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도시와 도로를 만들었다면, 그 외 모든 것은 자연이 만들었다.
높이 나는 새는 외롭고 힘들지만 멀리 보고, 일단 오르기까지는 어렵지만 그 다음에는 쉽게 날 수 있다.
창의적 사고란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발상이다. 그것에는 항시 반전과 뒤집기의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여행이 단련시킨다.
1960년대 초 나는 예술과 나의 능력에 절망하여 자살을 생각했다.
나는 늘 그때처럼 출발선에 있고자 한다. 그 선에 있는 사람은 움직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려 있는 게 아니듯, 배는 정박하여 있으라고 있는 게 아니듯,
사람은 누워 있으려고 있는 게 아니다.
예술가란, 화가란 이 세상에 없는 것에 새로운 하나를 보태는 거다.
모네C.Monet가 말했다. 그림은 형벌이라고.
들라크리아E.Delacroix는, 화가는 피로 그린다고 했다.
피카소P.Picasso는, 대중들이 새 소리를 이해 못 하면서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려고 비난했다.
뒤샹M.Duchamp이 소변기를 보았을 때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따.
세잔P.Cezanne이 사과, 생트 빅투아르 산을 반복해 그릴 때 현대는 출발되었다.
정선이 금강산을 부채에 담을 때 우주를 그린 것이다.
한중일韓中日, 그 많은 서예가 중 추사를 뛰어넘는 작가를 본 일이 없다. 추사에게 귀양을 음모한 자들은
축복받을지어다. 그의 위대함에 일조했따.
김환기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화엄이고, 장욱진의 작품 모기장과 자화상은 무애無碍이다.
세 개의 사과가 있다. 세잔의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이브의 사과.
여행은 자기를 찾는 길이다. 나에게 그것은 여인과 같다.
머물기 위해 떠나지 않는다.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문다. 우리 삶 또한 그렇다.
호기심은 모든 인류 문명文明의 출발이다.
과학이, 예술이, 학문이, 사랑이, 여행이.....
여행은 설렘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것과의 만남, 생것에의 조우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별 지구를 구석구석 보고 싶다.
화가는 떠날 것이다. 어느날.. 그림과 짧은 글이 남는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세상은 그대로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의 생명에서 우리는 순환과 연기緣起를 발견한다. 아마존의 나비가 맨해튼의 금융가에 충격을 준다.
내 자식의 잘못에서 나를 발견하는 나는 괴롭고 기쁘다.
정글의 숙소에서 외부와 소식 두절, 그곳에는 비상시 여행객을 위한 무전기 한 대 뿐이다.
수도 리마와 아마존을 왕래하는 생활을 몇 개월 했다. 도시에서도 국제전화는 어렵고, 편지는 그 나라 국내에서도
실종될 때도 있고 늦게 배달된다 하여, 그 많은 팩스 샵의 이유를 알았다.
나와 한국가의 소통은 온통 팩스뿐이다. 팔 개월 양이 한 박스 된다. 내가 집을 빌려 살고 있는 동네에 단골 팩스집이 있다. 한번은 집에 보내는 글과 친구에게 보내는 글을 가져가서 서로 다른 곳이니 주소 확인하고 보내라고 했다.
이 가게 점원, 내 서투른 스페인어를 잘못 들었는지 두 통 전부 집으로 보냈다. 그 다음 집에서 난리가 났다.
내 친구 박국경 사장은 고교시절부터 단짝인 평생의 친구다. 이 친구에게 보낼 팩스에 안 사람이 싫어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가 광화문 단골 까페 식구들을 데리고 리마로 여행 갈 계획이라고 보낸 팩스에 내가 너무 기뻐 하루가 멀다고 기다리고 있다는 심정을 담은 글이었다. 나중에 보니 장난이었다.
팩스 가게에 가 야다니니, 그 친구들은 다 집 주소로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가끔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있었느냐고 물으니, 어이가 없었다. 라틴계는 태평하다.
이 친구, 우리 집에 전화하여 집사람에게 남편이 리마에서 어여쁜 여류 시인과 살림 차린 것 아느냐고 하니,
아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나는 이곳이 아름다워 있을 뿐이다. 개인전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아는 유일한 한국인들은 동네에 있는 한국식당과 그곳에 같이 있는 여행사. 나는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이 집들을 들른다. 우리나라 사람 보고 싶고 한국말 하고 싶다. 여행사의 페루 여직원은 미국 유학도 하고 집안이 좋아 보였다. 그녀가 내 숙소도 얻어 주었따.
그림 그리려 이 곳에 오래 머무는데 전시회 한번 안 하느냐고 하기에 그럴 생각 없다고 했다.
내 지난 전시회 카탈로그를 빌려 주었다. 내 그림 보고 페루의 저명 여류 시인인 그녀의 이모가 내 패트런을 자처하며 전시회를 추진, 그녀의 왕성한 활동에 힘입어 나는 가만히 집에 앉아 그곳에서 제일 유명한 프락시스 엔테르나치오날 화랑에서 한 달간 전시회를 할 수 있었다.
그냐가 우리나라 대사, 삼성과 엘지의 현지 사장, 국립미술관장을 다 만나 전폭적인 협조를 받아냈다. 나를 도운 페루 시인은 환갑이 지난, 세 번 이혼 경력의 거구의 여성이다.
친구 박국경의 장난이 돈을 아껴 쓰는 집사람으로 하여금 지구 반대편, 김포공항에서 제일 비싼 항공권을 사게 만들었다. 나중 그 친구 나에게 가히 반년분의 햇반, 인스턴트 국, 고추장을 보내 주어 그때 일이 탕감되었다.
집에 글 보낼 때 나는 미스티Misty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미스티가 아름다운 남미의 여자가 아니라 아레키파의 화산火山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비명碑銘은 참 많다.
호기심 많은 그는 환생하지 못할 것이요, 우주 구석구석 가 봉야 할 곳이 끝도 없을 테니.
그는 우물쭈물하다 죽지 않았다. 그리고, 즐기도 살았다. 매일을 마지막처럼.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은 개척자Pioneer다.
그래서 그림 그리고 여행한다.
새는 날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추락한다.
떠나기를 포기하는 때부터 나는 노인老人이 된다.
작가에게 여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여행은 다양한 시각체험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 자연과 문화를 만나게 한다.
이슬람 모그크의 문양, 유목민들의 태피스트리, 지구 끝 파타고니아의 설산과 평원, 거제도 바닷가와 설악의 사계,
그리고 밤하늘의 별, 이 모든 것이 내 그림의 부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