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상에선 아는 사람들 이외에는 댓글도 잘 달지 않아
이런 곳에 글 올리는건 참 익숙치 않은 일인데 ............
제게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용기를 내어 이 곳에 글을 올립니다^^;
편의상 글을 쓸 때는 경어 생략하겠습니다 ㅠ.ㅠ
여기에 게재하는 내용은 제가 살면서 겪었던 실화입니다.
--------------------------------------------------------------------------------------
올해 스물 셋.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노량진에서 12시간 이상을 상주하는 잉여다. 킁....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건 , 어렴풋하지만 - 내 기억에는 일곱 살 이후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겪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전이었겠지 ..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
나는 , 아기때도 집안에서 제사만 지내면 그렇게도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
매번 제사 지낼 때 마다 거의 기절할 정도로 울었다고 .......
일곱살 ,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일을 기억한다 .
난 보이지 않는 존재 - 그 때는 그것을 '하느님' 이라고 믿었다 - (우리집 불교인데-_-;;)
와 밤마다 대화를 했었고 ,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가 귀신보는 이상한 애로
따돌림 당했던 기억이 어럼풋하게 남아있다.
여름에 더울 때나 , 한겨울에는 난방비 아낀단 이유로 온 가족이 거실에서 잘 때는
벽에 사람들이 수십명이고 지나가는게 보였었고. 늘 밤이 무서웠다.
오랜 불면증은 아마도 초등학교 무렵부터 .......
난 아직도 , 잠자리에 누워서 바로 잠드는 사람이
100억을 가진 사람보다도 부럽다. 꿈 안꾸고 한 번 자보는게 소원이니까.
중학교 무렵에는 , 처음보는 친구들의 얼굴만 봐도 그아이가 어디 사는지,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대화 한 마디 안해봐도 그랬었고 , 점점 내 말이 맞아들어갈수록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했다.
그 무렵이었을거다 . 다른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였던건 .
가위 .......... 그리고 귀접 .
불면증은 하루가 갈 수록 더해갔지만
가끔 꿨던 예지몽과 데자뷰는 그저 신기했고, 남들과 다른 능력이 가끔은 뿌듯하기도 했다.
불교인 우리 집안은 절에도 많이 찾아갔는데 ,
이상하게도 스님들이 나만 예뻐하셨고 ........... 용돈도 많이 받았다.
원래 스님들이 용돈주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라는데 .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
당연하다 여기고 살았다.
어린시절 , 그런 능력이 있었던 탓에 사주풀이 , 관상 , 손금 , 철학 ..
이런 것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동양철학과에 가고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
열 네 살이던가 . 부모님을 따라 계룡산 중턱 깊은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적이 있다.
유난히도 음기가 강하게 느껴졌던 산이었다. 난 아직도 계룡산은 좀 무섭다.
(가끔 터가 센 곳에 가거나 음기가 강하거나..아무튼 그런 곳은 느껴진다.)
그 산 앞에 서자마자 , 섬짓한 기운이 날 휘감는 듯 했다 .
그 절은 ,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
TV하나 라디오 하나도 없이, 실외 아궁이에서 밥을 해 먹고
화장실도 푸세식도 아닌. 정말 널판지 두 개 있는 ..(요즘도 그런 화장실이 있다니.)
정말로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터가 참 세다 ................. 라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래도 맙소사. 절에서 가위눌리는 애는 정말 많지 않을거다-_-
아궁이 옆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
덩치도 큰게 호랑이같이 생겨서 정말 영물이다 .. 라고 느꼈는데
이녀석에게 장난 한 번 쳤다가. 우와. 이번 가위는 정말.
고양이 눈이 아주 크게 눈앞에서 다가오면서 시작된 가위,
밖에서 사람들이 자꾸 왔다갔다 하는게 보였고 (물론 이건 환각..)
한참을 잘못했다고 빌고 나서야 가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아빠의 새벽기도를 따라나갔는데 ,
아빠도 역시 기도하면서 이상한 일들을 겪었다며 .
여긴 정말 터가 세고 귀신이 많다고 .................... 음. 저도 알아요 아빠.
그땐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
예지몽도 , 가위도 , 사람들에 대해 감이 좋은 것도 .
꿈꾸는건 집안 내력이라 생각했고 , 난 그저 감이 좋은 애인줄만 알았다.
그게 추후에 얼마나 큰 일을 불러올지
날 얼마나 힘들게 할지 알지 못한 채.
한 인간으로 태어나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도 버거운 일인지 알게된건 그러니까 작년 하반기부터였다.
-
우리 집안 사람들 ........ 그러니까 엄마아빠 ,
우리 엄마아빠의 딸이 아니었다면.
아니, 아빠가 그렇게 집에서 기도를 시작해 내 영적인 부분을 확 열어놓지 않았다면
내가 조금은 더 순탄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 ,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었을거다. 분명히.
어쨌거나 2010년은 내게 너무도 버거운 한 해였다.
그리고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
그저 독한 것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요즘도.