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일레븐 2011-06-07]
이탈리아 사람들은 연출가를 뜻하는 단어 레지스타를 축구 용어로 쓴다. 특정 포지션의 선수라기보다 특정 역할을 일컫는 표현으로, 직접 경기를 좌지우지하지는 못하나 대신 동료들의 플레이를 연출하며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를 부르는 말이다. 가나를 맞아 선보인 기성용의 활약상이 바로 레지스타에 가까웠다.
7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가나와의 A대표팀 친선경기에 선발 출장한 기성용은 최근 조광래호에서 맡고 있는 역할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비록 2-1 승리 과정에서 넣은 두 골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전반적인 존재감은 퍽 컸다. 기성용보다 앞에 위치한 이용래와 김정우가 적극적인 압박에 나서면 한 발 뒤에서 상대 공격의 흐름을 읽었다. 활동량이 평범했음에도 상대 수비를 끊어내는 빈도가 높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위치 선정 능력이 크게 좋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대 공격을 저지한 이후의 모습이었다. 한국의 공격방향을 좌지우지하며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좌우했다. 역습 상황에서 기성용이 공을 잡으면 짧고 긴 패스를 통해 동료에게 공이 연결됐는데 좌, 우, 중앙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좋은 공격장면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좌우 측면에서 침투하는 선수에게 직접 찌르는 침투패스도 성공률이 높았다.
길고 짧은 패스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정평이 난 오른발 킥 덕분이었다. 기성용의 오른발은 전반42분 대단한 명장면을 연출할 뻔 했다. 하프라인 아래, 상대 골문과 약 60m 떨어진 곳에서 공을 잡은 기성용이 킹슨 골키퍼가 전진한 것을 보고 그대로 슛을 날렸다. 멋진 호를 그리며 날아간 공은 아깝게 윗그물에 맞았지만 그의 킥력을 여지없이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비록 여전히 직접 상대방의 공을 빼앗는 태클 기술이나 스스로의 발재간으로 압박을 벗겨내는 힘은 아쉬웠지만, 전반적으로 조광래 감독이 원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에 근접하고 있는 기성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지스타 기성용이 한국 공격을 연출해나가는 모습은 조광래호의 축구를 보는 하나의 즐거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베스트일레븐 김정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