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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의 <타워>에 관한 길고 두서없는 이야기

김동호 |2011.02.15 23:12
조회 368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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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교보문고에서 펌) :

 '빈스토크'라는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한 배명훈의 연작소설『타워』. 높이 2,408M, 674층 규모에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타워, 빈스토크. 지상 최대의 건축물이자 도시국가인 빈스토크를 무대로 여섯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층 비무장지대부터 670층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빈스토크의 곳곳에서는 정치, 경제, 외교, 전쟁, 연애 등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전자 태그를 붙인 술병을 상류사회에 유통시킨 후 이동 경로를 추적하면 권력 분포 지도가 그려진다.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빈스토크의 미세권력 연구소는 실험을 시작한다. 의뢰인은 현 빈스토크 시장의 재선을 막으려는 야당 선거사무소. 하지만 권력 지도를 그리며 돌던 술병 중 5병이 네 발로 걷는 개 앞으로 전해지면서 연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가상의 초고층 타워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감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설 속 타워는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세계와 너무나 비슷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주변에서 흔히 보아온 일들이다. 작가는 냉소적인 듯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능청맞은 풍자로 이야기에 웃음을 더한다.

 

 

 

review :

 

0. Prologue

 

 책이야기나눔 모임의 제59회 나눔책이었던 배명훈의 <타워>를 읽었다. 이전에 읽었던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그의 단편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이 작가의 작품들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차였다. 7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기존의 문단에서 볼 수 없던 재치와 상상력이 만개하는 작품이었다.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했던 것들과 시간 관계상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풀어본다.

 

 

 

1. 동원박사 세 사람 - 개를 포함한 경우

 

 권력장과 미세권력연구소라는 소재로 흥미롭게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가벼움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어에 무게가 실려야 할 지점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궁지에 몰린 인간은 궁지를 물기 마련이었다. 세 사람은 정 교수가 어떤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문명 세계의 권력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권력자가 일일이 협박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약탈당할 물건을 내놓게 만드는 힘. 위에서 일일이 지목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서 정적을 제거해주고 비판자의 힘을 틀어막아주는 힘. 통치자가 머리를 비우고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통치기구가 알아서 합리화해주고 알아서 정당화시켜주는 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비열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절대 추궁당하지 않는 권력.

 권력장은 자객을 보내 적을 암살하지 않는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적이 칼을 꺼내 들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생명에 타격을 입히게 만든다. 어느 사회든 사람은 문명과 야만이 적당히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문명 세계의 권력이 개인을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면 개인이 야만 세계의 폭력을 사용해서 거기에 저항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정 교수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폭력 말고는 저항의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문명 세계의 권력은 일반인의 상식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폭력을 혐오한다. 정 교수가 과연 그 사실을 몰랐을까. 아마 알아도 아무 소용없었을 것이다.(p37~38)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기는 불만이 큰 따옴표 안의 대화체가 문어체로 되어 있어서 부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타워>에 수록된 작품들의 경우는 실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작가가 문단의 바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글이 아닌 말의 실제 쓰임새에 근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42p에서 산타클로스를 피로 물든 거인 이미지로 차용한 것도 거대 빌딩인 빈스토크와 이 단편의 후반부와 관련해 권력의 빛깔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다만 34p에서 박사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 교수를 만나러 위로 올라가다 말고 갑자기 권력자 영화배우 P를 찾아가는 대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보편적인 조사 연구 이론에서 이러한 행동은 연구에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 대상이 연구자와 맞닥뜨렸을 때 생길 돌발상황, 예를 들어 자신이 연구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생기는 문제, 그리고 연구자가 연구 대상을 목격했을 때 이후의 연구에서 목격한 연구 대상에 대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가중치를 두거나 의미 부여(또는 축소)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권력 분포 지도를 그려 권력장을 분석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세 사람이 ‘박사’라면서 이렇게 기초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에 나오는 박사들은 원래 멍청한 것들 아니냐고 하면서 넘어가기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이렇게 세 사람이 개를 찾아가도록 만든 이유는 그 개, 영화배우 P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개가 ‘국민’이라고 짖는 부분을 넣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2. 자연 예찬

 

 읽는 내내 지식인의 역할과 정치 코드를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다. 처음엔 사실주의 작가였지만, 비판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앞에 두고도 도피하듯 ‘자연’에 몰두하는 작가 K는 1930년대 작가들의 경향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의 압제가 가중되면서 계급 문제를 논하거나 정치성을 띤 작품들이 금지되면서 순수문학 등으로 방향을 바꿨던 그때, 그들, 그 작품들. K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 그 자연도 실제로 제 눈으로 목격한 것이 아니라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본 자연이다. 그것을 어떻게 자연 예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 예찬이라기보다는 해상도 높고 화질 뛰어난 모니터 예찬이며, IT기술의 혁신에 대한 찬사이지 않은가. 지구 온난화로 먹이를 찾아 헤매던 곰이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큰 웃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성에 기반을 둔 무기력한 지식인에 대한 블랙 코미디적인 묘사이기도 하다.

 

 K가 D에게 나중에 보낸 대지의 나무 이야기는 매우 난해하긴 하나 김수영의 시 ‘풀’과의 유사함이라는 힌트로 이 부분이 민중을 말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파고 파고 또 파도 좀처럼 끝을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나무. 누운 채로 땅에 묻혔으니 언젠가 한번 쓰러지기는 했을 것이다. 단 한자리에서 무려 오천오백 년의 세월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꼿꼿하게 선 채로 버텨낸 위대한 생명체의 주검을 보는 순간, 발굴팀은 그들의 유전자 깊숙한 곳에 오래오래 간직해온 ‘생명의 생명에 대한 예의’가 저절로 발동되는 것을 느꼈다...(p60)

 

 이 작품의 몇몇 문장들은 서울광장 집회 신청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게 아니라 다른 규칙들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다.(p44)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다른 규칙이 강화되었다. 321층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다음 날, 광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층간소음법 위반으로 경비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 시 정부에서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딱 그 정도의 일을 할 권한이 있는 누군가가, 누가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한 일이었다.(p44)

 

 용산 참사와 관련해서는 암시는 물론이고, 작가의 직접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수직운송 체계 재정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재개발 구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죽은 사람은 열흘째 그 구역을 점거하고 농성 중인 무리들 중 하나였다. 그날 저녁에 경비대가 진압을 강행했는데 그 와중에 사고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 변명의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p65)

 

...사람이란 매순간 태어나고 죽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는 없었다. 공권력이 불러온 냉혹한 겨울은, 겨우 목숨 하나 진실 하나 짓이긴 것에 불과하다고 해서 결코 차갑지 않은 것이 아니다.(p70)

 

...이 또한 훌륭하신 시장 각하 덕분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197층에 매달리고, 진실은 검은 베일 뒤에 숨어서 보일 듯 말 듯 아찔한 자태나 뽐내고 있으니 이건 또 도대체 어느 놈의 덕이란 말인가. 누군가가 잘못한 게 분명한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니 이상한 노릇이다.(p71)

 

 그리고 다음은 잠시 기억에 남는 MB의 발언들과 연관해서 들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88만원 세대가 허무개그같은 성공담을 쏟아내는 배부른 기성세대들에게 던지는 항변 같다.

 

...열정을 가지고 부딪치고 도전하라는 말에, 열정을 바쳐 일한 만큼 돌려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두었냐고 반문했다.(p71)

 

 정치 코드가 새겨진 이런 문장들은 읽기에는 시원시원하긴 했지만, 너무 직접적이라 문학적 가치는 약간 하락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 예찬’은 모호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결말과 함께 진지하게 지식인의 소명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도 내러티브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의 남녀인물 ‘은수’와 ‘민소’의 작명은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 글자에 공통으로 ㄴ받침, 뒤 글자에 공통으로 자음ㅅ이 머리글자로 들어가면서 ㅇ,ㅁ의 부드러운 자음이 포함되고 모음은 ㅡ,ㅣ,ㅗ,ㅜ의 단모음으로 일관성을 유지해 순박한 두 인물에게 적합한, 부드러운 느낌의 이름이다.

 

 이 작품에서는 ‘침식’ 또는 ‘닳아 없어짐’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빈스토크가 침식되면서 모래 바람이 불었다.(p79)

민소는 은수가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p80)

은수가 침식돼서 만들어진 모래가 건조한 바람에 섞여 그에게로 날아왔다.(p81)

미처 4년을 다 채우기도 전에 스물다섯은 완전히 닳아질 것이다.(p91)

“은수야. 나는 니가 닳아 없어질 것 같아.”(p93)

 

 은수를 사랑했지만 헤어지게 된 민소에게 은수는 닳아 없어진 존재다. 민소가 닳아 없어지는 침식에 있어서 궁극의 장소라 할 수 있는 사막에 추락하고 만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p78을 보면 은수가 입사한 세계 최고의 위성 디자인 회사인 이엔케이(E&K)가 등장하는 데 은수에게 이엔케이는 꿈의 회사였다.

 

“민소야 내가 말했잖아. 이 바닥에서는 이력서에 이앤케이라는 이름만 써넣으면, 이름 적는 칸에 실수로 이름 쓰는 걸 빼먹어도 취직이 된다고.”

“이앤케이에서 복사만 하는데도?”

“당연하지! 이앤케이 스타일로 커피만 타도 그래.”

 

 대기업에 대한 일반 인식을 풍자하는 것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작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파란 우편함은 ‘영토 내 모든 시공간이 빈틈없이 상품화된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p82) 빈스토크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휴머니즘을 대체한다. 그런데, ‘도시화율 백 퍼센트인 나라에서만 가능한 절대적인 믿음’(p84)이나 ‘빈스토크는 개인을 신뢰’(p84)한다는 얘기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빈스토크 시 홍보 담당관인 병수가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상주의적인 인간관의 독자는 선의로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또는 병수 자신이 결혼생활을 실패했기 때문에 민소와 은수를 이어주는 대리만족의 차원에서 행위의 동기를 설명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병수가 자신과 아무 관계도 아닌 두 사람 때문에 며칠동안 우편함을 정리하고, 사립탐정 이경환에게 ‘작은 사모님’ 오해를 사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권한 밖인 용역 인사에도 위험하게 관여하는 것은 개연성이 충분해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오로지 선한 의도로 자신과 별 관계도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인간관이 너무 비관적인 것인지도.

 

 p92와 96의 문장들은 용역직, 파견직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자기 나라 군인이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어요?”

“그게 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김민소 씨는 빈스토크군이 아니거든요. 빈스토크 해군에서 고용한 방위업체 직원이지 해군 소속 조종사는 아니기 때문에.......”(p92~93)

 

그 경우에 해군은 민간 방위업체를 고용하는 형식으로 병력을 충당했다. 빈스토크를 위해 일하지만 절대로 빈스토크군이 될 수 없는 용병 조종사들을 파견 근로 형식으로 고용했다.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p96)

 

 용역, 파견 직원의 일반 운명은 뒤에서 이야기할 단편 ‘광장의 아미타불’ 편에서 용산 참사와 관련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막에 추락해 실종된 민소를 찾기 위해 네티즌들이 나서는데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꼭두 새벽에 민소를 찾는 네티즌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 있다.

 

“...그냥 찾는 거예요, 그냥. 이유가 필요한가? 원래 인터넷에서 하는 일이 그렇잖아요. 그냥 해요, 그냥.”(p109)

 

 

 

4.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아이디어와 유머가 뛰어나서 일곱 편의 단편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는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초반에 중요한 문장들이 나온다. 심심치 않게 이분법적으로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 대해 작가가 하고팠던 이야기 같다.

 

그런 것도 잘 모르면서 요즘 애들은 수직주의는 무조건 부자들 이념이고 수평주의는 또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 이념인 줄 알아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거든. 사람 사는 게 어디 수직이나 수평 하나만 가지고 해결이 되냔 말이야. 한쪽에서 엘리베이터로 실어 올리면 누가 가서 그걸 목적지까지 옮겨줘야 제대로 배달이 되지.(p114)

 

 이 작품의 고백체 사용은 시의적절하다. 전직 공무원에게 과거에 있었던 내부 일에 대해 언급할 수 있도록 발언권을 주는 효과가 좋다. 만약 이 작품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면 어땠을까. 보다 많은 것들을 서술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진실성은 덜 했을 듯하다. 행정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과거까지 까발리는 화자는 자기 고백적인 문체 안에서 더 정직해 보인다.

 

 이 단편이 그리는 공무원 사회와 관련해서 나는 모임에서 몇 가지를 지적했었다. 기동연습에 대해 화자가 서술하면서 ‘반란군은 그냥 앉아서 놀았다’(p124)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반란군으로 지정된 사람들도 연습을 하긴 한다. 다만 대충 할 뿐이다.

 

 ‘제일 일 못하고 제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제일 한가한 자리에 앉혀준단 말이야.’(p129)라는 부분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직접 겪고, 보고 들은 공무원 인사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제일 일 못하고 제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가장 골치 아프고 현안이 쌓여 있으며, 열심히 일한다한들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할 자리로 간다. 제일 한가한 자리에 가는 사람은 일 못 하는 건 똑같지만 윗사람 마음에는 드는 사람이다.

 

 반면 공무원 사회(더 넓게는 조직 생활)를 제대로 그렸다고 느낀 부분도 있다. 갑작스런 조직 개편과 말도 안되는 윗선의 지시,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욕먹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 지리멸렬한 과정들에 나는 완전 공감했다.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을 떠올렸다. 나는 이 말을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 앉혀 놓으면 생각 밖의 능력을 발휘해서 그 일을 해낸다는 뜻을 넘어서 하는 것이다. 스스로 나는 중립이며 맡은 업무에만 충실하게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가 위치한 좌표에 따라 그에 대한 외부의 평가 결과는 사뭇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어.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시키는 대로 병력을 이동시켜주기만 하면 그만이잖아. 고민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어.(p142)

 

 자신과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 판단을 달리하는 수장이라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공무원의 운명을 두고 흔히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라고 한다. 철학 없이 단지 기능적인 역할에만 충실한 공무원에게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5. 광장의 아미타불

 

 형부와 처제 사이의 교환 서간문 형식이면서도 소설의 구성 단계는 다 갖추어서 흡인력 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제목의 ‘광장’에서 보듯 촛불 시위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코끼리 이름 아미타브는 절묘하다. 작자인 배명훈은 인도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미타브는 인도의 국민 배우 아미타브 밧찬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아미타브 밧찬은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국내에서는 인도 영화 <블랙>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도는 코끼리로 유명한 한편, 불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열반할 뻔 했던 코끼리 아미타브의 이름을 ‘나무아미타불’에서 ‘아미타불’과의 음의 유사성으로 연결한 것이 기발하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용역, 파견 직원의 이슈가 ‘광장의 아미타불’에서는 용산 참사와 어우러져 이야기된다. 용산 참사에 대한 2009년 2월의 경찰 수사 발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농성자 20명, 용역직원 7명 기소. 경찰 전원 무혐의.

 

그 회사, 작년에 시위 진압에 투입됐다가 인명 사고가 있었던데. 사고 나니까 경비대에서 자기네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했다면서요. 괜히 중간에서 형부만 다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때도 그 회사 직원만 사법처리된 것 같던데.(p160)

 

 경찰의 변명과 시위대의 항변도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건 나쁜 일이 아니야. 단지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한 일이에요.(p162)

진짜 돈 받고 하는 전문 시위꾼이면 그렇게 목숨 걸고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있었겠냐고.(p162)

 

 

 

 

6. 샤리아에 부합하는

 

 수록된 단편들 중 가장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2급 행정관과 무슬림 테러리스트와 시의원과 부동산과 GPS 수신기와 폭탄, 그리고 넘쳐나는 여자용 가방들이 등장한다. ㅎ 작가의 전공인 외교학을 십분 활용한 듯하다. 재미는 있었지만 주제는 불분명했다.

 

 198~199페이지의 내용들을 읽으니 노무현 정부 시절의 공공기관 이전 계획이 떠올랐다.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에 부동산 가격이 뛰는 현상도 비슷하다.

 

정부는 37개 주요 기관을 150층 정도씩 아래쪽으로 모두 이전할 계획이었다. 다시 말해서 중심지 전체를 150층 정도 아래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p198)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기도 전에 150층에서 200층에 이르는 구간의 부동산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 거래 내역 확인 결과 대부분 정치권 내부 관계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욕이 튀어나왔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많은 돈이 새 중심지 부지로 유입되고 있었다. 계획을 수립하는 동안 부동산 가격에 변동이 생기는 바람에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수립해야 할 지경이었다.(p199)

 

 p197에 등장하는 ICBM 스페셜 에디션 가방은 왜 정부에서 판매금지 아니면 최소한 디자인 수정이라도 요구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빈스토크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곳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교묘하게 규칙들을 강화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p44), 시위진압용 물대포에 쓸 물탱크에 최루액을 타놓기도 하는 정부이기도 하다(p183). 자본주의 체제가 곧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빈스토크가 코스모마피아와 전쟁 중에 항공모함 두 척을 잃으며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면(p189)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자국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과연 이 빈스토크 정부가 그것은 그저 표현의 자유일 뿐이라고 가만히 놔둘 정도로 관대할 수 있을까, 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디자인에 대해 직접적인 요구를 할 수 없다면 세무조사라도 해서 가방 제조사가 시장에서 철수하도록 할 정도는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해본다.

 

 

 

7. Epilogue

 

 배명훈의 <타워>는 척박한 SF장르 문학 풍토에서 건진 수확이다. 걸작은 아니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날카로운 유머,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빈스토크는 SF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시공간이지만 대한민국의 현재, 그리고 가까운 과거를 반영하고 있다.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는 위치에 몸을 숨기는 모습을 폭로하고(p190), 쌍스러운 말을 안 하고도 욕을 할 줄 아는(p131) 이런 작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들을 향해 이렇게.

“이런 ‘곧 성행위를 할, 생식기 같은 것들’이 말야.”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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