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곳 톡톡에 와서 많은 글들을 읽기만 하다가...
나도 한번 이야기 해보자! 어렵게 생각하고 올리는 글이예요.
많은 분들의 사랑이야기, 이별이야기 인생이야기 보면서 제가 여태껏 해왔던 가슴앓이를 되새겨봤어요.
자, 시작..합니다^.^
전요, 무남독녀 즉, 외동딸이예요. 집안 형편은 부자도 아니고 보통집안도 아닌 형편없는 정말 가난한 집안에 사는 학생입니다. 한창커가는 시기죠.. 이럴때 힘이 되어주는 분들은 없었던것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올해로 58세 이셔요. 전 예비고3 20살(출생신고를 늦게해버린바람에) 입니다.
제..아버지... 연세도 어떻게 되시는지도 잘 몰라요. 이혼하신지 꽤 됐거든요.
아직 정정하시고 간혹 봽기도 했는데... 전 오히려 아버지를 볼때마다 화가나고 미칠것만같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말이죠.
제 어머니는 저 말고 위에 4명의 형제와 자매들을 낳으..시려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하신 터라 다 유산되거나 사산이여서 포기를 하셨습니다. 그 때엔 저희부모님께선 이혼은 안하셨지만 그저 아이 한명 낳아보려고 만나는 사이정도 밖에 안됬습니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나쁜..사람이였거든요.
어머니가 분식집을 했을때 어느날 찾아 오셔서 수익금을 백원짜리 들만 빼고 다 가져가셨거든요.
가지고 가셔서 돈놀음 하시고 술집여자를 만나는게 일상이셨습니다. 절 낳기도 전의 이야기 였죠.
저의 엄마의 일생을 아빠를 만나고 나서 3년 만에 꼬여버렸습니다.
무튼, 저도 유산될 뻔 했습니다. 절 벤 어머니의 몸무게는 그당시 166cm, 45키로밖에 되시지 않으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산모께서 위험합니다. 아이를 포기하셔야 해요' 라고 했는데도.. 저희 어머니는 절 필살적으로 낳으시려 했습니다. 양수가 먼저 터저야 하는게 정상인데 저희 어머니는 피 부터 터져나왔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낳으시려고 40일전부터 어렵게 입원을 하셨는데 예정일이 안된... 1일도 안되서 어머니는 피 부터 터졌던 거죠 아무리 불러도 간호사들이 오질 않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어머니는 침상에 굴러나와 간호사들이 있는 곳까지 기어가셨습니다. 그녀 뒤엔 절 살리려고 하신 처절한 ...핏길이 있었구요. 결국 엄마는 수술실로 옮겨졌고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로... 마취가 되자마자 저희 어머니의 배는 갈라졌습니다. 죽어가는 아기가 있었죠.. 의사는 절 거꾸로 들어서 볼귀짝을 세게 때렸어요 2분동안 울지 않아서 죽었나... 했다던데 제가 울지않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서 아 살았긴 했구나 하고 탯줄을 자르고 바로 인큐베이터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제가 9달 미숙아로 키 38cm에 2.3kg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2주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는데 전 어머니의얼굴을 퇴원하는 그 당일날 보게 되었어요.
항생제를 복용하시던 어머니, 그래서 전 초유와 모유도 못먹고 컸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울우유가 제 초유 인듯 합니다 ;.. 분유 살 돈도 없어서 그 때 당시의 500원짜리 서울우유를 데워서 먹었다죠.
100일 돌은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돈을 모아 해주셨습니다.
다행히 사진찍을때 금반지 4개는 껴본적이 있었어요.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다 팔게 되었어요.
그렇게 3개월이 되어 갈때쯤. 저희 어머니는 결국 어려운 결정을 하셨어요.
이웃집 할머니께 저를 맡기시고는 일을 하러 다니셨습니다.그할머니가 사시던 집은요. 5평도 안되는 집인데 4식구가 살고 있었죠. 화장실은 집안이 아닌 동네 상회 옆 화장실까지 가야돼는 곳이였어요.
세상에 그런 곳도 있었구나 하네요 이제서야...; 그렇게 할머니께 절 맡기신 어머니는 돈이 생기는 대로 제 양육비를 할머니께 주셨어요. 너무 안타까웠던게 뭐냐면요.. 5살이 되기까지 전 할머니께 엄마<<라고 했어요. 제 진짜어머니는 그저 '자주 놀러오는 아줌마' 였구요... 전 아빠대신 그할머님의 사위(외국 분)님과 할아버님께 '아빠'라고 했어요.. 절 너무나도 아껴주셨거든요. 간신히 유치원을 다니다가 어머니께서 원비를 감당하시지 못해 짤리게됐을때 할머님의 가족분의 도움으로 인해 원비를 다 지급 하고 옮기게 되었어요 그런데 썩 좋은 기억이 없었어요. 집에 오면 할머님께서 등짝을 늘 확인 하셨거든요...(반친구들의 손도장이 있는지 없는지 보시려구요) 그렇게 어떻게 하다가 졸업하게 되었구 할머님의 따님과 사위님이 미국으로 가시게 되고 저는 어머님께서 도로 보살펴주시게 되었죠 그래서 초등학교도 집과 100m안에 있는 곳으로 입학 되었어요.그렇게 3학년때 까지 해도 어느정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어요. 유행하는 장난감 큰거는 못사더라도 짜잘한거는 사서 가지고 다녀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님네 따님과 사위님께서 한국으로 귀국하시게 되고 전 바로 맡겨져 버렸죠.. 중2까지 총 5년 반 정도요. 근데 그 5년반 동안 전 정말 죽을 맛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고 더불어 우울증 증상까지 보이고, 공부에 대한 너무 이른 강박감과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님 폐암으로 폐 1 1/2를 절단하시고 또 할아버지께선 대장암으로 투병하시다 겨우 호전되시고, 따님은(지금은 호칭을 '이모'라 칭함) 그림을 그리시다가 IMF위기 때문에 바닥을 치닫으셨고, 어머님 또한 경제적 위기로 빚을 10억을 지게 되셨습니다. 정말 어린 저에겐 세상이 매우 무섭고 두렵고 얄밉고 지옥같았습니다. 아무도 절 좋아하지 않아서 왕따를 당하는 거였고, 절 보살펴 주시는 분들은 다 위기를 겪고 계셔서 전 제가 악마의 자식 인줄 알았습니다. 그런 시기에 저는 첫사랑을... 한번 겪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좀 이른 시기라고 생각 했을때인데요... 초등학교 4학년때였습니다. 더이상 맞고 다니기 싫어서 엄마한테 철없이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했었는데 그곳에서 한살 어린 남자 아이를 만난거죠...ㅋㅋㅋ
매우 웃기네요..ㅋㅋ...; 그나이에 뭐를 안다고 첫사랑이라고... 하시겠죠. 근데 진짜 사랑이였어요.
그 친구가 절 웃게 해줬구요 잊지 못할 말들도 많이 해줬어요 나이어린 놈이 이 누나를 가르치려 했었죠..
하지만 제가 졸업하기도 전에 그친구는 이민?...아무튼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서 학교를 안나오더라구요.
그렇게 다시 연락이 끊기면서...또 지옥이 시작됬었어요. 전화해도 못받을수밖에 없었고. 어디 사는지도 몰라서 국제전화나 편지도 못붙였죠. 남들은 초등학교 시절이 너무 재밌고 떠나기 아쉬워서 울었겠지만,
전 그 친구가 옆에 없어서 엉엉 울었어요;.... 왜 그렇게 울었나면요. 그친구가 제 졸업식 때 지지않는 해바라기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그친구네 부모님이 데려가 주겠다는 약속을.. 지금 생각해도 있을수 없는 말인데... 암튼그러겠다고 했는데 훌쩍 떠나가버렸잖아요...ㅋㅋㅋㅋ
그렇게 잘살고 있겠지 하면서 우울증을 겪으면서 중학교를 억지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전 또 2번의 성폭행과 3번의 성희롱을...1평도 안되는..문을 닫으면 사방이 막혀버린 제 방에서 어머니의 애인들;...에게 당했습니다. 제 처녀성은 그때 소멸되고 말았구요..그뒤로는 공황장애를 계속 앓고 이렇게 너무 치혹스럽게 지내다..그분들과 어머니랑은 결별..하시게 됬어요. 저희 어머니는 아직 모르세요.. 제가 성희롱과 성폭행을 어머님의 전애인들에게 당했다는걸... 모르게 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여지껏 어머님은 저를 위해 청춘을 다 받치셨고 폭삭 늙어버리셨거든요. 최대한 걱정 안끼치려고...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두번째 찾아온 사랑이 꽤나 제 마음을 독차지 했어요 그래서 나날이 다 행복했었는데.. 2008년 6월18일.. 전 첫사랑이 심장병을 투병하다 대수술 4번만에 결국 부모님의 동의하에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제게 보내신 소포가 있었는데 사진 1장과 그친구 편지와 부모님의 편지가잇었습니다. 전 그걸 받고는 읽는 내내 울었고 사진을 생각할때나 만질때마다 눈물을 멈출수 없었습니다.
남자친구랑 잘되가고 있는데도 그건 어떻게 할수가 없더라구요.
너무 슬펐었고... 남자친구는 저에게 아무말 없이 품을 내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니가 안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그 니 첫사랑이라는 애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친구한테 하고싶은 말 싹 해봐" 라고 해주었고요... 정말 천상의 남자 죠..? ㅋㅋㅋ....
그래서 저는 그때 제 남자친구의 윗옷을 다 적시도록 울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날 잊지않고 계속 사랑해줘서 고맙고 니가 날 떠났다고 원망한거 정말미안하고 다른남자랑 오히려 잘되라고 해준거 고맙구 날 아직까지도 너만의 해바라기라고 생각해줘서 고맙구 거기 하늘나라가서는 나만 내려다보지말고 다른 좋은 짝만나서 더 행복하고 건간하게 강인하게 지내! 사랑해!..' 라고 해버렸죠.
해서는 안될말..이였지만..; 그날 남자친구는 씁쓸한 마음이 무진장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아무말업이 절 집으로 데려다 줬으니까요;..... _ _;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전 이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절 차더군요.
'3년만... 기다려..줄래?' 라고요.. 전 진짜 미련하게 "응 기다릴게..." 라고 했습니다.
이친구는 여자가 꼬일일이 없었고 오히려 자기 미래를 위해 더 노력하려고 그랬거든요.
이해하려고 진짜 이해란 모든 이해는 오살맞게 한것같아요. 근데 이해 하는 도중에 영양실조 걸리고 불면증도 앓고 우울증 말기로 제가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
그때에 전 이렇게 생각했죠.
'분명 나보다 더 못살고 힘든 친구들도 있는데 왜 내가 더 그래 보이지? .. 그리고 내가 왜 그 희망이라 맏었던 친구를 놓았을까? 내 인생은 왜이리 꼬였어 ? 난 왜 아버지 없이 커서 울엄마가 고생하고 피도 전혀 안섞힌 할머니 밑에서 엄마 엄마 했던거지? 뭐가 잘못된거야.. 내 아버지는 대체 왜 그런 *%*$$($이였을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서...그랬었나봅니다.
그렇게 신경쇠약해져서 헛것도 보이고 잔병에 시름시름 죽을듯이 앓다가 다시 희망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고 그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연락이 없더군요...그나마 절친이라 믿던 친구들은 절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 무렵쯤 얼마 아지나서 어느날 친구들과 번화가로 놀러 가게 되었습닏. 근데 그 희망이라고 제가 칭했던 그 남자친구가 따른 여자와 팔짱을 끼며 함박우슴을 한채로 거리를 거닐고 잇더군요. 엄청난 배신...을 맞았다고나 할까요. 지 미래를 위해 내가 잠깐 물러난건데.. 보내준건데... 결국 딴여자 바라보려고 절 찼다는게 너무나 받아들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제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 존재를 크게 알리게 했습니다. 그친구귀로 제가 교회를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다니고 있다 라는 소문과 지를 복수하려고 다니는 거다 이렇게 두가지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뒤로그친구 잘 안나와요_-; 계속... 저랑 이야기 한번 하려 하지 않았어요. 전 그 희망이라 칭했던 그 남자친구를 싹 잊었습니다. 아니... 묻었죠..?...ㅋㅋㅋ 그뒤로 많은 이성과 건 전 한 교 제를 했어요. 그러면서 후천적으로 발랄한 성격을 띄게 됬구요;...아.. 아닌가?...아무튼.. 돈으로 저의 환심을 사려 했던 박○○군..! 잘지내는진 몰라도 그렇게 살지마세요^.^ 또 저에게 맞고 싶지 않으시면요^.^....;
그렇게 만나다 만나다.. 제 유일한 9년지기 친구와 마음이 너무 잘맞고 생김새 마저 닮은 친구의 예고없는 실수로 한 남자친구를 만났는데요...
지금 그친구와 정말 잘 되고 있습니다!..
어느정도냐면요. 서로 없으면 숨 못쉬어서 못살 정도 ?
늘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 하는 거지만. 진짜 사랑은 이런거 같아요 이친구때문에 다~~ 싹! 다 치유된것같아요. 우울증도 거의 완치되어가고 있구요. 더 활발하고 장난도 잘치구 어벙~~한 면도 더 생겼답니다;; 사귄지는 얼마 않되서.. 저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한때 불같은 사랑이라 헤어질께 뻔해"하는 말들을 합니다ㅋ....ㅠㅠ한때라니..나쁜사람~..ㅠ 반대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제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요.."제가 너때문에 저렇게 함박웃음 짓잖냐.. 난 저거 못본지 정말 꽤됐어 쟤가 저렇게 웃는거 나한테도 안 지어준거라고 잘해라. 꼭!" 이렇게 당부를 해주고들 해요...
가끔은 제 남자친구와 마음이 아맞아서 이야기가 많고 다투기도 하지만!!!...
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여서 심각하게싸운적은 없어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
혹시 저보다 더.. 불행하게 지내신 분... 있으세요?
아니 있으실꺼예요. 근데요. 자살시도 이런거요..... 전혀 도움 안되는 것 같아요 진짜..ㅋ
오히려 사람들에게 원망만 살 뿐이고 가는 길이 잠깐 편안할테지만 다신 보고싶은 사람을 못보게 되잖아요 제대로 된 사랑 한번못하고 가거나 내맘대로 되지않아서 그렇게 섣불리 판단하는거 정말 아니예요.
절 한평생 다 키워주시지 않으셨지만,
저희 어머님의 어록 중에 제가 힘들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는데요 그게 바로,
"앞에 오르기 너무나 버거운 산이 있다고 정체하지만 말고 그 산의 정상을 우선 정복해, 그럼 내려가는 길은 일도 아니야. 앞을 가리는 어떠한 무엇이든 다 헤쳐 나가면 넌 강인해 질거야. 혼자서라도 잘 해결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신기하게도 생길꺼야."
라는 말이예요.
전 그저 제 이야기로 통해 조금이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자신을 잃지 마시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노력하실 수 있는 힘이 생기길 간결히 빌어요 ^.^ 결국엔 행복한 길로 빠져나게 되니깐요!!!
행여나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있으신 분이시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가 기도해드리고 감히;;격려도 해드릴께요 !! ㅎㅎㅎㅎ
읽으시느라 눈 빠지는건 아닌가... 하셨을텐데 ㅠ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 되셔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