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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주기 방송...잊혀진 연평 해전...

장윤혜 |2011.03.26 11:55
조회 1,380 |추천 3

기억하건데 2002년 월드컵때 이탈리아 전인가 포르투갈인가 그쯤(?) 해서 터진 사건입니다.

광화문 나가서 응원하는데 길거리에 무심하게 뿌려져 있는 호외가 기억납니다.

정작 축구는 안보고 앉아서 호외 읽으며 열을 내던 저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아래 진행되던 남 북 이산가족 만남의 장과 같은

이벤트가 진행되던 때라 다들 쉬쉬하며 덮어두고 넘어가 버렸던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기사는, 남북 이산가족에 참가하던 한국 이사간족중 한분이

이러한 사건이 이런 만남의 기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신 겁니다.

같은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북한의 공격에 돌아가셨는데 말이죠.

 

그때 고인이 되셨던 많은 군인들도 지금의 천안함 처럼 영웅대접은 커녕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 가셨지요. 국가에서 받았던 위로금 조차도 너무 협소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아시는 분들...!! 댓글 달아 주세요!) 한국 정부에 버림받은 유가족들은 한국에 질려

미국으로 이민 가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아래 추가해논 글을 읽어 보면 얼마나 한국 정부가

연평 해전의 영웅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에게 잘못된 처우를 했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이 사건에 관해서는 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큰 잘못을 하신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는데 지금 중,고등학생이 이 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실까 걱정입니다.

잊어선 안되는 사건인데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게 아닌가 가슴이 아픕니다.

 

천안함 참사에서 안타갑게 목숨을 잃으신 영웅들을 생각하시면서 연평 해전의 잊혀졌던 영웅도

잊지 말고자 글을 올립니다.

 

아래의 글의 원본의 출처는 http://pann.nate.com/b202116351 입니다.  

 

참수리 357정장 고(故)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씨는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가 우리(제2연평해전 전사자)에게도 전사자 예우를 해준다니 기다려 봐아죠"라고 말했다.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도 "천안함 희생장병들에 대해 국민들이 함께 울어주고 보내드린 것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며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전투을 벌이다 돌아가셨지만 천안함 희생장병만큼의 국민적 추모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또한 "희생된 남편이 진급 명령을 못받고 결국 1계급 특진 추서만 받은 점은 천안함 희생장병과 비교해 볼때 너무 아쉽다"고 했다. 김씨는 남편을 잃은 아픔 위에 더해진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부상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2005년 4월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 3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힘들게 생활하기도 했다.

 

고 박동형 병장의 부친 남준씨는 "우리가 가장 바라는 건 첫째가 여섯 아들에 대한 명예회복이고, 둘째는 국립대전현충원 묘비 문구를 격에 맞게 고쳐주고, 현충원 묘역 네 곳에 흩어져 있는 아들들의 무덤을 천안함 희생장병들처럼 한 곳으로 모아 달라는 건데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안함 사태 희생 장병에 비해 그 아픔과 공이 적지 않은 제 2연평해전 전사자들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기대해 본다.

 

 

제2 연평 해전 네이버 백과사전 글 올립니다. 읽어봐 주세요.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일어났다. 1999년 6월 15일 오전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남북한 함정 사이의 해전이다. '서해교전'으로 불리다가 2008년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었다.

교전에 앞서 북방한계선 북한측 해상에서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계속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한국 해군의 고속정 4척이 즉각 대응에 나서 초계와 동시에 퇴거 경고 방송을 하는 한편, 교전 대비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징후도 없이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선제 기습포격을 가해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때부터 양측 함정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고, 곧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교전에 합류하였다. 이어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나머지 1척과 함께 퇴각하기 시작해, 10시 50분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함으로써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다.

이 교전으로 한국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하였다.

또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하였는데, 북한 측 피해상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교전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행위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하게 요구하였으나, 북한 쪽의 답변은 듣지 못하였다.
[출처] 제2연평해전 [第二延坪海戰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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