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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전기』1홍성의 꿈나무 ⑵

대모달 |2011.06.03 00:41
조회 89 |추천 1

 

★ 월선지의 효자(孝子) 동자

 

갓 서른 살에 혼자가 된 과부(寡婦)의 마음은 항상 울적하며 막내 동진이 배고파 울때마다 아버지 잃은 슬픔으로 들렸다. 30여명의 노비들은 언제나 북적거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주인을 잃은 김 참봉 자택에는 어딘가 텅빈 집 같아 보였다. 그러나 혼자된 이씨 부인은 옥출(玉出)·경진(景鎭)·좌진(佐鎭)·동진(東鎭) 4남매의 양육을 혼자서 양육하느라 남편을 잃은 슬픔을 오래 간직할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식 흘러 내리는 슬픔의 눈물은 누구에게도 감출 수가 없는 법이다.

 

그 날도 이씨 부인은 동진이에게 모유를 먹이려 안방에 들어왔다가 입술을 깨물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안방문이 불쑥 열리더니 한 손에 막대기를 든 좌진이 불쑥 들어왔다. 깜짝 놀란 이씨 부인은 얼른 옷고름으로 눈물을 씻고 태연한 채 동진이에게 모유를 먹였다. 그러나 좌진의 눈치는 어머니의 손보다 빨랐다. 그때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던 것이다. 좌진은 밖에서 왁자지껄대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풀이 죽은 얼굴로 물었다.

 

“엄마... 왜 울어? 아빠가 안와서 그래?”

 

“울기는... 눈에 티가 들어가서 그만 눈물이 나왔지.”

 

이씨부인은 애써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빠는 어디로 가서 안와?”

 

“아빠는 아주 먼 곳에 가셨단다. 다시 오시지 못할 곳이지.”

 

“그런 데가 어디있어?”

 

“저 하늘의 나라로 떠나면 이 세상에 다시 못 오는 거란다.”

 

어머니는 칭얼거리는 동진을 꽉 끌어안으며 끓어 오르는 슬픔을 짓눌렀다. 그러나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좌진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람이 새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 있어? 그럼 다시 이 땅에 날아서 돌아오면 되지, 왜 아빠가 다시 못 온다는 거야?”

 

“웬 녀석도...”

 

어린 아들의 천진스러운 물음에 이씨 부인은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북받쳐 올랐다. 그러나 좌진의 소견으로는 어머니의 속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한참 제멋대로 중얼거리더니 방문을 열고 동동거리며 뛰어 나갔다. 아마도 막대기를 들은 것을 보니 또 다시 검술 놀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씨 부인은 혼자서 침묵에 빠진다. 좌진을 낳을 때 몇 번이고 혼절할 뻔했던 기억이나 저 나이에 다른 아이에 비해 더 큰 덩치 그리고 행동거지가 보통 아이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래서 생전에 남편인 김 참봉이 좌진에 대해 군사를 지도할 장수감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이씨 부인은 좌진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에 필적할 뛰어난 무관(武官)으로 길러내는 일이 죽은 남편의 유훈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쏜살같이 휑하고 뛰쳐나간 좌진은 해가 질 무렵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이고 그때쯤이면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뛰어 들어오던 좌진이 오늘따라 돌아오지 않고 있었지만 오늘은 좀 늦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꼬박 질 때까지도 좌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씨 부인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므로 30여명의 노비들을 동원하여 마을 곳곳을 찾아 보았으나 좌진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씨 부인은 가슴을 졸이며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득 번개같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앞뒤 생각없이 월선지(月仙池) 쪽으로 향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다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월신지는 자그마하나 꽤 깊은 연목이다.

 

발길을 재축하여 월선지 근방에 가니 연못가에서 좌진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좌진아!”

 

이씨 부인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좌진을 부르며 붙잡았다. 그런데도 좌진은 놀란 기색도 없이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아니 너는 이렇게 늦도록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이와 같은 어머니의 눈물섞인 목소리에도 좌진은 맥풀린 모습으로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무어보는 것을 뒤로 미루고 우선 집에 갈 작정으로 좌진을 업으려 했다.그러나 좌진은 업히지 않고 걸어가겠다고 고집하여 하는 수 없이 좌진의 손을 잡고 바쁜 마음과는 달리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당도하자 집안 어른들과 노비들이 에워싸고 모두들 한마디씩 물어 보았으나 좌진은 입을 꼭 다문 채 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뒤따라 들어간 어머니는 아들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묻는다.

 

“너 정말 월선지에는 뭐하러 갔니?”

 

좌진은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하늘에 간 아버지가 오는가 보러 갔었지.”

 

어머니 이씨는 어린 아들 앞에서 양반의 체면은 물론 종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고 참았던 과부의 설움이 터져 나와 울었다.

 

“좌진아!”

 

그러나 좌진은 우는 어머니를 달래지도 않고 같이 울지도 않은 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울음이 진정되자 좌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월선지에 들어간 용을 다시 깨우면 나도 하늘로 갈 수 있을까? 그러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어머니는 목이 매어 입을 열지도 못했다. 어린 아들이 압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자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좌진이 다섯살 되던 해는 1894년으로 전라도의 고부군민들이 조병갑(趙秉甲) 군수의 학정에 항거하여 동학접주(東學接主) 전봉준(全琫準)의 영도하에 봉기하여 갑오농민항쟁(甲午農民抗爭)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고 2월에는 김좌진 장군의 11촌숙인 김옥균이 상해에서 홍종우(洪鐘宇)에게 암살당했다.

 

5월에는 청(淸)의 제독 엽지초(葉志超)가 군사 1천 5백명을 거느리고 아산만에 도착하는가 하면 일본의 혼성여단(混成旅團)도 인천에 도착하여 즉시 서울에 들어왔다. 6월에는 친일대신 김홍집(金弘集)이 영의정(領議政)에 임명되어 일본의 내정간섭이 시작되더니 극기야는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와 일본 양국의 군대가 충돌하여 7월에 청일전쟁(淸日戰爭)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나라가 어수선한 때에 남편을 여읜 과부 이씨 부인은 4남매의 보육과 큰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고민 때문에 날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 좌진은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기가 죽거나 시무룩하는 법 없이 꿋꿋하게 자라고 있었다.

 

 

★ 개화사상을 처음으로 듣게 되다

 

어린 좌진은 글공부보다는 노비의 자녀들과 어울려 군사 놀이를 하는 데 더 열심이었고 온갖 장난으로 말썽을 부려 마을에서는 소문난 개구쟁이가 되었다. 그런 좌진의 모습에 상심이 컸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집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광천 출신의 김광호(金光浩)에게 아들 교육을 맡기기로 하였다.

 

이 때에 열살이 된 좌진은 보통 어른들과 키가 같고 힘도 웬만한 장정과 견주어 있었다. 농작물을 타작할 때 장정들은 등에 지고 운반하는 벼 한 섬을 양손으로 번쩍 들어 곡간으로 단숨에 갖다 놓는가 하면, 동리 주점에서 불량배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면 좌진이 쫓아가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서 던져 버리기도 하고, 자전거가 처음 보급됐을 때 그것을 타고 가면서 종소리를 내려 해도 잘 되지 않자 자전거에서 내려서 종을 손 힘으로 쭈그렸다 다시 펴기도 했다.

 

이렇게 완력에 있어서는 어른들도 인정하는 천부적인 특기를 가졌던 좌진은 남에게 모든 면에서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힘으로 안되면 꾀를 내서라도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김광호는 이런 좌진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으며 좌진은 그의 밑에서 착실하게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광호의 교육을 받은 지 3개월이 지나 통감(通鑑) 첫째 권을 독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날에 김광호가 운영하는 서당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들어왔다. 그는 김광호의 조카가 되는 김석범(金錫範)으로 서울의 배재학당(培材學堂)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때마침 마당에서 김광호의 아들인 용팔이와 진(陳) 밟기 놀이를 하고 있던 좌진은 김석범의 차림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상투도 없이 짧게 깎은 ‘하이칼라식’ 헤어스타일에 기름을 반지르하게 바르고 고밑 수염까지 제법 근사하게 기르고 있는 김석범은 서양식 학생복을 입고 광채 나는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좌진은 그 신기한 모습에 끌려 놀이를 그만두고 용팔이를 마당에 버려 둔 채 김석범을 따라 김광호의 방에 들어갔다.

 

“숙부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김석범은 김광호 앞에서 넙죽 엎드려 절하고 인사를 올렸다.

 

김광호의 안색은 파랗게 변해 있었다.

 

“너도 단발령(斷髮令)을 좇아 머리를 깎았느냐?”

 

“그렇습니다. 단발령은 벌써 5년전에 내려졌지요. 지금은 단발령이 철폐되었지만 머리를 깎은 후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1895년 11월 단발령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김홍집 내각에 의해 공포되었으며, 유생들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백성들로부터 반발을 받았던 터였다.

 

“네놈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말도 모르느냐?”

 

“숙부님, 머지 않아 조선 사람 모두가 머리를 깎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운명(運命)입니다. 일본은 이미 우리보다 훨씬 일찍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국력이 강성해졌고, 결국 우리의 국체(國體)를 위협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좀 더 일찍 판단하여 빨리 깨우쳤다면 어찌 이런 일이 올 수 있었겠습니까?”

 

김석범은 차분하게 답변했다. 옆에 앉은 김좌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귀담아 듣고 있었다. 김광호는 더는 단발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래, 요즘 서울에서는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작년 10월에 윤치호(尹致昊) 회장이 이끄는 독립협회(獨立協會)가 주동이 되어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가 의회개설(議會開設)을 요구해 왔으나 11월에 수구단체인 황국협회(皇國協會)에서 전국의 보부상 수천명을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강제로 해산시켰고 황명에 의해 독립협회마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작년에는 범인을 할 수 없지만 황제 폐하에게 독이 든 차를 먹여 독살하려다 실패한 사건까지 벌어졌지요. 게다가 일본인들은 저희 멋대로 미국의 모오즈 회사로부터 경인철로 부설권까지 인수받아 조선 사람들을 강제노동까지 시키고 있어도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할 실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인들에게 학대받으며 강제노동에 동원되어 고생만 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김석범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김좌진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있었다.

 

“앞으로 몇년도 안가서 우리 나라가 일본에게 완전 점령될 것이 예상되고 있어요. 일본의 군대가 궁궐을 점령하고 국모(國母)를 시해했으며 조정은 친일파가 장악하여 왕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어지러운데 저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 정말 슬픕니다.”

 

김석범의 말을 듣고 김광호는 기가 막히다시피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대 김석범은 옆에서 듣고 있던 소년 좌진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저 녀석은 네가 가장 존경했던 개화파의 영수 고균(古筠) 선생의 먼 조카가 되는 아이지. 김형규 참봉의 둘째 아들 좌진이다.”

 

“그래요?”

 

김석범은 새삼스럽게 좌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는 김옥균 선생과 같은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지내야 한다. 비록 그 분이 주도하신 갑신정변(甲申政變)은 안타깝게도 삼일천하(三日天下)에 그치고 말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체계적으로 개화사상(開化思想)을 정립한 것은 김옥균 선생이 처음이다. 지금이라도 나라와 민족을 빨리 개화시켜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

 

좌진은 김석범의 말 뜻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미성숙의 단계였지만 나라의 운명과 자신이 해야 할 구국운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양반 계급이라고 사치스럽게 입은 옷에 정자관만 쓰고 노비들의 노동력이나 부려 먹는 모습이 과연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겠는가? 좌진은 가슴 속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김석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광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김석범의 말을 옆에서 들으며 뭔가 납득되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없으며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던 좌진은 따라 일어서며 김석범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김석범은 뒤를 돌아보며 좌진을 타일렀다.

 

“얘, 날도 저물고 추운데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김석범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좌진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득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왜 내가 그동안 집안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셨을까? 그들이 종의 자식이기 때문일까? 나는 안동 김씨의 양반집 아이이기 때문에 종의 자식과 어울리면 안 된다는 말인가? 양반과 노비의 구별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그동안 양반들은 노비를 짐승처럼 길러왔던 것이지. 새끼를 많이 나야 자기 집 짐승이 많아지는 것처럼 종들도 일찍 짝지어 주어야 아이를 많이 낳을 테니... 그래야 나중에 노비들이 많아질 것이니까 그래서 양반들이 종들을 일찍 짝을 지어 주었구나. 그동안 노비들은 짐승 취급을 받고 있는 거야. 음, 참으로 기가 막힌다.’

 

좌진의 밤을 새는 공상은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탐내고 있는 것도 우리 민족을 자기 나라의 종으로 만들고 싶은 거지... 참으로 이 일을 어찌 할꼬? 우리가 저놈들의 종이 된다면 양반이 노비를 부리듯 또 그러겠지. 나도 우리 집 종들처럼 왜놈들의 종이 된다면 왜놈들 무릎 아래서 굽실거리게 되겠지. 아...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어떤 길을 택해야 될건지도 판단이 안선다. 지금 우리 민족이 판단을 잘못한다면 왜놈들의 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석범 형의 말처럼 우리 나라와 백성 모두가 왜놈들의 종이 되는 것 아닌가? 정말 큰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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