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한 번 떳떳하게 거울 앞에 서 넥타이를 꼭꼭 매듭지며 이번엔 긴장하지 말자, 하지 말자, 하고 나는 주문을 건다. 이건 아버지를 위한 넥타이. 이건 아버지를 위한 넥타이. 반드시 통과해서 자꾸 작아지는 아버지를 크게 모시고 말리라.
2. 다섯 명으로 이뤄진 한 조. 얼굴도 다 반반한 경쟁상대들.
제발 1번만 아니기를 나는 소원하고 또 소원한다. 제발 1번만 아니게 해주세요. 1번이란 번호 때문에 나는 지난 면접 동안 얼마나 그렇게 벅벅거렸나. 자, 이용현 씨부터 자기소개 해보세요. 라는 말이 제발 나오지 않기를.
3. 3번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나는, 어젯밤 그리고 며칠 내내 연습했던 자기소개서를 완벽하게 낭송한다. 짧고 굵게- 그러면서도 틀리지 않게. 역시나 나를 제외하고도 다른 면접자들까지 입에서 줄줄 자기를 풀어낸다. 역시 강적.
4. 그럴듯한 면접을 마치고 사람들의 얼굴은 푸석푸석하다.
30분의 면접이 모두의 얼굴을 곰팡이처럼 곪게 만든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뭔가 아쉬움.
아, 이건 아닌데.
5. 커피 한잔하죠. 라는 말에 피식 웃으며 다섯 명의 면접 동기들은 한치의 저항도 없이 커피숍으로 향하고 서로의 잘못된 점과 잘된 점을 지적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에! 처음 면접을 봤다는 사람이 둘이나 되는데 그것도 나이도 어린 사람들이 무슨 면접을 그렇게 잘 보는지.
진짜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고 나는 놈위에 하늘에서 지켜보는 놈이 있다.
6. 12시부터 시작된 반주는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저기 술 한 잔 할까요라는 말에 좋죠라는 말이 어둠이 올 때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모두 면접- 이란 그리고 취직이란 문턱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절실한지도 그때서야 알았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생인 한 녀석은 나처럼 1년이나 구직활동에 나서고 있는 중이고 동년배인 한 녀석도 1년 반째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나머지 동생들도 가정형편이 너무도 어려워 좋은 고스펙을 가지고도 자신과 타협하며 오로지 수입, 수입을 위해서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고.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닌 세상의 흐름인가.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실패자로 낙오되는 이 사회의 분위기는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고 메마르게 한다.
지금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죽은 영혼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면서 또 울고 있을까. 나는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이 사회의 제도 속에서 불행함과 비참함을 느끼며 비린 소주를 마신다.
팔이 아프도록 소주 잔을 꺾는다.
7. 나처럼 이일 저일 다 해본 녀석이,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혼자서 매일마다 펑펑 울어서 결국엔 눈물 때문에 망막이 깎여나가 시력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울컥한다. 게다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이를 꽉 깨물고 모든 걸 하다보니 잇몸이 약해져서 이3개가 지금 내 입속에 없다고.
어, 진짜? 나도 나도 그런데. 하면서 와- 나랑 같다- 말하는 다른 녀석의 이야기는 또 나를 얼마나 무너트리게 하던지.
그럼에도 진짜 너무 힘들지만 미래를 생각하면서 모든 통증을 참아내고 있노라고. 나는 내가 부끄러워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소주를,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마시지도 않는 소주를 연거푸 먹는다.
오늘 내가 먹는 소주는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샷.
8. 굴곡이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굴곡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잘 포장하고 감싼다. 어느 누구가 자신을 무시하지 않게, 자신은 자신에게 이미 상처받았으므로 남들에게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굴곡진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반반하고 당당한 모습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좋은 차, 명품 가방, 시계, 반반한 옷 등으로 외면을 감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어서 또 스스로 넘어질 것만 같아서 사람들은 겉으로 단단한 척을 하고 강한 척을 한다. 그러나 진짜 멋지고 강한 사람들은 겉으로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고도 포장하지 않고도 시련을 감추기 위해 겉모습을 허울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상처를 자연스럽게 상대와 함께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바람에 자연스럽게 풍화된 바위가 인공으로 깎아내린 것보다 아름답듯이 상처를 감추는 데에 급급하지 않고 조고조곤 자신의 상처와 남의 상처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정말 그 어떤 누구보다 사람다워 아름답다.
그래서 어제 우리가 서로에게 드러냈던 각자의 상처들은 어떤 고급 외제 차보다 명품 가방보다 럭셔리했고 비쌌다.
경쟁자이기 전에 힘든 삶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반자들의 삶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