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신호의 “3색 신호등” 체계가 시험 도입되면서 혼란과 논란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빈 협약에 따른 국제표준’이기 때문에 적응하면 보다 효율적이라고 하고, 일부에서는 이미 적응된 체계가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체계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국제표준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오늘은 제가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 몇 나라에서 운전을 하면서 직접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정부의 “3색 신호등” 체계의 모순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얘기에 앞서 용어 정리가 필요할 듯 합니다. 이번 문제의 “3색 신호등” 체계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경찰청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몇 년 전 “국제표준”을 운운하며 세계 여느 나라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우측보행”을 강제적으로 밀어 부쳤을 때부터 그들의 탁월한 탁상행정 능력을 알아는 봤지만, 그 분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호등에는 “녹색”, “황색”, “적색” 이외의 다른 색깔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현재 사용 중인 신호등 역시 “3색 신호등”입니다. 따라서 신호등의 색이 몇 개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등이 몇 개인가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현재는 “직진”, “좌회전”, “정지예고”, “정지” 등 총 4개의 등을 이용하는 신호체계입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4색 신호등”이 아니라 “등 4개짜리 신호등”이라고 해야 맞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등 4개짜리 신호등”하면 부르기 번거로우니 ‘전구’에서 구(球)를 따와서 “4구 신호등”이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용어 정리를 마치고 보면 이번 “3색 신호등” 체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세 알 수가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이번 정부가 시험 도입한 “3색 신호등”의 그림입니다. 좌측 “3구 신호등”은 좌회전 용, 가운데 “3구 신호등”은 직진 용, 우측 “3구 신호등”은 우회전 용으로, 1개 교차로에서의 신호를 총 9개의 등으로 표시하는 “9구 신호등” 체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앞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저는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 몇 나라에서 운전을 해 보았지만, “9구 신호등”으로 교통안내를 하는 교차로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과연 이번 정부의 “3색 신호등” 체계가 국제표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정부의 얘기대로 “3구 신호등” 체계의 효율성은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단, “3구 신호등” 체계에 적합한 교통환경에 국한되는 얘기입니다.
“3구 신호등” 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곳의 교통환경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편도 4차로 이상의 대로가 있는 곳이 거의 전무합니다. 외국에서도 편도 4차로 이상의 대로일 경우에는 우리나라와 모양은 다르지만 “4구 신호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굳이 4차로 이상의 대로가 아니더라도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4구 신호등”을 병용해서 사용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일본입니다.
“3구 신호등” 체계의 효율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선적으로 우리나라의 ‘법 운영 정서’와 외국의 ‘법 운영 정서’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허용된 것 이외에는 하면 안돼’가 우리나라의 ‘법 운영 정서’라고 한다면 외국의 경우는 ‘특별히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이외는 모두 돼’가 ‘법 운영 정서’ 입니다.
“3구 신호등” 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곳에서는 “진행”, “정지”, “정지예고”의 신호를 “녹색”, “적색”, “ 황색”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녹색의 진행 표시에서는 ‘좌회전금지’, ‘우회전 금지’라는 표시가 특별히 있지 않는 한 차를 움직이는 모든 행위가 허용됩니다. 다만, 직진에만 우선순위를 부여 함으로써 그 외의 움직임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운전자는 모든 책임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우리나라의 비보호좌회전이 여기서 차용되어 온 것입니다.
진행 신호에서 마주 오는 차가 없으면 언제든지 좌회전을 할 수 있으니 특별히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좌회전 신호를 따로 줄 필요가 없으니 효율적인 신호체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워와 같이 차량이 몰리는 시간에는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좌회전을 제한하는 교차로도 많습니다. 또는 우리나라 대로와 같이 4차로 이상의 도로에서는 “4구 신호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번 “3색 신호등’ 체계를 도입하기로 한 정부의 관계자들에게 한가지를 더 묻고 싶습니다. 외국여행이 국내여행처럼 자유로운 요즘 세상에 외국에 한번도 안 나갔다 와 봤는지 말입니다. 외국 여행이야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친다고 해도, ‘빈 협약’을 운운할 정도면 최소한 협약 가입국의 신호체계가 어떤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여다 봤어야 되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9구 신호등' 체계가 빈협약이니, 국제표준이니, 효율적이니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정말로 의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굳이 현장에 다녀 오지 않아도 손가락을 몇 번 까닥하면 직접 다녀온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세상입니다. 거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여행을 다녀오고 있습니다.
그런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국제표준’이라는 알량한 구실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우습기만 합니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바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정부가 지녀야 할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9구 신호등’ 체계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 관계자의 사과와 함께 철회되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