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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애국헌장

대한민국 |2011.06.02 18:17
조회 52 |추천 0

대한민국,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 잃어버린 대한민국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우리 민족끼리 살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쇄국정책으로 대한민국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낙오되었다. 그 결과 1910년 한일 병합이 되어 36년 동안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다. 지구촌에서 사라질 뻔했던 대한민국이 3. 1 독립운동을 통하여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고 7,500여명이 생명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소련은 김만겸을 이용하여 박헌영 등에게 공산혁명을 전수시켜,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을 창당하여 공산주의 혁명을 시도했다. 그 해 신의주사건으로 인하여 조선공산당 대표인 박헌영이하 66명이 구속되고 37명이 수배를 받았으나 그 세력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본의 식민통치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나라는 물론 말과 이름, 심지어 성까지도 빼앗겨 버려 역사에서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미국이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므로 기적 같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 대한민국 건국

 

무정부상태에 빠진 대한민국은 어떠한 정치 체제를 선택하느냐를 놓고 미국과 소련, 민족지도자들이 심각한 논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상해에 있던 김구, 미국에 있는 이승만등 해외 독립 운동가들이 귀국하기까지는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미군은 오키나와에 있었다. 이 틈을 타 국내에 있던 박헌영은 1945년 9월 6일 전국에 147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무정부 상태에서 정부행세를 하였다. 박헌영이 일본인 명의의 적산과 토지 등을 강제 몰수하여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시행한다고 국민들을 선동하자 남한국민의 78%가 이를 지지하여 대한민국은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조선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갈 뻔했다. UN과 미국의 협조로 1948년 5월10일 남한만의 총선을 통해 8월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박헌영과 남로당은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무장폭동을 일으켰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민족이라는 혼돈된 이념에 빠져있던 김구 와 공산주의자들을 제압하고 ①자유민주주의 ②시장경제 ③한미동맹 ④보안법 등 건국의 4대 기둥을 세우게 되었다. 그 틀 위에서 4.19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거쳐 민주화를 이루게 됨으로 세계경제 10위권의 중심에 서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다. 이에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UN의 결의와 온 민족의 염원을 무시하고 1948년 8월 25일 북한 자체선거를 통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고, 남한의 남로당과 공산주의자들을 선동하여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11만 명의 병력과 240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전면 남침하여 4일 만에 국군 4만 4천여명을 살해하고 서울을 점령하는 등 6.25 한국전쟁을 일으켜서 이 땅에 500여만 명을 희생시켰다. 그들은 ①공산주의 ②통제경제 ③조중동맹을 선택했으나 60년이 지난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인간이 살 수 없는 패륜국가로 전락하였다.

 

 

◆ 혼돈에 빠진 대한민국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역사를 왜곡하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친북좌파 사상을 가진 자들이 일어나, 6. 25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고, 미국은 한반도를 분단시킨 원흉이라고 하는 등 해방 후 박헌영과 남로당의 목표였던 인민공화국 건설을 위해 각계각층에서 거짓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며 그들의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친북좌파 사상을 가진 대학교수들과 전교조, 한총련과 일부 정치인들은 미군이 침략군으로 한국에 주둔한다고 하며, 여수14연대 반란사건을 봉기라 하고 제주 4.3사건을 무장봉기로 둔갑시키는 등의 위험한 사회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뿌리채 흔들려 하고 있다. 그들의 세력이 극도로 확장되어 해방 후 78%의 국민들이 박헌영과 남로당에 속았던 때를 재현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성장하는 시대적 사건마다 여러 형태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은연중에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교활한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일어나는 대한민국의 상처와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를 분열시켜서 일 년 국가예산을 능가하는 경제적 손실과, 선진국과 자유통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므로 국가와 사회에 혼란과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이제 우리는 60년의 대한민국 역사로 입증된 것을 거울삼아 더 이상 한국현대사의 거짓논쟁으로 대한민국을 흔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박헌영과 남로당의 정신적, 육체적 후예들로 자처하는 친북좌파 그대들이 잘못한 것을 역사 앞에 시인하고 참회하고 화합하여 조국 대한민국이 자유통일된 일등국가가 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잘못된 사상유전자를 가지고 국민 속에 숨어 대한민국의 발전을 방해하며 친북좌파운동을 계속한다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결코 당신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이 자유통일과 세계 속의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진통이 있을 수 있으며 걱정스러운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단코 한뜻과 한마음으로 뭉쳐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국민소득 4만불, 복지국가, 자유통일조국,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합시다.

 

 

◆ 주한미군은 침략군으로 왔다는 거짓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1절 85주년 기념사에서 미군이 용산미군기지에 침략군으로 와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과연 그러한가. 2차 세계대전은 동쪽으로 일본과, 서쪽으로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서 일어났다. 1945년 4월 30일에 히틀러가 애인과 함께 자살하고, 5월 8일에 독일이 항복하자 소련군이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하여 극동으로 이동하였고, 미국이 일본에 대하여 원폭을 투하하자 소련은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만주와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하여 급속도로 남진하게 되었다. 이 때 미국은 소련으로 하여금 38도선을 넘지못하도록 요청하였다. 미군은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 35만명의 항복을 받기 위하여 한국에 상륙하자 남로당과 좌파들이 극렬 반대함으로 1949년 6월에 전면 철수하게 되었고, 그 후 인민군은 6.25남침을 하였다. 이로보건데 미국은 한국에 재파병할 뜻이 없었으나, 이승만대통령의 요청으로 6.25때 한국에 재파병하게 되었다. 미군이 아니었으면 해방도, 자유대한민국도 벌써 공산화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침략군으로 왔다고 하는가. 미군이 침략군으로 왔다고 하는것은 친북좌파의 반미사상을 가진 남로당 후예들의 거짓 선동인 것이다.

 

 

◆ 한국 분단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거짓주장.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기울어지자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은 여러번의 회담을 통하여 전후문제를 상의하였으나, 독일 문제로 인하여 한국 문제는 중심의제가 되지않았다. 여러번의 회담이 있었으나 한국에 대한 명문화된 결정은 없었고 독일문제에 지나가는 의제로 거론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이 일본의 패전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일본과 한반도에 대한 기득권의 의도를 주장함으로 여기에 맞서 미국과 영국을 중심한 국제 사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한반도 전후처리와 건국에 개입하게 되었다. 만약 그 당시 미국이 소련의 주장에 방관하였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루스벨트의 관심사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과 독일이었고 한국문제에 대하여는 소극적 자세였으나, 원자폭탄 투하 후 소련이 루스벨트의 38도선을 받아들임으로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분단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라고 하는 자들의 주장대로라면 그 당시 소련이 한반도를 전체 점령하려고 했을때 미국이 동의하여 점령하게 했어야 했단말인가. 참으로 거짓된 주장인 것이다.

 

 

◆ 6.25전쟁은 북침이라는 거짓주장.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주장을 하는 일부 친북좌파, 교수, 한총련, 전교조, 정치인들로 인하여 큰 혼돈에 빠져있다. 과연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 이 문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6.25당시 소련의 문서, 중국과 소련의 참전자들의 증언, 그 당시 38선 주위에 살았던 양쪽 국민들의 증언과, 심지어 북한군으로 참전했던 자들까지도 6.25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한국을 공산화 하기위하여 일으킨 전쟁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6.25가 북침으로 시작되었다면 ① 단 1미터라도 공격자가 북한으로 진격한 흔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에 인민군 11만, 240대 전차를 가지고 38선 전역에 남침함으로 전쟁이 시작되어 9시30분에 개성이 점령된 것으로 보면 남침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② 6.25당시 남한에 배치되어있는 전방군인 3분의1이 모내기 휴가를 갔을때이다. 어떤사람이 전쟁을 한다고 하면서 군인을 휴가 보내는 자들이 있겠는가. ③ 전쟁전력상 남한은 전차도, 화력도 없는 허약한 상태에서 전차 240대를 보유한 북한인민군을 밀어내고 북침할 수 있겠는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과 사회일각에서 끊임없이 퍼트리는 6.25전쟁의 북침설을 동조하고 교육하는 거짓 선동자들에게 물들어 가고있다. 는 거짓 선동자들에게 물들어 가고있다.

 

 

◆ 남로당 후예들의 거짓선동.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한다. “이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은 북한의 인민공화국이다.”라고 주장하는 남로당들의 후예들은 그 정체를 밝혀야 할 것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으로 기적같은 해방이 되자 상해에 있던 김구와 미국에 있던 이승만이 국내에 들어오는데는 두달 이상이 걸려 한국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때, 박헌영이 남로당을 통하여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허위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김구를 총리로 추대한다고 하며, 토지를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통해 사회주의를 선포하자 이에 국민들이 78%가 현혹되어 이를 지지하게 되었다. 그러면 박헌영은 누구인가. 박헌영은 충남 예산출신으로 경기고등학교 재학중 3.1독립운동 때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게 처형되는 것을보자 미국에 가서 공부하여 이승만같이 독립운동가가 되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 상해에서 공부하던 중 소련에서 보낸 김만겸에게 포섭되어 공산주의 혁명을 전수받고, 현금 300만원을 지원받아 1922년 국내에 잠입하여 공산주의 혁명을 통하여 독립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어 형을 산 후에 1938년 2차 공산주의 재건을 시도하다 발각되자 전남광주 벽돌공장에서 성과 이름을 바꾸고 변장하여 45년 해방때까지 공산당 지하조직 운동을 하였다. 해방이 되자 김구와 이승만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 선수를쳐서 이 땅에 공산주의 혁명을 시도하였다. 이승만과 김구가 들어오자 끊임없이 공산주의로 회유하였으나 이승만은 박헌영의 주장을 제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이때 박헌영은 유엔의 결의하에 이루어진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탄생의 선거를 방해하기 위하여 전국에서 2.7폭동과 4.3폭동을 시도하였다. 1946년 9월 5일 박헌영은 위조 화폐 사건으로 경기도 포천에서 장례식 행렬속에 숨어 북한으로 도망하게 되었다. 북한으로 도망간 박헌영은 남한에 구축한 78%의 남로당을 김일성에게 과시하며 남조선 인민해방전쟁 즉, 남침하여 남한을 점령하자고 선동하자 이에 김일성이 북한인민군을 동원해 남침하게 되었다. 유엔군의 개입과 김일성의 작전실패로 인민군 남침이 실패하자 김일성은 그 책임을 박헌영과 남로당에게 전가하여 그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는 남로당의 육신적, 정신적 후예로 자처하는 자들과 일부 정치인과 교수와 많은 교사, 노동자, 법조인, 종교인, 문화예술인들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사회각계에서 그들의 혁명을 확장하기 위하여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대들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면 차라리 북한으로 가서 살면 될 것이다. 친북 좌파들은 우리 자유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인간들이다. 국에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인간들이다.

 

 

◆ 제주 4.3사건에 대한 거짓주장.

 

노무현 정부는 제주도 4.3사건을 무장봉기라 하여 특별법을 만들어 1만 2천명에게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로 결정하였다. 국군과 경찰이 아무 잘못이 없는 1만2천명을 죽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주도에 600억원을 들여 12만평의 평화공원을 설립하여 역사를 거짓으로 바꿔놓았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날 수가 있는가. 그러면 제주4.3 사건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의 동의로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하여 나라를 세우려 했으나, 북한이 거부하자 다시 유엔에 상정하여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 먼저 선거하여 정부를 세울 것을 결의하자 김일성은 박헌영과 남로당을 동원하여 2.7 , 4.3 무장폭동을 통해 대한민국 탄생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때 전국각지에서 많은 폭동이 있었으나 특히 제주도는 남로당 좌파와 김달삼이 주도하여 파출소를 불태우고 우익과 선거관리인 235명을 처형하고, 이승만의 대한민국을 지지하는자 1,650여명을 죽이고, 태극기를 내리고 인민공화국기를 세워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내란을 일으켰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내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여수에 있는 14연대 1개 대대를 파송하려고 했으나, 14연대 안에 좌파남로당원의 반란으로 여수,순천에 반란이 일어났다. 그 후에 대전의 2연대를 제주도에 보내서 빨치산의 무장폭동을 진압하게 된것이다.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는 폭동을 일으켰던 주범을 비롯하여 빨치산의 핵심 주동자들을 제주4.3 희생자로 결정하였고, 국군과 경찰이 아무 잘못이 없는 제주양민 1천2백여명을 죽였다고 말하며, 1인당 2억원씩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역사를 거짓으로 바꾸어 놓은 용서할수 없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 중 한나라당까지도 이에 속아 동조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이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시민들은 좌파정부가 왜곡한 거짓역사를 바로 잡고 거기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 사실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친일파를 방조한것보다 더 큰 역사적 죄를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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