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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

황희창 |2011.05.17 13:59
조회 4,064 |추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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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4편 '낯선 조류'가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전 세 편의 감독을 맡았던 고어 버빈스키가 <시카고>를 연출했던

 롭 마샬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는데요,

 

부재도 '낯선 조류'인만큼 시리즈의 새로운 리부트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성공비결이 캡틴 잭 스패로우에 있다는 데에

 이견을 내놓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의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인 패션 센스는 롤링스톤스의 키스 리처드를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하죠.

거기에 조니 뎁의 소위 '게이스러운' 연기가 더해져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가 완성되었습니다.

 

시리즈 첫 편이 나오기 전, 제작사인 디즈니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친구 술 취한거야? 아님 게이야?" 라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게이스러움이 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시류를 사전에 캐치하지 못한 것이겠죠.

누가 옳았는지는 이미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판가름이 났고,

 당시 항의했던 이들은 어쩌면 사표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진부한 캐릭터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성적인 면모를 갖춘 남성캐릭터가 넘쳐나는 요즘에는

오히려 진한 남성스러움을 풍기는 과거의 남성 캐릭터들이 그리워지는군요.

트렌드는 돌고 도는 것인만큼, 남성다움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오늘은 비교적 최근인 21세기 영화들 중에서

드물게 남성스러움을 뽐내는 캐릭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허트로커’의 제임스 중사는 폭발물 제거반(EOD) 소속입니다.
신인 배우 제레미 레너가 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고,

본 시리즈의 차기작에도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고 하니,

현재 뜨는 별이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제임스 중사가 해체해야 하는 폭탄은 IED입니다.

급조폭발물이라는 뜻으로 전장에 즐비한 불발탄 등 임시로 조달 가능한

폭발물질로 만들어진 사제폭탄을 말합니다.

 외양은 조잡하지만 위력은 엄청나죠.

 

이런 엄청난 위력의 폭탄을 제거하면서, 미세한 움직임에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단순한 담력을 넘어서 그야말로 남성적인 매력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

 

저도 다비도프 한가치를 입에 물고, 폭탄을 제거하는 대신 

실제 폭발장면을 촬영한 위력적인 영상이라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IED는 그 제조방식이 수백수천가지이기 때문에, 해체가 무척 어렵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불시에 앗아갈 수 있는

이러한 폭탄을 선뜻 나서서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제임스 중사는 이 IED를 837개나 해체해 온 프로 중의 프로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가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은 폭탄이 터지는 광경보다 스펙터클하죠.

허나 눈여겨볼 것은 그의 담력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과 프로정신입니다.

 

 

타이머보다는 휴대폰 등을 이용한 원격 콘트롤로 작동되는 경우가 많은 IED의 특성상,

폭탄해체를 지켜보는 현지인들이 많다면 해체를 포기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 중에 테러리스트가 끼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임스 중사는 후퇴 명령이 들려오는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해체 작업에 열중합니다.

마치 세상에 폭탄과 중사 둘만이 남아 대결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영화 후반 자신의 아이를 향해 읊조리는 그의 대사는 인상적입니다.

 

'내 나이쯤 되면 너도관심거리가 한두 가지로 줄어들거야. 내 경우엔, 하나뿐이지’

 

폭탄을 해체하다 폭탄과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의 서투른 사랑고백 같지 않나요?

90년대의 영화 ‘그랑블루’가 열정을 향해 목숨을 내던지는 남자들의 서사를 그린 작품이었다면,

허트로커야 말로 2000년대 판 그랑블루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임스 중사에게 어울리는 향기는 역시 스파이시한 진저향을

메인으로 한 불가리 블루 뿌르옴므가 아닐까요?

 

폭탄을 다루는 차가운 이성과 그를 향한 충동적인 열정이 공존하는 제임스 중사에게는

대표적인 남성 향수 불가리 블루 쁘루옴므의 상반된 향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느낌이 잘 맞을 듯 합니다.



 

남성성을 주제로 한 포스팅에 ‘브로크백 마운틴’ 이야기를 꺼낸다면 이상하려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이크 질렌할이 맡은 배역을 여배우가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마찬가지로 가슴 뭉클한 로맨스 서사가 탄생하지 않나요?

히스 레저가 연기한 에니스 델마야말로 천상 남자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가슴 속에 묵직한 사랑을 얹고 있는 남자.


 

문득 아쿠아 디 지오 옴므가 연상되더군요.

우디 베이스 노트의 은은함과 지속성.

그가 사랑하는 방식에 잘 어울리는 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미들 노트의 바다향에서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광활한 자연이 함께 떠오릅니다.


에니스 델마는 사람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괴로운 사랑에 빠졌습니다.

비록,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그 사랑으로부터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지독한 마초였던 아버지의 손에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두려워하면서도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그의 남성적 캐릭터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이혼한 뒤에도 딸의 양육비를 대는 것만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인생선배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모습.

잭을 잃은 뒤에도 슬픔을 지그시 눌러 참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줍니다.
그는 앞으로도 후회 속에서 살기보다, 그와의 추억을 기리며

남은 삶을 조용히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준 히스 레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떠올라 담배 생각이 간절해 지는군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보여준 원숙한 남자의 향기는 어떤가요?

흔한 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남자의 화법은 참 몰인정하죠.


“시간낭비야, 난 여잔 안 키워”

“샌드백이 널 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치면 내 평판만 나빠지지”


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실망하고, 배신당하고, 상처받기 쉽상이죠.

 

남에게 얼마나 마음을 열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은 시간밖에 없습니다.

신체의 강도가 점점 약해진다면, 마음의 강도는 점점 세지는 것이죠.

그래서 주변의 어린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감정의 파고가 높은 것이 부러운 한편,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프랭키가 체육관에 찾아온 메기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 그것 아닐까요.

메기의 활기 넘치는 모습에서, 쉽게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운명을 예감한 것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깊은 눈매는 그러한 예언적인

느낌을 뿜어내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노년 여성이 원숙미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성의 것과는 느낌이 다르달까요.

여성의 원숙함이 ‘현명함’에 기인한 것이라면 남성의 원숙함은

좀 더 거친 풍파를 거치고 난 후의 ‘관조’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늙은 숫사자의 눈빛이랄까요?

더 이상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긴장을 풀고서 조용히 세상의 흐름을 지켜보는 느낌.


 

 


이러한 프랭키에게 어울리는 향은 향수가 아닌 다비도프의 향을 매치시키고 싶군요.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성숙하고 단단해진 프랭키에게는

화려하고 산뜻한 향들 보다는

진중한 무게감과 깊이 있는 진한 향이 특징인

다비도프가 무척 잘 어울리죠.

 

깊이와 무게라는 것은 단 시간에 묻어나오는 것이 아니죠.

거친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고 그 위로 묵직하게 피어오르는 걸 텐데요.

인생의 깊이를 깨달은 듯한 원숙함이 거칠고 강렬한 매력으로 느껴지는 프랭키에게는

클래식함을 추구하는 다비도프의 향이 딱인 것 같습니다. 

 

 

 

양성 평등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평등이 꼭 성 역할의 공평함을 의미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나쁜 의미의 마초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굳건한 등과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마초스러움은 지금의 시대에도 남자가 가져가야 할 미덕이 아닐까 싶은데요.

 

 

포스팅을 마치며 다비도프 한 개비를 꺼내 물어봅니다.

히스 레저를 추억하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빛을 떠올리며,

 잊혀져 가는 남성성을 그리워하며.


남성의 향수 또한 조금씩 가벼워지고 달콤해지는 것이 트렌드인데요.

이참에 한번쯤은 진하면서 묵직한 향기를 간직한 향수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겉으로만 풍기는 것이 아닌 진중한 내면의 남성성을 갖추는 것이 먼저겠죠.

누군가 그러더군요. 남자는 입이나 주먹이 아니라 등으로 말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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