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한옥으로 개조한 이경진 씨네 집에서 찾을 전통 한옥의 흔적들.

>> 85m3형의 아파트를 한옥으로 개조한 이경진 씨네 집 거실. TV를 없애고 책장을 짜 넣어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공간으로 넓은 창호지 문을 통해 빛이 아스라이 슬며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서양적인 건축 구조물인 아파트 안에 우리의 한옥이 오롯이 들어가 안겼다. 격자무늬의 가지런한 창살도, 방 안쪽의 불빛이 은근하게 스며 나오는 창호지문도, 우물 정(井)자를 닮은 우물천장도, 심지어 물받이 홈통을 가리기 위한 나무 기둥도 영락없는 한옥이다. 강원도에서 공수해온 생소나무로 마루를 깔아 더욱 운치 있는 집, 바로 서울 한복판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는 중계동의 이경진 씨네 집이다.

>> 이경진 씨의 가족. 아내와 의젓한 맏딸, 개구쟁이 막내아들은 이경진 씨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잠시 딴 곳에 와 있는 느낌이다.
문을 열자 은은한 나무 향이 금세 콧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이 기분까지 상쾌하다.
지난 1월 개조가 완공돼 이곳에서 겨울과 봄을 지낸 이경진 씨는 익숙해져서인지 아직도 나무 향이 느껴지느냐며 오히려 되묻는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건조된 나무가 아닌 촉촉한 물기운이 남아 있는 생소나무로 마루를 깐 것인데, 생소나무는 언제든 뒤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목수장이 작업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경진 씨는 수없이 싸움 아닌 싸움을 해야 했고 만만찮은 고집의 두 사람 중 결국 목수장이 집주인인 그에게 항복한 결과가 지금의 마루다.
이경진 씨의 부인은 생소나무이다 보니 청소하기가 쉽진 않다고 귀띔해준다.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면 움푹 파이거나 긁히고, 음식물을 흘렸을 때 빨리 닦아주지 않으면 나무 속으로 배어들어 얼룩이 남을 수 있어서다.

좌 아파트의 철제 현관문을 한옥의 분위기에 맞춰 나무로 덮어 꾸몄고, 신발장도 전통 가구풍으로 제작했다.
우 여러 개의 창호지 문 중 하나를 슬며시 열었더니 이층 침대와 책상이 놓인 아이들 방이 나온다.
한옥에 대한 기억은 어릴 적의 기억이 전부지만 이경진 씨는 ‘언젠가는 한옥에서 살련다’고 늘 이야기해왔었다.
그의 책꽂이를 쭉 살펴보니, 한옥을 비롯해 우리의 전통 문화 특히 전통 건축과 관련된 책이 꽤 여려 권이다. 한옥이 돌아왔다, 흙으로 만든 집, 내 손으로 집짓기 등 그의 소망이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던 한옥 살이. 마음속으로만 한옥을 꿈꾸며 여태까지 아파트에서만 살던 그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긴 때는 이사 날짜를 받아 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새집으로 옮겨 가기까지 당시 살고 있던 집의 계약 기간에 몇 개월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기간을 계산해 보니, 충분히 한옥으로 개조해도 좋을 듯싶었던 그는 당장에 자신의 생각을 실천해줄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고, 한옥문화원과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고.
지난 5년 동안 강좌 ‘아파트를 한옥처럼’을 진행해온 한옥문화원의 도움으로 이뤄진 개조는 그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완성됐다. 1급 목수들의 기술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면서도 이경진 씨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했고, 현재의 집을 갖게 된 것이다.

좌 이경진 씨가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 부엌에서 바깥으로 난 창문인데, 너무 작아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우 아파트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한옥 디테일이 정갈하다.
이경진 씨의 집은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황토로 둘러싸여 있다. 철거 당시 가장자리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단열재를 모두 뜯어내고 대신 짚을 섞어 반죽한 황토를 발라 벽을 만든 것이다.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느다란 나무 살대를 엮어 넣어 거실은 5㎝ 두께로 바르고 안방과 서재, 아이들 방의 벽은 그보다 더 얇게 발랐다.
거실 벽을 황토로 하다 보니, 점차 욕심이 생긴 그는 집 전체를 황토로 입혔다. 친환경 소재로 지어진 집에서는 생활하는 사람들까지 건강해지지 않겠는가 싶어서였다. 황토를 바르고 한지를 바른 건강한 집이다 보니 요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호르몬의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졌다. “페인트 같은 화학재료를 전혀 쓰지 않아선지 몸과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이들도 발고 건강하게 생활하니까 더 바랄 것이 없죠.”라고 미소짓는 이경진 씨. 그가 양껏 욕심내 만든 만큼 흙과 나무와 한지로 완성된 실내 분위기가 부드럽고 따듯하다.

>> 이경진 씨 부부가 사용하는 안방.
아파트 구조가 정해져 있어 다양한 공간 디자인 시도를 할 여지가 적었던 만큼 이경진 씨는 아쉬움도 남는다. 부엌에 난 작은 창문의 크기를 늘리지 않고 기존의 크기 그대로 둔 것이 내내 마음 걸리는 눈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기도 하다는 그를 보니 언젠가는 아내를 위한 공간이 이 집에 들어 설 것만 같다. 사실, 원목이나 흙 같은 천연 재료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분 변형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수시로 보수작업을 해줘야 하한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할 생각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으니, 앞으로도 결코 한옥에서 사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 집안 곳곳에서 찾은 한옥의 흔적

좌) 불빛이 은근하게 새어 나오는 격자무늬 장지문
이경진 씨 집에 장지문이 달린 곳은 총 7군데로 창문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배로 늘어난다. 문과 창틀 모두 창살 모양을 달리해 마루 창은 용(用)자 살, 작은방 미닫이문은 아(亞)자 살, 화장실 문은 세(細)자 살로 변화를 줬다. 모두 1급 목수들의 솜씨로 제작된 만큼 섬세하고 유려하다. 한옥은 누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달라지는지라 문과 창문의 재료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중상급 재료로 맞췄다.
우) 사계절이 운치 있는 툇마루
베란다까지 바닥을 트고 기존 베란다 부분을 마루보다 높게 올려 툇마루로 개조한 공간. 이경진 씨의 남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창호지를 바른 6짝 격자문을 열면 곧바로 바깥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전통 한옥의 경우 툇마루는 방과 마당, 즉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공간이지만 아파트인 관계로 이경진 씨네 툇마루는 실내의 일부분이 됐다.

타박타박 맨발이 즐거운 마루
층고가 낮은 아파트이다 보니 마루는 최대한 얇게 짜야했다. 그래서 결정된 두께는 1.2㎝. 마루 모양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순한 모양의 ‘장마루’와 우리 한옥 고유한 마루로 쓰이는 ‘우물마루’를 두고 고민하다 더 고급 마루이기도 한 우물마루로 정했다. 안방을 제외한 아이 방과 서재에도 모두 같은 마루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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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한옥식 인테리어로 개조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들까?
85㎡형의 아파트인 이경진 씨 집의 한옥 방식으로 개조한 부분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3천8백만원이다. 집 안 벽 전체와 마루를 깔기로 한 일부 바닥의 황토 시공에 1천만원, 마루를 깔고 서재 가구와 현관의 수납장 등 목공사 전반에 1천3백만원, 문과 창 제작에 1천5백만원이 들었다. 나무 재료는 모두 중상급으로 마루는 국산 소나무인 육송으로, 문과 창은 홍송으로 제작했다. 섬세한 세공 기술을 필요로 하는 문과 창살의 나무를 고급으로 하면 비용은 더 올라간다.
일반 아파트의 리노베이션 비용은 대략 3.3㎡당 1백만원가량 드는데, 이경진 씨의 경우 전체 개조 비용 가운데 철거, 조명과 전기, 주방 등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부분은 뺀 견적이다. 공사를 시작해 완공되기까지 이경진 씨 집 개조 공사는 꽉 채운 한 달이 소요됐다.
집 전체의 벽과 마루를 깔기 전 바닥에 황토를 발랐기 때문에 황토가 마르는 데 걸린 1주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스케줄대로 차근차근 진행됐다. 하지만 순수하게 공사에 걸린 시간만 한 달일 뿐, 적절한 나무 재료를 찾아 구입하고 용도에 맞게 세공하는 등의 준비 과정에 3개월 정도가 걸린 것을 감안하면 4개월 이상 공을 들인 셈. 한옥을 지을 때처럼 개조 역시 입맛에 맞는 재료를 구하지 못할 경우 준비 기간이 늘어질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문의 02-741-7441(한옥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