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더 외로워져야겠다..
안개 뒤에서
길 위에서
불 꺼진 창문 너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1000번 광역버스 안에서
더블린, 카이로, 루앙프라방, 도쿄 혹은 사파에서
나는 내가 처음이었던,
그러니까 당신을 처음으로 알았던,
아니, 당신을 까마득히 몰랐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외로워져야겠다.
지금은 한겨울,
당신과 함께 걸었던 그 길에는 눈이 쌓이고
눈이 쌓인 그 길 위에 다시 눈이 쌓이며
한 사랑을 허물고 지운다.
결국 이러할 것을 알았지만, 이런 한겨울 밤에, 사라지는 길의
끝을 바라보며, 나는 새로 들인 가구처럼 홀연히 서 있다.
이제는 당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던 그날을
손을 잡았던 그날을 그리워하지 않겠다.
눈이 쌓인 나뭇가지를 가볍게 떨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사랑이 어찌할 수 없는 일 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더 외로워질 것이고,
발바닥에 유리를 꽂고 걷는 것처럼 아프지만
다시 살아갈 것이고,
그 아픔이 오히려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허물어진 사랑은
허물어진 대로, 그대로 두겠다.
그것 또한 어쩌면 보기 좋을 것이니.
나를 떠난 당신은 돌아오지 마라.
나에게서 먼먼 그곳에서 부디 안녕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