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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녀와의 약속시간은 3시.
평화시장 화훼단지에서 싱싱하고 좋은 꽃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군요. 좋아, 그럼 어제 로즈데이였는데 거기 가서 장미꽃이라도 한 무더기(100송이) 사갖고 바치자. 그리곤 사귀자고 하는거야. 좀 길었던 불안정한 솔로 생활 청산하자.
12시쯤 날아온 그녀의 문자, 4시 반에 보잡니다. 흠, 뭐, 혹시나 갑자기 취소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취소는 아니군. 차라리
잘됐지. 느긋하게 나가서 꽃다발 사갖고 가야지.
그래서 2시 반쯤 한시간만 자자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그저께 연이틀 농구를 했더니 피곤했거든요. (꽃을 사갖고 가겠다는 생각을 잠깐 깜박하고 자기로 맘먹은 거죠) 한시간쯤 자고 나서, 세안을 하려고 하는데 꽃다발을 사겠다고 맘먹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서둘러 외출 준비하고 평화시장엘 갔습니다. 그런데 평화시장은 아예 문 닫았더군요. 일요일엔 안하는가보다.......
그래서 진시장에서부터 서면 방향으로 곳곳을 돌아보면서 걸었습니다. 꽃집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문 닫았더군요.
왜 꽃집은 일요일엔 문 닫는거지???? 누군가가 꽃을 선물하려고 한다면 월요일보단 일요일에 더 할 것 같지 않나????
결국 지오플레이스 근처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약속장소인 롯데백화점으로 가자고 했죠. 기사 아저씨한테 가는 길에 꽃집이
있으면 그리로 가달라고도 했죠. 아저씨는 경찰서 앞에 한군데 본 곳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역시나 그곳도 문을 닫았더군요. 제기랄.
꽃 대신에 백화점에서 행사 중인 귀걸이를 하나 샀습니다. 그녀가 차가 많이 막혀서 좀 늦는다는 문자가 왔기에 곧장 가서
골라온 거죠. 꽃다발은 다음에 주고, 오늘 뭔가 주고 싶었던 마음은 이 귀걸이로 메우는 거야.
그녀와 만났고, 영화 써니를 봤습니다. 저녁으로 티쥐아이에서 세트메뉴를 먹었습니다. 마침 야구중계도 하더군요.
메뉴가 나오기 전에 귀걸이를 건네줬고, 귀걸이가 마음에 든다고 하길래 기뻤습니다.
그녀가 야구를 대단히 진지하게 보더군요. 야구공부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야구부 그만둔 이후로는
야구에는 관심 끊었었거든요. 하지만 언제라도 좋아할 용의는 있습니다. 그녀가 좋아한다면요.
금상첨화랄까, 연장접전 끝에 롯데가 이겼습니다. 기아 팬분들께는 안됐지만,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저도, 홀의 손님들도,
박수와 환호를 질렀습니다. 부산 사람들은 롯데 야구경기 있는 날엔 (좋은 의미로) 홀리건이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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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묵혀뒀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최근까지 남자친구가 있었던 때는 언제냐고 물으니 그녀는 작년이라고 했고요,
제가 솔직히 그녀를 의심했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다른 만나는 이가 있는건 아닐까 생각까지 했었다는 얘기를요.
그러면서 저는, 남녀 두 사람이 만나서 호감이 생기고 연인이 되려고 할 때면 남자가 보통 사귀자는 말을 하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선 남자 입장에서도 이 여자가 받아들여 줄 것 같다는 느낌이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2번, 제가 어버버 거리자, 3번...
"사귀자."
그녀의 표정은 찡그려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곤란한 문제를 안은 사람마냥,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왜 꼭 사귀어야 하냐고 하더군요.
자기는 지금 사귀게 되어 챙겨주고 할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yes, 제가 보기엔 그럴 열정도 의욕도 없어 보였습니다.
별 진전 없는 이야기가 조금 더 오갔고, 텁텁 시큼한 기분으로 집에 왔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녀가 정말로 그녀여야만 하기 때문에 사귀자고 한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냥 있자나요.
이제 정말 여자친구 하면 떠오르는 여자가 있었으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그녀라면 참 좋겠다 정도로는 생각했어요.
주변에 좋은 여자 많습니다.......... 호감을 표해온 이도 있었고.............. 제가 다가가고픈 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상대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그런 이들에게 어떤 선 이상의 관심을 표한 적이 없어요.
지금 기분은 많이 다르네요.......... 그녀가 저에게 그다지 마음을 주지 않는 것도 한몫 했고요.
그녀, 저에게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정말 일주일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지경이고 대화할 때
본인이 일부러 화제를 꺼내는 경우도 드물고 모든 면에서 소극적이었습니다. 데이트 할 때는 자기돈
한 푼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래가 열정도 의욕도 없는 여자라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어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태도를 보일지도 모르죠. 그건 제가 본바 없으므로 패스.
집에 오기 전에, 제가 그녀에게 말하길, 얘기 없었던 걸로 하자! 그러니까 꿍~ 해 있지 마~! 하고 왔어요.
그런데 제가 꿍~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