고프고.. 정말 답답하더라.
손과 발, 얼굴 할 것 없이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어.
그렇다고 쉴 형편도 되지 않아, 마냥 걸었어. 이제와서 돌아올 형편도 되지
않았거든. 우리 모두 겁이 나는지 말도 않고 묵묵히 그냥 걸어갔어. 사실 말
할 힘도 없을정도로 지쳤거든..
그러다 길 저쪽 편이 불빛이 보이는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는 지친 것도 잊고, 그 집을 향해 앞다투어 뛰어 올라갔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직도 이런 집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초
가집이었어. 그래도 우리는 개의치 않고, 뻔뻔스럽게 그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 마당까지 들어가 주인을 찾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그 집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과 냄새를 느꼈지만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
단지 배고프고 춥다는 일차원적인 생각뿐이었으니까..
몇번을 불러도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었어. 분명히 불은 켜져 있는데. 좀 이상
했어.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보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움칫했어.
우리나이 또래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난 거야.
그런데 그 얼굴을 보니, 무슨 정신 장애자처럼 초점없는 눈에 멍한 모습을 하
고 있었어. 정말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우리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몇번을
얘기를 건네봐도 그 쾡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만 있는 거야. 괜히 으시시해지
더라. 난감해 하는데, 그 사람 뒤로 '손님 오셨네'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마흔정도 되 보이는 아줌마였어.
첫인상이 아주 친절해 보여, 마음이 놓이더라.
우리는 우리 사정을 얘기해주고, 지금 배고프고 잘 곳도 없으니 그것만 해결
해주면 어떤 일이라도 도와드리겠다고 했어. 그 아줌마는 좀 생각하는 것 같
더라. 하긴 그 외진 곳에 여자 혼자서 난생 처음 본 남자 3사람을 재워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집에는 할 일이 없는데...'라며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 아줌마는 우리들
거지꼴이 불쌍해 보였는지 허락했어.
대신 한가지 일만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저녁을 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정말 모든 일이 해결된 기분이었어. 추
운데 방에 들어와 몸 좀 녹이라는 아줌마의 얘기에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어.
방에 들어가다가, 우리는 한번 더 흠짓 놀랐어.
거기에는 아까 문앞에서 본 남자와 비슷한 증상으로 보이는 10살 또래의 남
자애가 벽에 기댄체 멍하니 앉아있었어. 그 애 역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
었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어. 아줌마는 우리가 놀라는 것을 눈치챘는
지,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조로 얘기하더라.

"우리 큰 애와 둘째 애에요.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저질렀는지 다들 태어날 때부터이래요..
휴..."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는 그 아줌마가 불쌍해 보였어.
아줌마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밥을 차리러 부엌에 갔어.
따뜻한 방에 들어와 앉아있으려니, 몸이 노곤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더라고..
구수한 밥짓는 냄새까지 나니, 배는 고팠지만 피곤해서였는지 우리모두는 꾸
벅꾸벅 졸았어.
그러다가 귀청이 찢어지는 것 같은 괴성에 졸음이 확 깼어.
아줌마의 둘째라는 애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우리는 놀라서 그 애를 봤어.
좀전까지도 멍하니 있던 그 애는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포에 질린 눈
을 하며 발광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가.....가............가!!가.........가..........가!!!"

밥짓던 아줌마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애를 붙잡았어.
그런데 원래 그렇게 다루는지, 그 발작하는 애를 사정없이 때리는 거야.
보기에 섬뜩할 정도로 개패듯이 그 애를 때리는 거야.
그 때 아줌마의 얼굴은 조금전의 친절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무시무시하고
끔찍해 보였어. 그 발작하는 애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아줌마에게 뭇매를
맏더니 금새 조용해지는 거야.
아줌마는 그제서야 우리가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겸연
쩍은 목소리로 변명하듯이 얘기했어.

"얘가 손님만 오면, 이렇게 생난리를 쳐요.
가만 두었다간 도저히 안되서, 이런 식으로 버릇을 가르키고 있지요.
휴..."

그 말과 함께,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눈으로 둘째를 쏘아보고는 다시 부엌
으로 들어갔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는 그 일로 잠이 확달아 났어.
부엌에 들어간 아줌마는 우리가 도망갔을까봐 걱정했던 것처럼 금새 상을 차
려왔어. 다 쓰러져가는 산속 초갓집의 밥상치고는 푸짐했어.
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운 고기는 한상 가득히 나왔어. 아줌마 말로는 동
네 주민이 가져다준 맷돼지 고기라는 거야. 더구나,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인지
곡주라며 술까지 내왔어. 배고팠던 우리는 정말 허겁지겁 밥과 고기를 먹어치
웠어. 고기는 시커먼 색깔과는 달리 연하고 맛있었어.
우리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배터지게 먹었어. 아줌마는 그렇게 밥을 먹는 우
리를 보고 안쓰럽다는 듯이 얘기했어.

"아이고... 젊은 장정들이 얼마나 배고팠으면..
많이들 먹어요.
실컷 먹고,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되요."

우리는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도 안쓰고 밥먹는데만 집중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먹어 치운거야.
피곤하고, 빈속에 술까지 마셨더니 금방 알딸딸하고 취기도 느껴졌어.
그 술은 입에서는 달았지만, 생각보다는 독하더라고.
술이 들어가니, 우리는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잊은 듯이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
어. 아줌마도 맛있게 식사하는 우리들도 기분좋게 보고 있었지.
그런데, 나는 밥을 먹다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어.
돌아보니, 역시 정박아라는 첫째가 우리를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
는 거야. 아까 볼때는 아무 감정 없는 멍한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우리를 왠
지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거야.
괜히 기분이 찝찝해지더라..
모자란 애니 그러려니 하고, 남은 밥을 다 먹어치웠어. 배에 뭔가가 들어가니,
좀 정신이 들더라. 그리고 나서, 방을 살펴보니 정말 사람 사는 곳 같지도 않
았어. 무슨 버려진 집 같더라고..
아줌마는 우리가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밥상을 치웠어.
우리가 식구들은 식사를 안 하느냐고 묻자, 벌써 먹었다고 했어.
밥도 얻어먹었으니, 빨리 일을 돕자며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어.
솔직히 그때는 빨리 일하고 들어와 그 맛있는 술을 더 마실 생각도 했어.
미친놈..
아줌마는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어.

"별일 아니라우...
여자 혼자 살림을 꾸리려니, 힘쓰는 일을 못해서.
사실 안 해줘도 되는데...
정 도와주고 싶다면 일로 따라와요."

아줌마를 따라 우리는 창고로 갔어.
거기에서 아줌마는 우리에게 곡갱이와 삽을 하나씩 주고는, 검은 비닐에 쌓인
무언가를 보여주며 얘기했어.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거든..
묻어줘야 하는데, 땅도 얼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서
여기 창고에 그냥 놨두었어.
그러니 장정들이 이것 좀 묻어주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어. 그런데 어디다 묻냐는 질문에 아줌마는 미안한 듯이
대답하더라고..

"그런데.. 아무리 같이 지내던 짐승이라도 집 근처에 묻긴 좀 그렇다우..
그러니, 수고스럽더래도, 산 위로 좀 올라가 묻어줘요..
자, 여기 후레쉬들고 가고.."

밖에 날씨를 생각하니, 좀 고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적당히 취기도 돌고 해
서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또, 우리가 대접받은 것을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할 것 같았어. 곡갱이와 삽들은 두 친구들이 들고, 나는 고양이 시
체가 들었다는 검은 비닐 봉지를 들었어.
좀 큰 고양이 였는지, 묵직하더라고..
아줌마는 마당까지 쫓아나와 산쪽으로 난 길을 가르쳐 주었어.

"추우니 한 10분만 올라가서, 금방 묻고 오세요.
술상봐 놓고 기다릴테니...
수고해요..."

우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길을 나섰어.
적당히 취기도 올라서인지, 짐을 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에 올라가는 것
이 수월했어. 술기운 때문인지, 사방이 깜깜하고 별빛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
는 밤이었는데도 그렇게 무섭지 않더라고..
한 5분 쯤 올라갔나..
하지만, 같이 간 친구 중에 몸이 좀 약한 원종이가 힘들다면 그만가자고 하는
거야. 이쯤에 대충 묻고 돌아가도 아줌마는 모를 거 아나냐는 것이었어. 우리
는 서로를 돌아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러기로 했어.
그렇게 우리에게 잘 대해준 아줌마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10분이나 5분 별 차
이 없을 것 같았어. 우리는 길옆에 약간의 평지를 찾아 곡갱이 질을 시작했
어. 나는 속으로 겨울이라 땅이 얼어 파지지 않으면, 그 고양이 시체를 대충
어디다 버릴 생각도 했지만, 땅은 겨울 땅같지 않고 신기할 정도로
잘 파졌어. 세 명이서 삽질과 곡갱이 질을 5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깊숙한
구덩이를 팠어. 일이 일찍 끝나 기분이 좋더라고.
잠시 주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가져온 고양이 시체를 싼 비닐 봉지가 눈
에 띠더라고. 그런데 좀 모양이 이상했어.
후레쉬를 비춰서 자세히 보니, 그 봉지 모양이 안에 고양이가 들어있는 것 같
지 않아 보였어. 다들 좀 이상하게 생각했어.
나는 그 봉지를 들어올렸어.
비닐 봉지에 쌓여있다고 하더라도, 시체를 만지기 싫어서 우리는 그냥 모양만
살펴봤어. 그래도 담력이 좋다는 의중이가 나뭇가지로 그 비닐 봉지를 눌러봤
어. 눌러봐서는 모르겠는지 의중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더라고.
원종이는 무섭다며 그냥 묻고 내려가자는 거야.
하지만, 나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어. 그 봉지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꼭
알고 내려가야 할 것 같았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뭐에 홀린건지 모르겠어...
여하튼 나와 원종이는 줄다리기하듯이 내려가자말자 하면서 다투었어.
그러다 나는 그 봉지를 만져봤어.
촉감이 뭉뚝한게 기분이 좋지 않았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에 든 것이 고
양인지 아닌지 알 수 없더라고.
내가 망설이고 있는 것이 바보같이 보였는지, 의중이가 나서서 봉지 위아래를
만져가며 안에 있는 것이 뭔가 알아봤어.
그런데 갑자기 의중이의 얼굴이 이상해진는 거야.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확실히 아니라는 거야.
꼬리가 않 잡힌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듣자 우리는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어.
그 아줌마가 우리를 속이고 고양이가 아닌 뭔가를 묻게 한 거야.
갑자기 무서워지고, 더욱 추위가 느껴졌어.
그리고 그 때까지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주위의 암흑이 무서워졌어.
어둠 저편에서 뭔가 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원종이는 거의 울 듯이 내려가자는 거야. 그때쯤 나도 내려가고 싶었어. 그런
데 이번에는 의중이가 말을 안 듣는 거야.
무언지 비닐 봉지를 열어보자는 거야.
원종이는 흥분해서 말렸지만, 의중이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냥 묻고 갈 수
는 없다는 거야.
그러더니 말릴 틈도 없이, 그 검은 비닐 봉지를 확 뜯는 거야.
비닐 봉지가 ?겨지는 순간, 확하고 역한 악취가 풍겼어.
후레쉬를 비춰봤지만, 무슨 지저분한 천에 쌓여있어서 뭔지 알 수 없었어. 좀
망설이던 의중이는 장갑낀 손으로 그 천을 벗기기 시작했어.
나도 모르게 덜덜 떨리더라. 계속 내려가자고 칭얼대던 원종이도 그때는 아무
말 않고 있었어.
정말 죽음같은 침묵속에, 천을 벗기는 소리만 났어.
의중이가 천을 벋기자, 우리는 '억!'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뒷걸음질 쳤
어.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온 몸이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껴졌어.
천에 쌓여있던 것은 다름아닌 반쯤 썩은 갓난 아기의 시체였어.
누가 그랬는지, 가슴에는 깊고 날카로운 칼자국이 있었고, 얼굴과 못 알아볼
정도로 썩어 문드리져 있고, 몇군데는 살점을 도려냈는지, 살이 없었어.
얼마나 끔찍하던지..
우리 모두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
정신이 들자, 나는 본능적으로 거기서 도망치고 싶어졌어.
원종이도 그런 눈치인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가더라.
그 아기 시체를 그대로 놓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도망치기 시작
했어. 그냥 있다간 무슨 일을 당할 것 같았어. 정신없이 내려가는데, 의중이가
맨 앞에 달려가던 나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거야.
그러더니 숨차 헉헉대는 원종이와 나에게 황당한 얘기를 하는 거야.

"야! 다시 올라가자"

우리는 그 한마디를 듣고 의중이가 미친 줄 알았어.
아무리 담력이 좋다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가자니...
그런데 의중이는 우리의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어.

"생각해 봐라.
그 상태로 아기 시체를 거기다 버려놨다가, 나중에 발견되면
우리는 살인죄 및 시체 유기죄야.
거기에는 도구에 우리 지문이 다 묻어있잖아.
그러니 정신차리고 다시 올라가서 뒷정리 해야되.
알았어!"

듣고보니, 그 말이 맞았어. 하지만 다시 올라가기는 죽기보다 싫었어.
원종이는 거의 사색이 되었어. 그렇지만, 그 놈도 의중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들바들 떨면서 의중이 뒤를 따라갔어.
의중이는 겁도 안 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섰어.
그 자리에 돌아와 손전등을 비춰보니, 그 아기 시체는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 우리가 버려둔 그 상태로...
그 모습을 다시 보니, 정말 무섭더라..
식은땀이 흐르고, 잘 움직일 수도 없는 거야.
의중이의 보챔에 떨리는 손으로 삽을 들었어.
빨리 묻지 않으면, 그 아이가 살아날 것 같은 생각도 들더라.
하지만, 손이 너무 떨려 흙을 제대로 풀 수가 없더라.
그런데, 의중이가 "잠깐!" 하더니, 그 아기 시체에 손전등을 가까이 비춰되는
거야. 그러더니, 탐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더니 말하는 거야.

"야, 여기에 두꺼운 금반지 있다.
돌반지인가 봐..
돈 좀 되겠는걸..."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미치는 것 같았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시체에 있
는 금반지를 탐내다니..
손전등에 비친 의중이는 제정신인 것 같지 않았어.
내가 미쳤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의중이는 오히려 나를 핀잔했어.

"야 임마, 생각해봐!
너 무슨 돈으로 집에 갈래?
이거라도 있어야 차 타고 집에 갈거 아냐!"

그러면서 광기어린 얼굴로 반쯤 썩은 아기 손에 있는 반지를 빼려하는거야.
나와 원종이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할말을 잃었어.
썩어서 손가락이 커졌는지, 반지가 잘 빠지지 않는거야.
우리는 의중이에게 그만 포기하고 가자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의중이는 광기
어린 눈빛을 빛내며 반지 낀 손가락에 힘을 더 주는거야.
얼마나 힘을 주는지, 얼굴이 일그러지더라.
그런 의중이의 얼굴은 내가 알고 있던 친구가 아닌 악귀처럼 보이더라.
그때였어.
'퍽'하는 소리와 함께, 반지 ?려고 힘을 주던 의중이가 뒤로 벌러덩 자빠지는
거야. 뒤로 자빠진 의중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자기가 손에 들
고 있는 것을 봤어.
그 순간 의중이도, 그걸 본 우리도, 큰 충격을 받았어.
의중이 손에는 그 아기의 손가락이 들려있는 거야.
반지를 뺀다고 힘을 주다가, 썩은 손가락을 반지껴져 있는 채로 뽑은 것이지.
의중이도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썩은 손가락을 보고 놀랐는지, 땅바닥에 내뎐
졌어. 우리는 너무 큰 충격에 잠시 멍하니 있었어.
그때 원종이가 '어억!'하고 비명을 질러대는 거야.
원종이 쪽을 돌아다보니, 뭔가 무서운 것을 봤는지 온통 겁에 질린 얼굴이었
어. 원종이는 말은 못하고 떨리는 손가락만 저쪽을 향하는 거야.
우리는 원종이가 가르키는 쪽을 후레쉬와 함께 돌아봤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거기에는 그 아줌마가 소름끼치는 표정을 하고 우리는 노려보고 있는 거야.
손전등에 비친 그 아줌마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귀신의 얼굴 같았어.
그 아줌마는 기분나쁜 목소리로 우리를 보고 얘기했어.

"그걸 그냥 두고 가려고?
그렇게는 못 보내....."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무섭던지.
나는 속으로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돼라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이 안듣더라고..
원종이는 말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고, 의중이는 넘어진 채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어.
그 아줌마는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어.

"밥만 먹고 그냥 가려고?
그럼 안되지..."

음산하게 얘기하는 아줌마는 정말 이 세상 사람같지 않았어.
그런데 내 발은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어.
그러다 갑자기 옆에 있던 원종이가 미친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어. 나도 그와
동시에 최면에 풀린 것처럼 원종이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어.
뒤를 돌아봤다간 그 아줌마가 잡을 것 같아, 정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어.
그런데 바로 등뒤에서 그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어딜 가!
그냥 못 보내줘!!!"

소름이 쫙 끼치며,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어.
앞이 안 보이고, 온 몸이 나뭇가지에 ?히는 것도 게의치 않았어.
단지 그때 생각으로는 거기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었어.
넘어지고, 숨이 차서 허파가 터질 것 같아도 멈출 수 없었어.
멈추면, 그 아줌마에게 잡힐 것 같았어.
올라왔던 길로 한참을 뛰다보니, 어느새 버스가 다니던 길까지 나오게 되었
어. 앞에 뛰어가던 원종이는 이제 더 이상 뛸 수 없는지, 앞에 서더라. 나도
원종이 옆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셨어.
너무 힘들어 토할 것 같더라고.
뒤를 돌아보니, 그 아줌마가 쫓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의중이가 없는 거야.
같이 도망쳐 왔는데, 의중이가 없어진 거야.
나와 원종이는 사색이 되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어.
솔직히 그때는 억만금을 준다해도 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는 도저히 못 올라가겠더라. 처
음에는 곧 의중이도 내려오겠지라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의중이는 내려
올 생각도 하지 않았어.
결국 우리는 의중이가 그 아줌마에게 잡힌 걸로 생각했어.
하지만 그래도 의중이를 찾으러 갈 수는 없었어.
찾으러 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의중을 찾을 자신도 없었고..
그래서 겁쟁이 우리들은 어떡해서든지 경찰이라고 불러 가자고 했어.
그렇게 합리화를 시키고 나서, 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 밤새 걸었지.
그때는 생각도 하기 싫다.
얼마나 춥고, 힘들고, 무서웠는지...
한 3시간을 걸었을거야.
그러다 보니, 전화 있는 작은 가게가 나오더라.
곤히 자고 있는 주인을 간신히 급한 일이라며 간신히 깨워 인근 지서에 신고
했어. 경찰은 처음에는 우리가 술먹고 거짓말 하는 것으로 듣는거야, 그래도
우리가 하도 난리치나까, 귀찮아 하던 경찰도 만약 허위신고라면 처벌 받을
각오하라며 우리에게 오겠다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 경찰이 도착한 것은 거의 2시간이 지난 뒤였어.
경찰차에 탄 우리는 의중이를 찾아 그 초가집으로 향했어.
밤이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우리가 올라갔던 그 오솔길을 찾을 수 없는 거
야. 몇번을 그 길을 왔다갔다 해도 발견할 수 없었어.
급기야는 경찰들도 험학한 표정을 짓고 우리가 허위신고한 것 아닌가 하며
의심하는 거야. 얼마나 헤맸는지, 동이 트더라.
좀 밝아지니까, 그 오솔길을 찾아냈어.
우리는 귀찮아하는 경찰들을 간신히 데리고 그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어. 한참
을 걷다보니, 그 아줌마의 집이 보였어.
그 집이 보이자, 전날 밤의 참혹했던 악몽이 떠올라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리
더라..
그래도 경찰이 같이 있으니깐 좀 안심이 되었어.
경찰은 집 주인을 찾았어. 나는 그 아줌마가 도망갔으리라 생각했어.
그래서, 사라진 의중이라도 찾기릴 바랬지.
그런데, 경찰이 몇번 부르니, 그 아줌마가 어제의 그 친절한 얼굴을 하고 나
타나는 거야.
원종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어.

"저.... 여자예요... 저 여자...
어제 아기 시체를 파묻으라고 한게...."

그 아줌마는 경찰의 질문에 천역스럽게 얘기했어.
황당한 것은 우리를 처음 본 것이며, 어제 밤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거야. 우
리는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어. 경찰은 우리를 한번 노려보고는, 정중하게 그
아줌마에게 집안 좀 돌아봐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고는 집을 돌아봤어.
그런데, 보이는 것은 어제밤에 본 그 정박아 형제뿐이었어.
의중이는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우리는 경찰을 이끌고, 아기를 파묻으려 했던 곳으로 데려갔어.
마지 못해 하는 경찰과 그곳에 올라간 우리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어.
거기는 깨끗이 치워져있는 거야.
경찰은 의심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어.
우리는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아줌마는 천연덕스럽게 우리를 보고 무슨 얘기
라며 웃는 거야. 그걸 보니 더 무섭더라고....
화가 난 경찰이 우리를 보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할 때였어.
그 초가집 앞에 의중이가 얼빠진 모습으로 서 있는 거야.
우리는 놀라 달려갔지.
그런데....
의중이는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거야.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눈은 무서운 것을 목격한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어. 외모도 완전히 10년을 늙어 보였어.
그 모습을 보니, 어젯밤에 의중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한 것
같았어.
그냥 멍하니 서 있는 거야. 아줌마 두 정박아처럼 되어버린 거야.
경찰의 질문에 아줌마는 태연하게 대답했어.

"글쎄요.. 저 청년 어젯밤에 산속을 배회하고 있더라고요.
저렇게 얼이 빠져서...
가만 두면 얼어죽을 것 같아, 데리고 들어와 재웠는데, 아침에는
사라졌다 지금 나타났네요..
뉘 집 자식인지 불쌍하네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어.
경찰도 이번에는 못 믿는 눈치였지만, 의중이도 찾았고 더 이상 수사할 명분
이 없어 그냥 내려가자고 했다.
우리는 그 아줌마가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
정신이 나간 의중이를 데리고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죄책감, 부끄러움, 두려움....
휴.... 그 길로 의중이는 서울로 가서, 병원에 입원했어.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나중에 의심을 한 경찰이 다시 한번 그 초가집에 가서 철저히
조사했대. 아니나 다를까 그 집 주변에서 갓난 아기 시체로 추정되는 유골을
10구나 발견했대.
그 아줌마는 정신 이상자였어. 미친 살인마였다는 거야..
그래서, 아기들을 납치해 죽였던 거야. 그리고 아들이라고 얘기했던 두 사람
도 사실은 그 여자 자식들이 아니었대. 근처에 놀러왔던 실종된 사람들인데,
무슨 끔찍한 경험을 했는지 다들 정신이 나간거야.
우리가 먹은 고기가 어쩌면 그 갓난아기들의 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세상에...
의중이는....
얼마전에도 면회갔다 왔는데, 의사 말로는 변화가 없대.
정서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경험을 했는지, 두려움을 참지
못해 의식을 닫아버린 것이래..
이제 의중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숨쉬는 것과 멍하는 앉아 있는 것밖에
없는 거야.. 하지만 도대체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의중이가 그렇게 되
었는지 영원히 밝혀지지 못하게 되었어.
그 여자가 경찰 심문 중에 자살했거든...
그런데 그 여자가 자살하던 날 밤, 경찰서 청소부는 그 여자같이 생긴 사람이
걸어나가는 것을 봤다는 얘기를 해서 난리가 났지. 결국 청소부가 헛것을 본
것으로 판명 났지만, 나는 믿을 수 없어.
어쩌면 그 여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아이들을 납치해 그 끔찍한 행위를 자행
하고 있을지 몰라.
지금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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