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분명 분노 할 일입니다.
목이 터지도록 힘내라고 소리지르고,
한골 한골에 눈물 흘리며 박수쳐주고,
시합이 끝난 뒤 그라운드에 누워버리는 선수들을 향해
환호성 질러주고,
이런 모든걸 쓸모없는 일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렵사리 찾아간 경기장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가 15분만에
3-3으로 비겨버리는 경기를 눈 앞에서 봤던 저로서는
그 경기가 승부조작에 의한 것이었더라면 역시 분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노하기 전에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중엔 널리 알려진 선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비중없는 컵대회에 겨우
얼굴을 내밀던, 그 정확한 네티즌 수사대에도 쉽게 걸리지 않는
선수들 인걸 아시나요.
정말 싸움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대뽀 하나 믿고
무기들고 덤벼대는 사람들이 해외전지훈련장 까지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나요.
리저브 리그에서 피 땀 흘려 뛰던 선수들,
그 선수들에게 박수를 한번 쳐준 적 있나요.
"다시는 축구 보나봐라."
이런 말 마세요. 언제 '월드컵' 말고 '축구'를 보신 적 있나요?
분노하기 전에, 실망하기 전에,
자신을 돌이켜보세요.
보통 실망은 기대에 비례하여 생겨납니다.
욕하는 분들중에 대한민국이 16강에 드는 것 말고,
술집에서 소리지르면 뛰어다니시던 분들 중에 마음속으로,
자신의 지역팀이 6강 플레이오프에 드는 걸 소망해 본 적이 있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시나요.
기대도 하지 않았으면서 실망하는 척 하지 마세요.
분노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피 땀 흘려 뛰는 선수들 욕먹이던,
팬들의 목소리보다, 협박이 아닌 돈에 넘어갔던 선수가 진정 있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축구계에서 떠나주길 부탁합니다.
주말마다 축구장 찾아가서 목 쉬고 돌아오는
사람들 부끄럽지 않게 해주세요.
욕하는 분들 중에서 자신이 분노하기 전에,
연루된 선수들 중 자신이 진정 부끄럽다면 팬들이 분노하기 전에,
모두 알아서 처신 해주세요.
전 조용히 다음 주에 시즌권 가지고 축구장 찾아가렵니다.
축구판 말고 축구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