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아직 이른 오후라서, 급할 것은 없었으니..
양곤 시내 중심가를 배회하면서,
좀 현대식 백화점 같아 보이는 곳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구해보기로 했다.
(시장에서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진짜일지 아닐지 모르겠어서...)
비가 그치고 좀 있으니 다행히 종아리까지 차오르던 물은 많이 빠져있었지만...
미칠듯한 더위가 덮쳐왔다
나의 생명수 1L짜리 물과 우산(겸 양산...)을 들고 다시 시내로.
게스트 하우스 바깥으로 나오니 외국인은 안보였다.
나는 나대로 남녀 할것없이 긴 치마로 된 전통의상인 롱지를 입고 거리를 걷는,
미얀마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미얀마 인들도 난데없이 양곤 거리에 떨어진 어리버리하고 희멀건 외국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 미소와 함께 밍글라바라는 인사.
호기심이 많은 아저씨며 청년들이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걸지만,
그게 뭐 차마시자, 너 예쁘다(물론 이것은 내가 예쁘지 않아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음)
술 같이마시자(미얀마인들 본인들이 술을 별로 안 먹기도 한다)
이런 추근거림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순수한 사람들...
사실 미얀마에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꽤 많았다.
키가 크진 않지만 마르고 길쭉길쭉한 체형에, 전통의상을 입고,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순수한 눈빛을 가진, 그림 엽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들..
특히 흰 셔츠에 검은 롱지를 입고, 강아지같은 눈빛을 한 훈남들은... (핡)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무지하게 귀엽다.
어린 스님들?? 쓰러진다... 엄마 미소를 띄고 바라보게 되는.
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졌다.
백화점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판장 정도규모의 상점들 몇 군데를 들렀는데...
선블록이 없숴 ㅠㅠ
뭐 찾다 보면 파는곳이 나오겠지.
안나오면 현지화해서 타나카라도 바르고 다니면 되고.(그럴거면 롱지도 입을래)
걍 느긋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매우 매우 길치인 나에게 론리플래닛 지도는 판독불가(바보다). 걍 가이드북 집어 넣고,
군데 군데 자리잡고있는 노점에서 군것질거리들을 사다 먹고,
파는 야채며 과일만 달랐지, 분위기는 우리나라 시골 5일장을 연상시키는 시장골목이 나오면
쏙 들어가서 구경하고 하면서
무작정 길을 걷고 있는데...
현대식 건물이다!!!!!!!!
City Mart라는 곳.
에어컨도 있었다. 할렐루야. 아멘 ㅠㅠ
그리고...
선블록도 있다!!!!! 하나 남은 니베아 선블록. 8500짯.
득템!!!!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만원정도이니 비쌀 것도 없지만, 여기 물가를 안 이상 무지하게 귀물로 보였다 -_-;;
덕분에 내 피부는 고사를 면했다.
갔던 길을 되돌아 가고 있는데,
길이 아리송하다... (사실 양곤은 길 찾기가 매우 쉬운 곳이다. 내가 병신임.)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잡고 방향을 물어보고 있는데
한 스님이 "Can I help you?" 라고 영어로 말을 걸어오셨다.
"술레 파고다로 가는 길을 찾아요."
"안내해 줄 테니 날 따라오렴. 근데 밥은 먹었니?"
"아니요. 아직...."
"그럼 밥부터 먹을래?"
원래 현지인을 함부로 따라가는 것은 안될 일이겠지만,
치안이 안전한 미얀마에서, 스님으로 분장한 사기꾼이 나를 해코지할 확률은 0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스님을 따라 나섰다.
(여기가 미얀마니까 할 수 있는 일. 다른 나라에서 그러면.. 레알 엿될듯.)
어디로 안내해 주시려나... 오늘 저녁은 풀밭인가-_- 나 고기테리언인데...
스님이 안내해주신 곳은 중국식 식당.
메뉴는 다 버마어로 적혀있는데
스님 왈, "chicken or pork?"
읭??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치킨!!!!!! -_-;
나온 것은 치킨 만두와 그리고 미얀마식 밀크티였다.
만두 소가 우리나라처럼 자잘하지 않고 큼직큼직한 느낌? 맛있었다.
스님은 차만 드시고.. (수행의 일부로 저녁을 드시지 않는다고)
스님은 출가하신지 18년 되셨다고 한다.
어느 사찰에 소속된 분은 아니고, 때로는 나무 아래에서 주무시고, 때로는 사찰에서 하룻 밤을 청하기도 하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시면서 수행하신다고.
한국과 북한 양쪽에 관심이 많은 스님의 질문에 이것저것 답하기도 하고,
스님에게 미얀마에 대해 (정치적인 것 빼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면서 즐거운 저녁을 먹었다.
계산하려는데, 연거푸 사양했는데도 밥을 사주신다...
감사 ㅠㅠ
스님은 나에게 치킨만두와 차를 사주시고, 그리고 시장에서 300짯짜리 바나나까지 한송이 안기시고, 나를 술레 파고다에 데려다 주시고 갈길을 가셨다.
미얀마에 들어온 첫 날, 어리버리한 이방인에게 베풀어주신 친절에 감사드리며...
스님이 사주신 바나나는,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과 함께 잘 나눠 먹었다.
우리가 보던 바나나보다 좀 짤막하고 넓적한 느낌에
되게 달콤하고 살짝 신 맛이 돌면서 진한 향기가 나는 바나나.
내가 먹던 보통의 바나나랑 맛이 조금 다르다고 하니
우리한테는 이게 보통 바나나라는 응수.
당연한 얘기인가.... ㄱ-;;;
이렇게, 미얀마에서의 첫 날은 끝이 나고...
도미토리 같은 방을 쓰는 이탈리아인, 일본인들과 몇마디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나라. 아름다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