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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는 네모난 공간 속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건물 안은 알록달록한 색은 찾아 볼 수 없고 온통 칙칙하고 어두운 색의 인테리어로 가득한 이곳은 경찰서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수많은 서류들과 남자들만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여기저기 먹다 남은 컵라면, 우유, 쓰레기가 책상 곳곳에 지저분하게 있다.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아 취조하는 형사와 조사를 받는 사람들의 말다툼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다. 경찰서 문이 열리고 김정수 형사가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남자를 수갑을 채운 채 서 안으로 들어온다.
“ 이쪽으로 와서 앉아. 우리 빨리 끝내자. ”
인상을 구기며 반대편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는 남자도 정수 형사와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 아씨.. 그냥.. 말로만 싸운 거에요.. ”
“ 목격자들이 그렇게 진술했어! 어딜 딴소리를 해? 너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진술하는데 나보고 그걸 믿으란는 거냐? 왜 그랬어? 여자 친구였다면서 왜 손 지검을 해? 남자 망신 다시키고. 엉? ”
“ 그 년이 먼저 바람을 폈는데 형사님은 입장은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 화 안 나시겠어요? 네? 억울합니다. 형사님.. 휴..”
이진욱 경감이 다가와 정수 형사의 어깨를 토닥인다.
“ 아.. 경감님. 오셨습니까? 식사는? ”
“ 했지.. 살살해라.. 점심은 먹었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너희들도 조사받는 사람들도 먹여가며 해..그래야 서로 힘내서 일하지. 안 그래? ”
“ 하하하. 그렇죠. 역시 저희 생각 해 주시는 분은 경감님 밖에 안계시다니까요? ”
주변을 둘러보던 이진욱 경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경감의 시선이 한 책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는 정주환 경위라고 쓰여 있다.
“ 정팀장은 아직..인가? ”
“ 아..네.. 아직....”
주환이 언급되자 경찰서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고 조사를 하던 다른 형사들 또한 말수가 줄어든다.
“ 하루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할 텐데...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노을이 저물어 갈 때 즈음 남색 반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은 차림으로 바쁘게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한 여자.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에 여자로서 치장 하나 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다 직장인 신문사로 들어오는 중이다. 검정색 빅 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바쁜 걸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여기저기에서 컴퓨터 자판 치는 소리로 요란하다. 수정이 들어 온 지도 모를 정도로 모두 열심히 일에 집중한다. 수정은 성큼 성큼 다가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편집장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전화를 받던 편집장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고 수정이라는 것을 확인 하고는 알았다는 듯 손짓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전화를 끊는다.
“ 왔군. 갔던 일은 잘 마무리 하고 왔나? ”
“ 그럼요. 편집장님~ 제가 누구에요. 전 문화일보에 유능한 기자 라구요. 당연히 해결하고 왔죠. 준비한 기사 초본이에요. 한번 검토 해 주세요. 저는 이것만 드리고 다시 나가 봐야 해요. ”
“ 하하하하. 기분이 아주 좋아.. 황기자만 있으면 우리 문화일보가 빵빵 터지겠어. 바쁘게 뛰어 주니 나야 고맙지.. 그래. 검토 해 볼 테니 나가서 일 봐. ”
“ 네. 편집장님. 일 보고 전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
취재를 마치고 나와 주차장에 세워진 낡은 소형차의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 수정. 그러나 쉽게 시동이 걸리지 않자 힘을 주어 엑셀을 밟는다. 여러번 시도 끝에 어렵게 시동이 걸리고 차가 출발한다. 운전하는 내내 기분이 좋은 수정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 소리에 리듬을 맞추며 손가락을 핸들 위에서 움직이며 박자를 맞춘다. 금요일인 오늘이, 그리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 길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28년을 살아 왔지만 그 어떤 부모보다 자신을 아껴 주었던 고아원 원장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부모 없이 자랐어도 수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에 대해 원망 해 본 적도 없고 자신이 천의 고아라는 사실이 살아가는데 고통스러운 존재는 아니었다. 어릴 때 지금의 고아원 원장님이 자신을 챙겨 보살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성장해 기자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어려웠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았다. 자라면서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때도 물론 있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면, 운동회 날이면, 입학식, 졸업식 때면 매번 찾아오는 외로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수정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러나 그런 상황들로 하여금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이렇게 잘 성장해 사회에 당당히 나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혹여나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만난다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 모든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천사 보육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작고 아담한 건물 주차장에 들어선 수정의 차가 멈춘다.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시골마을에 위치한 보육원 근처에는 불빛이 그리 많지 않아 주변은 어둡다. 수정이 차 문을 열 때 잠시 차 주변이 환해지고 차 문을 닫자 주변이 어두워졌고 트렁크에서 물건들을 잔뜩 꺼내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이 시간이면 아이들이 자고 있을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수정은 혹시나 자신의 요란한 방문 때문에 곤히 자고 있는 예쁜 천사들의 잠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으로 조심스레 한걸음씩 옮기고 문을 연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 자고 있기도 하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들 때문에 원장 선생님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 그렇게 해서 왕자와 공주님은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대.... ”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는 수정.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이불을 잘 덮어 준 다음 일어나 뒤돌았을 때 수정을 발견한 원장은 반가운 표정으로 변한다.
“언제 왔니? 아이고.. 아이들 깰라.. 나가자. ”
원장실로 자리를 이동한 두 사람은 오랜만에 재회라 서로를 안아주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 기자 일이 고된 모양이네.. 수정이 네 얼굴이 많이 상했어... 밥은 제 때 먹고 다니는 거야? ”
“ 그럼요. 저 어디가도 잘 살 거라고 원장님이 항상 그러셨잖아요. 신문사에서도 당연히 밥 제일 많이 먹고요. 먹을 거 있으면 제가 제일 먼저 달려가서 먹는다니까요. 원장님이 제 속살을 못 보셔서 그래요! 저 요즘 살이 너무 쪄서 고민일 정도라고요. 헤헤 ”
“뭐~~어? 하하하. 수정이 너 때문에 내가 웃는다. 웃어. 너무 바쁘고 늦었으면 다음에 와도 되는 건데.. 오늘 굳이 저녁에 운전까지 해 가면서 고생되게 온 거야? 밤에 운전하는 거 위험하다던데.. 나중에 오면 어떻다고... ”
“ 고생이라는 생각 전~혀 안하고 왔어요. 아이들 얼굴도 보고 원장님도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왔고만.. 제가 안 반가우신 거에요? ”
“ 에이~ 그럴 리가 있나.. 피곤하겠다.. 내일 일찍 가야한다며.. 얼른 자자..”
“ 네~~ 오늘은 원장님이랑 꼭 껴안고 자야겠다. 그래도 되죠? ”
“ 이제 결혼 할 나이가 꽉 찼으면서 어리광은....”
천사보육원 아이들과 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차에 오르는 수정은 항상 이 시간이 되면 헤어짐에 서운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자신의 어렸을 적에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할 무렵 보다 더 전부터 이곳에서 생활했던 수정에게 이 곳 천사보육원은 단지 부모 없는 불쌍한 아이를 키워주고 돌봐준 시설이라고 보다는 언제나 기댈 수 있고 따스한 집이었기 때문일 거다.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시동을 걸어 서울로 출발한다.
국도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리고 이어폰을 귀에 건다.
“ 네 과장님.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에요. 네.. 한 3세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네.. 네.. 알죠. 금방 가겠습니다. 휴... 좀 쎄게 밟아 볼까...... ”
그리고 한참을 가던 수정의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점점 속도가 나지 않고 끝내는 도로 위에서 차가 멈춰버린다. 시동을 다시 껐다가 켜 봐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차 속을 확인 해 보는데 기계와는 별로 친분을 쌓아두지 않았던 터라 도통 뭐가 문제인지 알 길이 없었다.
“휴.. 미치겠네... 뭐가 문제래.. 안되겠다..보험회사에 전화 해봐야지.. ”
그러나 전화를 해 봤지만 2시간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보험회사 직원의 성의 없는 답변에 화가 난 수정은 전화기를 끊어 버렸다. 3시간 안으로 서울 도착이라고 말했건만 이렇게 되면 언제 서울에 도착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도로 위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잡아보려고 손을 흔들어 본다. 그러나 벌써 4번째 수정의 몸부림을 무시하고 쌩쌩 속도를 내며 지나가버리는 무심한 인심 때문에 슬슬 짜증도 밀려오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 하고 있다가 문득 드라마에서 봤던 지금과 비슷한 상황들이 생각 나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화장기 없는 밋밋한 얼굴에 무늬 없는 티 한 장에 청바지를 걸친 자신의 얼굴이 창문 속에 보이는데 본인 스스로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 오늘 내 의상 죽인다.. 정말... 화장이라도 좀 해볼까.. ”
차 문을 열어 가방을 뒤적거리며 화장품을 찾지만 나오는 건 분홍색 립스틱 달랑 하나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거라고 입술에 바르고 입술을 움직여 본다. 반팔 흰 티셔츠 소매를 어깨 위까지 걷어 올려 섹시함을 강조 하고 나름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도로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하는 수정. 그러나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슬슬 지쳐가고 짜증도 났을 때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이고 힘들지만 이곳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다시 일어나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차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또 지나가 버리자 한숨을 쉬고 포기하고 있는데 지나쳐 갔던 그 차량이 다시 후진을 하는게 아닌가! 성공했다는 승리의 표정을 한 번 짓고 도도한 표정을 짓는 수정 앞에 선 차량이 창문이 열리고 그 안에 탑승 해 있는 커플이 보인다. 순간 여자가 있어 당황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웃으며 말한다.
“ 저기요. 차가 고장 나서 그러는데.. 서울까지만.. 태워 주시..”
“하하하하하. 자기야. 이 여자 남자 꼬시려고 화장도 안하고 립스틱 발랐나봐~ 어머 . 티셔츠 어깨까지 걷어 올린 건 뭐니? 이래 가지고 남자들이 태워 주겠어? ”
“ 그러게.. 하하하. ”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수정은 예의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진 않았다.
“ 태워주기 싫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지~ 나도 이런 똥차 얻어 탈 생각 없으니까 가보세요~ ”
독설을 내뱉고는 혹시나 무슨 싸움이라도 번질까봐서 자신의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한숨을 쉰다. 곧 그 말에 화가 난 남자는 차에서 내려 수정에게로 다가오고 운전석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 소리를 무시 해 버린다. 화가 나서 독설을 내뱉긴 했어도 남자가 화나면 무서울 거라는 생각에 얼른 차에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이런 저런 욕설을 퍼 붙고 이내 그 자동차가 수정에게서 멀어져 가자 그제 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 2시간이면 도착한다더니.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휴......”
그 때 백 밀러에 비치는 큰 트럭이 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인다. 다시 굳은 결심을 하고 차에서 내려 도로 한가운데로 가서 양팔을 벌리는 수정. 미인계라도 안 되면 위험하더라도 어떻게든 지나가는 차를 멈춰야만 했다.
“제...발.. 멈..춰줘....제발~~~!!!!”
큰 경적소리와 함께 무서운 크기로 다가오는 트럭은 수정에겐 너무 무서운 존재였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얼마 후 다시 눈을 떠서 앞을 봤을 때는 트럭이 자신의 코앞에 딱 멈춰 서 있다. 그러나 바로 돌아오는 것은 욕설이다.
“ 이 아가씨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막고 서 있으면 어떻 해요? 누구 감방 보낼 일 있어? ”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빙그레 웃으며 운전석으로 다가오는 수정.
“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제가 지금 서울에 급하게 빨리 가야하는데 차가 고장이 나서요. 벌써 한 시간째 이러고 있어요. 정말 정말 급해서 그랬어요. 한번만 태워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
“ 으..음... 사정은 딱하긴 한데.. 이를 어쩌나.. 자리가 없어서 태워 줄 수가 없는데. 짐을 싫어서 여긴 자리가 없고.. 정 급하면 뒤에라도 타고 가던가... ”
“ 아.. 뒤요? 그렇게라도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
급하게 자신의 차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 트럭 뒤로 향하는 수정은 염소우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겹게 트럭 뒷 자석을 얻어 낸 수정은 트럭에 올라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한 남자를 발견한다. 웃으며 옆으로 와 앉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 안녕하세요? 저랑 같은 처지시네요? 서울까지 가세요? ”
어색한 첫 만남이라지만 수정의 인사에도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볼 뿐이다. 이 남자. 3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의 첫인상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나름 분위기 있어 보였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눈썹은 고르고 찐하고 쌍 커플이 없지만 작지 않는 눈에, 남자다운 코에 입술을 가진 적당히 난 수염 때문에 분위기를 더 완성하는 느낌이랄까. 수정은 자신의 어색한 인사를 받아주진 않았지만 반대편에 앉아서 서울로 가는 트럭 뒤에서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을 힐끔 힐끔 훔쳐보며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감상하다 자신도 모르게 박스에 기대어 잠이든 수정. 무언가 자신의 얼굴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뜨니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방을 뒤적거리지만 우산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그 남자 쪽을 보니 이미 비 맞을 것에 대비 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비를 간신히 피하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우산을 대신할 것은 딱히 보이지 않자 어색한 웃음을 하고는 흔들리는 차위로 남자를 향해 걸어가다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진다. 쾅 소리와 함께 넘어진 수정은 아픈 부위보다 처음 본 남자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창피했으나 애써 웃으며 일어나 그 남자에게 다가간다.
“ 하하. 비가 오네요. 저기.. 실례지만 그 옷 좀.. 같이 쓰고 있으면 안 될까요? 보시다시피 저도 우산이 없어서요.”
“ 싫습니다. ”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던 수정. 단 1초의 고민하지도 않고 그 남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 싫다구요? 하.... 이렇게 비가 오는데 인심 한 번 쓰시죠? ”
“ 싫습니다. ”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야기 하다간 화도 나고 무안할 것 같아서. 뒤를 돌아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은 수정은 산을 향해 돌아앉은 다음 가방으로 머리를 가렸다. 서울까지 비를 맞고 가는 수정은 겉모습만 보고 잠시나마 멋있다고 생각했던 좀 전에 자신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다. 이렇게 여자에게 매너 없는 멋없는 남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분한 마음마저 들었다. 다행이 비는 그리 오래 내리지 않아 그쳤고 얼마 뒤 두 사람을 싫은 트럭은 서울 역에 도착한다. 수정은 주환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건다.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만나서 반가웠어요. ”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은 척도 안하고 자기 갈 길 바쁜 무심한 남자. 그런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움직이며 한숨을 쉰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허무함과 어색함이 가득하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