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조부치 검사와 치열한 ‘논쟁’ 벌여
제1회 심문은 10월 30일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講淵孝雄], 서기 기시다 아이분[岸田愛文], 통역촉탁 소노키 스에요시[圓木未喜]의 통역으로 시작되었다. 인정신문에 이어 미조부치 검찰관이 “이토 공작을 왜 적대시하는가?”라고 묻자, 안중근은 예의 이토의 15개 죄목을 열거했다.
검찰관이 다시 “한국에는 기차가 개통되었고, 수도공사 등 기타 위생시설이 완비됐으며, 대한병원도 설립되고, 식산공업은 점차 왕성해지고 있다. 특히 황태자는 일본 황실의 배려로 문명의 학문을 닦고 있다. 훗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세계의 여러 나라와 대립했을 때 명군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 피고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안중근은 “한국 황태자가 일본측의 배려로 문명의 학문을 닦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국의 국민 모두가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총명하신 한국의 전 황제를 폐위하고 젊으신 현 황제를 세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밖의 지금 물어본 일에 대해서는 한국의 진보나 편리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안중근과 미조부치 검찰관의 치열한 공방전(攻防戰) 중에 몇 대목을 살펴보자.
미조부치 검찰관 : “이번 달 26일 아침 이토 공작이 하얼빈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피고는 권총으로 공을 저격했는가?”
안중근 : “틀림없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 혼자서 실행했는가?”
안중근 : “그렇다. 혼자서였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때 어떤 흉기를 사용했는가?”
안중근 : “검은색의 굽은 칠연발 권총이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압수된 권총을 제시하며) 피고가 사용한 흉기는 이것인가?”
안중근 : “그렇다.”
미조부치 검찰관 : “이 권총은 피고의 소유인가?”
안중근 : “그렇다.”
미조부치 검찰관 : “어디서 입수했는가?”
안중근 : “올해 5월경 내가 의병에 가입했을 때 동지가 어디에서 사다준 것이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전부터 이토 공작을 한국 또는 동양의 적으로 생각하고, 죽이려고 결심하고 저격한 것인가?”
안중근 : “그렇다. 나는 3년 전부터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고 결심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일본을 신뢰하고 있었는데, 점점 한국이 이토에 의해 불행해져서 내 마음은 변했고, 결국 이토를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2천만 동포가 모두 같은 마음이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3년 전 부터 끊임없이 이토 공작을 죽이고자 했는가?”
안중근 : “그렇다. 나는 힘이 없었고, 기회가 오지 않았다.”
미조부치 검찰관 : “올 봄 한국 황제 행차 때 이토 공작이 호종했는데, 그때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실행할 기회는 없었는가?”
안중근 : “그때 나는 함경도 갑산에서 이토를 죽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총기도 준비가 안 됐고, 먼 길일뿐만 아니라 호위병도 많았으며, 또 한국 황제께서도 일행에 계셨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략)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가 사진으로 보고 상상했던 이토 공작과 실제로 본 이토 공작의 모습이 일치하던가?”
안중근 : “약간 다른 부분이 있었다. 특히 생각했던 것보다 왜소한 사람이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이토 공작이라는 것을 알고 저격한 다음, 쓰러질 때까지 탄환을 모두 발사했는가?”
안중근 : “내가 사용했던 권총은 방아쇠를 한번만 당기고 그대로 있으면 모두 발사되는 장치가 되어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가 발사한 결과, 이토 공작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는가?”
안중근 : “전혀 모른다. 그 결과는 아무한테도 듣지 못했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이토 공작의 생명을 잃게 했는데, 그러면 피고의 생명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안중근 : “나는 원래 내 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토를 살해한 후 나는 법정에 나가서 이토의 죄악을 일일이 진술하고, 이후 나 자신은 일본 측에 맡길 생각이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가 사용한 권총은 친구 누구로부터 샀는가?”
안중근 : “윤지총이라는 동지가 일본 제일은행권 40엔 정도에 사서 나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 샀는지 모른다.”
안중근이 이토를 처단하는 현장에서 자진하여 붙잡힌 것은 국적을 총살하고, 법정에서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일제의 침략과 조선독립의 이유를 천명하고자 함이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다. 안중근의 이러한 심중을 간파한 일제는 재판과정에서 여러 가지 흉계를 써서 이를 방해하고자 했다.
일제의 수사관들은 안중근의 가정문제와 관련해서도 집요하게 캐물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고국의 처자에게 돈을 부치고 있었는가?”
안중근 : “한번도 돈을 부친 적이 없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의 처자는 누가 돌봐 주고 있는가?”
안중근 : “내 집에는 수백 석의 수확이 있는 전지(田地)가 있다. 따라서 생활은 되기 때문에 돌봐줄 사람이 필요치 않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 전지는 어디에 있는가?”
안중근 : “신천의 문화(文華) 라는 곳에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 땅은 소작을 부치고 있는가, 아니면 피고의 집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가?”
안중근 : “내 아우들이 짓고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아우라면 정근(定根)과 공근(恭根)을 말하는 것인가?”
안중근 : “그렇다. 그러나 내가 집을 나온 뒤에는 누가 짓고 있는지 모른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의 처자는 신천에 있는가?”
안중근 : “진남포의 내 집에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신천에 있는 전지의 수입은 진남포로 가지고 오는가?”
안중근 : “배로 보내온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부모가 있는가?”
안중근 : “어머니가 진남포에 계시다.” (이상 제6회 조서 중 일부)
○ “이토가 미쳐서 한국을 침략해 응징했다”
미조부치 검찰관은 일본의 한국 점령을 합리화하고자 부단하게 동양의 정세를 말하며 이토를 변론해 안중근을 ‘교화’시키려 들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일본이 선언한 일은 알고 있는가?”
안중근 : “그렇다.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또 한국의 독립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일한협약도 한국의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선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안중근 : “그런 선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다.”
미조부치 검찰관 : “피고는 국제공법을 알고 있는가?”
안중근 : “전부는 모르고, 일부분 알고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일본이 아무리 제멋대로 해도, 국제협약에 가입하고 있는 만국이 묵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가?”
안중근 : “그것도 알고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렇다면 일본이 동양평화를 부르짖으며 한국을 멸망시킨다든가 또는 병합시킨다든가 해도, 만국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안중근 : “나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자 하는 야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국이 묵시만 하고 있는 이유도 알고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얻어 대만 외에 요동반도를 점령하고 있을 때, 프랑스, 독일, 러시아 삼국동맹이 일본의 요동 점령에 이의를 제기하여, 마침내 이를 청국에 환수케 한 일을 알고 있는가?”
안중근 :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러일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러면 일본 혼자서는 다른 나라를 병합하지 못하도록 열국이 감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중근 : “감시하고 있게 돼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조선도 예로부터 수백 년 역사를 가지고 독립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열국의 감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합하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피고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중근 : “병합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토가 미쳐 있기 때문에 병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조부치 검찰관 : “청일전쟁은, 청국의 출병에 대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위해 출병한 결과 야기한 것으로, 한국은 독자적으로 행할 수 없는, 즉 자력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안중근 : “그건 알고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또 러일전쟁도, 일본이 요동반도를 청국에 환수하자, 러시아가 관동주를 조차하여 군사를 두고, 여순항 내에 군함을 배치하여 한국에 출병하려고 위협하여 일어난 것으로, 한국이 지극히 자위력이 없기 때문에 마침내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된 셈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중근 : “그건 그렇다.”
미조부치 검찰관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마치 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위해 벌인 전쟁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안중근을 심문했다. 안중근은 여기에 부분적으로 동조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와 이토 히로부미를 일치시키지 않고 있는 듯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즉 일본은 국제관계 때문에 한국을 병합하기 어려울 것인데, 이토가 ‘미쳐서’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듯한 인식인 것이다.
○ 미조부치 검찰관의 집요한 ‘회유’
미조부치 검찰관은 집요하게 일본의 통감정치가 한국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안중근을 ‘회유’하려 들었다.
미조부치 검찰관 : “한국은 독립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어린 아이와 같으며, 따라서 일본이 후견인이 되어 보호하고 있는 것이므로, 한국이 그 뜻을 잘 받들고 있다면 통감제도도 오래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국이 후견인의 뜻에 반하여 행동한다면 영영 통감제도를 폐지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알고 있는가?”
안중근 : “일본으로서는 그렇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말하면 그렇지 않다.”
미조부치 검찰관 : “열국이 승낙하고 있는 보호, 즉 통감제도는 한국이 세계의 대세를 자각하게 되면 필요 없게 되지만, 깨닫지 못하고 완명(頑冥)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끝내 통감제도도 폐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일본이 한국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스스로 망하게 되는 것인데, 이를 알고 있는가?”
안중근 : “그것이 한국인이 갖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렇다면 통감정치에 대해 분개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자국민의 무능함을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안중근 : “나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야심이 있건 없건, 그런 일은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동양평화라는 것을 안중에 두고, 잘못된 이토의 정책을 미워하는 것이다. 한국은 오늘날까지 진보하고 있다. 다만 독립해서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것은 한국이 군주국(君主國)이라는 점에 기인하며, 그 책임이 위에 있는 것인지 밑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조부치 검찰관 : “독립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이상, 한국을 일본이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중근 : “그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방법이 아주 잘못 돼 있다. 즉 박영효와 같은 인물을 조약을 집주(執奏)하지 않았다 하여 제주도로 유배하고, 현재 이완용·이지용·송병준·권중현·이근택·신기선·조중응·이병무 따위의 하등 쓸모없는 자들을 내각에 두어 정치를 시키고 있다. 이는 정부의 잘못으로, 정부를 근본부터 타파하지 않으면 한국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미조부치 검찰관 : “한국 이조(李朝)의 황실인 이씨는 서북 출신으로, 그 유훈에 "서북 사람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면 한국국민은 자국의 황실을 원망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중근 :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서북인이 불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으로서 황실에 대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미조부치 검찰관 : “그렇다면 일본이 황실의 선언에 기초하여 보호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르지 않는 것은 소위 국민이 황실에 불평을 호소하는 것이 되는데,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안중근 : “황실에 대해 불평한 일은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또 정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권리다.” (제6회 신문조서)
안중근은 한국이 “독립해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것”은 ‘군주국’이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 “정부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은 권리”라고 주장했다. 국주국이기 때문에 이완용 따위와 같은 쓸모없는 자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있다면서 군주제 정치의 한계를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유추할 때 안중근은 공화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무렵 한국인 중에 공화제 정치사상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는 것에 비하면 안중근은 여러 방면에서 대단히 앞선 편이었다. 그러나 안중근이 과연 공화주의 사상가였는가, 아니면 근왕주의자였는가에 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다시 미조부치 검찰관과 안중근 간의 ‘논쟁’을 들어보자.
미조부치 검찰관 : “이토 공작을 죽이면 일본이 한국에 대해 시행하고 있는 보호정책, 즉 통감정치가 폐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안중근 :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검찰관 : “이토 공작이 죽었다 해도, 통감정치가 폐지될 까닭이 없다. 세계 열국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이를 파기하지 않는 이상 보호협약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가?”
안중근 : “그 협약은 이토가 병력으로 황상(皇上)을 협박하여 강제로 승낙케 한 것이다.”
검찰관 : “한국이 독립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강박하여 협약케 한 것으로, 조약이 강박에 의해 성립된 예는 많으며, 결코 불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중근 : “그건 그렇지만, 이토가 한국 국민의 희망이기 때문에 보호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본 황제를 비롯하여 일본 국민을 기만했다. 그래서 이토를 죽이면 일본도 자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죽인 것이다.”
검찰관 : “만약에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에 대항할 힘도 없는 한국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한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동양평화에 해가 되는 것이므로 일본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피고는 이런 사리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중근 : “결국 이토의 방법이 나빴기 때문에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상태에 이른 것으로, 만약 간책을 부리거나 강제협약을 하지 않았다면, 말할 것도 없이 동양은 지극히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6회 신문조서)
▶ 출처; 김삼웅(金三雄) 前 독립기념관장 著《안중근평전(安重根評傳)》시대의창編(2009년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