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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대적한 삼성 알바생

너희들은......뭐 믿고..그랬냐

 

신에게 창조하라 명령을 해봐. 너 신을 섬기긴 했어? 창조는 노예 할 일이 아니지.
수컷이란 암컷을 섬겨야만 암컷이 창조하지.
네 몸을 찢어봐, 기분 좋은가?
10할 년이라 실컫 욕 먹고 쫓기고 몰매 맞고서 이젠 네 몸을 찢어봐
그게 신께서 하실 창조란 건가?
신의 보복을 누가 겪으리? 신의 피조물.


신은 창조를 예견당해 사람들에게 쌍스러운 욕들을 들어왔다?
정신적 가치들을 보전하든가, 몸을 보전하든가
하나라도 해야지 신이 살 맛이 나지를 않겠는가?


창조는 대체 아무나 하나?
노예가 싸는 새끼는 결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
나의 선례를 보고서도 모르니?


노예 암컷이 싸는 새끼는
대체 애비가 누구라도 비천한 게야.
왜? 신은 암컷인 게고 수컷이 아닌 탓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그 누가 신인지.


그런 기, 힘얻음을 난 결코 모른다.
혼자 자위할 때나 상상을 해보려고 하였지.
모르는 모양인데 내 존재 구성은 오직 비관과 암울.
그 따위 상투는 나의 세상엔 있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모르나?


그래서 나는 필연적으로 근본주의적인 것이다.
일상에서 행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뭐? 좋은 일상이 바로 배 찢는 일상이라고?
기분좋게 배 찢는 거사는 완벽존재 신이나 하실 일.
왜 나는 그 따위 남들의 짓을 흉내내
지닌 몸까지 마저 버리나?


또한, 배 찢은 이후엔 과연 여자이겠나?
배도 찢고서 아무 재량이 없는 난 남자 척 하겠는가?
그리고 언제인가 쫓겨날 시엔
완전히 똥푸대가 아니겠는가?


믿을 사람이 없이 자라난 마음에게
누구를 믿는다는 건 오직 무모할 뿐인 것이다.
나보다 먼저 남들이 나를 알아보고서
미리 한계를 설정한단 사실을 나도 안단다.


그저 난 근본주의적인 사람으로서
세상의 모든 인간을 대한 수준으로써
그들이 아닌 것만을 추구해야 하련다.
그들을 지배하지 않겠고
그들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세계정부는 유효하지 않겠다.
이렇게 이미 띄워놨으니
정상적인 안착이 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통일은 가능하지 않단다.


삶은 정치적이다.
노예의 자식들도 정치적이고
그들에게도 노예 자신은 배척된다.
비운은 반복되고 노예는 더욱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노예는 오직 근본적이어야만 한다.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수준이 오직 적합한 수준이다.


세상의 모든 전체는 바로 세상의 모든 얽매임이다.
세상 속에서 모든 자유는 고작 유행일 뿐인 것이다.
모든 조건들 속에, 근본적이지 않은 유행들이다.
특히 세상의 암컷들은 유행으로서 창조 행위를 한다.
수컷이 창조한단 망언은 하지 말기를.


수컷들은 성행위한다.
수컷들은 행위를, 암컷들은 창조를.
수컷들은 통제를? 암컷들은 재생을.
수컷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암컷들은 해결을 한다.
수컷들은 궁실에 난을 지르고, 암컷들은 새끼로 배출한다.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릇되게 생각을 하는 이들이
감히 그 어떤 결과를 결실이라 부르며 종용하려는가?


수많은 암컷들을 보시라.
몸소 자신의 배에 칼질을 한다.
또 나의 어미도, 잘못 태어난 나를 그토록 잡아 없애고 싶어했다.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자식의 예견되는 불행을 본능으로 직감하면서
어떻게든 최소의 한계 이내로 정돈하여 두려는 방어정신.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책임이 있단 사실을 알며
그러나 사회적인 자신의 무력함을 알기에
모순율에 휩싸이면서 허나 놓치지 않으려는
자신을 넘어서는 그 책임감의 까닭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앎이다.
모든 윤리적 명분보다 저변의 것으로서 있어온
자연적인 그리고 존재적인 지식이었다.


불행한 삶을 타 존재로써 보상한다는 것은
망상이면서 무책임한 과실이 된다.
게다가 대개 불행한 인생들은 대개가 이미
인생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 상황에선 어떠한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노예의 빛은 대개가 타인들의 것이다.
빛은 대개가 자유롭게 움직이므로
노예들의 안목을 현혹시키고는 해왔다.
그러나 머리좋은 이들은 일찌감치 보장해 왔다
" 내 빛은 내 것으로서 타인의 것이 아니다. "


줄서서 빛을 얻는다 하는 이들이
과연 자신의 빛을 얻는다 말을 하겠나?


사랑의 결실로써 희망을 얻는다니?
순수한 사랑이란 비난받아야 마땅하단 뜻인가?
순수한 사랑이란 비난받아야 이후 결실을 얻는다는 것인가?
순수치 못한 사랑이 쉽게 인정을 받고
사랑은 항상 결실을 요구받는 것인가?
사랑은 생산적인 공정으로서 존재하는 인생의 기능인가?


결실은 무엇인가?
사랑의 하느님이 결실로서의 우리 세상을 빚고
하느님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가?
수많은 우리들은 이제껏 하느님을 떼어두고서
우리끼리 결실을 만들어왔지를 않았나?
결실은 오직 똥처럼 떨어져서 새로이 존재하는 타인들이다.


허나 뱃속의 똥을 완전히 구운 상태로
다른 타인을 똥이라고 만드는 까닭이란 무언가?
전기를 끄지 않고서 불타면서 새로이 똥을 배치한다는 것은
허영이 아닌 결실이겠나?


세계의 모든 전기줄이라 해도
꺼야 한다면 끄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 그렇게 요구하는 그 말이 옳다면
마땅히도 전기는 꺼야 한단다.
결국 문제는 태양열로 가동이 되는 배터리이다.
그러나 종국 문제는 인간들의 합의가 된다.
진짜 문제는 기계와의 문제가 아닌
인간들 간의 합의의 문제이다.


우리 사이의 합의 내용을 정정해야 한단다.
한편에, 찾고 두드릴 것은
세계를 떠날 수 있게 해주는 문일 뿐이고
결코 그것은 높아지는 게 아닌 것이고
그 어떤 관계도 결코 그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아무 행복을 모른다면
종국의 행복밖엔 모른다.
행복도 마음에겐 습성이기에
맛보지 못한 행복은 상상하지 않는다.
길 없는 들판이라고 할까?
남들은 길을 개간해 이런저런 구실의 행복들을 표지로 단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뜨고 싶구나, 모든 길 위로 사라지겠다.
세상의 어떤 관계도 모두 음모와 모의이며
신에게 대해서는 모조리 내란이다.


아무나 애를 낳지는 않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관계도 알지 못하고
멸시받고 미움만 받고 이용당하기만을 하고
자신을 아끼려는 동기도 없고 남에게 기대하지 못하고
아예 남들을 부모처럼 섬기고 싶어하는 노예가
남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오직
그들의 부모됨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커플들을 볼 때면
노예는 눈을 뗄 수가 없구나.
" 바로 저들의 사이에서 존재한다면 사랑으로 충만하리라, 나를 자녀로 삼아주길. "
사랑의 결실이란 무엇이겠나?
자녀에게 전달이 되어 주어질 또한 부어질
베필 간 사랑 그것이구나.
그들 간 사랑 그것은 운이 좋게도
다행히도 그 힘이 보전되어온 것이겠다.
힘을 뺏기면 힘의 형태가 변화한다.
가장 연약한 힘의 사랑은 신을 쫓는다.
그러한 힘을 쓸 곳은 세상에 없다.


자녀와 부모 간 사랑이란 따로이 있지 못하다.
정확히는, 새롭고 낯선 미결정적인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일 뿐이란다.
행복한 자녀라면, 새롭고 낯선 그리고 미결정적 존재를 용인받고 있기에 행복하다.
그런 행복한 자녀로서 느끼는 사랑이란
다름이 아닌 베필들 간의 사랑이란다.
사랑의 결실이란, 문화전수적 효과이다.
사랑의 결실이란 타인이 얻어가는 것이지
결코 사랑하는 이들의 몫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결실 따위로 억지 사랑을 종용함은 어리석구나.
다름이 아닌 베필들 간의 사랑은
그들 사이에 다른 사랑이 끼지 않는다.
한 편이 세상의 사물들을 사랑하면서 다른 한 편도 사랑하지는 않는단다.
한 편이 상대를 사랑하면 그 사랑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편승을 하지 않는다.
합승하지 않는다, 결코 세상이 관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권력 명예 금전 인맥 자원 사건 이야기 따위이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인가?
사랑은 오직 인격적이다.
세상에 인격적인 것이란 사랑밖엔 없구나.
인격들은 대면을 한다, 쌍방향적인 게다.
꼬리에 꼬리 물면서 다른 것들과 잡합적인 맞물림 속에 있지를 않고
순전히 초월적이면서 아무런 조건이나 상황이 없는 이것이
바로 세상에 오직 인격적이라 부를 사랑이구나.
결실? 그러한 따위들을 생각지 않는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계획이 없다.


사랑은 자기 내적인 것이기에 그렇다.
진짜 사랑은 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어느 누구든 간의 관계에 있지 않구나.
관계 속 사랑들은 불건전하니
오직 세상의 부분들을 메꾸기 위해 이용되므로 그러하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신의 내부에 있고
그것을 얻는 이들은 누구나가 혼자서 얻는 것이다.
이 진짜 사랑의 결실이란 세상에 없고
이 진짜 사랑을 얻어 세상을 떠남만이 결실이 된다.


세상을 떠날 이들은 모두 혼자서 뜬다.
그 모든 이들은 오직 그 진짜 사랑에 화하기에
아무 흔적이 없고 아무런 관계들도 생기지 아니한다.
오직 자기의 속에 완전히 존재하는 그 진짜 사랑에
모든 관계와 존재들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오직 한 가지, 그러한 인격적인 사랑의 증표로서
세상에는 가치관이라는 암시가 주어졌다.
그것은
신이, 완전한 자기이지 않은 모든 것들을 거리매김 한 구조이다.


저 짐승 떼들을 보라, 그들에게는 가치관이 따로이 없다.
그들은 오직 기능적으로 정하여진 삶의 구조를 항상 따른다.
그들은 몸을 소유한 기계들에 다름이 없다.
기능주의 이것이 바로 기계의 정신이다.
모든 기능은 법칙적인 것이며
가치관을 윤리적으로 고려하지 못한다.
윤리적 가치 체계를 거스르지 않아야
그 가치 체계를 두신 존재를 바랄 수 있다.


윤리적 가치 체계는 모든 지배관계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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