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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반대한 서석구 주장이 헛소리인 이유

ㅇㅇㅇ |2011.05.26 20:37
조회 1,582 |추천 2
서석구,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내용

서석구: 서해바다를 통해가지고 그리고 큰 배로 해가지고 작은 배로 다 분산을 해가지고 조로 나눠가지고 침투해 와가지고 북한 지령대로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국군이 죽인 것처럼 뒤집어씌우고 올 때는 바다로 왔지만 갈 때는 산을 통해가지고 계속 산을 탔는데 낮에는 들킬까봐 그냥 잠복하고 밤에만 움직였다, 야간행군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북한에 가니까 자기들 조원들 가운데 반수가 결국은 돌아오지 못해가지고,
손석희:그러면 그 반수는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서석구: 그러니까 사망한 걸로 추정하는데,  다만 이 광주사태 영웅묘지가 북한에 있고 그 62명이 어버이수령 훈장을 받은 걸로 봐서 결국은 그 62명 살아남아온 사람들하고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영웅이 안 됐겠습니까. 그래서 그 구체적인 숫자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떻든 북한의 영웅묘지가 광주사태 영웅묘지가 있다는 것이 충격적인 것이죠.

 
일단 5.18 당시 전라남도는 6.25보다도 더 경계가 강화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이 발발하기 직전 전국에는 비상계엄령에 내려져, 해안이 봉쇄되고 군인이 도로마다 검문을 실시했다. 전라남도에서는 5월 21일 14시부로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전 해양경찰에 해안경계태세 강화지시가 떨어졌다. 전남일대 전 해안에서 대간첩 침투작전 부대로 31사단 93연대가 목표지역 해안을 맡았다. 95연대가 고흥 여수 지역, 96연대가 무안 영광 지역 해안경계를 했다. 더구나 인구 70만 도시인 광주를 상무대, 공수부대 3개여단, 기계화보병사단, 31사단 병력 약 2만으로 무등산 산길까지 포위하고 있었다. 이렇게 경계가 강화될 때 600명의 무장공비가 후방지역에 해안지역에 침투했다 육로로 마음대로 이동했는데도 단 한명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서석구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모순되는 점이 있다. 서석구 말대로 광주에 침투했던 북한특수부대원 600명 중 절반 가량이 돌아오지 못했으며, 북한에는 돌아오지 못한 특수부대원을 기리기 위한 62기의 비어있는 영웅묘지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5.18 민주항쟁 진압 이후, 국군과 무장공비와 교전 기록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무장공비 수십, 수백명 사살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5.18 진압 이후, 단 한 차례도 대규모 교전 기록이 없었다. 만약 교전 기록이 있었다면 광주를 강경진압하고 들어선 제5공화국 정부는 무장공비가 개입했다고 선전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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