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1편 '예능계의 서태지, 김태호PD를 만나다' 에 이어, 국가대표 영화감독 봉준호 감독님과의 공개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이번 인터뷰도 90분가량의 인터뷰를 깨알같이 담았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바로 시작합니다^^


이번 행사는 남성패션잡지 ARENA HOMME PLUS가 주최한 2011 A-TALKS 중 2번째 행사로 주인공은 살인의 추억, 괴물 그리고 마더까지 수많은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국가대표 영화감독 '봉준호'감독님입니다.
행사진행은 '죽이고 싶은'을 감독한 조원희 감독의 질문과 봉준호 감독의 답변으로 진행됐습니다. 아래 내용은 녹취한 내용이며 존칭은 생략했음을 알려드립니다.
<1부. 인터뷰>
Q. 해외 일정이 잦다는 데 힘들지 않나?
A. 예전엔 하루면 회복했다. 어느덧 나이 43,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다보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다.
Q. 관객이 대부분 20대인데, 20대는 어땠나?
A. 힘이 넘쳤다. 에너지를 주최하지 못해서, 대학교때 KP라는 조직에 몸담았다.
Q. KP? 범죄조직인가?
A. 운동권 조직도 아니고, '깽판'의 약자다. 몰려다니며 술먹고 기타치면서 음반녹음도 하던 저질스러웠던 조직이다. 10명 정도 였다.
Q.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가장 창피했던 것 ?
A. 영화를 직업적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한게 잘한 것. 어릴 때 부터 영화는 좋아했다. 중학교때 영화감독이 되야겠다고 결심했다. 완전히 직업적으로 해야겠다고 한 것은 전역 후 23살에 복학할 때였다. 창피했던 것은 KP활동했던 것. 어린 마음에 TV출연 하고 싶었다. 9시 뉴스에 대학 원서 마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감시간이 되어 셔터가 내려가면 문열어달라는 학생과 이를 저지하는 경비아저씨가 나온다. 우리는 재학생이였는데 삼수생인 척 셔터를 치며 울고불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도 촬영하지 않더라.
Q. 지금의 20대 중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나?
A. 박해일씨, 원빈씨 모두 30대. 연출부에 20대가 좀 있다. 괴물에서 아역이었던 고아성양이 대학에 입학했다.
Q. 지금의 20대를 보면 드는 생각은?
A. 일단 부럽다. 젊음이라는 것. 내가 다시 20대가 되면 훨씬 발랄하게 재밌게 놀지 않았을까. 왜 KP같은 것만 했을까. 더 우아하고 재밌는 일이 많은데. 지난 일은 다 창피한 것 같다.
Q. 영화감독이 되기까지는 연출부 생활, 시나리오 집필 등 단계가 있는데, 영화감독이 되어가며 흘러가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겠나?
A.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 자체가 감독이 되는 훈련이다. 영화는 호흡, 리듬이 길다. 주변의 CF감독들은 리듬이 농구선수의 리듬같다. 한달에 CF 3편을 완성한다. 나는 3년에 한편씩 영화를 개봉시켜 왔다. 연출부나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이 시간에 대한 감각이나 느낌에 익숙해졌다. 1년에 2~3편씩 만드시는 김기덕 감독같은 경우는 리듬이 빠르지만.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 충분히 감독이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Q. 20대 데뷔하는 감독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조언이 있다면?
A. 축하할 일이다. 데뷔는 빨리 할 수록 좋다.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서만 볼 수 있는 원숙한 관점, 통찰이 있지만 찍어가면서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것도 좋다. 
Q. 첫번째 작품이 망한 감독들이 많다. 박찬욱,곽경택 감독도 첫 작품은 망했다. 첫 작품이 망한 감독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A. 계속 망할 수도 있다(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 임필성 감독과 친한데, (관객에게) '남극일기 아세요? 헨젤과 그레텔 아세요?' 그 친구도 연달아 망했다. 3번째 영화를 또 씩씩하게 준비하고 있다. 나도 '살인의 추억'을 준비할 때 그런 마음이었다. 한번 망했으니 또 망한들 어찌하리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플란다스의 개'는 개인적으로 흥행할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살인의 추억은 마음을 비우고 만들었다. '살인의 추억' 개봉 직전에 완성된 편집본을 보고 돈을 회수해간 부분투자가도 있었다. 조감독이 울면서 크레딧을 지웠다.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심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애가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부터 사망선고를 받는 느낌. 나는 한결 더 마음을 비웠다. 개봉한 후에는 통쾌했다.
Q.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어떻게 돈을 벌며 버텼나?
A. 대학다니고, 연출부 생활할 때 생활이 안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회갑잔치, 돌잔치 등 잔치 비디오들 많이 찍었다. 내가 찍은 태잎 갖고 있는 분들 있을 것. 편집까지 다했다. 주례사를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결혼식이 어렵다. 주례사를 약간 놓치거나 양가 친척 중에 조금만 빠져도 클레임이 들어온다. 독서실 총무도 했었다. 대학교 구내매점에서 도너츠도 팔고. 다 재밌었다. 학교 구내 자판기 재료 채우는 일도 했다. 바퀴벌레 나오고 해서 그 이후로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바퀴벌레 알도 있었다.
Q.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한 적이 있었나?
A. 많이 있다. 결혼식이 좋다. 회갑잔치가 힘들다. 잔치가 안 끝날 때가 있다. 홀을 빌려 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은 괜찮은데 식당이나 홀을 통으로 빌려서 하는 곳은 집에 가야하는데 끝나질 않는다. 사돈의 팔촌이 노래방 기계로 노래하는 거까지 다 찍어달라고 한다. 슬쩍 가려고 하면 아직 노래 안한사람 있다고 찍어달라고 한다. 난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왜 노래하는 노인분들을 찍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를 만든다던 봉준호. 자신의 영화를 모은 영상에서조차 눈을 떼지 못한다)
Q. 거장이라는 칭호를 잡지에서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데, 촬영현장이나 영화를 기획할 때 감히 감독님 앞에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을거같은데 외로울 때는 없나?
A.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디어를 많이 내준다. 막내로 자라서 의지하는 타입이다. 항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했다. 3편을 연달아 같이 한 류성희 미술감독님도 나보다 한 살이 많다. 일했던 촬영감독분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님들이었다. 징징거리며 의지하는 편이다. 의견도 많이 묻고.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때는 조감독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제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영화들을 항상 해온거같다. '괴물' 촬영 시작할 때 MT를 갔다. 술에 취해서 앞에 나가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는 사실 내 능력 밖의 영화다. 절대반지를 파괴하러가는 프로도의 심정으로 이 영화를 3년간 준비해왔다. 프로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나를 도와줄 샘(Sam)이 필요하다. 여러분중에 한명만 나의 샘이 되어준다면 완성할 수 있을것 같다' 술에 취해서 얘기를 했었는데 문자가 30개 정도 왔다. '감독님의 샘이 되어드릴게요'라고. 닭살이 돋는 말인데 역시 지난 일은 창피하다. 이 말들이 거짓말이 아니라 의지하는 타입이라 스텝들도 나에게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Q. 임권택 감독님은 언젠가부터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라고 하던데. 나중에 이렇게 되지 않겠나?
A. 나는 이제 영화를 4편 찍었다. 임권택 감독님은 100편 + 1편을 찍으셨기 때문에 그 분께서 그렇게 얘기하신다면 납득이 간다. 언젠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초창기부터 같이 했던 사람들이 많다. '마더'와 '설국열차'를 함께 준비중인 홍경표 촬영감독도 조감독시절부터 아는 사이라 현장에서도 준호야 준호야 하고 나도 형 형 한다. 그래서 의견이 막히거나 하지 않는다. 꿈이기도 한데 만약에 임감독님 처럼 60, 70대에도 영화를 찍는다면 아마 비슷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거 같다. 하지만 그때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한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
Q. 아이디어가 돋아난 후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힘들었거나, 또는 재밌었던 일은?
A. 매번 그랬다. '플란다스의 개'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조잡했다. 주인공이 옆집 강아지를 죽일려고 하고 그걸 구하려는 관리소 직원이 있고 이런 얘기를 제작자에게 처음 하니 피식 웃고 다른 업무를 보더라. 나는 계속 얘기하는데 전화오는 거 다 받고. 주변에 선배들도 '무슨 그런 잡스러운 얘기를 장편영화로 하냐'라고 하더라. 초반부터 걸림돌이 많았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더 시나리오도 조잡하게 쓰려고 했다. '살인의 추억'은 지금은 한국 영화에 스릴러가 많이 나오고 대세의 장르처럼 나온다. 하지만 당시 스릴러가 국내에서 기피장르였다. 프로듀서, 제작자, 투자자들의 기피 1호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범인이 잡히지 않는 실제 사건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렸다. 어떤 제작자는 '가상으로 범인을 만들어 통쾌하게 때려잡으면서 끝나는 결말을 해야지 않그러면 너는 극장에서 환불소동 날거다'라는 소리도 들었다. '괴물' 때는 더 심했다. ''살인의 추억' 한 편 잘되더니 아주 맛이 갔구나'하기도 했다. '한강에 괴물이 왜 나와야되?'라는 소리도 많이 했다. 주변에서 극구 말렸다. 솔직히 말하면 가장 공포스러웠던건 내 마음 한 구석에도 두려움이 있었다. CG가 안되면 어떻게 하나. 내가 생각한 CG회사랑 결렬이 되면 어떻게 하나. 송강호 같은 배우가 열연하는데 그 송강호가 마주보고 있는 괴물은 상상할 수 없는 조악한 수준의 그런게 되면 엄청난 민폐를 넘어 대 재앙이다라는 공포감이 있었다. 이것들을 극복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MT가서 그런 닭살 돋는 멘트를 했던 것. 술자리에서 누가 혼자 일어나서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 가만히 있는 상황을 정말 싫어하고 각자 산만하게 떠드는게 제일 좋다. 다 내 안에 있던 공포감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게 힘들었다. 다행히 다 무사히 완성해서 행운이라 생각한다.

Q. 예전에 질문했을때, 감독님의 단편영화 '지리멸렬'을 보면 연쇄우유도난범이 나온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강아지 유괴범이 나오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연쇄 살인범이 나온다. '괴물'에서는 집단 사상의 괴물이 나온다. 이런 점층적인 양상이 있어 '다음엔 지구를 뽀겔건가?'했더니 '그건 이미 장감독이 했다'라고 답했다.('지구를 지켜라'(2003) 장준환 감독). 마더에서는 범죄가 소박해졌다. 이 이유는?
A. 외형적인 사건은 축소됐지만, 감정이나 주인공이 겪어야 되는 운명이나 고통의 강도는 마더가 제일 세다. 어둡고 끔찍한 파괴적인 내용이다. 이제 밝아지려고 한다. 감정적인 단계를 보면 영화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데 다시 밝아지려고 한다. 수영장 바닥을 치고 올라가듯이.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준비중인데 유혈이 낭자한다. 기차에서 엄청난 액션과 폭력이 난무한다. 서로 원시적인 무기를 휘두르면서. 결말을 보시면 좀 다른 느낌을 받으실 것.
Q. 한국 영화사상 가장 창의적인 장면인 '플란다스의 개'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굴리면서 길이를 제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떻게 찍었나?
A. 한국 영화사상 가장 조잡한 장면. 오기가 발동해서, 이토록 조잡한 것으로도 장편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덕길이를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서 재는 장면이다. 휴지 겉에 보면 '뽀삐 80m' 이렇게 써있는데, 당시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생활고가 있었다. 생활고가 있으면 사람이 짜쳐진다. 슈퍼에서 우유가 정말 250ml일까? 가격을 유지하면서 용량을 줄인 건 아닐까. 이걸 정말 풀어서 써본 사람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짜친 생활이 그런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Q. '설국열차'는 얼마나 진행됐나?
A. 작년 9월에 시나리오 초안, 지금 거의다 시나리오는 마무리. 대사의 70~80%가 영어다. 외국인 배우가 많이 나오고 미국 작가가 한명 있다. 같이 교정을 하고 있는 단계다. 프리프로덕션이 시작되서 사무실 벽면에 기차 수백가지 디자인이 붙어있다. 캐스팅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진행된 것이 없다. 항간에는 디카프리오가 캐스팅됐다는 데 날조된 것. 그 바쁜 디카프리오가 시간이 많을리가 없다. 금년 10월경에 크랭크인 예정이다. 2012년 하반기에 볼 수 있을 것.

Q. 가장 자신있는 측면?
A. 약간 변태적인 성향인데, 좁고 긴 공간을 좋아한다. 유심히 보신 분들은 떠오르실 텐데 '살인의 추억'의 터널, 배수관. '플란다스의 개'에서 임상수 감독이 열연했던 화장실 신을 촬영할 때도 스텝들에게 좁고 긴 화장실을 찾아달라고 했다. '괴물'에선 하수구들이 엄청 나온다. 그런 공간을 보면 심지어 성적으로 흥분이 느껴질 정도. '어! 이런 공간이 있다니!'한다. '설국열차'에서의 영화의 거의 100%가 기차에서 벌어지는데 그 좁고 긴 공간이 계속 펼쳐진다. 콘티 작업을 하면서도 너무 흥분이 된다. 네러티브가 심플하다. 주인공이 맨 뒤칸에서 앞으로 앞으로 치고 나가며 돌파해나가는 내용이다. 기차는 우회로가 없다. A칸에서 C칸으로 가려면 무조건 B칸을 통화해야한다. 유혈이 낭자한 계속된 대결이 영화적인 흥분감이 있다. 기차가 달리고 있고 주인공도 앞으로 나아간다. 이중의 폭주를 볼 수 있다.
Q. '설국열차'를 찍으면서 부담되는 건 없나?
A. 예산이 가장 문제. 큰 예산 영화를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괴물'도 사실 저예산 영화다. 같은 50억짜리 영화여도 시골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찍는 것과 한국전쟁을 찍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찍어야할 내용에 비해서 예산은 '괴물'이 가상 저예산 영화였다. 요번 영화는 300억 이상으로 예상한다. 예산이 크다는게 예산이 풍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찍고자 하는 것에 대해 타협을 하지 않는데, 작은 사운드 이펙트까지 포기하지 않는 변태악마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 기준으로 하면 5천만불이하기에 저예산 영화다.
Q. '설국열차'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A. 80~90%이상이 기차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세트에서 촬영할 것이다. 경춘선에서 찍을 순 없지않나. 아직 결정된 것은 많지 않다. 5~6월이면 결정될 것.
Q. '설국열차'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 봉준호 감독이 감독. 박감독이 갑, 봉감독이 을이라 갑찬욱이라고 부른다는데, 제작자 갑찬욱은 어떤가?
A. 워낙 90년대 영화 아카데미 졸업할 때 부터 알다가 갑자기 제작자와 감독 관계로 만나니 지금은 뻘쭘하고 어색하다. 본인도 정체성의 혼란이 많다. 시나리오 얘기하다가 아이디어를 낸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걸 주로 얘기하는데, 그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라고 말하면 다시 생각하곤 한다. 본인도 천상 감독이기에 그런 것. 15세에서 18세로 점프하는 장면 등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감독인 나로선 좋다. 워낙 마음씨가 젠틀한데 아이디어는 잔혹하다.

Q. 박찬욱 감독이 동료, 후배 감독들의 제목을 잘 지어주는데, 물론 실제로 쓰인 것은 없다. '살인의 추억'이 제목이 바뀔번 했다던데?
A.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죽는다'라 지어주시더라. 논에 박혀있는 허수아비에 써있는데. 그래서 박감독에게 '저 이번 영화 중요해요'라고 답했다. 본인 영화의 제목은 쿨하다. 실제는 성품이 곱고 나이스하고 젠틀한데 화도 안내고. 실생활에서 억누르는 것을 영화에서 표출하시는 건가 싶다. 웃으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신다.
Q. 친하게 지내는 감독들은?
A. 사회성이 없는 편이다. 실제로 '마더'제작자분은 '사회화된 척하는 자폐아'라고 얘기했다. 임필성 감독과 친하다. 김지운, 박찬욱 감독은 좀 연로하다. 김태영 감독이 동갑인데, 가끔 술한잔한다.
Q. 해외에서 인상깊었던 사람은?
A. 뭐든 처음이 가장 인상이 강하다. 처음 스페인 산세바스찬 영화제 갔다. '플란다스의 개'가 경쟁부문에 올랐다. 극장에 모건프리먼이 들어왔다. 당시 세븐이라는 영화를 감명받은지 얼마 안됐는데. 영화가 시작됐는데 한국어 대사에 스페인어 자막이 나왔다. 30분이 흐르고 주최측에서 무선 해드셋을 줘서 동시통역을 받더라. 메너가 좋아서 끝까지 다 보더라.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양 옆 문으로 미세한 빛을 받으며 나갔다. 한명한명 세면서 '너희들 앞으로 30년간 제수없어'라고 저주했다. 50여명이 나갔다. 3년 후에 '살인의 추억'을 같은 극장에서 할 때는 1명이 나갔다가 5분 후에 다시 들어왔다. 그런데 모건프리먼은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리셉션 홀에서 청바지 입은 체로 다가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Q. 기억에 남는 영화제가 있나?
A.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영화제. 동시에 판토마임 같은 연극 축제가 같이 열린다.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다. 도시의 풍경도 참 아름답고, '트레인스포팅'에서 이완 멕그리거의 러닝장면의 배경이 됐던 곳도 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을 가면 전설의 괴물 네시가 산다는 네스호가 있다. 그것을 보고 괴물을 구상하게 됐다. 영국 가시게 되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가보시길 추천한다.

Q. 네스호에서 괴물은 봤나? 고등학교때 한강에서 괴물을 봤다고 했던거 같은데?
A. 네스호에서 3~4시간동안 보았는데 괴물은 못봤지만 충분히 나올거같은 분위기였다. 고등학교때는 다들 상태가 안좋지않나. 마케팅적으로 만들어 낸 얘기는 아니고 제가 회사에서 사람들하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아가씨가 이 얘기를 홍보에 사용해서 민망했다.
Q. 감독은 수많은 대화를 해야하는데, 배우들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A. 어렵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이다. 감독이 해야할 일. 일상적일때는 자폐아로 불리지만 일할 때는 아니다. 스탭들과는 대화를 잘 한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베우들의 세계는 이상하다. 상당수 연기자들은 4차원적이신 분들이 많다.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직업훈련시키면 다 할 수 있다. 배우는 다른 DNA를 타고 나야하는 듯 하다. 물론 훈련의 영역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선천적으로, 좋은 의미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클로즈엔카운터'라는 영화가 있다. 음악으로 외계인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배우와 대화할 때는 다른 대화가 필요하다. 김혜자 선생님과 대화할 때는 현실의 세계와 천왕성 명황성을 왔다갔다 하며 정말 다양한 차원을 넘나들며 대화를 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게 김혜자 선생님의 매력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김혜자씨를 염두했다. 국민 엄마지만 사실은 4차원일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4차원에도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다음 말을 예상하게 됐다.
Q. 4차원의 배우와 작업하기 위해 4차원으로 가나? 아니면 현실세계로 데려오나?
A. 가려고 발버둥치다가 나가떨어지는 스타일. 야생마 같은 배우는 풀어놓는게 최고다. 보이지 않게 멀리 울타리를 쳐놓고 풀을 먹으러 오면 그때 탁 낚아채는 것. 기다려야 한다.
<2부. 트위터 질문>

Q. 예쁜 여배우가 좋나? 연기 잘하는 여배우가 좋나? 앞으로 캐스팅하고 싶은 여배우는?
A. 당연히 예쁘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다. 제 영화엔 미남미녀분들이 잘 안나온다는 비평도 있었다. 원빈을 캐스팅했던 적도 있고. 아저씨보면서 많이 후회했다. '저렇게 멋진 친구였구나'하고. 핸섬한 바보도 있을거야란 생각에 캐스팅했었는데. 배두나, 고아성씨도 절세미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케스팅하고 싶은 배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숙씨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적이 있다. 1층에서 13층까지 같이 올라갔는데 그 짜맀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꼭 한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 해외는 Toni Collette '식스센스'에서 아이의 엄마로 분했던 분과 작업해보고 싶다.
Q. KP 활동했던 사람들의 근황은?
A. 오늘도 KP 멤버 두어명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했는데 국가인권위, 겔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직원, 가게 운영 등 다양하다.

Q. 아줌마 펌 머리스타일은 언제까지 고수할 생각인가?
A. 반가운 질문이다. 스타일로 오해하시는데 아무것도 안한 상태다. 고2때까지 직모였는데, 그해 겨울에 2달동안 호르몬의 변화였는지 단기간에 머리가 곱슬로 바뀌었다. 고정적으로 가는 미장원도 없고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 물론 감기는 한다(웃음). 스타일을 바꿔보라는 제안도 있었는데 아픈 기억이 있다. 2003년에 '살인의 추억' 개봉할 때 즈음에 동네 미장원에 가서 나를 보며 '어떻게 이러고 다녔냐'고 하시더라. 20,000원짜리 싼 약이 나왔다고 스트레이트 파마를 강요하셔서 기분전환할 겸 했는데 완전히 펴져서 이틀정도 모자를 쓰고 다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엄청난 비난과 멸시가 이어졌다. '영화 개봉한다고 스트레이트 펌 했니?'라는 이상한 조합이 되서 두번 다시 하지 않는다.
Q. '살인의 추억'중 '현장 보존이 개판이야'라던 장면이 원테이크였던거 같았다. 인상적이었는데 NG는 없었나? 에피소드는?
A. 논두렁신이다. 시체가 논두렁에 있고 마을 분위기가 아수라장이다. 그 샷 하나를 연습해서 하루종일 찍었다. 3분짜리 롱테이크. 오전내내 연습하고 오후부터 찍어서 14테이크를 찍었다. 100명이 움직이는 오케스트레이션. 구상은 했지만 실현되려면 스테디캠 기사님, 연출부, 엑스트라 모두가 완벽하게 오케스트레이션이 안되면 사실 어렵다. 아마 9번 테이크가 쓰였을거다. 고생많이 했다. 경운기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등 모든 타이밍을 맞춰야 된다. 그런데 그 틈바구니를 뚫고 애드립을 날리는 송강호와 변희봉의 신들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저 둘은 괴물이구나' 모두가 혼비백산이 되있는데, 그래서 변희봉과 송강호가 부자관계로 나오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괴물'에서 부자관계로 시나리오를 썼다. 조감독분들이 정말 잘해주었다. 나는 핵심 배우들만 커버하는데, 호흡이 잘맞아 하루만에 찍었다.
Q. 봉테일이라 불리는데, 디테일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나? 탐나는 배우는?
A. 저 별명이 참 괴롭다. '살인의 추억'때 류성희 미술감독이 홈페이지에 써서 유명해진 말. 사실 나는 큰 것만 보려는 타입이다. 지금은 저렇게 불려지는 바람에 스스로 저렇게 자동으로 굴러간다. 아무생각없이 시나리오 지문에 써둔거를 '이 차는 반드시 고동색이여야해'가 아니라 그냥 '고동색 차'라고 그냥 썼는데 제작부는 그걸 찾기 위해 생 난리가 나있더라. 핵심적으로 구현되야 하는 부분은 있다. 그 외에 대해서는 유도리로 충만한 사람. 하지만 핵심적인 디테일은 그게 곧 전체이기에 그것외에는 많이 신경쓰지 않는다. 농협다이어리, 안티프라민 등은 디테일은 80년대이기에 당연한 소품이었다.
남자배우는 젝 니콜슨. 송강호씨가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연세가 있으셔서 빨리 해봐야할 것 같다(웃음)국내는 김윤석 선배는 최동훈씨('타짜'의 감독)랑만 작업을 해서 기회가 있을지.
Q. 비전공자로서 장단점은? 언제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A. 전공이 사회학인데 사회학은 모른다. 사회과학이 잘 안맞았다. 점수에 맞는 과를 가다보니 간 것. 중,고등학생 때부터도 영화감독의 꿈이 있었다. 1980년대 이장호, 배창호 감독님도 비전공자였다.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하면 집에서 탄압도 있을거 같았다, 경쟁률도 어마어마해 자신이 없었다. 인문사회계열 아무대나 가서 영화동아리를 하자고 생각했다. 영화연구소 노란문(실제로 문이 노란색)이라는 영화동아리 활동이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전공자들이 부럽고, 해외유학도 가고 싶었으나 형이 유학을 가있어서 나는 못갔다. 영화아카데미 1년동안 전공자의 느낌은 받아봤다. 유명 디자이너 Tom Ford도 감독 데뷔를 해서 Colin Firth(2011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주연의 'A Single Man(2009)'멋지게 만들었다. 전공 비전공보단 내가 어떤 감성을 갖고 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서 유일한 한국 영화였던 '살인의 추억'을 보고 뿌듯한 적이 있다. 국내흥행과 해외호평은 이유가 같은가? 플란다스의개는 왜 흥행하지 않았을까? 한국관객에게 아쉬운 점이나 자그마한 소망은?
A. 관객은 무엇일까? 나도 관객이다. 관객의 실체 자체가 애매하다.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적중시킬 수 없는게 그들의 행동이기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다. 불타는 상업적 욕망만 갖고 만들거나 완전한 작가주의로 만드는 것도 있는데, 이 두가지가 적절한 텐션(긴장)이 있는 것도 있고, 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기에 소신껏 하는 것. 지금까지 운이 좋았고 앞으로는 알 수 없다.
Q. 최근 故최고은씨의 죽음으로 드러났듯, 영화계의 젊은이들에게 힘든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한말씀?
A.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이 사건 이후로 영화인들끼리 전화를 많이 하게 됐다. 조연출을 같이 했던 4명중 감독으로 데뷔한 친구는 3명. 한명은 아직 데뷔준비에 악전고투 중이거나 떠난 친구도 있다. 사실 많이 어렵다. 나도 조감독 시절에 비디오 찍고 그랬듯이.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느냐, 그리고 그 리듬을 익혀야 감독이 될 수 있다고 한 것. 이러한 의미도 들어있는 것. 나야 많은 행운이 있어 비교적 일찍 감독이 되고 계속 찍어왔지만,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감독이 되고 나서도 문제는 많다. 굳이 얘기를 꺼내기는 씁슬하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故곽지균 감독님 같은 경우, 80~90년대를 풍미하셨던 대감독님이셨는데. 영화란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교 졸업후 연출부 자리를 막막하게 알아보며 불합격될 때의 절망감. 극장가서 영화를 보는데 나는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데 영화는 여전히 나에게 무관심한 거 같아 눈물 흘린적도 있다. 어떻게든 버틸 수 밖에 없다. 영화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한국의 안전망에 대한 얘기들. 개인의 개인으로 드리는 말씀은 웃으면서 했던 얘기지만 시간에 대한 다른 감각을 가져야한다라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Q. 단편 '지리멸렬' 이후, 몇번의 기회를 장편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 놓친 것 같다는 말을 봤던거 같다. 94년 영화아카데미. 2000년에 입봉. 6년동안 조연출, 연출을 했는데. 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A. 민망한데, 감독 입봉에 오래 걸리신 분들이 많은데, 난 행운이 따랐다. 영화를 너무나 찍고 싶었다.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첫 연출을 해보던날 1993년 8월에 대학졸업직전 16mm 단편을 찍었다. 첫날은 비가와서 못찍고 그때 내리는 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영화를 만들면서 힘든 상황도 많이 있었다. 심지어 잘 모르는 영화평론가에게 전화를 해서 동문이라는 이유로 전화를 해서 단편영화 제작비 150만원을 꾼 적이 있다. 그 때 반 쯤 미쳐있지 않았나 싶다. 그날 집에 와서 이불을 덮고 생각을 해보니 한시간 정도는 너무 쪽팔렸다가 오히려 나중엔 기분이 좋아졌다. '이토록 내가 영화를 찍고 싶구나, 영화를 찍을때 나는 미쳐버리는구나' 이생각을 하니 확신이 왔다. 이걸 못하게 막으면 난 완전 파멸해 분해될 것 같았다. 그날 정말 기뻤다.
Q. 박찬욱 감독의 가훈이 '아님말고' 였던거 같은데,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치관이 있나?
A. 나나 부인이나 가훈이나 슬로건같은 건 없다. 별 생각없이 하루하루. 아들이 중3인데 다행히 창의적인 친구다, 어떻게 그걸 보호해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창의력이 짓밟히는 사회가 있고, 창의력을 북돋아주고 보호해주는 나라도 있다. 각 국가마다 창의력에 대한 스펙트럼이 다르고 우리나라는 그 어딘가에 있을것. 살다보면 그 창의력이 공격받고 짓밟히는 순간이 있을텐데, 어떻게든 보호해주고 싶다. 즉석에서 만든다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 남의 것을 흉내내지 말자.'
Q. 오늘 소감은?
A. 나는 이런 자리에 설만한 사람이 아니다. 거장이나 맨토라는 표현도 부끄러울 만큼 나는 영화를 몇 편 찍었을 뿐이다. 쑥스럽다. 산만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하시는 일들 모두 잘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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